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보존등기말소][미간행]
[1] 토지조사령에 기하여 행하여진 토지조사사업에서 토지 소유자로 사정받은 사람의 후손으로서 상속에 의하여 소유권을 승계취득하였음을 소송상 주장하는 경우, 그의 선대와 사정명의인의 동일성에 대한 증명의 정도
[2] 사정 부동산에 대한 사정명의인이 원고들의 선대와 동일인인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사정명의인의 주소지가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원고들의 선대의 본적지로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으며, 특히 원고들의 선대가 사정 부동산을 취득하게 된 경위나 사정받게 된 경위, 사정 이후의 사용·관리 현황과 같은 간접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으므로, 원고들의 선대와 사정명의인이 동일인이라고 쉽사리 인정할 수 없음에도, 이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1] 민법 제187조 , 민사소송법 제202조 , 제288조 [2] 민법 제187조 , 민사소송법 제202조 , 제288조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현우 담당변호사 공택)
대한민국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일정 아래에서의 토지조사령에 기하여 행하여진 토지조사사업에서 토지의 소유자로 사정(사정)받은 사람은 당해 토지의 소유권을 원시적·창설적으로 취득하는 것으로서, 그 사정은 토지소유권관계의 출발점을 이룬다. 또한 토지사정 이후 10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에 토지에 관한 거래 기타 법률관계에 관한 변동원인이 있었을 적지 않은 개연성, 그 사이에 우리 사회에 일어난 전란 기타 현저한 사회적·경제적 변동 또는 토지이용현황의 추이 등에도 불구하고, 사정명의인의 후손은 일단 상속이라는 포괄적 권리승계원인에 의하여 사정명의인이 가지던 토지소유권의 승계취득을 쉽사리 증명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사정명의인의 후손으로서 상속에 의하여 그의 소유권을 승계취득하였음을 소송상 주장하는 경우에 그의 선대와 사정명의인의 동일성은 엄격하게 증명되어서 법관이 그에 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점에 관하여 의심을 제기할 만한 사정이 엿보임에도 함부로 이를 추단하여서는 안 된다 ( 대법원 2009. 11. 26. 선고 2009다45924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제1심판결을 인용하여, (1)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2 구거 754㎡(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고 한다)의 분할 전 토지인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 답 1,383평(이하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이라고 한다)은 1911. 9. 22. 경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경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에 주소를 둔 이복영(이부영)에게 사정되었고, (2)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이부영)의 본적지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관훈동) 198-1이며, (3) 1914년 4월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대사동. ‘사동(사동)’으로 불리기도 하였다]과 청석동의 일부 및 훈동이 통합되어 관훈동이 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사실에 이 사건 사정명의인 이복영의 주소가 경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경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이었고, 원고들의 선대인 이복영과 그 한자이름이 동일하며, 당시 위 대사동에 동명이인인 이복영이 거주하였다고 볼 별다른 사정이 없다는 점 등의 사정을 보태면 이 사건 사정 부동산에 대한 사정명의인 이복영은 원고들의 선대인 이복영과 동일인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의 본적지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이었는데 1922년에 토지분할로 그 지번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로 되었고,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에서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의 양자(양자) 소외 1의 처 소외 2가 1921년에 사망하고, 소외 1의 자 소외 3의 장녀 소외 4가 1919년에, 차녀 소외 5가 1922년에 각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어,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 및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을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의 주소지로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1914. 4. 1.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에 의하여 경성부 중부 관인방 대사동은 그 행정구역이 3부분으로 나뉘어 경성부 중부의 견지동, 관훈동, 인사동으로 각 편입되었으므로,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사정명의인 이복영의 주소지인 ‘경성부 중부 관인방 사동’이 반드시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의 본적지인 ‘경성부 중부 관훈동’으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이 1911년 토지조사사업 시행 당시에 사동 또는 관훈동 일대에서 이복영이라는 성명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사정명의인과 원고들의 선대의 성과 이름에 희소성이 없고 그 한자 역시 비교적 간단하며, 사정명의인과 원고들의 선대가 주소를 두거나 거주한 지역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로서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보여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사정 당시 원고들의 선대 소외 1이 호주로 생존하고 있었음에도 그의 양모(양모)인 이복영이 사정받는다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원고들은 선대인 이복영이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을 취득하게 된 경위나 사정받게 된 경위, 사정 이후의 사용·관리 현황과 같은 간접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음을 기록상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심이 인정한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이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사정명의인인 이복영과 동일인이라고 쉽사리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사정명의인 이복영과 원고들의 선대 이복영이 동일인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정명의인의 동일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또한 원심은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자가 사정명의인 또는 사정명의인의 상속인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이 1961. 12. 28. 이 사건 부동산과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1 답 1,070평 및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3 답 84평으로 지적 분할될 당시 이미 이 사건 부동산은 구거로,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3 답 84평은 도로로 사실상 이용되고 있어서 그 현황대로 지적이 분할되었고, 이 사건 사정 부동산과 이 사건 부동산 및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3 답 84평의 각 구 토지대장의 ‘소유자’란에 각 ‘ 소외 6’과 ‘ 소외 7’이 기재되어 있으며,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1 답 1,070평(3537㎡)은 그 후 같은 리 155-1 답 2550㎡와 같은 리 155-4 답 987㎡로 분할되어 모두 제3자 명의(그 중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1 답 2550㎡에 대하여는 소외 6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사정 부동산도 사정명의인 또는 그 상속인이 처분하였을 가능성을 쉽사리 배제할 수 없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사정명의인 또는 그 상속인이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을 사정받은 이후의 사용·관리 현황 및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의 분할경위, 이 사건 사정 부동산 및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 소외 6’과 ‘ 소외 7’이 각 그 구 토지대장에 소유자로 등재된 경위, 이 사건 사정 부동산 중 구거 및 도로로 이용되지 아니한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155-1 답 2550㎡에 대하여만 소외 6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된 경위 및 이 사건 부동산의 현재 사용상황을 면밀하게 심리하여 이 사건 사정 부동산이 제3자에 처분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부동산의 토지대장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가 소유자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도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아울러 지적하여 둔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