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의료법 제19조 가 규정한 '의료에 있어서 지득한 타인의 비밀'의 의미
[2] 의사가 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서에 기재한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제3자에게 교부한 경우, 의료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3] 의사가 성폭행 피해자를 진찰한 결과 알게 된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가해자측에게 알려준 경우, 그 내용이 의료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2] 의사가 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서에 기재한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제3자에게 교부한 경우, 그 진술서의 내용상 단순한 용어설명의 정도를 넘어서 환자의 신뢰를 토대로 직접 진료한 의사가 아니면 덧붙여 밝힐 수 없는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내용과 그에 대한 의학적 소견 등 새로운 사항들을 담고 있다면, 이는 의료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3] 의사가 성폭행 피해자를 진찰한 결과 알게 된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가해자측에게 알려준 경우, 이는 피해자가 의학적 소견으로 보아 건강하며 별 이상이 없다는 취지여서 그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더라도 피해자측의 사회적 또는 인격적 이익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어 의료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검사
양석조
변호인
법무법인 두우 담당변호사 신철민 외 1인
주문
피고인을 벌금 2,000,000원에 처한다.
피고인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금 40,000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피고인에 대하여 위 벌금에 상당한 금액의 가납을 명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2002. 12. 14. 공소외 2에게 의료상 지득한 비밀을 누설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한다.
이유
범 죄 사 실
피고인은 서울 송파구 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레지던트 2년차)로서 2002. 11. 13. 성폭행 피해를 당한 공소외 1(여, 16세)를 진찰하여 그녀의 처녀막 파열 여부, 생식기에 대한 외상, 질 내에서의 정액 검출 여부 등에 관한 사실을 지득하게 되었는바, 2003. 1. 2. 위 병원 진료실에서 위 공소외 1에 대한 가해자의 어머니인 공소외 2로부터 공소외 1의 구체적인 상태에 대한 답변을 요청받고 위 공소외 2에게 공소외 1에 대한 진찰내용 즉 " 공소외 1의 경우 처녀막 파열이 되어 있지 않았다. 제 진찰로 강간 여부를 알 수 없었으며, 상처 자체는 경한 것으로 공소외 1의 경우 점같은 피멍이 보였으나 구체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고 자연치유가 될 정도의 비교적 경미한 상태였다. 처녀막 6시와 9시 방향에 오래된 틈이 보이고 있는데 오래된 틈이라는 것은 이번에 입은 상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피멍은 1밀리 정도 되는 미세한 멍자국으로 일반적으로 강간사건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특이적인 사항이다."라는 취지가 기재된 진술서를 작성 교부함으로써 의사로서 그 의료에 있어서 지득한 위 공소외 1의 비밀을 누설하였다.
증거의 요지
1. 제1회 공판조서 중 피고인의 진술 기재
1. 제2회 공판조서 중 증인 공소외 3, 공소외 2의 각 진술 기재
1.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중 피고인 및 공소외 3의 각 일부 진술 기재
1. 검사가 작성한 공소외 3에 대한 진술조서의 진술 기재
1. 사법경찰리가 작성한 공소외 3, 2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각 진술 기재
1.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수사기록 14쪽)의 기재
법령의 적용
1. 가납명령 : 형사소송법 제334조 제1항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작성한 위 진술서에 기재한 내용은 법원에 대한 사실조회 회신을 통하여 이미 알려진 내용에다 부가하여 의학적인 설명을 기재한 것에 불과하여 이를 의료법상 보호되는 비밀로 볼 수 없으며, 설사 비밀에 속한다 하더라도 위 진술서는 공소외 2를 통하여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었고 공소외 2는 이미 그 기재 내용을 알고 있었으므로 피고인의 진술서 교부행위는 비밀의 '누설'에 해당하지도 않거니와 비밀 누설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위 진술서의 기재 내용이 의료법상 보호되는 비밀에 해당하는가 살핀다.
무릇 '비밀'이란 일반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사실로서 그것이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한다. 과연 어떤 사실이 법률상 보호되는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통상은 객관적으로 보아 그것을 보호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겠지만, 본인이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금한 경우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의료법 제19조 는 의료인이 '의료에 있어서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정확하고 적절한 진료를 위한 필수적 전제가 되는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하여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알게 되는 비밀을 유지할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직업윤리를 의무화하여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비밀이란, 의사가 환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진료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보아 환자에게 이익이 되거나 또는 환자가 특별히 누설을 금하여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피고인의 진술서보다 먼저 2002. 12. 27. 법원에 보낸 사실조회서에는 공소외 1에 대하여 "정액이 검출되지 않았고 처녀막 파열은 안 되었으나 처녀막 6시와 9시 방향에 오래된 틈이 보이고 12시 방향에 피멍(점같이 보였음)이 보임"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에는 위 범죄사실로서 인정한 바와 같이 '상처 자체는 경한 것으로서 자연치유가 될 정도였고, 오래된 틈은 이번에 입은 상처가 아니라는 뜻이며, 피멍은 1밀리 정도 되는 미세한 멍자국으로 일반적으로 강간사건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특이적인 사항'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위와 같은 내용들은 피고인이 진료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로서 이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공소외 1에게 명예나 수치심 등 인격적 측면에서 이익이 되는 사실들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나아가 비록 피고인의 위 진술서의 취지가 그보다 앞선 사실조회서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단순한 용어설명의 정도를 넘어서 환자의 신뢰를 토대로 직접 진료한 의사가 아니면 덧붙여 밝힐 수 없는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내용과 그에 대한 의학적 소견 등 새로운 사항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는 그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밝혀지지 아니하였던 공소외 1에 대한 진료상의 비밀로서 보호할 만한 이익과 가치가 있는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함이 상당하다.
둘째로, 피고인이 위 진술서를 공소외 2에게 교부한 것이 비밀의 '누설'에 해당하는지 살핀다. 비밀의 '누설'이란 비밀을 모르는 제3자에게 이를 고지하는 것을 말하는바, 위 공소외 2가 이미 법원의 재판기록 열람을 통하여 사실조회서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판단한 바와 같이 사실조회서의 내용에 덧붙인 새로운 사항들이 담겨 있는 진술서를 공소외 2에게 교부한 행위는 새로 추가된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함이 분명하다. 나아가 피고인이 당시 재판기일이 촉박하다는 변호사의 연락을 받고 법원에 제출할 의사로써 진술서를 작성 교부하였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적법한 요청이나 절차를 따르지 아니한 채 제3자인 공소외 2의 부탁을 받고 위 공소외 1의 의료상 비밀이 기재되어 있는 진술서를 공소외 2에게 직접 교부한 이상, 이는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해당함과 아울러 그에 대한 인식 즉 고의도 있었다고 판단하기에 넉넉하다.
따라서 변호인의 위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무죄부분에 대한 판단
1. 공소사실의 요지
검사는 피고인이 2002. 12. 14. 위 병원 진료실에서 위 공소외 1을 성폭행한 공소외 4의 어머니인 공소외 2로부터 공소외 1의 처녀막 파열 및 질내 정충 검출 여부, 이에 대한 진단서 발부 여부 등에 관한 답변을 요청받고, 공소외 2에게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충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진단서를 발부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공소외 1에 대한 진찰내용을 설명해 줌으로써, 의사로서 그 의료에 있어서 지득한 위 공소외 1의 비밀을 누설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료법 제19조 를 위반하였다고 기소하고 있다.
2. 판 단
피고인은 위 공소사실에 대하여, 당시 가해자의 어머니인 공소외 2가 찾아와 공소외 1의 부모가 처녀막이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면서 공소외 1의 진료기록을 보여달라고 하여, 공소외 2에게 '처녀막 파열이나 정충의 존재 등에 관한 진단서를 발급해준 일이 없다'는 취지로 소극적으로 부인하는 답변을 하였을 뿐인바, 피고인이 진료 내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거나 알려준 것이 아니어서 이를 '누설' 행위로 볼 수 없고, 또한, 그러한 내용이 알려졌다 하더라도 공소외 1에게 다행스러운 사실이어서 보호할 만한 비밀에 해당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가. 먼저 피고인의 행위가 '누설'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핀다.
앞에서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당시 공소외 1의 어머니인 공소외 3이 화해를 요청하는 공소외 2에게 '엄연히 진단서에 상처 입은 것이 나와 있다. 1억 원 이상이 아니면 합의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사실, 이에 공소외 2가 2002. 12. 14. 피고인을 찾아가 그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물으면서 진료기록을 보여달라고 울며 사정한 사실, 그러자 피고인은 공소외 2에게 ' 공소외 1의 부모에게 처녀막 열상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진단서를 써준 일도 없다.'는 취지로 강력하게 이야기하였고 그 말을 들은 공소외 2가 '처녀막도 파열되지 않았고 진단서도 써주지 않았는데 공소외 3이 거짓말을 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비록 공소외 2의 질문에 대하여 부인하는 답변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답변 취지와 태도를 통하여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다는 뜻을 전달한 이상 그러한 사실을 알려 주어 누설하였다고 판단하기에 넉넉하다.
나. 다음으로 피고인이 전달한 내용이 의료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핀다.
앞의 피고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료법이 보호하는 환자의 비밀이란 의사가 환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진료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보아 환자에게 이익이 되거나 또는 환자가 특별히 누설을 금하여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피고인이 공소외 2에게 누설하였다는 사실로서 기소된 내용은 " 공소외 1의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았고 정충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진단서를 발부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이다. 물론 위 내용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항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용은 공소외 1이 의학적 소견으로 보아 건강하며 별 이상이 없다는 취지여서 그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더라도 공소외 1이나 그 부모의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또는 인격적 이익이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고, 또한, 공소외 1이나 그 부모가 그에 관하여 특별히 비밀로서 타인에게 알려질 것을 금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다만 피해자인 공소외 1 측으로서는 형사사건에 관한 합의에 있어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실제 협상에서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협상에서 위와 같은 진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기망 수단이 되어 상대방의 법익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것을 법이 보호할 정당한 가치가 있는 비밀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3. 결 론
그렇다면 피고인에 대한 위 공소사실은 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볼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증명이 부족하므로, 이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또는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