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미간행]
원고 1 외 1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21세기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김용경 외 1인)
대한민국
2012. 7. 19.
1. 피고는 원고 1에게 462,352,939원, 원고 2, 3, 4에게 각 199,230,768원, 원고 5에게 55,288,460원, 원고 6, 7, 8, 9에게 각 22,115,384원, 원고 10, 11, 12, 13에게 각 143,749,999원, 원고 14, 15에게 각 123,333,333원 및 각 이에 대하여 2012. 7. 19.부터 2012. 8. 23.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1/3은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피고는 원고 1에게 612,352,939원, 원고 2, 3, 4에게 각 249,230,769원, 원고 5에게 105,576,920원, 원고 6, 7, 8, 9에게 각 42,230,768원, 원고 10, 11, 12, 13에게 각 184,500,000원, 원고 14, 15에게 각 360,000,000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부터 이 사건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
가. 경찰의 소외 1, 2, 3, 4 살해 사건의 경위
(1) 1950. 6. 25. 한국전쟁 발발 후 광주지역에는 1950. 7. 23. 경찰부대가 후퇴하고 같은 날 인민군 제6사단이 진입하였다. 광주에 주둔한 인민군은 치안을 장악하고 당시 광주형무소에 복역 중인 좌익계열 및 일반죄수 300여 명을 석방하였으며, 지역 좌익세력과 함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점령정책을 실시하였다.
(2) 1950. 9. 15.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벌인 뒤, 광주지역은 1950. 10. 3. 경찰부대가 광주시내에 진입하였으나 치안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이 무렵 광주를 빠져나가지 못한 인민군과 지방좌익세력은 무등산, 함평 불갑산, 지리산, 화순 백아산, 광양 백운산 등으로 입산하여 군경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50. 10. 10.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가 광주에 주둔함으로써 광주지역 치안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국군 제11사단 20연대는 화순, 장성, 담양, 곡성 등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함과 더불어 각 경찰서에서도 경비계에 토벌대를 두고 토벌작전 및 치안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경찰은 부역자 색출과 좌익계 주민 검거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3) 1951. 1. 14. 당시 전남 광산군 지한면 소태리 마을 이장 소외 3, 마을 반장 소외 4, 마을 서기 소외 2 등은 지서에 출두하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지한지서로 갔고, 광산군 효지면 대한청년단 훈련부장 소외 1은 인민군 점령하의 면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한 것과 관련하여 경찰수복 후 지한지서에 자수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같은 날 지한지서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지한지서 경찰은 1951. 1. 16. 위와 같이 소집한 마을 유지들을 광산군 용산리 화산마을 몰몽재 부근에서 사살하였다(이하 소외 3, 4, 2, 1을 ‘망인들’이라 한다. 경찰이 망인들을 살해할 정당한 이유는 없었다).
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는 2005. 12. 13.부터 2006. 11. 30.까지 소외 15 등으로부터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신청을 접수하여 2007. 3.경부터 2008. 7.경까지 신청인조사, 참고인조사, 현장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 11. 25. 망인들을 비롯한 23명이 경찰 및 우익단원, 그리고 토벌대에 의해 합당한 이유 없이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희생되었음을 확인하고(이하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국가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희생자의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사업을 하며, 유족들이 원할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등 잘못된 공식 문서기록을 정정하고, 군경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내법과 관련 국제법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을 하였다.
다. 망인들의 사망 당시 가족관계
(1) 소외 1(호주가 아니다)의 사망 당시 유족으로는, 부 소외 5, 모 소외 6, 형제인 소외 14, 37, 15, 16이 있고, 자매인 소외 17이 있다. 또한 처인 소외 7, 아들인 원고 1이 있다. 소외 14는 1964. 5. 15., 소외 5는 1966. 9. 16., 소외 16은 1966. 10. 28., 소외 6은 1995. 7. 18., 소외 7은 1996. 1 . 4. 각 사망하였다. 소외 17은 1951. 2. 22. 혼인하였다.
(2) 소외 2(호주가 아니다)의 사망 당시 유족으로는 모 소외 8, 형 소외 18(호주이다), 동생 소외 19, 20, 처 소외 9, 아들 원고 4, 딸 원고 2, 3이 있다. 소외 8은 1958. 8. 3., 소외 9는 2009. 11. 7. 각 사망하였다. 소외 20은 1943. 4. 15., 원고 2는 1970. 6. 17. 각 혼인하였다.
(3) 소외 3(호주가 아니나, 호주 소외 10의 장남이다)의 사망 당시 유족으로는 부 소외 10(호주이다), 모 소외 11, 형제인 소외 21, 22, 23이 있고, 아들인 장남 소외 27, 원고 10, 소외 28, 원고 13이 있고, 딸인 원고 11, 12가 있다. 소외 27에게는 처 원고 5가 있고, 아들인 소외 29, 원고 6, 소외 30, 딸인 원고 7, 8, 9가 있다. 소외 11은 1951. 5. 4., 소외 10은 1952. 11. 15., 소외 30은 미혼인 채로 1962. 2. 28., 소외 27은 1995. 10. 25., 소외 12는 1999.경, 소외 29는 2004.경 각 사망하였다. 원고 11은 1984. 1. 21. 분가하였고, 원고 12는 1968. 10. 8. 혼인하였다.
(4) 소외 4(호주이다)의 사망 당시 유족으로는 처 소외 13, 아들인 장남 소외 31, 차남 원고 15, 딸 원고 14가 있다. 소외 31은 1979. 10. 10., 소외 13은 1999. 7. 6. 각 사망하였다. 소외 31은 사망 당시 처인 소외 32가 있었고, 소외 31의 자녀는 소외 33, 34, 35가 있었는데, 소외 33은 1982. 2. 20., 소외 34은 1992. 1. 3., 소외 35는 1980. 3. 23. 각 사망하였다. 원고 14는 1969. 12. 23. 혼인하였다.
2.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소속 지한지서 경찰들이 정당한 이유 및 절차 없이 망인들을 살해하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고, 망인들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은 이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망인들 및 그 유족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는, 전문 증거를 근거로 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만으로 망인들을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인정하여 피고가 망인들 및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집단적·조직적으로 연행되어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인 점,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통지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유족들이 피해자들의 사망 여부나 사망 경위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유족들이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 또한 사건 당시 및 이후의 국내 사회적, 정치적 상황상 가족들로서 받게 될 사회적 불이익으로 인하여 유족들이 망인들의 사망경위를 숨겨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가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별도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이상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설립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을 신뢰하여 망인들을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의 피해자로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다면 이를 존중함이 마땅하고, 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사법절차의 사실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증명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전문 증거를 근거로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망인들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들로 볼 수 없다거나 피고의 망인들 및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났으므로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고 항변한다.
나. 판단
이 사건 소가 망인들이 사망한 1951. 1. 16.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후인 2012. 11. 21.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다.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위 인정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전시나 국가 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로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의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 피고 등을 상대로 적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점, ② 전쟁이나 내란 등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집단적으로 자행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③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피고가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민의 생명을 박탈한 후 이에 대하여 진상 파악 및 피해 보상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위 집단학살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그 불법의 중대성에 비추어 현저히 불공평하여 허용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로서는 망인들의 사망에 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8. 11. 25.까지는 객관적으로 피고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위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위자료 액수
망인들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이 이 희생 사건으로 인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그 후 오랜 기간 계속되었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망인들의 사망 당시 일실수입 산정을 위한 통계소득 자료가 없어 망인들에 대한 일실수익을 산정할 수 없는 점, 이 사건은 변론종결일부터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위자료 원본을 산정할 때 참작할 필요가 있는 점(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21726 판결 등 참조), 한편 이 희생 사건은 한국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기에 발생한 점 등 이 사건 기록 및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들에 대하여는 각 200,000,000원, 망인들의 배우자들에 대하여는 100,000,000원, 부모, 자녀에 대하여는 90,000,000원으로 각 정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나. 상속관계
망인들의 위자료 및 망인들의 유족들에 대한 위자료에 관한 상속관계는 별지와 같다.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 1에게 462,352,939원, 원고 2, 3, 4에게 각 199,230,768원, 원고 5에게 55,288,460원, 원고 6, 7, 8, 9에게 각 22,115,384원, 원고 10, 11, 12, 13에게 각 143,749,999원, 원고 14, 15에게 각 123,333,333원 및 각 이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2. 7. 19.부터 이 사건 판결선고일인 2012. 8. 23.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