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2019노616 명예훼손
A
피고인
김상문(기소), 이율희(공판)
변호사 이승재
2019. 8. 23.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1.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가. 피고인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사실이 없다. 즉 피해자의 모친이 사망한 후 피해자가 피고인을 찾아와 '피고인이 처방한 약을 복용하여 모친이 사망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 점, 그 후 피해자가 피고인의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한 점, 피해자가 피고인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은 점, 피고인은 피해자가 요구하였던 약제와 성분이 동일한 약제를 처방하였으나 피해자가 막무가내로 어머니의 사망을 책임지라고 요구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피고인의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한 것이다.
나. 피해자는 피고인의 병원 앞에서 '피고인의 잘못된 처방으로 피해자의 모친이 사망하였다'는 허위 내용을 적시하며 시위를 하였는바, 피고인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벽보 등을 부착한 것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가. 허위사실을 적시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의 사실 내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원심 판시 범죄사실 기재와 같이 벽보 등을 부착한 것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해당한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1) 피고인은 경찰 피의자신문 당시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피해자가 실력행사를 한다고 하여 나한테서 절대 돈을 받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거나, '피해자는 돈의 금액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돈을 얼마를 원하느냐."라고 묻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어쨌든 이 사태를 해결하라는 말을 하였다'라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명시적으로 금원을 요구한 사실은 없고, 단순히 피해자가 '실력행사를 하겠다'거나 '이 사태를 해결하라'고 말한 것을 피고인이 금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2)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항의를 한 이유는 와르파린이 아닌 와파린을 처방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요청한 것보다 과다한 용량의 약을 처방하였기 때문이었다(증거기록 제1권 제35쪽 이하 참조). 비록 그러한 처방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모친이 사망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모친이 위 약을 복용한 후 이상증세(와파린의 과다투여로 인한 증상과 유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증거기록 제1권 제20쪽, 제2권 제20쪽 참조)를 보이다 약 3개월이 지난 후 사망한 점, 피고인 스스로도 처방 실수를 인정하였던 점(증거기록 제2권 제92쪽)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실력행사를 하겠다거나 이 사태를 해결하라고 말하는 등 다소 과격한 언행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감정적인 동기에 비롯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피고인이 위와 같은 근거만으로 피해자가 금전을 요구한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3) 피해자의 모친은 사망 당시 90세의 노령으로, 피해자가 피고인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더라도 인용되는 손해배상액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반면, 그 소송의 난이도나 비용은 상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상대로 민사소송 등의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방에 문제가 없음을 알면서 위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고 할 수 없다.
4) 설령 피해자가 추후 금원을 요구할 듯한 태도를 취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병원에 금품을 요구하며 공갈 협박을 일삼고 있다'는 것은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계속하여 피고인에게 금원을 요구하였다'는 취지이므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
나. 정당행위 해당여부에 대한 판단
1) 형법 제310조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한하며,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행위에는 그 적용이 없다(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도234 판결, 대법원 2003. 5. 16. 선고 2003도601, 2003감도9 판결 등).
어떠한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정당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권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2) 살피건대, 피고인이 위와 같이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이상 형법 제310조는 적용될 수 없다. 나아가,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의 사실 내지 사정들, 즉 ① 피고인은 피해자가 요구한 용량에 비하여 과다한 용량의 약제를 처방하였다는 점은 전혀 적시하지 않은 채 피해자를 '공갈범'이라고 지칭하며 비난한 점, ② 피고인이 다른 방법으로 피해자와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피고인이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벽보를 부착하게 되었더라도, 이는 피해자의 모친의 사망과 자신의 처방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밝히는 방법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점, ④ 그럼에도 피고인은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홍창우
판사 강민수
판사 도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