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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504 판결

[손해배상(기)][공2013하,1949]

판시사항

예금명의자가 아닌 제3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볼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 및 예금명의자와 제3자 사이에 예금반환청구권의 귀속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 경우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예금거래를 처리한 금융기관의 행위가 적법한지 여부(원칙적 적극)

판결요지

본인인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루어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하여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과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한편 금융실명제하의 위와 같은 예금주 확정 원칙에 비추어 보면, 금융기관은 예금명의자와 출연자 등 사이에 예금반환청구권의 귀속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그들 사이의 내부적 법률관계를 알았는지에 관계없이 일단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예금거래를 처리하면 되고, 이러한 금융기관의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한 것으로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원고, 피상고인

원고

피고, 상고인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소송수계인 농협은행 주식회사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양헌 담당변호사 김의재 외 2인)

주문

원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에 관한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심판결의 주문 제1항에 ‘당심에서 추가된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한다’를 추가하는 것으로 경정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본인인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루어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하여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과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9. 3. 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금융실명제하에서의 위와 같은 예금주 확정 원칙에 비추어 보면, 금융기관은 예금명의자와 출연자 등 사이에 예금반환청구권의 귀속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있어서 그들 사이의 내부적 법률관계를 알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예금거래를 처리하면 되고, 이러한 금융기관의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한 것으로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2. 원심의 판단

가. 원심은 판시 증거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1) 원고는 2011. 3. 16. 소외 1과 사이에, 원고가 소외 1 명의 계좌에 4억 원을 입금하여 소외 1이 동액 상당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되, 그에 따른 예금계좌 개설 및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등의 업무는 모두 원고가 대리하여 처리하고,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후 원고가 직접 위 계좌에서 4억 원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이를 회수하기로 약정하였다.

소외 1은 이에 따라 원고에게, 4억 원에 대한 차용증서와 함께 은행업무에 필요한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주민등록증, 위임장 등을 교부하는 한편, 위 예금계좌에 입금된 금원에 관하여 어떠한 권리도 없고 예금통장, 인장에 대한 분실·도난신고나 전자금융, 현금카드 등을 이용한 현금인출을 하지 아니하며 비밀번호 등 예금계좌의 모든 정보를 임의로 변경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된 각서 등을 작성·교부하였다.

2) 원고는 같은 날 15:40경 피고 2가 지점장으로 있는 피고 은행 노대동 지점에서 소외 1을 대리하여 소외 1 명의로 이 사건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4억 원을 입금한 후 동액 상당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피고 2는 당시 원고의 부탁에 따라 다음날 아침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4억 원을 인출하여 원고 명의 계좌로 입금해 주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로부터 소외 1 명의 예금통장과 출금전표(원고가 이 사건 예금계좌 개설 당시 설정한 비밀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 명의 입금전표 등을 교부받았다.

3) 그런데 소외 1은 같은 날 16:20경 피고 은행 여의도문화지점에서 인터넷뱅킹을 신청하고, 그 다음날인 2011. 3. 17. 08:16경 인터넷뱅킹으로 3회에 걸쳐 임의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비밀번호 오류입력 제한횟수를 초과시킴으로써 정당한 비밀번호에 의하더라도 예금인출을 할 수 없도록 한 후 08:40경 피고 은행 서서울농협 홍대역지점에서 예금주 자격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였다.

4) 피고 2는 원고와의 약속에 따라 2011. 3 17. 08:30경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4억 원을 인출하려 하였으나 비밀번호 입력오류로 인출에 실패하였고, 즉시 원고에게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렸다. 원고는 피고 2에게 ‘비밀번호를 제대로 기재하였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면서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나, 피고 2는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가 소외 1이므로 원고의 요청만으로는 지급정지를 할 수 없고, 비밀번호 입력오류 발생에 대한 진상파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5) 원고가 다시 피고 2에게 전화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던 중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계좌이체 방식으로 08:43경 소외 2 명의 국민은행 계좌로 1억 원이, 08:44경 소외 3 명의 중소기업은행 계좌로 1억 원이 각 이체되었다(이하 소외 2, 3 명의 위 각 계좌를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라고 한다). 이에 피고 2는 추가적인 자금이체를 막기 위하여 08:44경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등록하였다.

6) 원고는 같은 날 08:50경 피고 은행 노대동지점을 찾아가 위와 같이 2억 원이 이체된 사실을 확인한 후 피고 2에게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는 범죄에 이용된 계좌이니 국민은행 등에 대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해 달라고 하였다. 피고 2는 위와 같은 자금이체가 타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사유인 금융사고 발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다가, 같은 날 09:28경 및 09:29경 해당 은행에 전화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나,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 이체된 2억 원은 09:07경 이미 인출된 상태였다. 원고는 그 후 소외 1로부터 변경된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2011. 3. 21. 이 사건 예금계좌에 남아 있던 잔액을 인출, 회수하였다.

7) 피고 은행의 예금거래기본약관은 거래처로부터 통장·도장·카드 또는 증권 등의 분실·도난·멸실·훼손 신고가 접수되었을 경우 신고인이 거래처 본인임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친 뒤에 재발급하거나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피고 은행이 가입되어 있는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협약 등은 금융기관은 금융사고로 다른 금융기관에 자금이 이체된 경우 다른 금융기관에 그 이체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금융사고의 하나로 횡령, 배임, 공갈, 절도, 금품수수, 사금융알선, 저축관련 부당행위, 재산 국외도피 등 범죄혐의가 있는 경우를 들고 있다.

나. 원심은 위 인정 사실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1) 원고와 피고 은행 사이에,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소외 1과의 예금계약을 부정하고 자금 출연자인 원고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가 원고임을 전제로 피고 은행을 상대로 예금반환을 구하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다.

2) 판시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피고 2는 원고로부터 지급정지 등 요청을 받았을 때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어야 함에도 뒤늦게 이 사건 예금계좌에 지급정지를 등록하고 국민은행 등에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원고가 인출할 금원이 소외 1에 의하여 무단 인출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들을 상대로 불법행위책임 및 그 사용자책임을 구하는 원고의 예비적 청구는 이유 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원고의 예비적 청구에 관한 원심의 판단 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사실관계가 위와 같다면, 이 사건 예금계약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소외 1이고, 원고는 소외 1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소외 1과 사이에 체결한 금전소비대차계약 등에 따라 자금을 출연하는 한편, 소외 1의 자금 유용을 막고 이를 안전하게 회수하기 위하여 소외 1을 대리하여 이 사건 예금계약을 체결한 후 그 예금통장 등을 지배·관리하면서 입·출금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나. 그런데 원고는 이 사건 당시 예금주인 소외 1의 대리인이 아니라 예금주 본인 내지 자금 출연자의 지위에서 자신이 출연한 자금을 안전하게 회수하기 위해 피고 2에게 지급정지조치를 요청하였다고 할 것인바, 원고가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에 해당하지 아니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은행거래기본약관에서 정한 지급정지조치는 예금주의 예금반환청구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므로, 피고 2는 자금 출연자에 불과한 원고의 지급정지 요구에 따라야 할 법적인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다. 이 사건 예금계좌에 입금된 자금의 출연자이자 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던 원고의 의사에 반하여 비밀번호가 변경되고 자금 이체가 이루어진 이상 모종의 범죄행위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는 있을 것이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협약 등에서 정한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지급정지요청이 금융거래에 미칠 파장 등에 비추어 이러한 의심만으로 곧바로 지급정지요청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원고는 어디까지나 예금주인 소외 1의 대리인에 불과하고 당시로서는 비밀번호 입력오류나 자금이체 경위 등이 불분명한 상황이므로, 피고 2로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금융사고 발생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좀 더 사실관계 등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고 할 것인데, 피고 2가 비밀번호 입력오류를 인지한 때로부터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서 2억 원이 인출되기까지의 37분이라는 시간은 이러한 조사, 확인을 거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촉박하여서 피고 2가 국민은행 등에 대한 지급정지요청을 지연하였다고 볼 것도 아니다.

라. 원심은 피고 2가 일단 지급정지 등을 한 후 만일 원고와 소외 1 사이에 예금반환청구권의 소재에 관한 다툼이 있으면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하였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금융기관은 출연자가 누구이고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내부 관계가 어떠한지에 구애받음이 없이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제반 법률관계를 처리하는 것이 원칙인 점, 지급정지조치 등은 자칫 정당한 예금주의 권리행사에 불측의 장애를 안겨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금융기관이 지급정지 등을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조사,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 사건에서 피고 2가 사후적으로 지급정지조치 등을 취한 것은 원고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책임하에 재량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지급정지의무 등을 인정하는 근거로 삼는 것도 타당하지 아니하다.

마. 이러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경우 피고 2가 원고의 요구에 따른 지급정지조치 등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원고에게 2억 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피고 2의 지급정지조치 등 의무 위반으로 인한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금융기관의 지급정지조치 등 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에 관한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되, 원심판결의 주문 중 일부에 오류가 있으므로(원고는 원심에서 피고들에 대한 종전의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하고 새로이 피고 은행에 대한 예금반환청구를 주위적 청구로 추가하는 것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하였고, 원심은 판결이유에서 원고의 주위적 청구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주문에서는 이에 관한 기재를 누락하였다) 원심판결의 주문 제1항에 ‘당심에서 추가된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한다’를 추가하는 것으로 경정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병대(재판장) 양창수 고영한 김창석(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