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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 3. 16. 선고 2019다279788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 결정이 사실심 법원의 직권에 속하는 재량 사항인지 여부(적극)

[2]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 에서 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진행하는지 여부(적극)

원고,상고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민심 담당변호사 변영철 외 2인)

피고,피상고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부산지법 2019. 9. 25. 선고 2018나59229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2, 원고 3, 원고 4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원고 1의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 중 원고 1의 상고로 생긴 부분은 위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아래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부마항쟁보상법’이라고 한다)이 2013. 6. 4. 제정되고 2013. 12. 5. 시행되었다. 원고 1은 2014. 12. 8. ‘부산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때인 1979. 10. 17.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8일간 영장 없이 구금된 동안 가혹행위를 당해 허리를 다치고, 즉결심판에서 29일의 구류형을 받았다.’는 사유로 자신을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하였다.

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라고 한다)는 2015. 11. 9. 원고 1을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하여 상이, 구금,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부마항쟁보상법 제2조 제2호 (나) , (라) , (마)목 ]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하였다.

다. 위원회는 2016. 12. 19. 원고 1에게 57,596,630원을 보상하는 결정을 하였으나, 원고 1은 2017. 9. 21. 그에 동의하지 않고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불법적인 구금과 가혹행위로 생긴 재산상,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다. 그의 처와 자녀인 원고 2, 원고 3, 원고 4도 함께 소를 제기하여, 원고 1이 불법행위를 당함으로써 생긴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2. 원고 1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사실심 법원은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해 확정할 수 있다 ( 대법원 2005. 6. 23. 선고 2004다66001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 1에 대한 위자료를 500만 원으로 정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위자료 액수 산정에 관한 재량의 한계를 넘은 잘못이 없다.

3. 원고 2, 원고 3, 원고 4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과 함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일반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 이 적용된다. 민법 제166조 제1항 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정하고 있고, 제766조 제1항 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위 단기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진행한다 ( 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참조).

나. 원심은, 원고 2, 원고 3, 원고 4는 원고 1이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다가 구금되어 경찰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상해를 입었을 당시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사실에 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고 그와 같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난 다음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으므로, 원고 2, 원고 3, 원고 4의 국가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다. 그러나 기록에 의해 알 수 있는 아래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 2, 원고 3, 원고 4가 국가의 불법행위 때문에 생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1)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행되던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고 한다)는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를 금하고, 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고 1이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었다면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한 혐의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2) 긴급조치 제9호는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고 한다)에 근거한 것으로,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 제2항 은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거나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제4항 은 이러한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정하였다.

3) 원고 1이 체포·구금되었을 무렵에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는 사법적 판단이 없었다. 오히려 대법원 1977. 5. 13.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 제53조 에 대해서도 위헌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4)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하여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고 한다)이 제정되어 2005. 12. 1.부터 시행되었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해방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2009. 8.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에 대하여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 에 규정된 ‘권위주의 통치 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는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5월 ‘부마민주항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관해서 진실규명결정을 하면서 국가로 하여금 관련 피해자를 확인하고 명예회복 및 피해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에 따라 부마항쟁보상법이 제정되었고 위원회의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비로소 원고 1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5) 대법원 2013. 4. 18. 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으로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하여 위헌·무효라고 판단하였으나, 한편으로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고(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 대법원은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로 비로소 위 종전 판결들을 변경하고,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 등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6) 위와 같은 법률적·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원고 1이 국가로부터 당한 불법행위 때문에 정신적 손해를 입었더라도 원고 2, 원고 3, 원고 4가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것은 전혀 실익이 없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라. 그런데도 원고 2, 원고 3, 원고 4의 위자료 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본 원심판단에는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한 단기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이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원고 2, 원고 3, 원고 4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 1의 상고는 기각하고 상고비용 중 위 원고의 상고로 생긴 부분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선수(재판장) 박정화 노태악 오경미(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