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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_flag_2서울고등법원 2009. 1. 15. 선고 2007나101518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원고, 항소인 겸 피항소인

원고 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광장 담당변호사 박기완)

피고, 피항소인 겸 항소인

피고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정동국제 담당변호사 김주혁)

변론종결

2008. 10. 23.

주문

1. 제1심 판결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가. 피고는 원고에게 214,963,200원 및 이에 대하여 2004. 12. 22.부터 2009. 1. 15.까지는 연 6%의, 2009. 1. 16.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나.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총비용은 이를 3분하여 그 2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3. 제1의 가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미화 528,900달러 및 이에 대한 2004. 12. 22.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6%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항소취지

원고 : 제1심 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미화 428,900달러 및 이에 대한 2004. 12. 22.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6%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피고 : 제1심 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그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기초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1 내지 29호증, 을 3, 4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당사자의 지위

원고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비철금속, 합금철, 철강류 등을 세계 시장에서 구매하여 서부 유럽의 철강회사 등에 판매하는 업을 하는 회사, 피고는 중국, 러시아 등에서 비철금속, 합금철, 철강류 등의 수입하여 이를 다시 국내와 해외에 판매하는 업을 하는 회사이다.

나. 2004. 5. 31.자 원·피고의 거래

(1) 피고는 2004. 5. 27. 원고에게 페로몰리브덴 20M.T.(metric ton)을 몰리브덴 ㎏(㎏ Mo)당 미화 31.90달러(페로몰리브덴에 포함된 순수 몰리브덴 ㎏당 미화 31.90달러라는 의미이다)에 2004. 7.까지 공급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2) 이를 받은 원고는 같은 날 피고에게 몰리브덴 65% 이상의 페로몰리브덴을 몰리브덴 ㎏당 미화 31.90달러에 20M.T. 구매한다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구매확인서를 보냈다.

가격조건 : EXW 로테르담(로테르담에 있는 피고의 창고에서 원고에게 인도되는 출발지인도조건을 의미한다),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EU 관세 납부

이행기 : 2004. 7. 하반기

대금지급 : 조건부 양도 및 서류 일체의 제시 이후

분쟁 해결 : 모든 분쟁은 영국 런던에 있는 MMTA(Minor Metals Trade Association)의 규칙에 따른 중재에 의하여 해결된다.

매수인의 조건이 적용됨(Buyer's terms and conditions apply)

(3) 위 구매확인서를 받은 피고는 2004. 5. 31. 원고에게 수량, 가격, 이행기는 위 구매확인서와 동일하고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추가되어 있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여 송부하였다.

목적물 : 몰리브덴 60% 이상의 페로몰리브덴

수량 : 선적 수량과 액수는 10% 내 과부족이 허용됨

환적 : 허용, 분할 선적 : 불허

대금지급 : 상업송장, 품질·중량 확인서, 원산지증명의 각 사본을 팩스로 교부받은 후 전신환 지급

분쟁 해결 : 대한민국 서울의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로 해결

(4) 원고는 위와 같이 의시표시가 일치되지 아니한 부분에 대한 추가 논의 없이 2004. 8. 4. 페로몰리브덴 20M.T.를 로테르담 창고에서 수령하고 같은 날 그 대금을 피고에게 지급하였고 이로써 위 거래는 종결되었다.

다. 2004. 7. 7.자 원·피고의 거래

(1) 피고는 2004. 7. 7. 원고에게 페로몰리브덴 20M.T.을 몰리브덴 ㎏당 미화 34.50달러에 2004. 8. 하순 또는 9월 초순까지 공급하겠다는 청약을 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매매계약서를 송부하였다.

목적물 : 몰리브덴 60% 이상의 페로몰리브덴

수량 및 액수 : 선적 수량과 액수는 10% 내 과부족이 허용됨

환적 : 허용, 분할 선적 : 불허

대금지급 : 창고에서 발행된 조건부 인도서의 발행일로부터 3일 이내 100% 전신환 송금

분쟁 해결 : 대한민국 서울의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로 해결

(2) 이를 받은 원고는 같은 날 피고에게 같은 목적물을 제시된 조건과 동일한 가격과 이행기에 구매하겠다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구매확인서를 피고에게 보냈다.

수량 : 20M.T.

대금지급 : 조건부 양도 및 서류 일체의 제시 이후

분쟁 해결 : 모든 분쟁은 영국 런던에 있는 MMTA의 규칙에 따른 중재에 의하여 해결된다.

매수인의 조건이 적용됨

(3) 원고는 역시 의사표시 불일치 부분에 대한 추가 논의 없이 2004. 9. 2. 페로몰리브덴 20M.T.에 해당하는 대금을 피고에게 지급하고 그 무렵 로테르담 창고에서 위 페로몰리브덴을 수령함으로써 위 거래는 종결되었다.

라. 이 사건에서의 원·피고의 거래

(1) 피고는 2004. 8. 23. 원고에게 몰리브덴 함량 60% 이상의 페로몰리브덴 40M.T.을 몰리브덴 ㎏당 미화 41.50달러(로테르담 창고에서의 가격, 관세 납부, 조세 미납조건)에 공급하겠다는 청약을 하고 아래와 같은 내용의 매매계약서(계약 번호 : KTC-EX040823/FW-FEMO239)를 송부하였다.

목적물 : 몰리브덴 60% 이상, 규소(Si) 1.50% 이하, 구리(Cu) 0.50% 이하, 탄소(C) 0.50% 이하, 황(S) 0.10% 이하, 인(P) 0.05% 이하의 페로몰리브덴

수량 및 액수 : 선적 수량과 액수는 10% 내 과부족이 허용됨

이행기 : 2004. 10.

환적 : 허용, 분할 선적 : 불허

대금지급 : 창고에서 발행된 조건부 인도서의 발행일로부터 3일 이내 100% 전신환 송금

분쟁 해결 : 대한민국 서울의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로 해결

(2) 이를 받은 원고는 같은 날 피고에게 위와 같은 목적물을 구매하겠다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구매확인서를 피고에게 보냈다.

수량 : 40M.T., 가격 : 몰리브덴 ㎏당 미화 41.50달러

가격조건 : EXW 로테르담,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EU 관세 납부

이행기 : 2004. 10.

대금지급 : 조건부 양도 및 서류 일체의 제시 이후

분쟁 해결 : 모든 분쟁은 영국 런던에 있는 MMTA에서 MMTA가 UNCITRAL에 따라 제정한 규칙에 의하여 중재로 해결한다.

매수인의 조건이 적용됨.

(3) 피고는 2004. 10. 22. 원고에게 위 매매계약서의 계약 번호가 기재된 상업송장을 원고에게 송부하였는데 그 내용은 위에서 정한 것과 같은 함량의 페로몰리브덴 18M.T.을 미화 456,118.20달러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4) 원고는 2004. 11. 25. 로테르담에 있는 창고에서 위 페로몰리브덴 18M.T.을 인수하고 조건부 양도 확인서를 교부받았으며, 2004. 11. 26. 피고에게 대금 미화 446,022.68달러를 송금하였다. 송금액이 상업송장의 금액과 차이가 나는 것은 종전의 거래관계에서 원고가 피고로부터 받을 미화 10,095.52달러의 정산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5) 원고는 2004. 12. 3. 피고에게 위 계약과 관련하여 2차 선적분에 대하여 알려 달라고 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같은 날 원고에게 중국에서 공급되는 원료의 품질이 나쁜 등의 이유로 선적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는데 2004. 12. 말까지는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6) 피고의 대표이사는 2004. 12. 10. 원고에게 선적이 지연되어 미안하지만 몰리브덴 원자재 가격의 인상으로 공급에 어려움이 있으니, 나머지 물량은 당초의 가격대로 공급하고 추가로 한 대의 컨테이너분의 물량을 몰리브덴 ㎏당 미화 85달러에 구매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7) 원고는 2004. 12. 15. 피고에게 위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면서 나머지 물량을 2004. 12. 20.까지 로테르담 창고에서 인도하여 주고 추가 구입분을 몰리브덴 ㎏당 미화 75달러에 공급하여 달라고 하였다. 피고는 위 회신을 받은 당일 원고에게 현재 페로몰리브덴 가격이 미화 90달러 정도에 이르고 있으므로 피고의 위 2004. 12. 10자 제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다시 요청하였다.

(8) 그러나 원고는 피고의 위 제안을 거절하고 원고의 2004. 12. 15.자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당초의 계약에 따른 이행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9) 원고는 2004. 12. 17. 다시 피고에게 미이행된 20M.T.의 페로몰리브덴을 2004. 12. 20.까지 선적하고 이를 확인하여 줄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원고가 피고와의 계약에 근거하여 제3자와 사이에 체결한 판매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대체매매를 하여야 한다고 통지하였다.

(10) 피고는 2004. 12. 20. 원고에게 위 계약에 따른 잔여 20M.T.의 페로몰리브덴과 관련하여 거래처의 사업폐지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고 현재 몰리브덴 원자재의 가격이 급등한 사정도 있으므로, 몰리브덴 ㎏당 미화 90달러에 페로몰리브덴 1 컨테이너를 추가로 구매한다면 위 계약에 따른 나머지 20M.T.의 페로몰리브덴을 공급할 수 있다는 통지를 보냈다.

(11) 이에 원고는 2004. 12. 21. 피고에게, 피고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대체매매를 시행하겠다고 통지하였다.

(12) 원고는 2004. 12. 21.경 소외 회사로부터 몰리브덴 함량 65%인 페로몰리브덴 24M.T.을 몰리브덴 ㎏당 미화 84.50달러에 매수하였다.

(13) 원고는 2005. 1. 24. 피고에게, 피고와의 계약에서 정한 매매가와 소외 회사로부터 대체매수한 가격의 차이에 해당하는 돈 미화 528,900달러를 손해배상으로 지급하여 달라고 청구하였다.

마. 페로몰리브덴 가격의 상승

위 각 거래 무렵 몰리브덴 함량 60% 및 65 내지 70%의 페로몰리브덴 국제가격의 변화는 아래 표와 같다.

[페로몰리브덴 가격표(가격 단위는 미합중국 달러화)]

본문내 포함된 표
일자 몰리브덴 함량 60% 몰리브덴 함량 65-70%
최저가 최고가 최저가 최고가
2004. 4. 21. 31 33 38 41
2004. 5. 26. 24 27 32.5 34.5
2004. 7. 7. 32 36 40 44
2004. 8. 13. 38 41 46 48
2004. 10. 29. 56 59
2004. 11. 3. 56 59 70 72
2004. 12. 15. 71 74 88 91
2004. 12. 22. 72 75 90 93

2. 이 사건의 준거법

이 사건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한 다툼이므로 이 사건에 적용할 준거법에 관하여 살피건대, 원·피고 사이에 준거법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국제사법 제26조 제2항 제1호 에 의하여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양도인인 피고의 주된 사무소가 있는 대한민국의 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할 것이다.

3. 주장 및 판단

가. 당사자의 주장 요지

(1) 원고는, 피고가 2004. 12.까지 나머지 페로몰리브덴 20M.T.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를 믿고 프랑스 및 영국의 수요자에게 전매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여 놓았음에도 피고가 결국 위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바람에 위 수요자들과 체결한 매매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소외 회사와 고가의 매수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소외 회사와의 매수계약에서 정한 대금과 피고가 공급하기로 한 가격의 차액인 미화 528,900달러{20,000 × 43(84.50 - 41.50) × 61.50%}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이에 대하여 피고는, 위 1의 라항에서 본 원·피고의 거래는 서로 제시한 계약조건이 일치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페로몰리브덴 40M.T.을 판매한다는 계약이 성립하지 아니하였고, 다만 피고가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착오를 일으켜 일부인 18M.T.을 공급한 것이거나 또는 원고와의 장래 거래관계를 감안하여 호의적으로 일부 인도한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피고는 20M.T.의 페로몰르브덴을 추가로 원고에게 공급할 의무가 없으며,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대체구매하였다고 하는 몰리브덴 함량 65%의 페로몰리브덴과 당초 피고가 공급하기로 한 몰리브덴 함량 60%의 페로몰리브덴은 동일한 물품으로 볼 수 없으므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없고, 한편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배상하여야 할 손해액은 계약이행보증금 상당액인 매매대금의 2 내지 5% 정도의 금액이거나 또는 당초의 이행기인 2004. 10.의 페로몰리브덴 가격을 적용한 금액으로 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이 사건 계약의 성립 여부

(가) 위 1의 라항에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가 송부한 2004. 8. 23.자 매매계약서와 원고가 송부한 같은 날 구매확인서는 매매목적물, 수량, 가격 및 이행기(다만 원고의 구매확인서에는 10% 내에서 수량과 액수의 과부족이 허용된다는 기재는 없다)에 있어서는 서로의 의사가 합치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조건 즉 대금지급 조건 및 시기, 분쟁의 해결방법, 환적 및 분할 선적의 허용 여부에 대한 합의가 없거나 서로 상이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나) 원칙적으로 계약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당사자의 서로 대립하는 수개의 의사표시의 객관적 합치가 필요하고 객관적 합치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나타나 있는 사항에 관하여는 모두 일치하고 있어야 하는 한편, 계약 내용의 '중요한 점' 및 계약의 객관적 요소는 아니더라도 특히 당사자가 그것에 중대한 의의를 두고 계약성립의 요건으로 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이에 관하여 합치가 있어야 계약이 적법·유효하게 성립한다고 할 것이나, 한편 계약 내용의 중요한 점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있고 그 합치된 사항만으로도 계약 성립에 법률적 장애가 없는 이상 사소한 사항 또는 당사자가 특히 중대한 의의를 두고 있지 아니한 사항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없더라도 계약 전후의 사정에 비추어 보아 당사자가 서로 합치된 점만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서로 합치된 점만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이 사건에서 보건대, 비록 대금지급 조건 및 시기, 분쟁의 해결방법, 환적 및 분할 선적의 허용 여부에 대한 의사의 합치는 없었으나 그러한 사항은 당사자 사이의 거래관행이나 위와 같은 계약에 적용되는 법률의 규정 등으로 보충할 수 있는 것이고, 위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매매목적물, 수량, 가격 및 이행기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점, 비록 이행기를 도과하기는 하였으나 피고가 위 계약에 기한 이행이라는 점을 표시하고 18M.T.을 원고에게 제공하고 원고가 이의 없이 이를 수령하고 그에 해당하는 대금을 지급한 점, 원고와 피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거래 이전에도 2차례에 걸쳐서 페로몰리브덴을 거래하면서 수량, 가격 및 이행기 등만 합의하고 나머지 점에 대하여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페로몰리브덴을 공급하고 그 대금을 지급한 점, 원·피고는 위 의사표시로 인한 약정이 체결되었음을 전제로 수차례에 걸쳐 문서를 주고 받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2004. 8. 23.자 매매계약서 및 구매확인서의 교환에 의하여 원·피고 사이에 유효한 매매계약(이하 이를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이 성립되었다고 할 것이다[피고는 원고의 구매확인서에 매수인의 조건이 적용된다(Buyer's terms and conditions apply)고 기재되어 있고 이는 원고의 정형거래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것임에도 원고가 피고에게 이러한 정형거래조건을 제시한 바도 없고 피고가 이에 동의한 바도 없으므로, 이 사건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위 문구가 지적하는 원고의 정형거래조건이 따로 있다고 볼 아무런 증거도 없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은 당사자의 의사가 합치된 한도에서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라)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2004. 8. 23.자 매매계약서는 분할선적을 불허하고 있는데, 피고가 18M.T.을 먼저 인도하고 원고가 이의 없이 이를 수령한 이상 위 분할선적 불허조건에 의하여 이 사건 계약은 종료되었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앞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분할선적 불허조건이 이 사건 계약에 유효하게 편입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이 사건 계약의 내용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분할선적의 불허라는 조건은 주로 매수인의 이익 보호를 위하여 삽입되는 조건으로 이에 반한 이행의 제공을 거절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위 조건에 반한 분할선적을 한 매도인에게 위 조건이 있음을 이유로 나머지 이행을 거절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이 사건 계약의 성격

(가) 위에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페로몰리브덴은 2004. 5. 이후 계속하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던바, 이와 같이 가격변동이 심한 상태에 있는 원자재가 이 사건 계약의 목적물이고, 매수인인 원고는 원자재의 국제 중개무역을 하는 회사로 전매를 위하여 위 페로몰리브덴을 구매하게 된 것이며, 피고 역시 중국으로부터 페로몰리브덴을 수입하여 원고에게 전매하여야 하는 것을 전제로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매수인인 원고는 수입원자재의 재고량, 수요 및 공급상황, 국제 및 국내의 가격동향, 선적지로부터 양륙지까지의 물품의 항해일수, 원자재 인수시의 예상 가격 등을 감안하여 가장 유리한 시점에 물품을 인수할 수 있도록 매도인과 교섭하여 가격과 이행기를 정하는 것이고 반대로 매도인인 피고 역시 공급할 원자재의 재고량, 원산지에서의 공급상황, 국제 및 국내의 가격동향 등을 살펴서 매도가격과 인도일을 정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계약에 있어서는 이행기의 결정이 가격의 결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행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서는 어느 일방이 큰 손해를 볼 우려가 있으며 원·피고 모두 이러한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은 그 성질상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약정된 이행기 내에 이행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법 제68조 가 말하는 확정기매매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가 위 페로몰리브덴을 약정된 이행기 내인 2004. 10. 말까지 인도하지 않았고, 원고가 즉시 그 이행을 청구하지 아니한 이상, 원고에게는 위 상품을 인수할 의무는 없고, 이 사건 계약은 그로써 해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다만 피고가 위 이행기 이후인 2004. 11. 25. 이 사건 계약의 일부 이행이라는 취지로 18M.T.의 페로몰리브덴을 인도하고 원고가 이를 이의 없이 수령하였으며, 2004. 12.까지 원·피고 사이에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나머지 수량의 이행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당사자 쌍방이 이 사건 계약을 확정기매매가 아닌 계약으로 인식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이는 해제로 인하여 법률상의 이행의무 또는 수령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호의적으로 이루어진 이행과 수령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

(3) 피고의 손해배상책임과 손해배상의 범위

(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은 피고의 귀책사유로 이행기가 도과한 때 해제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전보배상으로 위 해제시의 몰리브덴 함량 60%인 페로몰리브덴의 시가에 상당하는 금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에 따라 피고가 배상할 손해액을 산정하여 보면 미화 192,000달러[= 20,000㎏ × 미화 16달러(2004. 10. 말의 최고가와 최저가의 평균가 미화 57.50달러 - 이 사건 계약의 단가 미화 41.50달러) ×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몰리브덴 함량 60%]가 되고,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394조 는 다른 의사표시가 없는 한 금전으로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법조 소정의 금전이라 함은 우리나라의 통화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채권은 당사자가 외국통화로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액이 외국통화로 지정된 외화채권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3다12083 판결 등), 위 미화를 이 사건 계약이 해지될 무렵의 미화 1달러에 대한 원화의 매매기준율인 1119.6원(공지의 사실)로 환산한 214,963,200원이 피고가 지급할 손해배상액이 된다.

(나) 원고는 피고의 채무불이행으로 소외 회사로부터 대체물을 몰리브덴 ㎏당 미화 84.50달러에 매수하였으므로 이 가격과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가격의 차액이 손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선 몰리브덴 함량 60%의 페로몰리브덴과 그 함량이 65%에 이르는 페로몰리브덴이 함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동일한 품목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관하여 갑 30, 35호증, 갑 36호증의 1 내지 4의 각 기재만으로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앞서 본 몰리브덴 함량 60%의 페로몰리브덴과 함량 65 내지 70%의 페로몰리브덴의 가격차에 비추어 보면, 함량 65%의 페로몰리브덴이 더 고급 원자재라고 보여서 원고가 주장하는 대체매매의 가격차를 원고의 손해라고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서 본 이 사건 계약의 성격상 원고의 손해는 이행기가 도과한 때의 몰리브덴 함량 60%인 페로몰리브덴의 가격에 의하여 산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다) 피고는 페로몰리브덴과 같은 원자재의 국제거래에 있어서는 가격등락이 심한 것을 고려하여 매매대금의 2 내지 5%에 해당하는 계약이행보증금(Performance Bond)을 정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계약에서 명시적으로 이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시 계약이행보증금 조항이 명시되어 있는 것과 동일하게 매매대금의 2 내지 5%만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하는 것이 관행이므로, 피고의 책임도 위와 같은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을 2호증의 1 내지 5의 각 기재만으로 위와 같은 계약이행보증금 조항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도 그 범위 내에서의 손해만 배상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위 주장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라) 피고는 이 사건 계약에는 수량 10%의 부족을 허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으므로 18M.T.을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위 수량과 금액의 10% 과부족을 허용하는 조항이 이 사건 계약의 내용에 편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가 목적물을 공급하는 경우 위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는 계약 위반이 아닌 것으로 인정되고 원고가 이를 이유로 불이행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이지 이를 이 사건과 같이 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에 적용할 손해배상의 최소한도를 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마) 피고는 또 이 사건의 이행기는 2004. 10.이라고만 정해져 있었으므로 손해산정의 기준이 되는 가격을 2004. 10. 전체의 평균가격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행기를 2004. 10.이라고만 정한 경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2004. 10. 말까지만 이행하면 이행기를 준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고, 따라서 채무불이행의 기준이 되는 이행기는 2004. 10.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바) 마지막으로 피고는 페로몰리브덴의 국제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함에 따라 피고가 이 사건 계약을 불이행한 것이고, 그와 같은 가격상승은 피고도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이는 특별손해에 해당하거나 또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손해배상액을 감액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계약체결 당시에 비하여 해제 당시의 목적물의 시가가 앙등하였다고 하더라도 전보배상책임의 범위는 계약 해제 당시의 목적물의 시가에 의하여야 하고 이를 특별손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 1993. 5. 27. 선고 92다20163 판결 참조). 또한 피고와 같은 중개무역상은 항상 원자재 가격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추어 가격을 결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고 가격의 변화는 원자재 시장에서 일상적인 일이라는 점과 몰리브덴 함량 60%의 페로몰리브덴 가격이 이 사건 계약 체결 무렵 미화 38달러(최저가 기준, 이하 같다)에서 이행기 무렵에 미화 56달러로 상승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47% 정도 상승한 것이라는 점 등을 함께 살펴보면, 손해배상액을 감액할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4)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214,963,200원 및 이에 대하여 해제일 이후로 원고가 구하는 2004. 12. 22.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부와 범위에 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당심 판결 선고일인 2009. 1. 15.까지는 상법이 정한 연 6%의, 2009. 1. 16.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위와 같이 변경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최재형(재판장) 문정일 임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