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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52. 8. 26. 선고 4284형상129 판결
[국가보안법위반피고][집1(2)형,011]
판시사항

불리한 사항의 주장과 상고이유의 적부

판례요지

판결주문의 형과 판결이유 중의 형이 상이하여 이유중의 형이 중한 경우에 그의 불일치를 이유로 하는 상고는 피고인에 불이익한 사항을 주장함에 귀착함으로써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

상고인, 피고인

피고인 1외 1인

주문

원판결을 파훼한다.

본건을 서울고등법원에 차려한다.

이유

원심 공동피고인 3, 4, 변호인 방준경 상고이유 제1점이요 피고인 1, 변호인 김세완 원용점은 원판결은 주문에서 「…… 원심 공동피고인 3, 4를 각 징역 1년에 처함. 단 우 재판확정일로부터 3년간 우 형의집행을 유예함」이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 판결이유에 있어서 「…… 원심 공동피고인 3, 4는 각 징역 2년에 처하고 (중략) 각 5년간 집행을 유예한다」 (판결서 8매이면최종행 이하) 고 설시하였다. 우와 여히 판결이유와 주문이 불일치함은 결국 형사소송법 제410조 제19호 의 소위 판결이유의 저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사료한다 운하다.

그러나 원판결에 의하면 원심은 판결이유에서는 피고인을 각 징역 2년에 처하고 단 5년간 각기 형의 집행을 유예한 것을 인정하면서 판결주문에서는 피고인을 각 징역 1년에 처하고 단 각 3년간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판결한 것은 명백함 이는 판결이유에 저어가 있다 볼 수 있고 따라서 원판결은 차점에서 소론과 같은 위법이 있다할 수 있으니 논지는 결국 피고인을 판결주문에 판정된 과형보다 판결이유에 인정된 바와 같은 정도로 과중히 처벌할 것을 주장함에 귀착되나 이와 같이 피고인에 불이익한 사항을 주장한 상고이유는 적법한 상고이유로 처우할 수없음으로 차상에 관한 논지는 이유없다.

동 변호인 방준경 상고이유 제2점이오 피고인 1, 변호인 김세완 원용점은 판결서에 판결선고일의 기재는 필요하지 않으나 형사소송법 제71조 에 의하여 기 작성년월일은 반드시 기재하여야 하며 또 동법 제68조 에 소위 「재판을 한 판사가 서명날인하지 못하는 경우」라 함은 우 판결서 작성당시에 있어서 명날인하지 못할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 원심판결서를 보면 판결서 작성년원일로서 단기 4283년 3월3일이라 기재되어 있고 또 단기 4283년3월3일 공판조서중 「재판장은 동판결을 선고할 지를 고하고 주문 급 이유를 낭독하여 판결을 선고」운운의 기재가 유함을 종합하면 판결선고 당시에 기 이 판결서가 작성되었음으로 동 판결서 낭독에 의하여 판결선고된 것이 명확한 동시에 동 공판조서에 의하면 판사 이필빈, 동 이회종 양인이 판결선고에 열석하였음이 분명함으로 우 판사 양인이 판결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못한 사유가 존재한다고는 불 수 없다. 연이 원심판결서에는 동 판결에 관계한 우 판사 양인의 서명날이 결여하므로 종국 형사소송법 제410조 제21호 에 해당한다고 사료한다. 다만 동판결서에 우 판사양인이 「6.25사변으로 납치부재중이므로 서명날인이 불능하다」 는 재판장의 부기가 있으나 6.25사변은 원판결의 작성 급 선고후 3개월여를 경과한 후의사실이므로 원판결작성당시의 서명날인 불능사유가 되지 못한다 운한다.

그러나 원판결과 기외 일부기록에 의하면 형식상 원판결 작성년월일이 단기 4283년 3월3일로 되어있고 동 판결에 관계한 판사 이필빈 동 이회종이 동일원심에 건재한데도 불구하고 동 판결서에 동판사 2인의 서명날인이 결여되어 있음을 소론과 같으나 다시 원판결서 말미부록부분과 공판조서 제2회분 기재와 당원에 현저한 사실인 예지 6.25사변직후 사실을 종합고찰하면 우시 단기 4283년 3월 3일은 판결선고 년월일로서 동 판결서에 기재된 것이요 동 판결서는 실제 6.25사변후에 작성된 것으로서 그 시에는 동 판사 2인에 동 사실에 납치부재중이라 동 판결서에 날인키 불능함으로 재판장 김준원 판사가 형사소송법 제68조 에 의하여 그 사유를 부기하고 서명날인한 사실을 충분히 규지할 수있고 원판결은 차점에 관하여는 하등 위반이 없다. 논지는 결국 원판결작성 년월일이 단기 4282년 3월 3일임을 전제로 함에 입각한 것인데 원판결이 기 후에 작성된 것이 우시 설명과 같은 이상 그 자체로서 이유없음에 귀할 것이다. 단 전시설명에 의하면 원판결서는 결국 작성년월일의 기재가 결여함에 귀착됨으로 형사소송법 제71조 의 규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으나 본건과 같이 판결서에 판결선고 년월일만 기재하고 판결작성 년월일은 기재치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형사소송법 제410조 에 비추어 판결서의 효력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국 차점에 관한 논지는 이유 없다.

동 변호인 방준경 상고이유 제3점은 원판결은 피고인 양명이 남로당기금으로 금전을 자진방조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가보안법 제4조 를 적용처단 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단기 4281년 12월1일 법률 제10호로서 공포시행 되었고 본건 피고인등의 소위로 우 국가보안법 공포시행 이전인 단기 4281년 11월중의 소위임으로 결국 원판결은 행위시에 존재치 않는 법률을 적용한 불법이 있다 운하고 동 변호인 방준경 상고이유 제4점은 원판결은 원심 공동피고인 3, 4가 「남로당이 우리나라 헌법을 위배하고 살인, 방화, 파괴를 감행하는 결사인 정을 지실하면서 동 당의 목적사항의 실행을 위한 당기금 또는 찬조금명목으로서 금품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었으나 수사관헌에 고발하지 않고 동 당에 금전을 제공하여 자진방조하였다」는사실을 인정하고 기 증거로서 피고인등의 공판정의 진술,제1심공판조서 검사 급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의 각 피의자 신문조서기재를 원용하였다. 그러나 (1) 원심 공동피고인 3에 관하여 전기 각 증거를 여하히 상세히 검토하여 보더라도 동 피고인이 판시 금원을 자진제공하여서 방조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만한 하등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혀 동 피고인이 남로당원 공소외 1의 공갈에 의하여 판시금원을 갈취당한 피해자임을 인정할 수 있다. 즉 (가)우 금원을 제공한 일시가 대한민국 초창기이였을 뿐더러 여수,순천반란사건 발생당시이어서 반란분자의 우익단체간부,재산가, 관리등에 대한 잔인무도하고 참혹한 만행이 자행되어 국내민심 특히 재산가 우는 실업가들이 불안 공포에 쌓여 있었을 당시였다는 점 (나)피고인이 남로당 기타 좌익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무한 점 (다)피고인이 다수한 공직을 가지고 있고 또는 우익 정당간부로 활약하고 있는 인천굴지의 유력가이며 공산계열과는 대적인 입장에 있던 인물이라는 점 (라)제1심 공판조서,검사보 급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의 피의자신문조서중 피고인의 진술로 피고인의 내정을 숙지하는 남로당원 공소외 1이 만일 남로당에 기부하지 않으면 여수,순천사건과 비등한 사건이 발생할시 참살하겠다는 등의 언사로 협박하므로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동인이 요구하는 금원을 동인에게 주었으며 수사관헌에게 고발하지 못하였음은 역시 남로당원에게서 위해를 받을 것을 공포한 까닭이라는 공술기재를 종합하여 보면 결국 피고인의 판시소위는 남로당원의 협박에 인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상실한 소치이며 도저히 자진방조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죄책을 부할 수 없는 것이다.(형법초안 제11조 참조)

(2) 다음 원심 공동피고인 4에 관하여는 금원지출의 사실은 인정하나 남로당에 제공한 것이 아니고 5녀 공소외 2의 생활보조비로 지출한 것이라고 동 피고인이 변명하는 바인 바 제1심 공판조서중 피고인 급 상 피고인 2의 공술기재증인 공소외 3, 2의 동 취지의 공술기재급 검사보의 피의자신문조서 기재를 종합하여 동 변명이 사실이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바이다. 다만 동 피고인이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의 취조를 수할시 판시에 부합하는 일부사실을 진술한 바 있으나 차는 (가)피고인이 당시 63세의 노령으로 생후 처음 경찰에 유치되어 경찰관의 취조를 수하였다는 점 (나)종전 부유안락한 생활을 하던 피고인 이 돌연히 구속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수하여 불안 초조와 두뇌의 혼란한 가운데 취조를 수하였다는 점 (다)당시 좌익분자에 대한 사찰 급 취조가 엄격하였다는 점 (라)검사보의 피고인에 대한 신문조서 급 제1심공판조서 기재중 피고인의 공술로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에 대하여서는 엄문을 당할까 두려워서 취조관의 묻는대로 허위진술 하였다」는 공술기재를 종합하여 보면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의 피의자신문조서 기재는 피고인의 본의 아닌 허위진술로서 본건 단측의 증거로 채용함은 부당하다. 더욱이 본건 발생후 피고인등이 검거취조를 당하게 되자 대한청년단, 국민회, 대한노총등 인천시내 각 애국단체로부터 원심 공동피고인 3 동이 흥선등의 사상과 장래를 보증하고 과거업적을 찬양하여 관대한 처분을 희망하는 진정서가 취지한 사실을 보면 더욱이 피고인 양명이 결코 남로당에 금전을 자진제공하여서 방조할 자가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음이있다. 결국 원판결은 중대한 사실오인이 있는 것이며 더욱이 원심 공동피고인 3에 대하여는 허위의 증거로서 사실을 인정한 불법이 있다 운하고

피고인 1 변호인 김세완 상고이유 제1점은 원심판결 이유중……피고인 1은 남로당 공소외 4가 4281년 9월 중순경 인천시 인천흥업주식회사 응접실에 내방하여 남로당 확장기금으로 금 백만원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여 왔고 동년 10월 초순경에는 22세가량의 성명미상자로부터 우 동 요구를 받고 동월 하순경 공소외 1이 내방하여 공소외 4와 우 성명미상청년과 공모한 정을 고하면서 종전의 요구액 백만원을 30만원으로 감액 요구하였음으로 피고인은 동년 11월5일 오전10시경 우 회사 응접실에서 현금 30만원을 공소외 1에게 남로당 찬조금으로 제공하였는데 차 사실은 당심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의 판시부합되는 공술 급 원심공판조서 급 검사피의자 신문조서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자 피검자신문조서 중 판시에 부합되는 공술기재부분을 종합하여 인정한다 하였으나 1,2심 공판조서, 검사 및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자 각 피의자신문조서 기타 자수서 제1건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1은 인천갑부의 자손으로서 8.15해방전후를 통하여 문자 그대로 고루거각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일정시대 부협의원이였고 독실한 천주교신자이었고 민국당 지방간부이였기 때문에 남로당계열들의 심각한 증오감을 음으로 양으로 간접직접으로 받아오던 차에 4281년 9월 중순경 남로당원 공소외 4가 피고인회사 응접실에 내방하여 남로당 확장기금으로 백만원을 제공하되 만일 불응하면 생명재산에 가해라도 할 기세와 언행을 뵈임으로 다소 공포를 감하고 있던 터에 동년 10월 초순부터 누차에 걸쳐 자택노변, 회사응접실등에서 22세 가량의 성명미상자로부터 우 동 양의 요구와 협박을 받아 잔악무도한 여수,순천사변 돌발(동년10월22일오전2시발생)의 보가 라디오로,신문으로 전하여 경인일대는 물론 남한각지의 인심이 소동되고 각자가 전전긍긍하는 처지에 기중에도 피고인같은 입장에 처한 인사로서는 공포심이 극도에 달하였는데 동월하순경 친지로 믿고 의심치 아니하였던 공소외 1이 내방하여 천만의외에도 자기는 남로당원인데 공소외 4와 우 성명미상자 청년과 공모한 정을 고하면서 종전의 요구액 백만원을 30만원을 감액요구하고 만약 거절이면 너는 과거 친일파이니 내말 한마디면 너의 생명이 왔다갔다 한다는 말과 불온한 기세에 극도로 위포감이 폭발되면서 경찰에 고할여지 없이 무의식 중 동년 11월5일 오전 10시경 우 회사 응접실에서 현금 30만원을 공소외 1에게 제공하여서 피탈된 것이 분명함으로 원심은 사실오인의 혐의가 충분하다 운하고 동 변호인 김세완 상고이유 제1점은 원심판결 이유중……피고인 1의 소위는 국가보안법 제4조 에 해당한다 하였으나 국가보안법은 4281년 12월1일 법률제10호로 공포되었다가 4282년 12월 19일 법률 제85호로 개정되었는데 본건 범행은 국가보안법공포 25일 전에 감행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명문이 없는 이상 소급적용할 수 없는 것인데 법률제10호로 공포된 국가보안법에는 하등 명문이 없음으로 문제될 것이 없고 법률 제85호로 개정된 국가보안법부칙 제2항에 소급적용의 명문이 있으나 차는 법률 제10호로 공포된국가보안법시행당시까지 소급될 것이고 기 이전까지도 한정없이 소급될 이유는 없음. 왜냐하면 법률 제10호로 4281년 11월 1일 이전에 소급할 것을 명언치 아니한 이상 불소급원칙에 의하여 불소급명언을 한 것과 동일함. 과연이라면 법률이 일단 명언하여 효력이 발생된 이상 다시 전언을 취소키 불능한 것임으로 결국 원심은 법률적용에 착오가 있다 운하다.

안컨대 원판결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 등에 대한 범죄사실로서 「피고인등은 남로당이 우리나라 헌법을 위배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과 살상, 방화 기타 중요기관의 파괴를 감행하여서 민중의 행복과 치안을 방해하려는 결사임을 알면서 동 당의 목적사항의 실행을 위연당기금 또는 찬조금등 명목으로서 금품을 공여하라는 요구를 받고 수사관헌에 고발치 않고 이를 자진방조한 자로서 피고인 1은 단기 4281년 11월 5일 오전10시경 인천흥업주식회사 응접실에서 현금 30만원을 동 당원인 공소외 1에게 동 당찬조금으로 제공하였고 원심 공동피고인 3은 동년 11월6일오전12시경 전시 응접실에서 현금 15만원을 공소외 1에게 동 당 가족생활비로 공여하였고 원심 공동피고인 4는 동년 11월말일경 현금 20만원을 피고인 가에 내방한 동 당원인 공소외 5에게 동 당 구호금으로 공여하였다 」 각 인정하고 차에 대하여 각기 국가보안법 제4조 를 적용하였으나 국가보안법은 단기 4281년 12월 1일에 공포시행된 법률로서 효력의 소급에 관하여 특별규정이 없으므로 판시사실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를 소급적용하였으니 원판결은 차점에 의율착오의 위법이 있다. 더욱이 본건은 검사가 군정법령 제19호 제4조 (나)항위반으로 기소한 사건이니 원심은 마땅히 해 기소범위내에서 심리하여 그 결과에 따라 범죄구성요건에 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그러나 일건 기록에 의하면 해 범죄를 인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발견키 난하다) 동 법령을 적용하여 판결함에 가당할 것인데 동 기소사실의 대부분은 증거에 의하여 인정하면서 동 법령을 적용치아니하고 행위당시 시행되지 않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은 부당하다. 법률 제131호 군정법령중 개정법률에 의하면 동 법령 제4조 전부는 동 제1조 와 더불어 삭제폐지 되었으나 동법은 단기 4283년 4월 21일 공포시행되었고 원심판결 당시 동년 3월 3일에는 동 조항이 존속중일 뿐 아니라 동법 부칙 제2항에 의하면 동법 시행전의 행위에 대하여는 동법이 적용되지 않고 동 법령이 종전대로 적용되게 되었으니 형법 제6조 에 의하여 신.구법 비조의 문제가 발생하여 경법이라하여서 국가보안법을 본법 판시사실에 소급적용할 여지가 없고 또 국가보안법개정 법률 부칙 제2항에 의하면 동법중 죄에 관한 규정은 동법 시행전의 행위에 대하여도 적용하게 되었으나 동법은 공포만 되었을 뿐이고 아직 시행전에 있음으로 동 부칙에 의하여 국가보안법은 본건에 소급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방면으로 보던 원판결은 차점에서 파훼를 면치 못할 것이니 차점에 관한 논지는 이유있다 그러므로 기 건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은 필요없다고 인정하여 생략하고 사건은 기소사실에 의하여 갱차 심리판결하기 위하여 원심에 차려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됨으로 형사소송법 제448조의2 를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병로(재판장) 김찬영 백한성 김두일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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