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미수][공1997.7.1.(37),1940]
[1] 시일이 경과할수록 공소사실에 부합되도록 번복되고 있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2] 살인미수죄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 위반을 이유로 파기한 사례
[1] 사람이 경험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흐려질 수는 있을지라도 오히려 처음보다 명료해진다는 것은 이례에 속하는 것임에도, 피해자의 진술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일이 경과할수록 사고현장의 상황에 부합하도록 진술내용이 번복되어 왔다면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 검찰 및 제1심 법정에서의 피고인의 자백과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살인미수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채증법칙 위반을 이유로 파기한 사례.
[1] 형사소송법 제308조 [2] 형사소송법 제308조
피고인
피고인
변호사 이상도 외 2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의 각 상고이유를 함께 판단한다.
1. 공소사실과 제1심 및 원심의 판단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소속대 간부식당 취사병으로 근무하는 상병으로서,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피해자가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후임병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군기가 없고 건방진 행동을 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1996. 4. 30.(이하 일자의 기재에서 연도는 생략한다) 04:35경 간부식당 취사장에서 피해자가 화장실에 가면서 피고인에게 "휴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어 피고인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새끼야"라고 욕설을 하자 피해자가 "에이 씨"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피해자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나서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04:45경 간부식당 진열대에 보관되어 있는 과도(길이 22㎝, 칼날길이 11㎝) 1개를 전투복 하의 우측 건빵주머니에 휴대하고 간부식당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가 그 곳에 숨어 있는 피해자에게 "야, 이 새끼야, 불 켜, 너 거기 있는 줄 알아"라고 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보일러실의 불을 켜게 한 후, 피해자에게 다가가서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는데 휴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냐, 왜 올라오지 않고 여기 짱박혀 있어, 개새끼야"라고 욕을 하고, 이에 피해자가 "에이 씨,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대꾸하자, 건빵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어 우측 손에 든 후 피해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하며 피해자의 얼굴 등을 향하여 과도를 마구 휘둘러 피해자의 우측 머리, 손 등에 상처를 입게 하고, 피해자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보일러실 안쪽으로 도망가자, 쫓아가서 과도로 피해자의 배 부분을 12회 찔러 쓰러뜨리고 보일러실 바닥에 엎어놓은 후, 피해자가 자살한 것처럼 가장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의 좌측 손목 안쪽 부분을 10여 회, 우측 손목 안쪽 부분을 약 2회 그어 피해자에게 약 3개월간의 치료를 요하는 위장파열, 좌측 전완부 요골동맥 및 척골동맥 파열, 우측 전완부 요골동맥 및 요골신경 파열 등의 상해를 가하여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 날 05:00경 이병 전중천 외 1명이 피해자를 발견, 후송조치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제1심은 위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살해를 결의한 과정에 관하여, 처음에는 피해자를 혼내주기 위하여 과도를 휴대하고 보일러실로 내려갔으나 피해자가 대꾸를 하는 것에 격분하여 살해를 결의한 것으로 고친 것 외에는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하였고, 원심도 그 판시와 같이 제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 하여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
2. 이 법원의 판단
그러나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아래에서 기록에 나타난 객관적인 상황과 피고인이 범인으로 지목되기에 이른 경위 및 원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함에 있어 채택한 증거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범행현장 등의 상황
피해자는 간부식당 지하 보일러실에서 엎어진 채 신음중인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그 부근에서 과도(증 제1호)와 피해자의 손목시계(증 제3호), 안경과 배수펌프의 전선 및 플러그(증 제2호)가 잘린 채 발견되었다.
위 보일러실은 간부식당 건물의 북쪽에 면하여 있으며, 간부식당의 서쪽에는 취사장이 붙어 있고, 간부식당 내부에는 무대로 사용되는 단상이 있는데, 당시에는 사단 기동훈련으로 취사작업을 하는 인원이 많았던 관계로 위 무대는 병사들의 취침장소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무대 위에서 과도가 들어 있던 상자(증 제4호)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좌측 손목 부분에 요골동맥 및 척골동맥 파열, 요골신경 및 척골신경 파열, 다발성 굴곡건 파열상, 우측 손목 부분에 요골동맥 및 요골신경 파열, 다발성 굴곡건 파열상, 복부에 10여 곳의 자상 및 우측 머리 부분 등에 상해를 입고, 사단 의무대와 춘천병원 및 청평병원을 거쳐 그 날 10:20경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하여 수술을 받았다.
(2) 피고인이 범인으로 지목된 경위
군사법경찰은 사건현장의 상황과 피해자의 상해정도로 보아 피해자에 대하여 누군가가 가해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취사반원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계속하던 중, 5. 5. 10:30경 피고인이 5. 3. 19:00경 세탁을 하기 위하여 대야에 전투복 상하의(증 제5호)와 흰색 티셔츠(증 제6호)를 물에 담가 세제를 풀어둔 것을 발견하고 그 의복에서 혈흔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하여 이를 증거물로 압수하고, 피해자가 발견되던 당시 피고인이 흰색 티셔츠를 입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확보하여, 피고인이 전투복을 입고 범행을 한 다음 흰색 티셔츠로 바꾸어 입은 것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3) 증거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의 자백진술
① 피고인의 자백의 경위
피고인은 군사법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5. 5. 범행을 인정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였으나, 5. 6. 14:00 진술조서 작성시에는 범행을 부인하였으며, 그 날 20:20 이후 제1, 2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시에는 다시 자백을 하였다. 그러다가 5. 14. 이루어진 현장검증시에는 범행을 부인하였으며, 5. 21. 국군수도병원에서 이루어진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시에는 처음에 결백을 주장하다가 대질한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범행을 다시 자백하였고, 5. 22.에 이루어진 현장검증에서는 자백진술에 따라 범행을 재연하였다. 피고인이 군검찰에 송치된 다음 군검찰에서의 신문과 제1심의 재판과정에서는 범행을 자백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원심에 이르러 범행을 다시 부인하고, 피고인이 군사법경찰에서는 수사관으로부터 폭행과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받아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범행을 자백하였던 것이고, 피고인이 같은 장소에 그대로 구금된 상태에서 군검찰의 조사와 제1심 재판까지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범행을 인정하고 선처를 기대하기로 하여 제1심에서까지 자백하였던 것일 뿐, 피고인은 결코 범행을 한 바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자살을 결의하고 자해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을 조사한 군사법경찰 조사관들이 피고인에 대하여 자백을 강요하면서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고, 피고인은 군사법경찰의 조사를 받은 곳에서 구금된 상태로 군검찰의 조사와 제1심의 재판까지 받게 된 것으로 보이며, 거기에다가 피고인이 위와 같이 진술을 번복한 과정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이 허위의 자백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고 할 것이다.
② 피고인의 자백진술의 의문점
㈀ 피고인은 보일러실에서 과도를 휘두를 때 피해자가 배수펌프의 플러그를 뽑아 양손으로 잡고 얼굴 부분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전선이 과도에 잘라졌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잘라진 플러그 부분은 검게 타 있어서(수사기록 88쪽 참조) 그것이 전원에 연결된 상태로 손상을 당하여 합선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피해자가 플러그를 뽑아들고 공격을 막다가 잘라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공판기록 350쪽 참조), 피고인의 위 진술은 증거물의 객관적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
㈁ 피해자의 상처에 관하여, 우선 피고인은 피해자의 우측 머리 부분의 상처는 피고인이 휘두른 과도에 의하여 생긴 것이라고 진술하였으나, 군사법경찰관의 수사보고에 따르면 우측 머리 부분의 상처는 과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넘어지면서 모서리 부분에 부딪혀 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어서(수사기록 70쪽) 이 또한 사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보일러 배관에 몸을 기대고 앉아 좌측 손으로 피가 흐르는 우측손을 감싸고 있는 상태에서 과도로 복부를 12회 찔렀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의 복부 상처는 칼날을 수평으로 한 상태로 거의 나란하게 나 있으며(공판기록 294쪽 참조), 드러난 복부의 11개 자상 중 5곳은 복벽을 관통하여 4곳은 위(위)천공이 되고, 그 중 1곳은 위 뒷벽까지 깊숙이 들어갔으며, 위천공을 낸 상처는 깊이가 10㎝ 가량 된다는 것이고(공판기록 284쪽), 기록상 피해자의 손이나 팔, 기타 복부에 인접한 부분에 복부 상해의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드러난 바는 없으며, 피해자가 입고 있던 전투복 상의도 손상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상고 후에 제출된 최환준, 이명준의 각 진술서에 의하면 전투복에 칼자국이 없었다는 것이고, 피해자를 치료한 군의관 김대한, 전투복을 가위로 잘라 낸 정준모의 진술도 피해자의 전투복 상의의 상태는 뚜렷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사기록 359, 364쪽). 위의 사실에 의하여 볼 때, 첫째 설사 피해자가 선임병인 피고인의 가해행위에 대하여 저항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복부를 공격당함에 있어서는 상체를 구부리는 등 최소한의 방어자세는 취하였을 것으로 여겨짐에도, 피고인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아니하고 앉아 있는 피해자의 복부를 정확히 겨냥하여 12회나 깊숙이 찌를 수 있다고는 경험칙상 수긍하기 어렵고, 둘째 피고인이 가해를 한 것이라면 피해자가 전투복과 내의를 착용한 상태에서 과도로 찔렀을 터이므로 피해자의 전투복 상의에 상당한 손상이 있었을 것임에도 피해자를 구호한 병사들이나 군의관들이 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끝으로 피해자가 저항이나 방어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해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 있는 상태의 피고인이 앉아 있는 피해자의 복부를 찌른 것이라면 칼날의 방향이 수평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수사기록 146쪽 사진 참조).
또한 피해자가 복부의 상해를 당한 상태로 쓰러졌다고 하더라도 전혀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짐에도, 피고인이 쓰러진 피해자를 엎어놓은 다음 좌우측 손을 차례로 들어 손목에 중대한 상해를 가할 때까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복부에 10여 회나 깊은 상해를 가한 다음 다시 양손목의 동맥을 절단하기까지 한 것이라면, 피고인의 의복과 신발 및 신체에는 상당한 분량의 혈흔이 묻게 될 것으로 보임에도, 그 범행의 흔적이 당시에 이미 기상하여 있던 많은 병사들에게 전혀 발각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전투복을 대야에 세제를 풀어 물에 담가 놓았다고 하여 거기에 인혈 여부의 판정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미미한 분량의 혈흔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게다가 피고인은 사건 다음날 점심식사 배식 후에야 기동훈련을 떠났고, 5. 3. 16:00경 훈련에서 돌아왔다는 것이므로, 훈련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이후 5. 5. 10:30경 압수당할 때까지 혈흔이 묻은 전투복 등을 세탁할 만한 시간의 여유는 충분하였고, 세탁기는 항상 사용이 가능하였다는 것임에도, 피고인이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관물함에 혈흔이 묻은 전투복을 넣어둔 채 훈련을 떠났다가 돌아온 다음 5. 3. 19:00경에야 전투복 등을 세제를 푼 물에 담가만 놓고 세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범인의 행동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당일 04:45부터 04:55 사이에 이 사건 범행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5. 6.자 범행을 부인하면서 당일의 행적을 자세히 진술하고 있는데, 위 범행시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행적 중에서, 피해자가 취사장에서 나간 이후 피고인은 취사장으로 들어와서 일을 하였고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고 왔다는 부분은 전중천, 김준호의 진술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고(수사기록 231, 257, 265쪽, 공판기록 230쪽), 피고인이 취사지원을 나온 잠자는 병사들을 깨웠다는 부분은 박경재의 진술에 의하여 확인되며(수사기록 324쪽), 박종우에게 전원철은 어제 야식준비를 했으니 좀 있다가 깨우라고 말하였다는 부분은 박종우의 진술에 의하여 사실로 인정할 수 있으므로(공판기록 263쪽),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위와 같은 피고인의 행적과 범행시간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범행을 하였다고 인정하기 위하여는 피고인에게 그 범행에 이를 만한 동기가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공소사실에 적시된 사실만으로써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할 만한 동기로서는 미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아도 소속부대에 배속된 지 4일에 불과한 피해자에 대하여 최선임병인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할 만한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
㈅ 결국 피고인의 자백진술은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위에서 지적한 점들은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가 스스로 자해를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된다 고 할 것이다.
(나) 피해자의 진술
① 진술의 번복경위
피해자는 사건 당일 05:35경 사단 응급실에 도착하여 군의관 정준모에게, 또 그 날 10:20경 국군 수도병원에 도착하여 군의관 이일철에게 수차례 피해자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가(수사기록 363쪽, 공판기록 287쪽), 5. 2.에 이르러 사실은 고참병에게 과도로 찔린 것인데 당시 고참병은 술이 약간 취한 상태였다고 말한 바 있고(공판기록 315쪽), 다시 5. 8.에는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당하였으나 가해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구분할 수 없어 가해자를 기억할 수가 없으며, 단지 평상시에 피해자를 나쁘게 대하던 상병 김준호가 의심이 가나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하였는데, 그 진술이 끝난 후 수사관이 당시까지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이 범인으로 규명되었다고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고(수사기록 205쪽), 그 이후 피해자는 5. 18. 진술시에 비로소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도, 피해자가 자살을 기도하여 스스로 우측 손목을 과도로 3회 긋고 벽면에 기대어 있을 때 피고인이 찾아와 칼을 뺏아들고 피해자의 좌측 손목을 마구 난자질을 하였으며 피해자가 피신하여 배관에 주저앉자 복부를 마구 찔렀다고 진술하였고, 5. 20. 수사관과 사고경위에 관하여 녹음을 한 다음 5. 21.부터는 피고인이 과도를 가져와 처음부터 범행을 한 것이라고 진술을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는 위와 같이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하여, 처음부터 피고인이 가해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소속부대에 복귀할 경우 피고인의 보복이 두려워 범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하고 있으나, 피해자가 진술과정에서 다른 선임병인 김준호에게 의심을 두는 진술을 하는가 하면, 그 이후에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도 범행의 경위에 대하여는 피해자가 자살을 실행하고 있던 중에 피고인이 범행을 하였다고 진술한 점 등으로 보아 피해자의 위 진술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람이 경험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흐려질 수는 있을지라도 오히려 처음보다 명료해진다는 것은 이례에 속하는 것임에도, 피해자의 진술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사관과 사고경위에 관하여 녹음을 한 5. 20. 이후에 사고현장의 상황에 부합하도록 진술내용이 번복되고 있어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대법원 1984. 11. 13. 선고 84도22 판결 참조).
② 진술내용의 의문점
피해자의 진술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피해자는 사건 당일 04:35경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에게 불만을 표한 후 화장실 쪽으로 가고 있는데 피고인이 약 5m 뒤에서 쫓아오고 있어서 식당 밖으로 나와 보일러실에 들어가 숨었고, 그로부터 1, 2분 지난 뒤에 피고인이 찾아왔다고 진술하였으나, 피고인은 자백진술에서도 피해자가 나간 후 취사장으로 돌아와 취사작업을 하다가 피해자를 찾아나섰다고 하였으며, 공소사실도 피해자가 나간 시각과 피고인이 따라나간 시각과의 사이에 10분간의 차를 두고 있어 피해자의 위 진술은 공소사실과도 맞지 아니한다.
또한 피해자는 5. 18. 진술시에는 당일 04:35경 보일러실로 내려가 전등 스위치를 켜고 배수펌프의 코드를 꽂은 다음 컵으로 바닥에 고인 물을 4회 붓고 2, 3분간 자살을 망설이다가 칼로 우측 손목을 3회 그었다고 진술하였으며(수사기록 209쪽), 피고인도 피해자와 대질하기 전의 자백진술에서는 보일러실에서 배수펌프 가동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있었다고 함으로써 피해자의 위 진술과 일치하고 있었는데(수사기록 160쪽, 177쪽), 피고인과 피해자가 대질한 5. 21. 이후에는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 모두가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을 피하여 보일러실로 들어가 불을 끈 채 철문을 닫고 숨어 있었는데 피고인이 쫓아가서 불을 켜라고 하였다고 내용이 변경되었으나(수사기록 189쪽, 192쪽, 217쪽), 원심 법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원래의 진술과 같이 보일러실 전등을 켠 채 배수펌프를 작동하고 바닥의 물을 퍼부은 사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므로(공판기록 196쪽), 오히려 피해자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보다는 원래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상해경위에 관하여도 피해자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우측 손을 잡아 손목 안쪽을 여러 번 긋고, 도망하는 피해자를 쫓아와 배 부분을 찔렀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그 상해의 경위는 공소사실과도 다르다.
위와 같이 내용이 번복된 이후의 피해자의 진술내용에는 범행의 중요 부분 또는 그 직전의 상황에 관하여 공소사실과 맞지 아니하거나 진술시마다 내용이 엇갈리고 있어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참고인들의 진술
① 전중천, 이규봉, 진호섭, 최환준, 이명준, 박종우, 전원철의 진술
이들의 진술은 피해자가 발견될 당시를 전후하여 피고인이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으로서, 피고인이 전투복 상하의를 입고 범행을 한 후 흰색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는 입증을 위하여 제출된 것이다.
피고인은 당초 사고 당일 피해자가 발견되어 후송되기까지 전투복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하였으나, 설사 위 진술이 사실과 달리 진술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압수된 전투복이 범행에 사용되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이상, 위 참고인들의 진술도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② 김대한, 정준모의 진술
이들은 피해자를 치료한 군의관들로서, 피해자의 상해의 정도로 볼 때 자해라고 보기는 어렵고 가해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자해에 의하여서는 그와 같은 상해를 입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며(공판기록 279쪽), 가령 왼손잡이인 피해자가 좌측 손으로 우측 손목과 복부를 차례로 자해한 다음 자살목적을 쉽게 이루지 못하자 다시 우측 손으로 좌측 손목을 자해하였을 가능성 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며, 기록상 피해자에게 자살을 기도할 만한 성격상의 장애가 있음이 엿보이기도 하므로, 이 사건을 타인에 의한 가해라고 속단할 수 없을 뿐더러, 위 진술이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라) 증거물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
① 과도(증 제1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압수된 과도에서 피해자의 혈액형과 동일한 O형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피고인이 위 과도를 범행에 사용하였다고 볼 단서는 찾아볼 수 없다.
② 전투복 상하의와 흰색 티셔츠(증 제5, 6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티셔츠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전투복 상의 우측 소매와 하의 좌측 주머니에서 혈흔반응이 나타났으나, 시료부족으로 그에 대한 인혈판정과 혈액형판정은 불능에 그쳤다.
그런데 피고인은 취사병으로서 평소 육류와 생선류를 취급하고 있고, 사고 전날과 당일에도 쇠고기, 닭고기 등을 재료로 한 식단이 있었다는 것이므로, 그 혈흔이 육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뿐더러, 더욱이 위 전투복에서 발견된 혈흔이 피해자의 것이라고 볼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③ 손목시계(증 제3호)
피해자의 손목시계가 손상된 상태로 현장에 떨어져 있었다는 점은 그것이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점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
④ 절단된 전선과 플러그(증 제4호)
위 피고인의 진술에 대한 판단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또한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으며, 공소사실에도 피고인의 행위로 전선이 잘라졌다는 취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⑤ 과도상자(증 제3호)
이는 당일 06:30경 군사법경찰의 실황조사 당시 간부식당 내부의 무대 위에서 발견된 것으로, 피고인의 자백 외에는 피고인이 과도를 꺼내고 위 과도상자를 떨어뜨렸다고 볼 자료가 없다.
오히려 피해자는 5. 18.자 진술에서, 당일 04:35경 과도 1개를 들고 나가 과도상자는 무대 앞쪽에 버렸다고 스스로 진술하였고(수사기록 209쪽), 그 장소는 과도상자가 발견된 지점과도 들어맞으므로, 위 진술과 같이 피해자가 과도를 꺼내어간 것으로 의심이 되기도 한다.
또한 공소사실에는 피해자가 04:35경 보일러실로 간 후 피고인이 04:45경 과도를 가지고 따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박석희는 그 날 04:20경 기상하여 피해자가 무대 앞에 서 있다가 떠난 후에 그 곳에서 과도상자를 발견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므로(수사기록 327쪽, 328쪽), 이에 따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아나서기 이전에 이미 과도상자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 되어 피고인이 위 과도상자를 떨어뜨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3. 결 론
결국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은 모두가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할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기록상 군사법경찰의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은 물론 피해자의 진술까지도 현장의 상황에 맞도록 진술내용을 맞추어 나간 것으로 의심되는 사정이 엿보이고, 나아가 피해자가 스스로 자해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의 증거들에 의하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이 있다 할 것이고, 이러한 위법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