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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6. 2. 9. 선고 94도1858 판결

[사문서위조·동행사][집44(1)형,931;공1996.4.1.(7),1004]

판시사항

작성명의자의 승낙이나 위임이 없이 그 명의를 모용하여 문중규약을 작성한 경우 사문서위조죄의 성부

판결요지

사문서위조죄의 객체가 되는 문서가 권리의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증명에 관한 것인지, 또 그 문서의 진정한 작성명의자가 누구인지 여부는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이를 판단하여서는 아니되고, 문서의 형식과 외관은 물론 문서의 종류, 내용, 일반 거래에 있어서 그 문서가 가지는 기능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어서, 어떤 문서가 문중규약이라는 표제하에 작성되었다고 하여 이를 가리켜 일률적으로 문중원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문서라거나 문중이라는 단체 명의의 문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위에서 설시한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 문서가 문중규약의 존재와 내용 등을 확인하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면 이는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이고, 또 이 경우에는 위와 같은 사항을 확인하는 의사표시의 주체가 그 문서의 작성명의자라고 할 것이므로, 그 작성명의자의 승낙이나 위임이 없이 그 명의를 모용하여 문중규약의 존재와 내용 등을 확인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면 이는 사문서위조죄를 구성한다.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검사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1988. 5. 15.경 울산시 중구 복산동 소재 피고인의 여동생 집에서 행사할 목적으로 백지에 자필로 본문 16개조, 부칙 1개조로 이루어진 경주이씨익제공파울산병영서문안문중회 규약을 작성하고 동 규약의 마지막 장 부칙 조문 하단에 '이사 이민우', '감사 이성우'라고 기재하고 그 이름 옆에 소지하고 있던 피해자 이민우, 이성우의 인장을 각 찍어 피해자들 명의의 위 문중회 규약 1통을 각 위조하고, 같은 해 6. 3.경 위조한 이민우, 이성우 명의의 문중회 규약이 마치 진정하게 성립된 것처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에 제출하여 이를 각 행사한 것이라고 함에 있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권리의무에 관한 사문서인 문중규약에 대한 위조죄 및 동 행사죄가 성립하려면 위 문중규약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바와 같이 이민우, 이성우 명의의 문서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다음, 문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봉행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구성된 자연발생적인 관습상의 종족단체로서 적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 등에 의하여 대표되는 정도로 조직을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비법인사단으로서의 단체성이 인정되고, 이러한 비법인사단인 문중의 규약은 문중의 목적, 명칭, 문중원의 자격요건, 문중재산의 관리방법 등을 규정하여 문중의 성립과 운영의 기초가 되는 문서로서 문중이라는 단체 그 자신 명의의 문서라 할 것이므로 위 문중규약이 이성우, 이민우 명의의 문서임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2. 그러나 사문서위조죄의 객체가 되는 문서가 권리의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증명에 관한 것인지, 또 그 문서의 진정한 작성명의자가 누구인지 여부는 문서의 표제나 명칭만으로 이를 판단하여서는 아니되고, 문서의 형식과 외관은 물론 문서의 종류, 내용, 일반 거래에 있어서 그 문서가 가지는 기능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서가 문중규약이라는 표제하에 작성되었다고 하여 이를 가리켜 일률적으로 문중원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문서라거나 문중이라는 단체 명의의 문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위에서 설시한 제반 사정에 비추어 그 문서가 문중규약의 존재와 내용 등을 확인하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면 이는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이고, 또 이 경우에는 위와 같은 사항을 확인하는 의사표시의 주체가 그 문서의 작성명의자라고 할 것이므로, 그 작성명의자의 승낙이나 위임이 없이 그 명의를 모용하여 문중규약의 존재와 내용 등을 확인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면 이는 사문서위조죄를 구성한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위조하였다는 문중규약을 보면, 이는 "경주이씨익제공파울산병영서문안문중회 규약"이라는 표제하에 문중의 명칭, 목적, 위치, 문중원의 자격, 임원 선출, 문중의 의사결정방법 등을 규정한 본문 16개조와 시행일을 정한 부칙 1개조로 구성되어 있고, 그 말미에는 피해자 이민우, 이성우를 포함하여 위 문중의 고문, 회장, 부회장, 총무, 재무, 이사, 감사 등 도합 11명 임원의 지위 기재와 서명날인이 있으며, 또 4장으로 된 위 문중규약의 각 장 사이에는 위 임원들의 간인까지 되어 있는바, 이러한 문서 자체의 외관, 형식, 체제만을 놓고 보더라도 위 문중규약은 그 말미에 서명날인을 한 임원들이 그 기재와 같은 규약의 존재와 내용을 확인하는 취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여질 뿐만 아니라, 문중 또는 종중이라 함은 원래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발생적인 집단이므로 그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하거나 서면화된 규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서면화된 규약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약은 종중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고, 또 그 규약에 대표자의 선임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문중의 대표자가 규약이 정한 방법에 따라 적법하게 선임되었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 실제로 이 사건에 있어서도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위 경주이씨익제공파울산병영서문안문중이 신청인으로 된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88카1954호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위 문중의 실체를 소명하기 위한 자료로 제출하기 위하여 위 문중규약을 작성하고 그 의도대로 이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점을 더하여 보면, 위 문중규약은 그 기재와 같은 규약의 존재와 내용 등을 확인하는 취지에서 작성된 사실증명에 관한 사문서이고, 그 말미에 서명날인을 한 문중 임원들이 작성명의자라고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만일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이성우, 이민우의 승낙이나 위임이 없이 위 종중규약의 말미에 그들의 서명날인을 하는 등 하여 그 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행사하였다면 사문서위조죄와 동 행사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그 설시의 이유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음은 사문서위조죄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하겠다.

다만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수사기관 이래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이성우, 이민우의 승낙이나 위임에 따라 그들 명의로 위 종중규약을 작성하였다고 변소하고 있고, 경주이씨익제공파울산병영서문안문중은 1988. 5.경 소외 이상선 등이 문중원 앞으로 등기부상 소유 명의가 신탁된 위 문중 소유의 울산시 중구 복산동 산 19 임야를 소외 동덕개발 주식회사에게 몰래 매각하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중 회의를 열어 위 임야에 관한 소유 명의를 문중 앞으로 회복하기로 결의하고 같은 해 6. 3. 위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얻게 되었으며, 피고인은 당시 위 문중의 회장으로 문중원들을 대표하여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위 문중의 실체를 소명하기 위한 자료로 법원에 제출하기 위하여 위 문중규약을 작성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고, 한편 이성우, 이민우의 검찰에서의 각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조상의 산소를 보존하는데 필요하다고 하여 그들의 모친이 도장을 내주자 피고인이 이를 사용하여 위 종중규약을 작성하였다는 것인데, 그 무렵 피고인이 위 임야에 관하여 종중 명의로 가처분을 해 두는 것 이외에는 조상의 산소를 보존하기 위하여 이성우, 이민우의 도장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을 기록상 찾아 볼 수 없는바, 이로 미루어 보면 피고인이 이성우, 이민우 명의로 위 종중규약을 작성하게 된 것은 그들의 묵시적인 승낙이나 위임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고, 그 밖에 기록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변소에 부합하는 다른 증거들도 엿볼 수 있으므로,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이 위 종중규약을 작성할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은 물론 그 전후 경위를 좀 더 심리해 봄으로써 피고인의 변소의 진위를 가려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여 둔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만호(재판장) 박준서 김형선(주심) 이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