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항소인
한국석유공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오양호외 4인)
피고, 피항소인
피고 1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양 담당변호사 박병휴외 2인)
변론종결
2007. 10. 12.
주문
1. 제1심 판결 중 아래 제2항에서 지급을 명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2. 원고에게,
가. 피고 1과 피고 2는 연대하여 554,502,433원 및 이에 대하여 2005. 9. 29.부터 2007. 12. 1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고,
나. 피고 3은 위 금액 중 277,251,216원 및 이에 대하여 2005. 9. 29.부터 2007. 12. 1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3. 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한다.
4. 소송총비용은, 원고와 피고 1, 2 사이에서는 위 피고들이 부담하고, 원고와 피고 3 사이에서는 절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정한다.
5. 제2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에게 554,502,433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최후 송달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16호증(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을가 제1 내지 11호증의 각 기재와 제1심 증인 소외 1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는 석유개발업 등을 목적으로 한국석유공사법에 의해 설립된 정부투자기관이고, 피고 1은 1998. 4. 25.부터 2001. 5. 1.까지 원고 공사의 사장이자 이사로, 피고 2는 1999. 3. 30.부터 2001. 5. 31.까지 원고 공사의 부사장이자 이사로, 피고 3은 1999. 5. 27.부터 2002. 6. 30.까지 원고 공사의 감사로 재직하였다.
나. 2000. 4. 24. 원고 공사의 사장이었던 피고 1과 부사장이었던 피고 2는, 국내 석유유통구조 개선 및 동북아 석유 물류중심화를 목적으로 석유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설, 운영하기 위하여 원고 공사가 민간회사 등과 함께 전자상거래전담회사에 공동출자하여 주주로 참여하는 내용의 석유전자상거래사업계획안과 그 사업계획을 반영한 2000년도 예산변경안을 원고 공사의 제257차 이사회에 상정하였다. 그러나 원고 이사회에서 위 두 안은 당시 정부의 공기업의 구조조정방침에 배치된다는 이의가 제기되어 보류되었다.
다. 그러자 피고 1과 피고 2는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방침에 배치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출자가 아닌 방식을 통한 참여방안을 모색하던 중, 일단 소외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 삼일회계법인, 한국생산성본부가 전자상거래전담회사를 설립하고 후에 원고가 참여하되, 참여방식은 주식이 아닌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하며 대신 의결권행사 등을 통하여 경영에 간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원고 이사회의 의결절차를 거침이 없이 2000. 8. 2. 위 회사들과 “전자석유거래소 개설·운영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 및 업무협력에 관한 기본합의”를 체결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OILPEX(주식회사 한국전자석유거래소)의 설립시 납입자본금 중 설립당사자들이 납입할 자본금과 인수할 주식 수는 다음과 같다(제2조 5항).
① 삼일회계법인 : 10억 원/ 20만 주(주식소유비율 50%)
②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 : 8억 원/ 16만 주(주식소유비율 40%)
③ 한국생산성본부 : 2억 원/ 4만 주(주식소유비율 10%)
(2) 위 규정에 불구하고, 2002. 6. 30.까지 OILPEX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식소유비율(전환사채 포함)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한다(제3조 1항).
① 원고 : 40% ② 삼일회계법인 : 25%
③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 : 20% ④ 한국생산성본부 : 5% ⑤ 기타 : 10%
(3) 위 주식소유비율을 맞추기 위하여 설립당사자들은 2001. 7. 30.까지 다음과 같이 OILPEX가 전환사채 및 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의결권의 행사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3조 2항). OILPEX는 2001. 7. 30. 이전에 제3자 배정방식에 의하여 16억 원의 전환사채를 원고에게 발행한다(제3조 2항 1호).
(4) 원고는 위 전환사채를 전부 인수하여야 한다(제3조 5항).
(5) 원고가 전환사채 인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원고는 16억 원을 위약벌로써 주주들에게 지급하여야 한다(제16조 2항).
라. 피고 3은 이 사건 기본합의 체결 추진과정에서 이 사건 기본합의 체결을 위한 내부결재문서인 ‘석유 e-Biz 합작회사 설립 및 업무협력에 관한 기본합의 체결’이라는 제목의 품의문서에 원고의 감사로서 서명하였는데, 위 문서에는 이 사건 기본합의가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라는 내용의 확인서(안)가 첨부되어 있었다.
마. 2000. 8. 8. 소외 회사들은 위 기본합의에 따라 삼일회계법인이 20만 주,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가 16만 주, 한국생산성본부가 4만 주를 인수하여 발행주식 총수 40만 주로 된 OILPEX를 설립하였다.
바. 정부혁신위원회는 2001. 1. 30. 제5차 회의에서 원고 공사를 포함한 정부부처의 각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자기관 및 그 자회사들에 대하여 “2001년도 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지침(이하 ‘공기업 추진지침’이라 한다)”을 심의, 확정하였고, 산업자원부는 2001. 2. 28. 위 공기업 추진지침을 원고에게 통보하였는데, 위 공기업 추진지침에 따르면 국가적 신규사업을 제외하고는 자회사 신설 또는 지분 참여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 소외 회사들은 위 기본합의에 따라 원고 공사에게 16억 원의 전환사채를 인수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원고는 사장인 피고 1이 2001. 5. 2., 부사장인 피고 2가 2001. 6. 1. 각 해임되고 새로이 원고의 사장으로 소외 2가, 부사장으로 소외 3이 각 취임하여 사장단이 바뀐 후, 소외 2, 3 등은 OILPEX 사업이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소외 회사들에 정부 측의 승인이나 원고 이사회의 의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전환사채 인수의무의 이행을 거절하였다.
아.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가 원고를 상대로 위약금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위 소에서 원고는 이 사건 기본합의에 따른 전환사채 인수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위 소외 회사에 위약벌로 528,925,619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받고 확정되어(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5다14748호 ), 그 무렵 원고는 위 회사에게 554,502,433원을 지급하였다.
자. 원고 공사의 정관은 ① 경영목표, 예산, 자금계획 및 운영계획(1호), ② 예비비의 사용 및 예산의 이월(2호), ③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8호) 등을 이사회 심의, 의결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제21조 1항).
2. 쌍방의 주장
원고는, 피고 1과 피고 2가 이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하여 이사회 의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사건 기본합의를 체결하여 법령과 정관을 위배하였고, 피고 3은 감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하여 이 사건 기본합의 체결이 이사회의 의결사항이 아니라는 품의 문서에 서명하여 피고 1, 2가 법령과 정관에 위반한 업무집행을 한 사실을 묵인하였고, 이로 인하여 원고 공사에게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피고들은, 이 사건 기본합의의 체결은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므로 이사회 의결 없이 이 사건 기본합의를 체결한 것이 이사 또는 감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한 것은 아니고, 원고 공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은 후임 사장단이 이 사건 기본합의의 이행을 거절한 별도의 경영판단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 피고들의 책임 유무에 관한 이 법원의 판단
이 사건에서 제기된 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① 이 사건 기본합의의 체결은 이사회 의결사항인가?
② 사장과 부사장이 이사회에 상정하였다가 통과하지 못한 사업계획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사회 의결 없이 시행한 경우 이사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인가?
③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 공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가?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가. 이 사건 기본합의의 체결은 이사회 의결사항인가?
먼저, 원고 공사의 정관 제21조 1항 8호(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와 관련하여 OILPEX의 전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한 이 사건 기본합의가 이사회 심의, 의결사항인지를 본다.
전환사채는 전환권의 행사에 의하여 장차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사채)를 말한다.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회사의 관점에서 볼 때 사채권자에게 주식전환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주주 이익의 보호를 위하여 신주 발행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자의 관점에서 볼 때 주식전환권은 장래의 선택권(옵션)에 불과하고 그 선택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주주로서의 권리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채권회수 순위에서 주주보다 우월한 사채권자의 지위에 서게 되므로 주식전환권의 행사가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에 해당하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통상의 경우 전환사채의 인수만을 독립적으로 볼 때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2007. 1. 19. 법률 제8258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폐지) 제9조 제1항 제8호 와 원고 공사의 정관 제21조 1항 8호의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전환사채 발행은 신주 발행과 사실상 같은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전환사채의 인수를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로 보아야 한다는 원고의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건 기본합의에서의 전환사채 인수는 통상의 전환사채 인수와 같지 않다. 상업적 관점에서 볼 때 전환사채의 경우 주식전환의 선택권이 부여되는 대신 선택권이 없는 사채보다 이자율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회사는 일정 기간 후 주식전환의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더 낮은 금융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자는 높진 않지만 안정적인 이율이 보장되는 사채의 안전성을 가지면서도 장래 주가가 상승할 경우 선택권을 행사하여 고수익을 얻을 희망도 있다는 점에서 전환사채를 인수하게 된다. 즉 회사법제도가 예정하고 있는 전환사채제도 본래의 목적은 기업의 금융이지 새로운 주식의 발행은 아니다. 다만,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과 개인의 내심의 목적이 제도 이용을 막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과 기존 주주들이 특정인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그 특정인이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전환사채를 인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주식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전환사채 인수자가 사채권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지 주주로서의 지위를 갖지는 않는다. 그런데 위에서 본 이 사건 기본합의의 내용을 보면, 형식적으로는 원고 공사가 OILPEX의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OILPEX가 전환사채를 발행하기 전일 뿐 아니라 설립되기도 전에 장래의 전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하는 합의를 하고, 주식과 전환사채를 합쳐서 참여업체들의 지분율을 정하였으며, 원고 공사가 전환사채를 인수한 후 전환권을 행사하기 전에도 그 지분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내용을 두고 주1) 있다.
원고 공사의 설립 근거가 된 한국석유공사법에 의하면, 원고 공사는 정부가 전액 출자한 특수법인이다( 제4조 ).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에 해당하는 출자자의 의결기관이 없이 이사회에 모든 경영결정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출자자인 정부를 대리한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지휘, 감독의 권한을 부여( 제16조 )하는 한편 조직과 경영에 관하여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의 규제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제18조 ). 위에서 든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9조 제1항 제8호 와 원고 공사의 정관 제21조 1항 8호가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를 이사회의 심의,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 결정은 대표이사에게 위임되는 일상업무가 아니라 이사회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하여야 할 중요한 경영업무라는 점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위와 같은 법의 규제 목적에 비추어 이 사건 기본합의의 내용을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기본합의에서 합의한 OILPEX 전환사채의 인수는 투자수익을 얻기 위한 통상의 전환사채 인수가 아니라 사실상 OILPEX의 최대주주로 그 설립과 경영에 참여하기로 하는 합의로서 위 법률과 정관에서 말하는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쟁점에 관한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고, 경영참여의 실질을 갖더라도 형식적으로 전환사채의 인수의 외형을 갖는 한 위 법률과 정관상의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피고들의 견해는 위 법률과 정관상의 규제 목적을 완전히 잠탈하고 이사회에서 위임된 일상 업무에 관한 집행권만을 갖는 사장이 중요한 경영사항을 현실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견해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이다.
이어서, 원고 공사의 정관 제21조 1항 1, 2호(예산 관련 사항)와 관련하여 OILPEX의 전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한 이 사건 기본합의가 이사회 심의, 의결사항인지를 본다.
위 기본합의는 원고 공사가 2001년 7월까지 전환사채를 인수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원고 공사의 합의 당시인 2000년 예산에는 물론 2001년 예산에도 OILPEX 전환사채의 인수자금이 배정되어 있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원고 공사의 정관은 예산의 결정과 예비비의 지출 모두 이사회의 심의, 의결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예산 변경을 가져오는 이 사건 합의는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원고 공사의 예산규정에 의하면 대차대조표상 현금과 1년 이내의 채권은 같은 “당좌자산 항”에 속하고 “목”만을 달리하는데 목간에는 예산 전용을 허용하고 있고, 원고 공사는 항상 인수 금액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서, 사장은 이사회 의결 없이 현금을 전용하여 전환사채를 인수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합의는 예산변경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기본합의의 내용을 보면 원고 공사가 OILPEX의 전환사채를 인수하였다가 1년 이내에 그 인수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OILPEX의 최대주주로서 그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 경영참여가 1년 이내로 한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특정되지 않은 장기간 OILPEX의 사업에 관여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자금 수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고, 원고 공사가 예산상 현금과 1년 이내의 채권을 같은 항의 다른 목으로 구분하고 사장에게 목간 예산 전용을 위임한 것은, 1년 이내의 단기채권의 경우 현금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신속하게 현금화하여 긴급한 자금수요에 대처할 수 있으므로 경영상황에 비추어 긴급한 자금수요를 예측하여 현금보유량을 늘리거나 아니면 현금보유량을 줄여 금융수익을 얻는 것 사이의 신속한 결정을 사장에게 맡겨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며, 그 목간 예산 전용 정도는 사장에게 맡겨도 될 정도의 일상적 업무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기본합의에서 약속한 전환사채 인수가 목간 전용이 허용되는 1년 이내의 채권 매수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① OILPEX 전환사채 인수는 단순한 전환사채 인수가 아니라 사실상 최대주주로 OILPEX의 설립과 경영에 참여하는 행위라는 점, ② 그 경영참여가 1년 이내에 종결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되지 않은 장기간 계속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 ③ 원고 공사의 전환사채의 인수를 통한 투자금액은 원고 공사의 투자자금을 OILPEX의 자본금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경우 자본금의 40%이고, 그 투자금액을 OILPEX의 자본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볼 경우 자본금의 약 67%에 해당하며, OILPEX의 초기 사업자금과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참작하면 1년 내에 전환사채를 현금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쉽게 예상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사건 기본합의에 따른 OILPEX 전환사채의 인수를 1년 이내의 채권매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점에서도 이 사건 기본합의에서 정한 OILPEX 전환사채의 인수 약속은 예산변경을 가져오는 것이고 따라서 사장에게 위임된 일상업무가 아니라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경영결정사항에 해당한다.
나. 사장과 부사장이 이사회에 상정하였다가 통과하지 못한 사업계획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사회 의결 없이 시행한 경우 이사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인가?
상법 제382조의3 은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제목 아래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법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취지와 원고 공사의 설립근거가 된 한국석유공사법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상법의 규정은 원고 공사에 준용된다는 것이 이 법원의 판단이다. 이를 전제로 사장과 부사장의 행위가 이사로서의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인지를 살펴본다.
먼저, 원고 공사의 경우 사장과 이사회의 관계에 관하여 본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13조 는, 사장은 이사회를 소집하고, 그 회의의 의장이 되며( 제1항 ), 투자기관을 대표하고, 투자기관의 업무를 총괄하며, 경영성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2항 ). 또한, 위 법 제9조 는, ① 경영목표·예산·자금계획 및 운영계획, ② 예비비의 사용 및 예산의 이월, ③ 결산, ④ 기본재산의 취득 및 처분, ⑤ 장기차입금의 차입 및 사채의 발행과 그 상환계획, ⑥ 생산제품 및 용역의 판매가격, ⑦ 잉여금의 처분, ⑧ 다른 기업체에 대한 출자, ⑨ 정관의 변경, ⑩ 내규의 제정 및 변경, ⑪ 기타 이사회가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을 이사회의 심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정관의 내용도 같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원고 공사의 중요한 경영사항은 모두 이사회의 심의, 의결 사항으로 되어 있고, 사장은 이사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집행하는 권한만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원고 공사의 이사인 사장과 부사장이 법령과 정관의 규정을 따르고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신의성실을 지켜 합리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위에서 본 경영의사결정기관으로서의 이사회의 권한과 그 집행기관으로서의 사장, 그를 보좌하는 부사장의 관계에 비추어 사장과 부사장이 이사회의 의결사항을 집행함에 있어서의 충실의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장과 부사장이 형식적으로 법령과 정관의 규정을 따르는 것만으로 충실의무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고, 사장과 부사장이 우회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이사회에서 의결하여야 할 중요한 경영사항을 이사회의 심의, 의결 없이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경영사항을 모두 이사회의 심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한 법령과 정관의 규정을 잠탈하는 행위로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경영사항을 이사회에서 심의한 결과 부결하거나 통과를 보류한 사항을 우회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이사회 의결 없이 집행한다면 이는 이사회의 구체적인 경영결정 사항을 위반하여 집행한 것으로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임이 명백하다.
돌이켜 이 사건의 구체적 사안을 보건대, 사장인 피고 1과 부사장인 피고 2는 2000. 4. 24. 제257차 이사회에 석유전자상거래사업계획안을 상정하였다가 일부 이사들의 반대로 보류되자, 원고 회사가 신주를 인수하는 것을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것으로만 변경되었을 뿐 사실상 최대주주로서 OILPEX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보류되었던 석유전자상거래사업계획과 같은 중요한 경영사항을 이사회의 의결 없이 추진하여 불과 3개월 반 후인 2000. 8. 2. “전자석유거래소 개설, 운영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 및 업무협력에 관한 기본합의”를 체결하였다. 이러한 위 피고들의 행위는 중요한 경영사항을 모두 이사회의 심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한 법령과 정관의 규정을 잠탈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이사회에서 의결하지 않고 보류시킨 사업계획을 우회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집행하여 제257차 이사회의 보류결정을 위반한 행위로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즉,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기본합의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경영사항이므로 피고 1과 피고 2가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이 사건 기본합의를 체결한 것은 위법하지만, 만에 하나 견해를 달리하여 이 사건 기본합의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경영사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사회에서 추진을 보류하였던 사업계획을 새로운 이사회의 심의, 의결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하여 집행한 것은 그 이사회의 보류의결을 위반한 행위로서 위법하다는 것이 이 법원의 판단이다.
다.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 공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가?
원고 공사가 케이씨씨정보통신 주식회사에게 위약벌 책임을 진 것은 이 사건 기본합의의 전환사채 인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본합의상의 위약벌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회의 의결 없이 이 사건 기본합의를 체결한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 공사의 위약벌 책임으로 인한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다만, 피고들은 신임 사장단이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기로 한 위법한 경영판단으로 인하여 원고 공사가 위약벌 책임을 지게 되었으므로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 공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기로 한 신임 사장단의 경영판단이 위법한지를 살펴본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 공사는 한국석유공사법에 의하여 정부의 전액출자로 설립된 특수법인으로서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에 해당하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국석유공사법은 산업자원부장관으로 하여금 공사의 경영목표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공사의 업무를 지도, 감독하도록 하고 있다. 앞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2001. 1. 30. 정부혁신위원회는 정부부처의 각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자기관 및 그 자회사들에 대하여 “2001년도 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심의, 확정하였고, 산업자원부는 2001. 2. 28. 위 공기업 추진지침을 원고 공사에게 통보하였는데, 위 공기업 추진지침에 따르면 국가적 신규사업을 제외하고는 자회사 신설 또는 지분 참여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이 사건 기본합의의 내용은 원고 공사가 40%의 지분을 갖고 사실상 최대주주로서 OILPEX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 기본합의를 이행하는 것은 산업자원부장관의 지도, 감독권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한국석유공사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원고 공사의 신임사장단이 OILPEX의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기로 한 판단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으며, 원고 공사의 신임사장단의 결정을 이유로 피고들의 행위와 원고 공사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도 없다.
라. 소결
따라서 이 사건 기본합의 체결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경영사항이었거나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사회에서 보류된 경영사항을 독단적으로 집행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원고 공사의 사장인 피고 1과 부사장인 피고 2가 이사회 의결 없이 이 사건 기본합의를 체결한 것은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원고 공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또한, 피고 3은 이사회 의결사항인 이 사건 기본합의가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라는 의견에 동조하여, 또는 사장단이 이사회에서 보류된 사업계획을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방조하여 감사로서의 업무를 게을리하였으므로 그로 인한 원고 공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4.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
원고 공사가 입은 손해는 554,502,433원이므로 피고 1과 피고 2는 연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위 피고들의 경우에는 무모한 사업 추진 경위와 충실의무의 위반 정도에 비추어 책임을 감액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였던 피고 3의 경우에는, 사장과 부사장이 이 사건 기본합의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도운 것에 불과하므로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그 책임을 절반으로 감액함이 상당하다.
5. 결론
그렇다면, 피고 1과 피고 2는 연대하여 원고에게 554,502,433원 및 이에 대하여 피고들에게 최후로 소장 부본이 송달된 날의 다음날인 2005. 9. 29.부터 이 판결선고일로서 피고들이 항쟁함이 상당한 2007. 12. 1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피고 3은 위 피고들과 연대하여 원고에게 위 금액 중 277,251,216원 및 이에 대하여 2005. 9. 29.부터 2007. 12. 1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일부 인용하여야 할 것이지만,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으므로 원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위 인정범위 내에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며 원고의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주1) 기본합의 제4조 1항 “공사는 회사의 설립시부터 제3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전환사채를 전부 주식으로 전환할 때까지(이하 ‘과도기’라고 함) 회사의 주주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본 합의상의 권리 일체를 행사할 수 있다.” 2항 전문 “설립당사자들은 과도기 동안 각각 소유주식의 40%에 해당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공사가 전적인 재량하에 행사할 수 있도록 공사에게 동 의결권의 행사를 포괄적으로 위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