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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0다206564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 참작하여야 할 요소

[2]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지나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이 경우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사실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금을 산정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적극) / 제1심판결에서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제1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산정하였는데 항소심이 이를 그대로 유지한 경우,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제1심 변론종결일부터 발생하는지 여부(적극)

[3]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의 의미와 그 판단 방법

[4] 수사과정에서 갑과 을에 대한 가혹행위 등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병이 국가보안법 위반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그 후 위 판결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병에 대해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자, 갑과 을이 재심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3년이 지나기 전에 국가를 상대로 가혹행위 등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병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취소된 이후에야 갑과 을이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인데도, 갑과 을이 불법구금 상태가 해소되었을 무렵에 손해의 발생 등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라고 단정하여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상고인

원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향 담당변호사 이상희 외 4인)

피고,피상고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에이스 담당변호사 최영삼 외 1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9. 12. 12. 선고 2019나2036347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2의 패소 부분 및 원고 3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 1의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 중 원고 1의 상고로 인한 부분은 위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도과 후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원고 1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경우, 피해자의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과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과 아울러 가해자의 고의·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와 원인, 불법행위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하고, 법원은 이러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위자료 액수를 확정할 수 있다 ( 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41377 판결 ,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다77149 판결 등 참조).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지나 위자료를 산정할 때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처럼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불법행위 시부터 지연손해금이 가산되는 원칙적인 경우보다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적절히 참작하여 사실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금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 (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한편 제1심판결에서 위와 같이 배상이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제1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산정하였는데 항소심이 항소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새로이 위자료를 산정하지 않고 제1심판결의 위자료 액수를 그대로 유지한 경우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위자료 산정의 기준일인 제1심 변론종결일부터 발생한다 (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3다205174 판결 참조).

나.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 1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정하였다. 나아가 이 사건 불법행위가 있었던 1987년경부터 제1심 변론종결일까지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 변론종결 시의 통화가치 등이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상당히 변동되었다고 인정하고, 그와 같이 변동된 사정을 참작하여 제1심 변론종결일부터 그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위자료 산정,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2. 원고 2, 원고 3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여 원고 2, 원고 3을 불법구금하고 원고 3에 대하여 가혹행위를 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원고 2, 원고 3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하면서도, 위 원고들로서는 불법구금 상태가 해소된 1987. 7.경 손해 및 가해자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아 그로부터 3년의 단기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여 손해배상채권이 소멸하였고,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여, 원고 2의 불법구금 피해자 본인으로서의 위자료 청구 부분과 원고 3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다.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심판결 이유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 1은 1987. 7. 5. 국가안전기획부 내지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원고 1의 배우자인 원고 2는 1987. 7. 6.경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강제연행되어 1987. 7. 11.경까지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고, ○○○○회 간사였던 원고 3은 1987. 7. 6.경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강제연행되어 1987. 7. 22.까지 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받았다.

나) 원고 1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 8년, 자격정지 8년을 선고받았고, 1988. 8. 23. 상고가 기각되어 유죄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 원고 1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원고 2에 대한 진술조서와 원고 3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라) 한편 원고 2는 국가보안법위반 피의자로 입건되지 아니하였고, 원고 3은 원고 1에 대한 간첩불고지죄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었으나 1987. 8. 27.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마) 원고 1은 유죄판결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 2014재노59호로 재심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2015. 12. 8.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확정된 재심개시결정에 따라 진행된 재심 사건에서 위 법원은 2017. 11. 30.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 1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2017. 12. 8.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바) 원고들은 2018. 5. 30.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수사과정에서 원고들에 대한 가혹행위 등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근거하여 원고 1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고, 원고 1이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여 2017. 12. 8. 원고 1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당시 원고들에 대한 불법적인 수사 목적의 동일성, 원고들 사이의 인적 연관성 및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원고 1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취소된 이후에야 원고들이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므로, 원고 1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형사 재심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3년 이내에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이상 원고들의 청구에 관하여 단기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원고 1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원고 2, 원고 3에 대한 조서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었고, 원고 2는 형사입건조차 되지 않았으며, 원고 3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원고 2, 원고 3에 대한 불법감금 또는 가혹행위는 모두 원고 1의 유죄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비록 원고 2, 원고 3에 대하여 유죄 확정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심을 통해 원고 1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법원의 공권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원고 2, 원고 3이 수사 당시의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를 주장하면서 독자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고 1에 대한 불법행위와 마찬가지로 원고 2, 원고 3에 대한 단기소멸시효도 원고 1에 대한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기산하는 것이 타당하다.

라.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 2, 원고 3이 불법구금 상태가 해소되었을 무렵에 그 손해의 발생 등을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라고 단정하여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이 부분 원심판단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 2, 원고 3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 2의 패소 부분 및 원고 3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 1의 상고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고, 원고 1의 상고로 인한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박상옥(주심) 안철상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