판시사항
성전환수술을 받은 자에 대하여 호적공부상 성별의 정정 및 개명을 허가한 사례
결정요지
성전환수술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정당하게 시행된 경우에는 법률상의 성별정정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고 보아 성전환수술을 받은 자에 대하여 호적공부상 성별의 정정 및 개명을 허가한 사례.
참조조문
[1] 호적법 제113조 제1항 , 제120조
신청인겸사건본인
신청인 겸 사건본인
주문
1.부산광역시 서구청에 비치된 위 본적 호주 신청외 1의 호적중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성별란 기재 "남"을 "여"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다.
2.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을 허가한다.
주문과 같다.
이유
1. 신청원인
신청인 겸 사건본인(이하 '신청인'이라고만 한다)은 남자의 외부성기를 가지고 태어나 호적상 성별이 남자로 기재되어 있으나 어릴 때부터 남자로서의 의식과 행동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고 여자 옷을 입는 등 신체의 성과는 다른 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우울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정신과 의사로부터 선천성 성전환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정신요법 등의 치료를 거쳐, 1999. 6. 국내의 한 병원에서 남자에서 여자로의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신청인은 호적에 기재된 성별의 정정과 아울러 남자임을 전제로 지은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바꾸어 달라는 취지의 허가를 구한다.
2.성전환자에 대한 법적 인식과 처우
성전환수술과 이로 인한 성별정정에 관한 국내외 문헌의 내용 중 이 사건 신청원인을 이해하고 판단함에 당원이 상당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사람의 성은 남녀로 양분되고,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남녀 양성체제로 구성·운용되어 왔다. 사람이 출생하면, 호적관서에 출생 연월일, 성명과 함께 성별을 신고하여야 하고, 호적에 기재된 성별은 대체로 그 사람의 불가변의 법률상 성별로서 이에 따라 가족과 사회 내에서 일정한 지위와 성적 역할이 부여된다.
나.사람의 성을 구분하는 요소로는 우선 생물학적 요소로 성염색체, 성호르몬, 생식선(내부성기), 외부성기를 들 수 있고, 정신의학적·심리적 요소로는 2차 성징, 양육 또는 교육으로 인한 성, 성 역할 등을 들 수 있으나, 크게로는 생물학적 성(sex)과 정신적·사회적 성(gender)의 둘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다.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임과 동시에 사회적·정신적 존재이다. 따라서 성개념에 관하여도 동물과 같은 자웅개념으로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이와 함께 정신적·사회적 성별개념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의 성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참조).
라.생물학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성 역할을 수행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마. 성전환증(transexualism)은 외부성기로 표현된 자기 신체의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성정체성 장애의 일종으로서, 자신의 신체적 성을 극도로 혐오하며 이를 제거하거나 변형하여 상대 성징을 얻으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동성애나 이성복장증 등과 같은 성적 취향이나 기호의 문제가 아니며, 보통의 정신병과도 다른 것으로서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이나 성기절단을 시도하게 되는 대단히 심각하고도 절실한 고통을 가진 특이한 병적 현상이다. 사회는 이들에 대하여 의학상, 법률상, 사회생활상의 신중하고도 적절한 처우를 하여야 한다.
바.성전환증에 관하여는 태내에서 진행되는 성분화 과정 중 어떤 사정으로 성염색체와는 다른 성의 뇌가 형성되거나 성호르몬 분비의 이상 등에 그 원인이 있다는 선천적인 요인설과 출생 후 어린 시절의 사회적인 학습의 결과가 그 원인이라는 후천적 요인설 등이 있으나 양자의 사정이 복합된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성전환증에 대한 의학상 치료방법은 정신요법, 호르몬요법, 외과적 수술 등이 있지만 진성인 경우에는 성전환수술이 필수적이다.
사. 성전환수술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정당하게 시행된 경우에는 법률상의 성별정정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명문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은 그들에 대한 협력을 거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개념은 본래 법률상 고유개념이 아니라, 성 의학 및 생물학으로부터의 차용개념으로서 자연과학에서 엄밀하게 확인된 성은 법률에서 이를 받아들여야 하고, 성전환증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존재이므로, 사회질서이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자기결정권(프라이버시 존중의 권리)을 지닌 소수자로서, 헌법이념에 따라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성전환수술 이후의 성별정정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헌법이념에 발견하여 성전환자에 대한 법적 인식과 처우에 관한 획기적 기틀을 마련한 것은 유럽인권조약기관과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의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선구적인 법리구성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그와 같은 판단이 나오기까지 프랑스와 독일의 하급심법원을 위시한 유럽 여러 나라 국가기관의 긍정적인 견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에서 더 나아가 스웨덴, 독일 등의 나라는 개개의 경우에 법원의 재판으로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조치만으로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이미 20여년 전부터 성전환자(transsexual)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차.법률상 성별정정의 합리적 기준에 해당하는 요건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의학상 요건과 법률상 지위에 관한 요건이 있다. 전자의 것으로는 ① 2인 이상의 정신과 의사가 인정하는 진성의 성전환증 환자이어야 하고, ② 2년 이상 심각한 성정체성 장애의 증세를 보이는 상태에서, 6개월 이상 적어도 1인의 정신과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정신요법, 호르몬요법을 실시하였으나 고통이 경감되지 아니하였어야 하며, ③ 공인된 병원에서 시술한 외과적 수술을 통하여 성적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변경되었어야 하며, ④ 상당한 기간 동안, 반대의 성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 또는 행동이 있어야 하고, ⑤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어야 하며, ⑥ 장래 성인식의 재전환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야 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것으로는 ① 원칙적으로 내국인이어야 하고, ② 만 23세에 이르러야 하며, ③ 의사능력 및 행위능력이 있어야 하고, ④ 미혼이거나 현재 혼인관계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카. 수술 전의 성에 적합한 종전의 이름이 성전환자의 성정체성의 유지 또는 확보나 성공적인 사회적응에 장애가 된다면, 본인의 희망에 따른 개명을 허가하여야 한다.
타. 요컨대, 성전환자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성적 소수자로서, 정당한 의학상·법률상 처우를 받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또한 그들의 정상적인 사회 내 적응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3. 인정 사실
신청인이 제출한 호적등본, 주민등록표등본, 병적증명서, A병원장 작성의 소견서, 진단서, 수술확인서, 정신과 의사 B 작성의 소견서, 부산백병원장 작성의 각 입·퇴원 확인서,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장 작성의 염색체검사서, A병원장 및 C임상검사센터 작성의 성호르몬 검사서, 당원의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사실조회 회보서, 당원의 부산지방병무청장에 대한 사실조회 회보서, 신청인 본인의 진술서 및 신청인의 모 D 작성의 의견서 등의 기재 내용과 당원의 신청인에 대한 심문결과를 종합하면 다음 사실이 인정된다.
가. 신청인은 E 부산 영도구 F에서 5형제의 막내로 출생하여 부(부)의 신고로 호적부의 성별란에 "남"으로 기재되었다.
나. 신청인은 초등학교 취학 전부터 치마를 입는 등 여성복장을 하고,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주로 하였고, 남자아이들과는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문에 숱하게 놀림을 받는가 하면, 집에서조차 이상한 아이로 여김을 받으면서 따돌림을 당하였다.
다. 신청인은 사춘기에 이르러 자신의 성이 신체의 성인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분명한 성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부산시 소재 남자 학교인 장편중학교, 부산기술고등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화장(화장)을 하고, 같은 반의 남자 친구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다가 학생들로부터 수모를 받고, 배척을 당하는가 하면, 담임교사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부모를 모셔오라는 등의 몰이해와 괴로움을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학업도 중도에 포기하였으나 학교측의 배려로 졸업장은 받을 수 있었다. 그 무렵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몇 차례의 자살시도도 있었다.
라.위와 같은 성정체성 장애에 시달리는 신청인을 보다 못해 가족들은 신청인을 부산백병원에서 각 신경정신과 소관의 상세 불명의 우울증 에피소드라는 병명으로 1차로 1988. 12. 28.부터 1989. 2. 3.까지, 2차로 같은 해 2. 6.부터 2. 9.까지 각 입원치료를 받게 하였고, 이어 3차로 같은 해 3. 22.부터 4. 17.까지, 4차로 같은 해 8. 27.부터 9. 19.까지, 각 신경정신과 소관의 상세 불명의 해리(전환)장애라는 병명으로 입원치료를 받게 하였으나 신청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은 경감되지 아니하였다. 위 정신과 또는 신경정신과 소관의 병명은 보통의 정신병이 아니라 신청인이 겪고 있는 성정체성장애에서 기인된 고통의 다른 표현임이 명백하다.
마.신청인은 1991. 9. 19. 병역법에 의한 징병검사에서 신체등위 5급으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이후 성전환증의 확진이 있는 경우에는 종전 처분의 취소를 구할 수 있고, 성전환수술로 인하여 성별정정까지 이루어졌다면, 종전의 병역처분은 그 효력이 상실된다).
바.이어 신청인은 의료법 제3조 소정의 의료기관인, 서울 광진구 G 소재 A병원 정신과에서 성전환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같은 병원에서 상당한 기간, 정신요법, 내분비요법 등의 치료를 거쳐 마침내 1999. 6. 22. 같은 병원 성형외과에서 남자에서 여자로 외부성기와 얼굴의 하악각을 변형하는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이에 앞서 유방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로 인한 비용은 4,0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소요되었다.
사.이후 신청인은 성 정체성과 외부성기가 부합하고, 성정체성 장애로 인한 고통이 해소되면서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였다. 수술결과에 만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귀는 남성과의 성생활동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수술을 전후하여 8년여에 걸쳐 호르몬요법의 치료를 받고 있다.
아.신청인은 장래 미용사와 같은 여성을 상대로 하는 직업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기를 원하고 있으나 미용학원에서의 멸시와 따가운 눈총을 견딜 수 없어 제대로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신분 확인 때마다 당하는 인간적인 모멸감과 이로 인한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신청인은 서울에 있는 게이 클럽(gay club)에서 가수 또는 무용수로 일하다가 그도 여의치 아니하여 정상적인 취업에 어려움이 있는 우리 나라를 피하여 1992년에서 1996년까지 일본의 밤무대에서 신청인의 표현을 빌리면 "죽기보다 싫은 공연"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힘들게 살다가 다시 귀국하여 유사한 업소에서 일하여 왔다. 현재는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5개월째 쉬고 있는 중이다.
자.수술 후 약 3년이 경과한 현재, 신청인은 미혼의 내국인으로서 성염색체(46, XY)를 제외하고는 호적부에 기재된 성별인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서의 성적 자기 인식과 외부성기가 일치함은 물론, 외관상 뚜렷이 여성으로 인식될 수 있는 외모와 체형 및 외부성기를 갖추게 됨으로써, 외과적 수술과 호르몬 치료 등의 의학상의 처우를 통하여 그 성별이 미혼의 여자로서 성공적으로 전환되었다. 향후 성인식의 재전환 가능성이 회박하고, 생식능력이 없으며,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아무런 장애나 불편이 없는 상태이다.
차.평안북도 영변군에서 6·25 사변 중 남편 신청외 2(H생, 1996. 4. 10. 사망)와 함께 월남하여 다섯 아들을 낳은, 신청인의 모 신청외 3(I생)은 그간 남편과 함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식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눈물겨운 노력을 다하였으나 성전환수술 외 신청인을 구제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신청인의 모(모)는 다른 가족들과 더불어 신청인의 성(성)을 진정한 여자로 받아들이며, 이 땅에서의 여명이 다한 자신의 간절하고도 유일한 소망이라면서,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자식이 부디 이 나라에서 평범한 여성으로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떳떳하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하여 달라는 취지로 호소하고 있다.
4.신청인에 대한 판단
가.앞서 본 바와 같이 ① 신청인은 서로 관련 없이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3인의 면허 있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일정기간의 검사와 관찰을 거쳐 진성의 성전환증 환자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고, ② 2년이 넘는 훨씬 오랜 기간, 심각한 성정체성 장애에 시달려 온 신청인의 증상을 진단한 의료인들은 상당기간에 걸쳐 신청인이 지닌 위 증상을 관찰하면서 이로 인한 고통 경감을 위하여 정신요법과 호르몬 요법을 꾸준히 시행하였으나 특별한 효과를 기하지 못하였으며, ③ 결국 성적외관을 반대의 성으로 변경하는 와과적 수술을 통하여 외부성기와 외모 및 체형이 여성으로 인식됨에 충분한 정도에 이르렀음은 물론, ④ 위 수술을 통하여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⑤ 같은 수술을 전후하여 적어도 3년 이상 여성으로서 유흥업소의 종업원으로 종사함으로써 그 성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 또는 행동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⑥ 장래 신청인이 지닌 성인식의 재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관한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신청인에 대한 위와 같은 진단과 성전환수술을 전후하여 관련 의료기관이 행한 일련의 의학상 처우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신청인에 대한 위와 같은 사정은 성별정정의 의학상 요건을 충족한다.
나. 신청인은 ① 현재 30세의 내국인으로서, ②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을 구비하고 있고, ③ 성전환증의 확진 전인 1991. 9. 19. 신체등위 5급으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은 바 있으나 위와 같이 성전환증의 확진과 이로 인하 성전환수술로 위 처분은 취소 대상이거나 실효된 것으로 판단되고, ④ 혼인도 아니하였으므로 신청인에 대한 위와 같은 사정은 성별정정의 법률상 지위에 관한 요건 또한 충족한다.
다.우리 나라 호적법 제15조 제4호 는 호적에 기재할 사항으로 성명 및 본관 함께 성별을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49조 의 출생신고서에는 자의 성명과 본 및 성별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하며, 같은 법 제120조 는 호적의 기재가 법률상 허용될 수 없는 것 또는 그 기재에 착오나 유루(유루)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이해관계인은 그 호적이 있는 곳을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호적의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 사람의 성별이 호적정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별의 단순 기재 착오가 아니라 성전환증 환자가 출생당시 확인·신고된 자신의 성을 외과적 수술을 통하여 반대 성으로 전환한 경우에 이를 법률이 용인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법률이 당초 예정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하는 특수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성전환수술로 인한 성별정정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정한 위 조항을 법의 흠결이라고 본다면, 이의 보완으로 이상적인 것은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호적법의 개정을 통하여 관련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관련 법률이나 호적법상 명시적인 조항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성전환수술로 성별정정의 요건을 갖춘 성전환자들의 신청을 배척하고, 그들로 하여금 입법조치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인간의 문화적 산물인 법령은 언어를 통하여 그 의미 내용이 지시된다. 그런데 본래 인간의 언어는 다의적인 데다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이를 해석하는 자는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가장 적절한 의미를 선택하여야 하고, 때로는 입법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생겨날 때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법관은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자구해석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 법이 담보하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정의실현의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며, 정의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성문규정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거나 축소·제한 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법 창조적인 가능을 발휘하여야 한다. 입법자 또한 시간적 제약 내에 있는 존재이므로 성전환자의 존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적정정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였다면, 우리는 변화된 새로운 시대상황하에서 입법자의 의사를 유추하여야 하고, 호적정정의 의미에 관하여도 전통적인 해석을 넘어 전혀 새로운 방식의 해석을 통하여 현실과 유리되지 아니한 진정한 정의를 구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법률조항의 흠결을 들어 신청인의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성전환증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헌법 제10조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헌법 제34조 제1항 ),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프라이버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성적 소수자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헌법 제37조 )는 헌법이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우선 이 점에서 용인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바.나아가 위 법조 소정의 착오라는 것의 원래의 뜻을 호적의 기재가 당초부터 사실에 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보아야 한다면, 출생신고시 외부성기의 형태에 따라 신고된 내용에 좇아 기재된 성별을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환증의 발생원인이 전적으로 후천적인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의 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성호르몬 분비 이상 등 선천적인 사정과의 복합적인 것으로 본다면, 당초의 성별신고는 향후 성 의식이 확립되어 그 사람의 궁극적인 성으로 확정될 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생물학적 성의 징표에 의존하여 외부성기만을 보고 한 잘못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사.가령, 위와 같은 성전환으로 당초의 성별신고가 사후적으로 착오에 해당하게 되었다고 보더라도 최종적으로 성이 확정된 시점에서 본다면 호적부상의 성별기재는 잘못된 기재임이 명백하고, 그럼에도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호적정정제도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이 때 착오가 당초의 것이냐, 사후에 확인된 것이냐 하는, 착오의 발견시기를 기준으로 한 구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다. 위 법조의 취지에 비추어 성전환수술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밝혀진 성별이 호적부의 기재와 일치하지 아니하는 이상 호적법 제120조 에 정한 정정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보편타당한 원리를 추구하는 사법은 본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그 바탕으로 한다. 이는 곧 사법이 지향하는 두 가지 목표인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부정함으로써 우리가 지켜야 할 보편타당한 원리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향유하면서 공공의 이익이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하지 아니하는 한, 사생활에 있어서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헌법이념이야 말로 우리가 수호하여야 할 보편적 원리임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그들이 성정체성에 관한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으로서 우리와 함께 섞여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동원하여 배려하고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사법이 추구하는바, 그 바탕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깔고 있는 것으로서 그와 같이 소수자들이 각 분야에서 자신들의 인격의 실현과 행복의 추구에 불편함이 없게 됨으로써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하고 성숙한 복지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성전환자인 신청인이 신체의 성을 외과적 수술을 통하여 자신의 성 인식에 부합하는 성으로, 변형하거나 자신의 본래 성을 주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질서유지나 선량한 풍속 또는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볼 자료는 없다. 성별정정 이후 이로 인하여 신분상의 지위에 관한 정리를 요하는 다소간의 법률문제가 없지는 아니할 것이나 남녀 양성에 관한 차별이 점차 해소되어 가는 역사적 발전 과정에 비추어 해결이 곤란하거나 신분상의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는 난점이나 하더라도 이는 성적 소수자인 신청인의 정상적인 사회적응을 위하여 우리가 함께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거나 극복하여야 할 장애에 해당될 뿐, 그와 같은 사유를 들어 성별정정 자체를 거부할 것은 아니다. 신청인은 성도착 등과 같은 성적 이상행동을 하거나 정상행동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성적 방종으로 사회질서나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사람이 아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성정체성 장애라는 특이한 병적 현상으로 심각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나 사회는 신청인에 대하여 적절하고도 합리적인 처우를 하여야 한다. 그에 대한 법률상 처우에 해당하는 호적상 성별정정을 통하여, 그가 그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남녀 양성체제로 편성된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새로이 부여된 성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격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자.한편, 신청인의 이름{가운데 글자가 J}은 호적상 장남, 차남, 3남, 4남에 이어 말 J자를 돌림자로 하여 지은 것으로, 그 음(음)과 뜻이 가리키는 "K"라든가 "L"이라는 것은 출생당시 확인된 성별인 남자에 부합하는 이름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 이와 같은 종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신청인의 정정된 성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 확보함에 장애가 되고, 그 이름으로는 사회 적응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차.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당원은 호적법 제120조 , 제113조 제1항 에 따라 부산광역시 서구청에 비치된 신청외 1의 호적 중 신청인의 성별란 기재 "남"을 "여"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하고, 신청인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을 허가한다(부산광역시 서구청장은 신청인의 신청에 의하여 위와 같은 내용을 위 호적의 정정사유로 기재함과 동시에, 이름란과 성별란의 기재 내용을 위화 같이 정정하고, 주민등록법 제17조의11 제1항 제2호 에 근거한 신청인의 신청에 따라 주민등록번호를 새로이 부여한 후 위와 같이 정정된 내용의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교부하여야 한다).
5. 결 론
그렇다면 적법한 성전환수술로 인한 호적정정과 개명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인의 이 사건 신청은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