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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0. 2. 24. 선고 97헌바41 판례집 [어음법 제76조 제1항 전문 등 위헌소원]
[판례집12권 1집 152~168]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1.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입법자의 입법형성권 한계

2.수취인과 발행일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함으로 인하여 수취인과 발행일의 기재가 누락된 어음을 지급제시할 경우에는 부적법한 지급제시로 되어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이 상실되게 하는, 어음법 제76조 제1항 전문, 제75조 제5호(수취인) 및 제75조 제6호중 ‘발행일’ 부분이 헌법 제23조 제1항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3.위 법률조항들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형성함에 있어서 입법자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가지지만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사회적 기속성을 함께 고려하여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등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해서는 안된다.

2.가.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형성함에 있어서 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발행일이 발행일자후 정기출급어음의 만기를 정하고 일람출급어음의 지급제시기간을 정하는 표준이 되며, 확정일출급어음의 경우에는 발행인의 능력과 대리권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 기준이 되고, 장기어음임을 은폐하기 위하여 발행

일을 백지로 하여 어음을 발행하는 폐단을 방지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취인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수취인을 기재하지 아니한 어음이 ‘소지인 출급식 어음’이 되어 수표와 다를 바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어음거래의 안전과 원활한 유통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수취인 및 발행일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행일과 수취인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할 것인지 또는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할 것인지의 선택에 관하여 입법자는 광범위한 판단재량권을 가지므로, 이를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선택하여 규정하더라도 그것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는 것으로 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의 침해라고 볼 수 없다.

다.입법자가 입법목적에 비추어 어음관계자의 이해와 공익적 필요 등을 비교형량하고 조정하여, 위 법률조항들에서 발행일과 수취인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함과 동시에 그 기재를 흠결하는 경우 어음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더라도 그것은 입법형성권의 범위내이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3.어음소지인이 이들 어음요건을 모두 기재하여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는 경우에는 소구권이 부인되지 아니하고, 어음요건을 흠결하고 지급제시하는 경우에도 소구권만 상실되게 할 뿐이지 원인관계에서의 채권까지 소멸시키는 것은 아닌 점 등 사유재산권이 부인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있지도 않으므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볼 수도 없다.

심판대상법조문

어음법(1962. 1. 20. 법률 제1001호로 제정되고 1995. 12. 6. 법률 제5009호로 개정된 것) 제76조(어음요건의 흠결) ① 제75조 각호의 사항을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약속어음의 효력이 없다. 그러나 다음 각항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④ 생략

어음법(1962. 1. 20. 법률 제1001호로 제정되고 1995. 12. 6. 법률 제5009호로 개정된 것) 제75조(어음요건) 약속어음에는 다음의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1.~4. 생략

5. 지급을 받을 자 또는 지급을 받을 자를 지시할 자의 명칭

6. 발행일과 발행지

7. 생략

어음법 제34조(일람출급어음의 만기) ① 일람출급의 환어음은 제시된 때 만기로 된다. 이 어음은 발행일자로부터 1년내에 지급을 위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발행인은 그 기간을 단축 또는 연장할 수 있고 배서인은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② 생략

어음법 제36조(만기일의 결정, 기간의 계산) ① 발행일자 후 또는 열람 후 1월 또는 수월에 지급할 환어음은 지급할 달의 대응일을 만기로 한다. 대응일이 없는 때에는 그달의 말일을 만기로 한다.

② 발행일자 후 또는 열람 후 1월반 또는 수월반에 지급할 환어음은 먼저 전월을 계산한다.

③ 월초, 월중 또는 월종으로 만기를 표시한 경우에는 그 달의 1일, 15일 또는 말일을 이른다.

④ “8일” 또는 “15일”이라 함은 1주 또는 2주가 아니고 만8일 또는 만15일을 이른다.

⑤ “반월”이라 함은 만15일을 이른다.

어음법 제77조(환어음에 관한 규정의 준용) ① 다음의 사항에 관한 환어음에 대한 규정은 약속어음의 성질에 상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이를 약속어음에 준용한다.

1. 생략

2. 만기(제33조 내지 제37조)

3.~9. 생략

②~③ 생략

참조판례

1.헌재 1993. 7. 29. 92헌바20 , 판례집 5-2, 36, 44-45

헌재 1998. 12. 24. 89헌마214 등, 판례집 10-2, 927, 944

3. 헌재 1993. 7. 29. 92헌바20 , 판례집 5-2, 36, 51-52

당사자

청 구 인 권○영

대리인 변호사 박종연

당해사건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96가단11576 약속어음금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청구외 전○수가 발행한 액면금 1,500만원, 지급일 1995. 10. 10. 지급지 서울, 지급장소 ○○은행 퇴계로지점, 발행지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 발행일란 및 수취인란이 각 백지로 된 약속어음 1매를 청구외 전○진으로부터 지급거절증서 작성의무가 면제된 채로 배서양도 받아, 위 약속어음의 최종소지인으로서 지급기일에 지급제시하였으나 지급거절당하자 위 약속어음의 발행인인 청구외 전○수와 배서인인 청구외 전○진을 상대로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약속어음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96가단

11576호). 이에 대해 배서인인 청구외 전○진은 이 사건 약속어음이 필요적 기재사항인 발행일란과 수취인란이 백지인 채 지급제시되어 무효이므로 위 약속어음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항변을 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같은 법원에 약속어음의 효력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어음법 제76조 제1항 전문, 제75조 제5호제75조 제6호중 ‘발행일’ 부분이, 발행일과 수취인 기재가 누락된 어음소지인의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과잉입법으로서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97카기157)을 하였으나, 위 법원이 1997. 6. 11. 이를 기각하자, 같은 해 6. 30. 그 기각결정 정본을 송달받고, 같은 해 7. 7. 위 어음법규정들이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보장과 헌법 제37조 제2항헌법 제103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1)그러므로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어음법(1962. 1. 20. 법률 제1001호로 제정되고 1995. 12. 6. 법률 제5009호로 개정된 것) 제76조 제1항 전문, 제75조 제5호(이하 ‘수취인’이라 한다), 제75조 제6호중 ‘발행일’ 부분(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라 한다)에 관한 위헌여부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76조(어음요건의 흠결)①제75조 각호의 사항을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약속어음의 효력이 없다.

(이하 생략)

제75조(어음요건)약속어음에는 다음의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1.~4. 생략

5.지급을 받을 자 또는 지급을 받을 자를 지시할 자의 명칭

6. 발행일과 발행지

7. 생략

2. 청구인의 주장 및 이해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1)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약속어음의 ‘수취인’란과 ‘발행일’란의 기재가 없는 경우 약속어음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음 소지인이 수취인란과 발행일란의 각 기재가 없는 상태로 지급제시할 경우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수취인란과 발행일란의 각 기재가 없는 백지어음이 지급제시되더라도 피사취계의 제출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외없이 결제하여 주는 현재의 거래실정과 법감정 등을 고려하면 매우 부당하다.

(2)발행일란의 기재가 없는 약속어음 자체를 무효화하기 보다는 어음면의 기재에 의하여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다른 효력을 가지는 약속어음으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수취인의 기재가 없더라도 현재의 소지인 (수취인이 최종소지인인 경우)이나 제1배서인(배서가 연속된 경우)을 수취인으로 보면 될 것이므로 발행일과 수취인을 구태여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할 필요성이 없다.

(3)소송실무상으로도 수취인란과 발행일란의 기재가 없는 약속어음을 부적법하게 지급제시를 하고 나서도, 이후에 흠결된 어음요건을 임의로 보충하여 소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엄격히 말하여 증거의 위작일 뿐만 아니라, 의제자백사건이나 공시송달로 진행되는 사건 등 상대방이 다투지 않는 경우에는 가능한 한 이러한 어음소지인의 청구를 인용하는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

(4)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발행일과 수취인 기재가 누락된 어음소지인들의 재산권인 어음상의 권리를 상실케 하는 것은 국가적, 사회적, 경제적 필요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둠으로 인하여 얻게되는 공익적 이익보다는 소지인이 부당하게 어음상의 권리를 상실하는 불측의 손해를 입게되는 피해가 훨씬 크고, 적어도 국내에서 유통되는 약속어음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대체방법이 있으므로, 국민의 재산권보장을 규정한 헌법 제2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제한 입법시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선언한 헌법 제37조 제2항, 법관의 헌법 등에 의한 재판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3조에 위배된다.

나.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의 위헌심판제청 기각이유의 요지

현행 어음법이 어음요건을 법정하고 그 일부라도 흠결이 있을 때에는 어음의 효력을 상실하도록 규정한 것은 어음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므로 그 기재내용을 명확히 하여 어음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취지라고 보여지므로, 금융기관 등의 거래실정과 경제적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거나 과잉입법이어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

다. 법무부장관의 의견요지

(1)‘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정한 것은, ‘발행일’이 발행일자후 정기출급어음의 만기를 정하는 기준이 되고, 이자문구의 기재가 있는 경우에는 이자발생시기를 결정하며, 원칙적으로 일람출급 어음의 지급제시기간을 정하는 표준이 됨은 물론, 확정일자출급 어음에 있어서도 발행인의 행위능력, 대리인의 대리권 유무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2)‘수취인’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정한 것은, ‘수취인’의 기재를 생략하여 소지인 출급식 어음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어음이 수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어음은 수표와는 달리 지급기일이 발행일로부터 10일로 한정되어 있지 아니하여 기간의 제한없이 유통될 것이고, 수표와는 달리 처벌에 의하여 그 지급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므로 선의의 제3자에게 손해를 입혀 유가증권으로서의 신뢰성이 떨어져 어음제도 자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3)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다수인이 이용하는 유가증권으로서의 약속어음의 형식을 규정하여 경제거래의 편의를 도모하고 경제행위에 예측성을 줌으로써 거래비용의 절감이라는 약속어음의 유가증권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규정한 것으로, 헌법이 위임한 입법형성권의 정당한 범위내에 있다.

(4)입법자가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서 어음의 발행일과 수취인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유가증권 시장질서의 유지라는 합리적인 사유에 기인한 것으로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5)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헌법에 따른 적법한 법률조항들이므로 법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03조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3. 판 단

가. 이 사건의 법률상 쟁점

어음법제75조 제5호에서 “지급을 받을 자 또는 지급을 받을 자를 지시할 자의 명칭”(이하 ‘수취인’이라 한다)을, 그리고 제75조 제6호에서 “발행일”을 각각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고, 제76조

제1항에서 이를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약속어음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의 어음거래 실제에 있어서는 발행일 및 수취인이 기재되지 아니한 어음도 어음요건을 갖춘 완전한 어음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간에 발행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어음교환소와 은행 등을 통한 결제 과정에서도 발행일 및 수취인의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지급거절됨이 없이 발행일 및 수취인이 기재된 어음과 마찬가지로 지급·결제되고 있다.

실태가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부도가 되어 법률상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는 달라진다. 어음 소지인이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여야 하며(어음법 제38조 제1항, 제77조 제1항 제3호), 적법한 지급제시는 원칙으로 제시기간 내에 완성된 어음을 제시하는 것이고, 완성된 어음이란 어음요건으로 규정되어 있는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을 흠결없이 모두 갖춘 것을 말한다. 그 중 하나라도 흠결하면 완성된 어음이 아니며, 그런 어음을 제시하는 것은 적법한 제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와 같이 수취인이나 발행일의 기재가 누락된 약속어음은 완성된 어음이 아니며, 이를 제시하는 것은 적법한 제시가 아니다. 이런 경우에 발행인과 같은 어음의 주채무자에 대한 어음금지급청구권리를 행사하는 데에는 3년의 소멸시효기간 내이면 제시기간이 경과하더라도 상관 없어서(어음법 제53조 제1항 단서, 제77조 제1항) 별 문제가 없으나, 배서인에 대하여 소구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다. 어음소지인이 배서인에 대하여 소구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만기일 또는 만기일에 이은 2거래일 이내에 적법한 지급제시를 해야

하고(어음법 제53조 제1항, 제38조 제1항), 지급거절증서가 면제되어 있지 않는 한,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였으나 지급거절되었다는 사실에 관하여 지급거절증서를 작성하여야 한다(어음법 제45조, 제46조). 따라서 어음소지인이 위 제시기간내에 수취인란과 발행인란을 보충하여 완성된 어음으로써 지급제시하는 경우에만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 제시기간이 매우 짧아서 수취인 및 발행일이 흠결된 어음이 부도처리되어 반환된 경우에는 이미 이 기간을 경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설령 어음 소지인이 나중에 수취인란과 발행일란을 보충하여 완성된 어음으로 제시한다 하더라도 이미 늦기 때문에, 결국 어음소지인은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이 사건의 법률상 쟁점은 실제에 있어서는 약속어음 소지인이 수취인이나 발행일의 기재가 흠결된 어음을 지급제시할 경우,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하는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규정이므로, 적법한 법률인 이 사건 법률조항들과는 관련성이 없어서 그 위배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보장규정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이다.

나. 외국의 입법례

먼저 어음의 요건들을 규정하고 있는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본다.

(1)제네바 통일법계 어음법

유럽각국이 주도하여 제네바에서 체결한 1930년의 어음법 통일조약의 내용에 따라 제정된 통일법계의 어음법에서는 어음의 형식적 요건들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등이 채택한 통일법계 어음법들에서는 발행일 및 수취인은 어음의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되어 있다. 우리 나라도 위 어음법 통일조약의 내용들을 수용하여, 발행일 및 수취인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하였다.

(2)영미법계 어음법

우선 미국법은 발행일을 어음의 필요적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미국통일상법전 제3장 제114조 제1항). 미국법은 발행일에 관하여, 발행일이 기재되지 아니한 증권은 발행교부일을 발행일로 보고, 발행교부되지 아니한 증권은 소지인의 소지가 시작된 날을 그날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장 제113조(b)항). 그리고 미국법은 종전에는 수취인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그 기재가 없는 증권은 흠결증권으로 하여 증권상의 권리가 상실되는 것으로 하였으나, 1994년 법개정을 하면서, 수취인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그 기재가 누락된 경우에는 소지인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제3장 제109조(a)(2)항).

한편 영국법은 발행일을 임의적 기재요건으로 규정(영국환어음법 제3조(4)(a)항)하고 있는 반면에, 수취인은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제6조(1)항).

(3)‘국제환어음·국제약속어음에 관한 UN협약’

통일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누어짐으로 인한 국제거래상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의견을 모아 198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환어음·국제약속어음에 관한 UN협약’안에서는 발행일은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하였으나, 수취인은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다.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보장규정 위배여부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수취인과 발행일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요건으로 규정함으로 인하여 수취인과 발행일의 기재가 누락된 어음을 지급제시할 경우에는 부적법한 지급제시로 되어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이 상실되게 되는 것이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보장규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4)헌법제23조 제1항 제1문에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라고 하여 재산권의 보장을 선언하고, 제2문에서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여 재산권은 다른 기본권 규정과는 달리 그 내용과 한계가 법률에 의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기본권 형성적 법률유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국회에서 제정되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의하여 정해지므로 이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은 재산권 형성적 법률유보에 의하여 실현되고 구체화하게 된다. 따라서 재산권의 구체적 모습은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법률은 재산권을 제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산권을 형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법률의 경우에도 사유재산제도나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것은 재산권보장규정의 침해를 의미하고 결코 재산권형성적 법률유보라는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없다’(헌재 1993. 7. 29. 92헌바20 , 판례집 5-2, 36, 44-45).

한편 제2항에서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입법자는 헌법 제23조 제1항 제2문에 의거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형성함에 있어서는 헌법 제23조 제1항 제1문에 의한 사적 재산권의 보장과 함께 헌법 제23조 제2항의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하여 양 법익이 균형을 이루도록 입법하여야 한다(헌재 1998. 12. 24. 89헌마214 등, 판례집 10-2, 927, 944 참조).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형성함에 있어서 입법자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가진다. 그렇지만 위와 같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사회적 기속성을 함께 고려하여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등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해서는 안된다.

(2)채권을 증권에 화체한 어음제도는 어음법에 의하여 규율되고, 어음상의 권리의 득실·변경·행사 등 재산권인 어음상의 권리의 구체적 모습 역시 동법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도 약속어음에 필요적으로 기재하여야 할 어음요건(제75조)과 이를 기재하지 아니한 증권은 약속어음의 효력이 없다(제76조 본문)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음은 반드시 기재하여야 할 요건이 법률로 정해져 있고 그 중 하나라도 흠결하면 다른 보충규정(제76조 제1항 단서 이하)에 의하여 구제되지 아니하는 한 어음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어음·수표이외의 다른 유가증권에도 보통 기재사항이 법정되어 있으나, 그 중 하나가 흠결된다 해서 어음처럼 반드시 그 증권을 무효로 하지는 않는다. 입법자가 다른 유가증권에 비하여 어음·수표를 가장 엄격한 요식증권으로 형성한 이유

는 이것이 거래에 있어서 지급수단, 신용수단, 담보수단, 추심수단, 송금수단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유통되는 것이므로 그 기재내용을 특히 명확하게 하여 거래의 안전과 원활한 유통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음의 기재를 명확히 함으로써 어음취득자는 어음면상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만을 신뢰하고도 안심하고 권리를 취득할 수 있게 되어 어음의 유통성확보와 취득자 보호에 기여한다.

그런데 이들 어음요건 중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수취인과 발행일은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학자와 법률가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다. 수취인의 기재가 없더라도 제1배서인 또는 아직 배서가 안된 경우에는 소지인을 수취인으로 보면 되는 것이고, 발행인의 능력과 대리권의 유무는 다른 자료로 알아보아도 되는 것이므로 구태여 발행일을 기재하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입법자가 어음법을 입법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형성함에 있어서 수취인과 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입법목적과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가)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어음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서 유통되는 것이며, 어음관계자는 어음면상에 기재된 문언만을 보고 신속하게 거래하게 된다. 따라서 입법자는 어음제도를 형성함에 있어 어음면상에 기재할 어음요건들을 특히 엄격하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거래의 안전과 원활한 유통을 보장해야 하며 이러한 입법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취인과 발행일 역시 다른 어음요건과 함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하여 어음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한 것이다. 또 국제간의 어음거래의 편의 등도 고려

하여 어음법을 제정할 때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각국 및 일본과 보조를 맟추어 제네바 통일조약의 내용들을 수용해서 수취인과 발행일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나)발행일은 발행일자후 정기출급어음의 만기를 정하는 표준이 되고(어음법 제36조, 제77조 제1항 제2호), 원칙으로 일람출급어음의 지급을 위한 제시기간을 정하는 표준이 된다(어음법 제34조 제1항).

‘확정일출급어음’의 경우에는 제시기간이 어음에 기재된 만기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발행일이 별로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발행인의 능력과 대리권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 기준이 된다. 어음에 기재된 발행일과 만기까지의 기간의 장단은 어음의 신용관계를 추측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발행일 백지의 확정일출급어음이 많이 유통되고 있는 것은 장기의 어음결제기간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발행일의 기재는 장기어음임을 은폐하기 위하여 발행일을 백지로 하여 어음을 발행하는 폐단을 방지해준다.

(다)수취인을 기재하지 아니한 어음은 ‘소지인 출급식 어음’이 되어 수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제네바 통일법계 어음법 심의과정에서도 어음이 지폐와 같이 유통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소지인출급식어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취인의 신용은 어음의 신용에 직결되므로 수취인의 기재는 그 이후의 어음취득자에게 신용판단의 자료로서의 의미도 있다.

(3)거래의 안전과 원활한 유통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수취인’ 및 ‘발행일’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하는 것을 대체수단으로 상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행일’과 ‘수취인’을 임의적 기재사항으로 할 것인지 또는 이 사건 법률조항들과 같이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할 것인지의 선택에 관하여 입법자는 광범위한 판단재량권을 가지므로, 이를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선택하여 규정하더라도 그것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하는 것으로 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의 침해라고 볼 수 없다할 것이다.

그런데 수취인과 발행일을 필요적기재사항으로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 이를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규정한 입법목적과 의미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따라서 그 기재를 소홀히하여 흠결한 경우 이 사건 법률조항들 아래서는 어음소지인의 소구권이 상실된다.

반면 전항에서 살폈듯이 어음은 지급·신용·담보·추심·송금수단 등 여러 기능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어음요건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기재하도록 하여 어음 거래상의 모든 관계자가 어음상의 문면기재만 보고 거래하여도 보호되는 등 거래의 안전을 보장하고 어음유통을 원활하게 해야 할 공익적 필요성 역시 크다.

이에 입법자가 입법목적에 비추어 어음관계자의 이해와 공익적 필요 등을 비교형량하고 조정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서 발행일과 수취인을 어음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함과 동시에 그 기재를 흠결하는 경우 어음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더라도 그것은 입법형성권의 범위내이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헌법 제2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라. 헌법 제37조 제2항 위배여부

다음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에 반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어음제도나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포함한 어음법은 사유재산권을 부인한 것이 아니며, 헌법 제23조 제1항 제2문에 의거 어음상의 권리의 득실·변경·행사 등에 관한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써 정하여 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서 규정한 수취인과 발행일의 기재를 누락하여 소지인이 어음요건 흠결로 배서인에 대한 소구권을 상실한다 하더라도 이는 기본권의 제한을 정한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기본권의 제한의 한계를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헌재 1993. 7. 29. 92헌바20 , 판례집 5-2, 36, 51-52 참조).

또 소지인이 이들 어음요건을 모두 기재하여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는 경우에는 소구권이 부인되지 아니하고, 어음요건을 흠결하고 지급제시하는 경우에도 소구권만 상실되게 할 뿐이지 원인관계에서의 채권까지 소멸시키는 것은 아닌 점 등 사유재산권이 부인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있지도 않으므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들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4. 결 론

그렇다면 어음법 제76조 제1항 전문, 제75조 제5호, 제75조 제6호중 ‘발행일’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재판관 김용준(재판장) 김문희 정경식 고중석 신창언 이영모 한대현 하경철(주심)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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