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의)][집46(1)민,59;공1998.3.15.(54),702]
[1]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가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내용 및 그 위반 여부의 판단 기준
[2] 수혈받은 환자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하여 대한적십자사의 과실을 인정한 사례
[3] 의료행위에 있어 의사의 설명의무의 내용, 대상 및 위반의 효과
[4] 수술중의 출혈로 수술 후 수혈하는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에 대한 설명, 동의와는 별개로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위험 등을 설명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적극)
[5] 공동불법행위의 성립 요건
[6] 대한적십자사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에이즈 감염행위와 의사의 수혈시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행위가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1] 혈액관리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수혈 또는 혈액제제의 제조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조작·보존 또는 공급하는 업무는 성질상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혈자나 혈액제제의 이용자 등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만일 그 업무가 적정하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 보건에 광범위하고도 중대한 위해를 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와 같은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는 수혈 또는 혈액제제의 제조를 위한 혈액의 순결을 보호하고 혈액 관리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고, 이러한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혈액을 채혈하는 시기에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고의 의학기술 수준에 맞추어 병원균 감염 여부를 검사하여 하자를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에이즈 감염 위험군으로부터의 헌혈을 배제하는 등 위험성에 대한 예견의무와 결과회피의무이며, 이러한 주의의무의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문제로 된 행위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그 행위로부터 생기는 결과 발생의 가능성의 정도, 피침해법익의 중대성, 결과회피의무를 부담함에 의해서 희생되는 이익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2] 현재의 의학적 수준과 경제적 사정 및 혈액 공급의 필요성 측면에서 항체 미형성 기간 중에 있는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한 혈액은 에이즈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감염 혈액임을 밝혀내지 못하게 되어 이러한 혈액의 공급을 배제할 적절한 방법이 없으므로 위와 같은 경로로 인한 수혈에 따른 에이즈 감염의 위험에 대하여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 할 것인데,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와 그로 인한 피침해이익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대한적십자사로서는 사전에 동성연애자나 성생활이 문란한 자 등 에이즈 감염 위험군으로부터의 헌혈이 배제될 수 있도록 헌혈의 대상을 비교적 건강한 혈액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집단으로 한정하고, 헌혈자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위험이 높은 자인지를 판별하여 그러한 자에 대하여는 스스로 헌혈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그의 직업과 생활관계,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하고 필요한 설명과 문진을 하는 등 가두 헌혈의 대상이나 방법을 개선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감염 위험군을 헌혈 대상에서 제외하기는 커녕, 오히려 헌혈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의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고 홍보함으로써 에이즈 감염 위험자들이 헌혈을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기회로 이용하도록 조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로부터 헌혈받을 당시 헌혈자의 직업이나 생활관계 등에 대하여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아니하고 에이즈 감염 여부에 대하여는 설문사항에 포함시키지도 아니하였으며 전혀 문진을 하지 아니하여 동성연애자인 위 감염자의 헌혈을 무방비 상태에서 허용함으로써 감염자가 헌혈한 혈액을 수혈받은 피해자로 하여금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게 하였다는 이유로, 대한적십자사에게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본 사례.
[3] 의사는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당해 환자에 대하여 사전에 질병의 증상, 치료 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예후 및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수술이나 투약에 응할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고, 이와 같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의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면제될 수 없으며, 위험과 부작용 등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러한 설명을 하지 아니한 채 환자의 승낙 없이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설령 의사에게 치료상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환자의 승낙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가 된다.
[4]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은 수혈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고, 그로 인하여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방법이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서 그 피해는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데다가 의학적으로 문외한인 환자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의외의 것이므로, 위험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설명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하고, 수술 후 수술중의 출혈로 인하여 수혈하는 경우에는 수혈로 인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위험은 당해 수술과는 별개의 수혈 그 자체에 특유한 위험으로서 당해 수술 자체로 인한 위험 못지 아니하게 중대한 것이므로 의사는 환자에게 그 수술에 대한 설명, 동의와는 별개로 수혈로 인한 위험 등을 설명하여야 한다.
[5] 수인이 공동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민법 제760조 제1항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각 행위가 독립하여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6]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환자가 수혈받음으로써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을 배제할 의무 및 그와 같은 결과를 회피할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은 환자로 하여금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건강 침해를 입게 한 대한적십자사의 과실 및 위법행위는 신체상해 자체에 대한 것인 데 비하여, 수혈로 인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위험 등의 설명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의사들의 과실 및 위법행위는 신체상해의 결과 발생 여부를 묻지 아니하는 수혈 여부와 수혈 혈액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격권의 침해에 대한 것이므로, 대한적십자사와 의사의 양 행위가 경합하여 단일한 결과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고 각 행위의 결과 발생을 구별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경우에는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1][2]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47803 판결(공1995하, 3269)
[3] 대법원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공1995상, 885) 대법원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공1996상, 1526) [4] 대법원 1995. 4. 25. 선고 94다27151 판결(공1995상, 1939) [5] 대법원 1989. 5. 23. 선고 87다카2723 판결(공1989, 974) 대법원 1997. 8. 29. 선고 96다46903 판결(공1997하, 2851)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18448 판결(공1998상, 54)원고 1 외 5인
대한적십자사 외 1인 (소송대리인 서초법무법인 담당변호사 박승서 외 5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1. 피고 대한적십자사의 상고이유를 본다.
가. 피고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채혈, 공급시의 주의의무
혈액관리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수혈 또는 혈액제제의 제조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조작·보존 또는 공급하는 업무는 성질상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혈자나 혈액제제의 이용자 등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만일 그 업무가 적정하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 보건에 광범위하고도 중대한 위해를 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와 같은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피고 대한적십자사는 수혈 또는 혈액제제의 제조를 위한 혈액의 순결을 보호하고 혈액 관리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다 할 것이고, 이러한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혈액을 채혈하는 시기에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고의 의학기술 수준에 맞추어 병원균 감염 여부를 검사하여 하자를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에이즈 감염 위험군으로부터의 헌혈을 배제하는 등 위험성에 대한 예견의무와 결과회피의무라고 할 것이며, 이러한 주의의무의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문제로 된 행위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그 행위로부터 생기는 결과 발생의 가능성의 정도, 피침해법익의 중대성, 결과회피의무를 부담함에 의해서 희생되는 이익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당원 1995. 8. 25. 선고 94다47803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의 요지
원심이 거시 증거에 의하여 인정한 이 사건 사실관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원고 1는 1989. 5. 16. 방광요도류와 자궁탈출증의 치료를 위하여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 운영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구로병원에 입원하여 같은 달 16. 질식자궁적출술을 시술받았는데, 위 시술 과정에서의 출혈로 인하여 같은 해 5. 20. 실시된 혈액검사 결과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8.6g/dl,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25.8%로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서 위 원고는 병원측에 어지럼증을 호소하게 되었고, 이에 위 병원측은 피고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공급받은 혈액인 농축적혈구 2단위(전혈 640cc에 해당하는 양, 혈액관리번호 11587, 47222)에 대하여 위 원고의 혈액과의 교차반응검사를 실시한 후 같은 날 위 원고에게 이를 수혈하였다. 그런데 위 원고에게 수혈된 혈액 중 혈액관리번호 47222호의 혈액은 혈액관리법 제4조 제2항 제2호의 규정에 따라 혈액원을 개설하여 그 업무를 수행하는 피고 대한적십자사 산하 서울특별시 남부적십자혈액원이 같은 해 5. 15. 서울 관악구 신림동 전철역 앞에서 행하여진 가두 헌혈행사 중 소외 1(남, 1965. 1. 13.생)로부터 헌혈받아, 그 혈액의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약칭 HIV, 이하 에이즈 바이러스라고 한다) 감염 여부를 효소면역측정법이라는 방법으로 검사하여 이상이 없는 것(음성)으로 판정되자 이를 위 병원측에 공급한 것인데, 그 혈액은 위 효소면역측정법에 의한 판정 결과와는 달리 실제로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즉, 위음성(위음성)이었음}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위 소외 1은 위의 헌혈에 이어 같은 해 11. 2.에도 가두 헌혈을 하였는바, 피고 대한적십자사는 그 혈액에 대하여 효소면역측정법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한 결과 위 소외 1이 감염자(양성)로 판명되자, 동인이 과거에 헌혈한 경력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위와 같이 같은 해 5. 15.에도 헌혈하였는데 그 혈액 중 적혈구 농축액이 다음날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산하 구로병원으로 출고되어 위 원고에게 수혈된 사실을 확인하고 위 병원에 그 사실을 통보하였으며, 위 병원은 추가적인 혈액검사를 통하여 같은 해 12. 15. 위 원고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관계 기관에 통보하였으며, 위 원고는 같은 달 16.경 대한민국 산하 보건사회부(현재의 보건복지부의 전신)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자신이 위 수혈에 의하여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을 통보받았다.
(2)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은 후천적으로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하여 야기되는 질병으로서 이러한 에이즈 바이러스는 1981. 6.경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래 1985년경부터는 의학계 일반에서 새로운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그 후 에이즈는 급속도로 전세계에 전파되어 1992년 현재 전세계 에이즈감염자는 500,000명을 초과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는 면역의 기능을 상실하고 면역결핍에 의한 기회감염으로 인해서 모든 질병에 감염의 기회를 주게 되며, 감기에라도 걸리게 되면 감기에서 폐렴, 만성기관지염, 피부병, 만성설사 등으로 병세가 쉽게 발전하고 그에 대한 뚜렷한 치료 방법도 없어, 결국 에이즈는 발병하기만 하면 예후가 극히 불량하고 치유가 불가능하여 에이즈환자는 암, 폐렴, 식도염 등에 의하여 거의 예외 없이 수년 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경로로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과의 성적인 접촉, 감염된 혈액의 수혈이나 감염 혈액으로 제조된 혈액제제(혈액제제)의 사용, 감염된 사람과의 주사바늘 및 주사기의 공동 사용, 감염된 산모로부터 임신 중 또는 출산시 태아에게의 전파 혹은 모유에 의한 감염, 장기이식 혹은 인공적 임신을 위한 감염자로부터의 장기, 조직 및 정액의 제공에 따른 감염 등이 현재까지 밝혀져 있다.
(3) 현재까지 개발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의 검사방법은 크게 에이즈 바이러스 항원(항원, antigen) 자체를 검사하는 항원검사법과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항체, antibody)를 검사하는 항체검사법으로 대별된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로 인체 내에 항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약 3 내지 12주 정도의 항체 미형성 기간(window period)이 경과한 후에 항체가 형성되며 감염자의 95% 이상에서는 5개월 내에 항체가 형성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년이 지나도 항체가 형성되지 아니하기도 하는 것으로 의학계에 보고되어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항체검사법보다는 항원검사법이 항체 미형성 기간의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더 정확하다고 보이나, 항원검사법은 검사장비가 비싸고 검사소요기간이 비교적 길며 특수한 기술을 요하여 집단적 혈액검사방법으로는 적합하지 아니하고, 또한 에이즈 바이러스 항원은 감염 초기에 출현했다가 항체가 생기면서 일시적으로 소실되는 경향이 있어 이론적으로 항원 자체를 검사하더라도 에이즈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정확도도 아직 담보되지 아니하여 전세계적으로 연구용 내지 실험용으로 일부 사용되고 있을 뿐 집단적인 헌혈 혈액에 대한 검사방법으로 항원검사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아직 없으며, 만약 우리 나라에서 집단적인 헌혈 혈액에 대한 검사방법으로 항원검사법을 채택·시행하게 된다면 기술적, 시간적, 경제적인 제약으로 인하여 수요자에 대한 혈액 공급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 한편, 항체검사법으로는 효소면역측정법(ELISA, enzyme linked immunosorbent assay)과 웨스턴 블롯 검사법(WBT, western blot test)이 가장 유용하고 대표적인 방법인데, 효소면역측정법은 자동화된 장비를 사용할 수 있고 결과의 판독이 용이한 장점이 있으며 민감도(에이즈항체에 대한 반응 정도)가 거의 100%에 이르러 에이즈항체를 보유한 혈액을 거의 놓치지 아니하는 반면, 특이도(위 검사법에 의한 전체 양성반응 중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에 대한 반응의 정도)는 비교적 낮아서 우리 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집단적인 혈액에 대한 제1차적 선별적인 검사방법(screening test)으로 널리 사용되고, 웨스턴 블롯 검사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민감도는 낮으나 특이도가 높은 장점이 있어 효소면역측정법에서 양성으로 나타난 혈액에 대한 제2차적인 확인적 검사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 항체검사법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항체가 아직 형성되고 있지 아니한 항체 미형성 기간 동안의 혈액에 대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문제점은 있다.
(4) 국내에서의 에이즈 감염 사례는 1985. 5.경 주한 외국인에게서, 같은 해 12.경 해외에서 귀국한 내국인 근로자에게서 처음 발견된 이래 1995. 10.말 현재 497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중 38명이 환자로 진전되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에이즈 예방대책수립을 위하여 국내에서의 에이즈 감염 사례가 보고되기 이전인 1985. 4. 11.부터 보건사회부의 관계 공무원들과 피고 대한적십자사, 국립보건원, 대한의학협회, 대한병원협회, 제약회사의 관계자들, 의과대학, 종합병원의 교수 및 의사들이 참석한 수차례의 에이즈예방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대책을 마련한 결과, 보건사회부장관의 1987. 3. 31.자 지시로써 1987. 7. 1.부터는 피고 대한적십자사 등 혈액원에 대하여 공혈 혈액 전부에 대하여 에이즈 감염 여부 검사를 실시하도록 조치하는 한편(그 검사는 1990. 9. 8. 혈액관리법시행규칙의 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헌혈시인 1989. 5. 이전까지는 에이즈를 전염병예방법상의 지정전염병으로 고시하고, 에이즈의 예방과 감염자의 보호·관리를 위하여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제정·시행하였다.
위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 헌혈 혈액 전부에 대하여 에이즈 감염 여부 검사가 의무화될 당시 보건사회부에서는 그 검사방법을 사실상 피고 대한적십자사에게 일임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 대한적십자사는 1급 혈액원장 회의와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자문회의 등을 거쳐 위에서 본 효소면역측정법을 검사방법으로 채택하였으며, 그 이후 모든 혈액원에서 효소면역측정법에 따라 제1차적 선별적인 검사를 행하고 그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온 혈액에 대하여 감염 여부를 정밀진단하기 위하여 그 혈액을 국립보건원에 보내어 위에서 본 웨스턴 블롯 검사법에 의한 검사를 받게 하고 있다.
(5) 혈액관리법 제12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건강한 국민에게 헌혈을 권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어 같은법시행령 제3조 제1, 2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매년 헌혈 권장에 관한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시행하여야 하며, 보건복지부장관·서울특별시장·직할시장 또는 도지사 및 대한적십자사총재는 헌혈 권장을 위하여 공·사의 단체에 대하여 필요한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 뒤, 제3항은 그 외의 단체 또는 개인이 가구·공원·기타 옥내외의 공공장소에서 공중을 대상으로 헌혈 권장에 관한 행사를 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대한적십자사와 협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법시행규칙 제9조는 채혈금지의 범위를, 제11조는 공혈자의 신상카드 작성·비치의무 등을 각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혈액을 피고 대한적십자사 산하 서울특별시 남부적십자혈액원이 위 소외 1로부터 헌혈받을 당시(1989년) 채혈은 원칙적으로 혈액원에서 하되, 피고 대한적십자사의 헌혈혈액원은 혈액원 외의 장소에서 채혈할 수 있으며, 기타 헌혈혈액원은 채혈 예정일 7일 전에 채혈 대상, 채혈 장소, 채혈 기간, 채혈 예정 인원 등에 대하여 미리 피고 대한적십자사총재와 사전 협의를 거쳐 혈액원 외의 장소에서 채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바(위 시행규칙 제10조 제1호), 혈액원 외에서의 헌혈은 주로 가두 행사차량이나, 군부대 또는 학생들을 상대로 행하여졌다.
그런데 위 소외 1로부터 헌혈받을 당시 작성하도록 되어 있던 헌혈자 신상카드에는 헌혈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난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위 소외 1의 헌혈자 신상카드에는 헌혈자의 직업란과 근무처란이 공란으로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상카드의 이면에 위 시행규칙 제9조에 규정된 채혈금지의 범위와 관련된 설문사항(16개항)이 기재되어 있고 각 설문에 대하여 헌혈자가 확인한 후 서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설문사항 중에는 혈우병, 백혈병 등 각종 혈액질환 유무 등의 설문은 있으나 에이즈 관련 항목이 전혀 없었으며(1990. 9. 8. 이후 그 설문에 에이즈 감염 여부에 관한 질문이 추가되었다), 그 설문에 대하여 헌혈자는 모두 이상 없는 것으로 응답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설문에 답한 헌혈자의 서명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서명자는 박정하로 의료요원이 아닌가 추측됨)으로 되어 있었다. 위 헌혈 당시 피고 대한적십자사로서는 위 소외 1의 연령(주민등록번호)과 주소 등을 알았을 뿐 직업이나 생활관계 등에 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헌혈을 받았으며, 그 후 1989. 11. 2. 위 소외 1이 재차 헌혈을 한 혈액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자 그에 대한 추적 및 역학조사 결과 비로소 그가 당시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으며 10여 명 내외의 남성과 동성간 성접촉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당시 피고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을 권장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헌혈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의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는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여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확률이 높은 동성연애자 등이 헌혈을 통하여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도록 조장한 사실도 있었다. 이리하여 동성연애자 251명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그 중 42명이 에이즈 감염 여부 검사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 50%인 21명이 검사방법으로 헌혈을 이용하였다고 하는 보고도 있다.
다. 판단
사실관계가 원심 인정과 같다면, 비록 수혈에 따른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의 확률이 극히 낮다 하더라도, 현재의 의학적 수준과 경제적 사정 및 혈액 공급의 필요성 측면에서 항체 미형성 기간 중에 있는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한 혈액은 에이즈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감염 혈액임을 밝혀내지 못하게 되어 이러한 혈액의 공급을 배제할 적절한 방법이 없으므로 위와 같은 경로로 인한 수혈에 따른 에이즈 감염의 위험에 대하여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 할 것인데,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이라는 결과와 그로 인한 피침해이익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혈액원의 업무를 수행하는 피고 대한적십자사로서는 사전에 동성연애자나 성생활이 문란한 자 등 에이즈 감염 위험군으로부터의 헌혈이 배제될 수 있도록 헌혈의 대상을 비교적 건강한 혈액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집단으로 한정하고, 헌혈자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위험이 높은 자인지를 판별하여 그러한 자에 대하여는 스스로 헌혈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직업과 생활관계,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하고 필요한 설명과 문진을 하는 등 가두 헌혈의 대상이나 방법을 개선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위 피고는 에이즈 감염 위험군을 헌혈 대상에서 제외하기는 커녕, 오히려 헌혈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의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고 홍보함으로써 에이즈 감염 위험자들이 헌혈을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기회로 이용하도록 조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 소외 1로부터 헌혈받을 당시 헌혈자의 직업이나 생활관계 등에 대하여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아니하고 에이즈 감염 여부에 대하여는 설문사항에 포함시키지도 아니하였으며 전혀 문진을 하지 아니하여 동성연애자인 위 소외 1의 헌혈을 무방비 상태에서 허용함으로써 위 소외 1이 헌혈한 혈액을 수혈받은 원고 1로 하여금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게 한 것이니, 위 피고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의 결과 발생을 회피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로 위 원고로 하여금 위와 같은 손해를 입게 하였다 고 할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 있어 피고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로부터 혈액을 채혈하여 이를 의료기관 등에 공급하는 업무를 하는 헌혈혈액원의 지위에 있었을 뿐, 환자에게 직접 혈액을 수혈하는 의료기관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였는바, 수혈에 의하여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고 가족의 혈액으로 수혈받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는 직접 환자에게 혈액을 수혈하는 의사에게 있을 뿐 위 피고에게는 이러한 의무가 있다 할 수 없으니, 위 피고가 자신이 공급하는 혈액에 위와 같은 위험경고의 표기를 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이 사건 결과회피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나아가 위 피고에게 위와 같은 수혈의 위험을 일반 대중에게 홍보할 의무가 있다 할 수도 없으므로 위와 같은 홍보를 하지 아니한 것이 이 사건 결과회피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이라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와 같은 점까지를 위 피고의 결과회피의무 불이행의 내용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라 할 것이다.
위와 같이 원심이 피고 대한적십자사의 과실을 인정함에 있어 일부 판단에 잘못이 있으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이 적법히 인정한 위 피고의 나머지 과실은 당원의 앞에서 본 판단에 부합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원심이 위 피고가 위와 같은 결과회피의무를 다하지 못함에 따라 원고 1가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은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건강 침해를 입게 되었다 하여 위 피고에게 원고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결국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이 과실책임과 인과관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논지는 이유 없다.
2.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상고이유를 본다.
가. 제1점에 대하여
의사는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당해 환자에 대하여 사전에 질병의 증상, 치료 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예후 및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수술이나 투약에 응할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고, 이와 같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의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면제될 수 없으며, 위험과 부작용 등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하고 (당원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1996. 4. 12. 선고 95다5609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설명을 하지 아니한 채 환자의 승낙 없이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설령 의사에게 치료상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환자의 승낙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가 된다 할 것이다.
원심이 적법히 확정한 앞에서 본 사실관계에 의하면,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은 수혈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고, 그로 인하여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방법이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서 그 피해는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데다가 의학적으로 문외한인 환자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의외의 것이므로, 위험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소속 의사들의 설명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하고, 수술 후 수술중의 출혈로 인하여 수혈하는 경우에는 수혈로 인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위험은 당해 수술과는 별개의 수혈 그 자체에 특유한 위험으로서 당해 수술 자체로 인한 위험 못지 아니하게 중대한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의사는 환자에게 그 수술에 대한 설명, 동의와는 별개로 수혈로 인한 위험 등을 설명하여야 한다 할 것이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거시 증거에 의하여, 이 사건에 있어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의 가능성이 의학계에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음에도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소속 의사들이 원고 1에게 특별히 긴급한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이행한 수혈조치에 즈음하여 위 원고에게 사전에 에이즈 감염 위험에 관하여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의사들이 수혈에 있어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원고 1가 수혈 여부 및 수혈 혈액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되었으므로 위 의사들의 사용자인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위 원고 및 동인의 가족들인 나머지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는바, 관계 증거를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은 정당하고, 그에 기초한 원심의 판단 역시 당원의 위 견해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정당하다 할 것이며, 거기에 소론과 같이 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논지도 이유 없다.
나. 제2점에 대하여
수인이 공동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민법 제760조 제1항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각 행위가 독립하여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할 것이다(당원 1989. 5. 23. 선고 87다카2723 판결, 1997. 8. 29. 선고 96다46903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 대한적십자사에 대하여는 혈액원으로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위험군으로부터의 헌혈을 배제하지 아니하는 등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환자가 수혈받음으로써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을 배제할 의무 및 그와 같은 결과를 회피할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원고 1가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은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건강 침해를 입게 됨으로써 원고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 하여 위 피고에게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다고 하고,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대하여는 그 소속 의사들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여 원고 1가 수혈 여부 및 수혈 혈액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되었다 하여 위 피고에게 위 의사들의 사용자로서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다고 하고 있는바, 원심의 위 판단에 의하면 피고 대한적십자사의 과실 및 위법행위는 원고 1의 신체상해 자체에 대한 것인 데 비하여, 피고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소속 의사들의 과실 및 위법행위는 신체상해의 결과 발생 여부를 묻지 아니하는 수혈 여부와 수혈 혈액에 대한 원고 1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격권의 침해에 대한 것임이 분명하므로 피고들의 양 행위가 경합하여 단일한 결과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고 각 행위의 결과 발생을 구별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경우에는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할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피고들의 각 불법행위는 그 과실 및 위법행위가 전혀 별개로 행하여진 것이므로 이를 공동불법행위로 볼 수는 없다 하여 피고들의 각 배상채무를 연대나 부진정연대의 관계에 있지 아니한 별개의 채무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이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논지도 이유 없다.
3.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들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