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a
대법원 1990. 2. 27. 선고 88다카11916 판결

[약속어음금][공1990.4.15.(870),748]

판시사항

채무자가 고액의 채무를 여러차례 변제하면서 영수증을 받거나 채권증서인 어음을 회수 또는 개서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2년간 이자를 계속 지급하였다는 경우에 변제사실을 인정함이 경험칙에 반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채무자가 5,000,000원 또는 10,000,000원 단위의 큰 돈을 여러차례에 걸쳐 변제하면서 영수증을 받거나 채권증서인 어음을 회수 또는 개서하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여 2년여간이나 이자를 계속 지급하였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영수증을 받거나 채권증서를 회수 또는 개서하지 못한채 변제를 할 수 밖에 없었음과 이미 변제하고도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수 밖에 없었음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 변제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경험칙에 반한다.

원고, 상고인

유옥순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창구

피고, 피상고인

김병남 외 1인 피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안병수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전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원고 소송대리인의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거시증거에 의하여 (1) 피고 김병남은 소외 현상봉으로부터 1981.10.13. 금 10,000,000원을 이자는 월 3푼(다만 1983.3.부터는 월 2푼 5리로 인하되었음)으로 정하고 변제기는 정함이 없이 차용한 다음 다시 1982.6.13. 금 10,000,000원을 이자 및 변제기는 위와 같이 하여 추가로 차용하면서 위 각 차용금합계금 20,000,000원에 대한 담보조로 위 현상봉에게 피고 김 동한의 보증아래 이 사건 제1어음을 1981.10.13.자로 소급하여 발행하였었는데 그후 위 피고가 1982.10.20.에 이르러 위 현상봉에게 위 1981.10.13.자 차용금 10,000,000원을 변제한 사실, (2) 한편 위 피고는 위와 같은 변제사실을 망각하고 착오로 위 1981.10.13.자 차용금 10,000,000원에 대한 이자지급에 갈음하여 1983.1.15.부터 1985.2.15.까지의 사이에 원심판결 첨부 별지 제1목록 기재와 같이 당시 그 자신이 조직, 운영하던 계금 10,000,000원의 30구좌짜리 번호계에 관한 위 현상봉의 계불입금 합계금 6,300,000원을 대신 불입하였고, 또한 1982.12.5. 및 같은 달 20. 위 현상봉으로부터 각 금 5,000,000원씩을 이자 및 변제기는 위와 같이 하여(다만 1983.3.부터는 이자가 월 2푼 5리로 인하되 었음) 차용하였다가 같은 달 29. 위 현상봉에게 위 각 차용금을 모두 변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착오로 위각 차용금에 대한 이자지급에 갈음하여 1983.1.5.부터 1985.3.5.까지의 사이에 위 별지 제2, 3목록기재와 같이 당시 그 자신이 조직, 운영하던 각 계금 10,000,000원의 30구좌짜리 번호계 3개에 관한 위 현상봉의 계불입금 합계금 6,450,000원(3,125,000원+3,325,000원)을 대신 불입하였으며, 1982.12.29. 위 현상봉으로부터 금 20,000,000원을 이자 및 변제기는 위와 같이하여(다만 1983.3.부터는 이자가 월 2푼 5리로 인하되었음) 차용하였다가 1984.6.28. 그 중 금 10,000,000원을, 같은 해 10.11. 그 나머지 금 10,000,000원을 위 현상봉에게 각 변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차용금 중 금 10,000,000원이 변제되지 아니하고 남아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그에 대한 이자지급에 갈음하여 1984.11.5. 당시 그 자신이 조직, 운영하던 위 제2차 5일계에 관한 위 현상봉의 계불입금 250,000원을 대신 불입한 사실을 각 인정하고 있다.

2. 그러나 금원을 차용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차용금을 변제하면서 영수증을 교부받지 아니하거나 위 차용금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교부한 차용증 또는 어음 등 채권증서를 회수 또는 개서하지도 않은채 채권자의 수중에 남겨 둔다는 것은 극히 이례에 속하는 일이며, 더욱이 이 사건에서와 같이 5,000,000원 또는 10,000,000원 단위의 큰돈을 한차례도 아니고 여러차례에 걸쳐 변제하면서 영수증을 받거나 채권증서인 어음을 회수 또는 개서하지 아니하였을 뿐아니라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여 2년여간이나 이자를 계속 지급하였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영수증을 받거나 채권증서를 회수 또는 개서하지 못한채 변제를 할 수 밖에 없었음과 이미 변제하고도 변제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수 밖에 없었음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 변제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경험칙에 반하는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여 원심이 채용한 증거 중 위 원심인정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증거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신빙성이 희박하여 위에서 말한 특별한사정을 인정하기에 미흡하다고 여겨진다.

(1) 피고 김병남에 대한 진술조서 및 진술서(을 제2호증의 5, 같은 제4호증, 같은 제10호증, 같은 제13호증의 2 내지 4,6,9,10,16,18,20, 같은 제25호증의 6, 같은 제26호증의 55,64,67,114).

위 피고는 채무자 본인으로서 이 사건 계쟁금액의 변제여부에 관하여 원고와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자일뿐 아니라, 기록에 의하면 위 피고는 1979.경부터여러개의 계를 조직운영해 오면서 소외 현상봉과 사이에서 십수회에 걸쳐 500만원부터 2,000만원에 이르는 금원대차거래를 계속하며 거래시마다 차용증서로 약속어음을 발행하고 변제시에는 이를 회수하거나 개서해온 자인 바, 유독 이 사건 계쟁금액의 변제에 한하여 발행어음을 회수하거나 개서함이 없이 돈만주었다는 위 피고의 진술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위 피고는 변제에 관한 착오를 1983.9.10.경 발견하였다는 것인데(을 제2호증의3 참조), 이러한 착오내용을 밝혀 바로 잡지 않은 채 소외 현상봉에게 1983.10.10. 1,000만원, 1984.6.27. 1,000만원, 그해 10.10. 현상봉을 대신 한 원고에게 1,000만원을 각각 변제해 주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위 피고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음을 엿보이게 한다.

(2) 박남희에 대한 진술조서 및 진술서(을제5호증, 같은 제8호증, 같은 제13호증의 1, 11, 같은 제 49호증의 3,5,6, 같은 제53호증의 4).

위 박남희의 진술요지는 1983.10.중순경 피고 김병남과 같이 소외 현상봉의집에 가서 위 피고가 현상봉에게 1,000만원 변제하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그때 위 현상봉이 위 변제에 화를 내고 계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하여 위 변제금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물러 나왔다는 취지이나, 1,000만원이란 큰돈을 변제하면서 채권자가 채무를 일찍 변제하는 데에 화를 낸다고 하여 감히 영수증을 요구하거나 어음회수를 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것으로서 합리성을 결여 하여 증거로서의 신빙성이 없다고 할것이다.

더구나 기록에 의하면 위 박남희는 이 사건에서 거의 유일한 직접적인 목격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심에서 제3차변론기일(1986.6.26. 10:00)에 피고측 증인으로 채택되었는 데도 증거절차 미료로 소환신문이 되지 않다가 제9차변론기일(1987.4.2·14:00)에 철회되었고, 다시 제11차변론기일(1987.7.9. 10:00)에 피고측 증인으로 채택되었는데도 역시 증거절차미료로 소환신문이 되지 않다가 제14차변론기일(1987.11.19. 14:00)에 철회되는 등 피고측의 증거조사절차 불이행으로 끝내 동인에 대한 증거조사가 시행되지 않고 말았음은 위 박남희의 위 각 진술조서 및 진술서 기재내용의 신빙성을 희박하게 하는 한가지 자료가 된다.

(3) 김덕례의 원심증언과 동인에 대한 진술조서 및 진술서(을제6호증, 같은 제13호증의8, 22, 같은 제25호증의33, 같은 제27호증, 같은 제49호증의4). 위 김덕례의 각 진술요지는 피고 김병남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이어서위 피고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위 전문진술도 역시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4) 김삼순의 원심증언과 동인에 대한 진술조서, 진술서(을제26호증의 106,111), 신소인의 원심증언과 진술서(을제53호증의 6), 김순덕의 원심증언과 진술서(을제53호증의 1), 박노순의 진술서(을제48호증의 28).

위 김삼순은 1983년경에 피고 김병남 집에 단 3번(원심증언시에는 4번이라고 진술) 파출부로 나갔을 때에 우연히 들은 내용을 약 2년후에 수사기관에서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고, 신 소인은 1983.10.10.경 피고 김병남 집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피고와 소외 현상봉의 대화내용을, 김 순덕은 1984.10.15.경 위피고 집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위 피고와 위 현상봉의 전화통화한 내용을 모두 3, 4년후에 작성한 진술서에서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으며, 또 박노순은 계모임을 하는 장소에서 들은 내용을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는 바, 위와 같이 특별한 연고가 없이 단지 파출부 또는 방문객 등으로 위 피고집이나 계모임에서 우연히 들은 내용을 몇년이 지난 뒤에 돈의 액수와 돈을 주고 받은 일시, 장소 등을 세밀한 부분까지 소상하게 기억하여 진술한다는 것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위 각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5) 을제22호증(같은 제26호증의 93, 94와 같음).

소외 현상봉이 피고 김병남의 요구로 1984.11.15.에 작성 교부한 자필메모로서 그 내용에 "차용어음 1,000만원은 83년 7월 8일 것뿐이고 84년 10월11일에 발행한(2,000만원을 갱신한) 1,000만원짜리가 있음.(29일 원일자로 썼음)"이라는 기재부분이 있어 위 메모작성 당시 피고 김병남의 잔존채무액은 2,000만원뿐 임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출된 것 같으나, 위 1983.7.8.자 1,000만원의 어음채무는 원고주장에 의하면 1984.6.27.에, 피고주장에 의하면 1983.10.10.에 이미 변제된 것이므로 위 메모의 요지는 잔존채무액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어떤 어음이 액면 1,000만원으로 발행된 것인지를 확인한 취지로 보여진다.

원심이 채용하지 않은 증거이긴 하나 갑제6호증의2 기재를 보면 위 현상봉은 검찰에서 사기 미수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때에 위 자필 메모와 관련하여 위 메모지가 1984.11.15. 현재 차용금 액수는 어음두장 도합 2,000만원 뿐이라는 내용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있으나(기록 1406면 참조), 위 메모의 기재내용에 비추어 보면 위 진술은 잔존채무액이 2,000만원 임을 자인한 것이 아니라 액면 1,000만원의 어음으로 차용한 금액이 2,000만원이라는 취지라고 풀이 되고 이는 갑제5호증의1(공소부제기이유서)기재에 의하여도 뒷받침된다.

(6) 그 밖의 원심채용증거를 보면 피고 김병남이 작성한 금전거래일기장(을제25호증의 10, 11), 계장부(을제25호증의 15, 16), 위 피고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계산서(을제25호증의 7 내지 9, 같은 제47호증의1, 2, 같은 제51호증) 또는 주로 위 피고의 진술에 근거한 수사기관의 수사보고서 등이 있으나 이러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미흡하다고 보여진다.

3. 결국 원심판결에는 증거가치의 판단을 그르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있고 이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12조 제2항 소정의 파기사유에 해당하므로 이 점에 관한 논지는 이유있다.

그러므로 다른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은 생략하고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파기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상원(재판장) 이회창 배석 김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