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살인피고사건][하집1994(1),719]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자백이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황에서 행한 자백이라고 보아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1. 항소이유의 요지
피고인은, 피고인이 원심판시 강도살인의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없음에도, 원심은 증거능력 없는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와 신빙성 없는 이춘자, 이승산, 손두수, 김종진, 손주석의 각 진술 등을 증거로 삼아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고, 피고인의 변호인은,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량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피고인은 경찰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였고, 검찰에서도 제1회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까지는 자백을 계속하다가, 제2회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부터 이 법원에 이르기까지는 이 사건 발생 당시 그 범행장소에 간 적도 없다는 취지로 위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그 증거로서, 검사 작성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 이춘자, 이승산, 손두수, 김종진, 손주석, 우종대의 경찰, 검찰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기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 작성의 각 감정서 및 부검감정서의 각 기재, 빨간 색 세면수건, 빠루, 붉은 색 1회용 라이타의 각 현존을 들고 있다.
우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원심에서 인용된 증거들 이외에 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의 피고인 작성의 자술서(수사기록 115면), 사법경찰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진술조서 및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원심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그 증거능력이 없고, 사법경찰리 작성의 검증조서 역시 피고인이 사법경찰리의 면전에서 자백한 범행 내용을 현장에 따라 진술, 재연하고 사법경찰리가 그 진술, 재연의 상황을 기재하거나 사진으로 촬영한 것으로 피고인이 원심공판에서 위 검증조서에 기재된 내용과 범행재연의 상황을 모두 부인하고 있으며, 그것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것이라고 볼 자료가 없으므로, 위 검증조서 중 피고인의 진술 및 범행재연의 사진촬영부분은 증거능력이 없고 나머지 기재는 위 공소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되지 아니하므로, 아래에서는 원심이 인용한 위 증거들을 중심으로 해서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가. 1993.3.26.자 검사 작성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에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는 취지의 진술이 기재되어 있고, 피고인은 원심 공판기일에 위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 그 진정성립은 인정하나, 경찰에서의 불법적인 구속과 심한 고문에 의하여 검찰에서의 위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당시에도 계속 외포된 심리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임의성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우선 위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하여 본다.
검사가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때를 제외하고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될 뿐만 아니라 그 조서의 작성 또는 내용인 피고인의 진술이 임의로 되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어야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고 할 것(형사소송법 제317조 제1항, 제2항)인데, 이 사건에서는 검찰에서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당시 피의자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다는 사정이 보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당심증인 공소외 1, 박현남의 각 진술만으로는 아래에서 보는 바에 비추어 피고인의 위 진술이 임의로 되었음을 증명하기에 부족하고, 기록에 나타난 제반 증거자료에 의하면, 이 사건 범행이 1993.2.27.에 발생하여 경찰이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범행 현장인 (상호 생략)오락실에 두어번 놀러 온적이 있는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이후 며칠 간 놀러오지 않고 있다는 위 오락실 종업원의 막연한 진술에 따라 피고인을 이 사건 범행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그 소재수사를 하여 오다가, 1993.3.14. 10:30경 충남고물상에 고물대금을 받으러 나타난 피고인을 검거하여 경찰서로 연행하여 간 후, 3.16.까지 피고인을 구금하고 있다가 3.16. 갑자기 이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피고인이 주취하여 1992.12.15.부터 1993.3.14. 10:30경까지 서울 성동구 자양동과 성수동 일대를 배회하며 고물수집 명목으로 주인이 없는 집을 무단 침입하는 등 불안감을 조성한 자이고, 관내에서 발생한 강도살인피의사건의 용의자로 수사중에 있는 자임"을 범죄사실로 내세워 즉결심판을 청구하여 3일의 구류에 처한다는 심판을 받았고, 위 구류집행상태를 이용하여 계속 이 사건 범행을 수사하여 오다가, 3.18. 22:15 피고인을 이 사건 범행의 피의자로 하여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하여 구속이 집행된 점, 피고인은 경찰에 연행된 후 5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닌 진술조서의 형식을 통하여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을 하였는데, 최초의 진술조서를 작성할 때에는 망치를 범행도구로 사용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고 훔친 동전을 빨간 색 상의 옷에 담아 어깨에 메고 도망쳤다는 내용으로 범행을 자백하였다가, 제2회 진술조서를 작성할 때부터는 범행의 방법이나 수단이 공소사실에 접근하는 내용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고 피고인은 경찰에서의 자백이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적극 주장하면서 이는 현장검증시 찍은 피고인의 사진(수사기록 406면, 415면 등)의 영상에 의하면 피고인의 오른쪽 눈이 크게 부어 있음을 알 수 있음에 비추어 명백한 사실이라고 진술하고 있음에 대하여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 공소외 1은 당심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연행된 후 최초에는 범행을 부인하였으나 계속 설득하자, 몸을 떨며 마실 물을 찾더니 범행을 자백하였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체구가 왜소하고 허약하여 고문할 필요도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그런데 경찰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진술조서에는 피고인이 최초에 범행을 부인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 점, 경찰은 같은 달 26.자로 피고인의 신병을 이 사건 수사기록과 함께 검찰에 송치하여 그날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고 당시 피고인은 검사의 범행에 대한 구체적 신문에 관하여 개개의 답변을 거부하면서 다만 경찰에서 진술한 대로이다라고만 말하였으나 위 피의자신문조서에는 피고인이 구체적인 범행의 수단과 방법 등에 관하여 상세히 자백하는 진술을 한 것으로 기재되었고, 당시 피의자신문조서의 작성을 담당하였던 검찰주사는 피고인의 한쪽 눈에 퍼런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을 목격하고 그 이유를 묻자 피고인이 경찰의 고문에 의한 것임을 말하였으나, 위 검찰주사는 이러한 피고인의 진술을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신문을 진행하였고, 피고인은 위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당시에도 위 검찰주사로부터 무릎을 꿇리고 구두발로 채이는 등 강압적인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한 점, 검사는 위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은 다음에도 계속하여 같은 달 27., 30. 및 4.2.의 3회에 걸쳐 검찰에 소환하였으나, 그때마다 피고인은 경찰에서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면서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자, 검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같은 해 4.6.에야 비로소 이 사건 범행을 하였느냐는 검사의 신문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않거나 경찰에서 자백하였었다는 사실만을 소극적으로 인정한다는 취지로 조서를 작성하였고, 다시 소환조사한 같은 해 4.7., 4.8.에는 역시 같은 이유로 조서를 작성하지 아니하고 4.9. 및 4.10.에 작성된 제3회, 제4회 각 피의자신문조서에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면서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겠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경찰에서의 자백진술은 경찰의 가혹행위에 못이겨 허위로 진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나아가 검찰 역시 피고인으로부터 위 범죄사실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여 피고인의 진술을 그대로 조서에 기재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검사 작성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자백은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황에서 행한 것으로 역시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보아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를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할 것이고, 설사 피고인의 위 자백이 임의성이 있어 그 증거능력이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자백의 진실성과 신빙성까지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인바, 피고인의 검사 앞에서의 자백내용에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점에서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결국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나.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빠루(증 제3호)의 현존과 위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에 사용하던 것이라는 취지의 손두수의 검찰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기재 및 손주석의 경찰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기재에 관하여 본다.
경찰은 범행현장에서 이 사건 범행에 사용된 증거물로서 위 빠루를 발견하여 압수하였는바, 위 빠루의 존재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할 것이나, 나아가 위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 고물수집(넝마주이)을 하면서 사용하던 것이라는 위 손두수, 손주석의 위 각 진술이 보태어 진다면 위 빠루의 존재가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범인이라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위 손두수, 손주석의 각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보건대, 위 손두수는 검찰에서는 압수된 위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 고물수집을 하면서 사용하던 바로 그 빠루이다고 진술하였으나, 원심법정에 이르러서는 위 두 빠루의 동일성에 관하여 시멘트 같은 것이 묻어 있는 점과 눈에 익은 점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하여 동일성에 관한 인식방법에 대하여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피고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는 평소 피고인이 쓰던 빠루를 자세히 본 것은 아니라고 자신 없이 진술하고 있고, 위 손주석은 경찰에서는 압수된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가 틀림없다고 진술하였으나, 원심법정에 이르러서는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를 쌀부대로 덮여 있는 상태에서 아랫부분만 3번 정도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모르고,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도 두 빠루가 동일하다고 말한 적은 없고 비슷하다고 말했을 뿐이다고 진술하고 있고, 이 사건 발생 이전에 피고인이 종업원으로 근무하였던 형제고물상 주인이던 원심 및 당심증인 김명학은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는 피고인이 위 형제고물상을 그만 두면서 이를 반납하였는데, 이 사건 발생 후 수차에 걸쳐 경찰관 6-7명이 압수된 빠루를 가지고 찾아 와서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것인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였고 위 증인은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는 압수된 빠루와 그 모양이 다르고 이미 반납받아 다른 데서 사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이야기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는바, 위 손두수, 손주석의 각 진술들이 일관성이 없고 명확하지가 않은 점, 위 김명학이 반대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는 점 및 위 김명학이 위 손두수, 손주석과 반대되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음에도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그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아니한 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위 손두수, 손주석의 진술만을 증거로 제출하고 있는 점, 압수된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라면 피해자를 살해할 때 빠루에 묻은 피를 화장실의 수돗물에 닦았고 현장에 남아 있는 자신의 발자국과 화장실 계단의 피를 닦아 낼 정도로 범행의 흔적을 없애려고 애쓴 범인이 가장 유력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될 위 빠루를 현장 구석에 던져 놓고 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압수된 빠루가 피고인이 평소 사용하던 빠루이다는 취지의 위 손두수, 손주석의 각 진술은 신빙성이 없고, 따라서 위 손두수, 손주석의 각 진술기재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다.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당일 새벽 4:00에 숙소로 돌아왔다는 취지의 이승산의 경찰, 검찰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기재에 관하여 본다.
이 사건은 1993.2.27. 02:00경에 발생하였고, 피고인은 공소외 이승산이 경영하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2가 1동에 있는 동명여인숙에 장기숙박하고 있었는데 위 이승산은 이 사건 발생 당일 피고인이 평소와는 달리 새벽 4:00경에야 돌아왔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당일 새벽 4:00에 숙소에 돌아왔다는 위 이승산의 진술이 신빙성 있는 것이라면 이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위 이승산의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보건대, 위 이승산은 경찰 및 검찰에서는 피고인이 1993.2.27. 새벽 4:00경에 들어온 것 같고 이를 아는 이유는 당일 발자국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피고인이 들어오더라고 진술하였고, 원심법정에서는 피고인이 2.27. 새벽 4:00에 들어왔고 이는 피고인이 숙박하고 있는 방열쇠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안다고 진술하다가, 반대신문에서 변호인이 새벽 4:00에 들어간 날은 3.1.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2.27.임이 분명하고 그날은 일요일 새벽이다고 답변하다가 2.27.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는 지적에 다시 2.27.인 것은 분명한데 일요일인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당심법정에 이르러서는 2.26.인지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금요일날 자정 텔레비전 정규방송이 끝난 직후 피고인이 비디오를 틀어 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고, 그날이 2.27.임을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아들이 술을 먹고 치아를 다치고 들어와 속이 상해 아들을 타이르는 중에 피고인이 비디오를 틀어 달라고 소리쳤기 때문에 기억한다고 진술하여 이 사건 범행 발생 당시 피고인이 위 여인숙에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하고 있는바, 위 이승산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고 매일 여러 손님들을 접하는 여인숙 주인이 그중 한 손님의 귀가시간을 그것도 15일이 지난 후에까지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위 이승산이 날짜를 기억한다는 이유가 석연치 않은 점, 자신이 치아를 다친 날은 3.11.경이라는 위 이승산의 아들 공소외 연영모의 진술과 위 이승산의 진술과는 서로 모순되는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발생 당일 피고인이 새벽 4:00에야 숙소에 돌아 왔다는 취지의 위 이승산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따라서 위 이승산의 각 진술기재 역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라. 피고인이 범행 당시 사용하였다는 빨간 색 세면수건의 존재와 범행 현장 유류품에서 혈흔반응이 나타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의 각 감정서에 관하여 본다.
위 감정서에 의하면, 이 사건 현장에 유류된 붉은 색 세면수건, 장판조각, 적색반흔이 묻은 솜, 소형빠루에 인혈반응이 나타나고 그 혈액형은 모두 A형으로 반응한다(수사기록 134정)고 기재되어 있는바, 사망한 피해자의 혈액형이 A형임에 비추어 위 유류품들이 피해장소에 버려진 물건들임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감정서의 기재와 위 빨간 색 세면수건의 존재는 피고인이 범인임을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피고인이 동전이 들어 있는 쌀마대를 땅에 묻기 위하여 피가 묻은 장갑을 끼고 흙을 팠다는 자백에 따라 그 곳의 흙을 채취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이 감정한 바에 의하면 위 흙덩이에 혈흔반응이 나타나지만 그 혈액형의 감별은 시료부족으로 판정불능이라는 것(수사기록 468정)인바, 위 감정서는 피고인의 변호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으나 감정에 사용한 흙덩이가 증거로 제출되지 아니하였고 따라서 위 흙덩이를 채집함에 있어서 그 채집장소와 채집방법 등에 관하여 이 사건 범행과의 연관성을 뒷받침할 아무런 자료가 없는 점,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피해자를 빠루로 가격할 때 우선적으로 피고인이 입고 있었던 옷에 피해자의 피가 튀었을 것으로 추정(범행현장사진에 의하면 벽에는 피해자의 피가 상당한 정도로 튀어 있음을 볼 수 있다)되는데 피고인이 범행 당시 입었었다는 청색 작업복 상하의에서 혈흔반응이 양성이기는 하나 그 혈액형은 판정불능이거나 피고인의 혈액형과 같은 O형으로 반응할 뿐, 피해자의 혈액형인 A형으로는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감정(수사기록 470정)된 점,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신고 있던 운동화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에 범행 후에 이를 태워버렸다고 하면서도 당시 입고 있었다는 옷은 빨지도 않고 그대로 입고 다니다가 경찰에 압수되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위 감정서의 기재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하거나 유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마. 경찰에서의 현장검증시 피고인의 범행재연과정이 자연스럽고 범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을 재연했었다는 이춘자의 검찰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에 대하여 본다.
경찰에서 수사과정의 하나로서 시행한 현장검증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피고인의 범행재연 모습이 자연스러웠다는 진술이 과연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인이 1993.3.14. 경찰에 연행되어 범행을 자백하는 내용으로 다섯 차례의 진술조서와 두 차례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은 이후인 3.19.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 시행된 현장검증에서 수사관의 독촉을 받으며 피고인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범행을 재연하였다면 이는 증거능력이 없는 경찰의 위 진술조서 및 피의자신문조서에서 한 자백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 사건 범행으로 살해당한 피해자의 사용자이자 이 사건 범행장소인 (상호 생략)오락실의 업주라는 간접적 피해자의 입장에서 증오감을 가지고 현장검증에 입회하여 관찰한 위 이춘자의 진술, 그것도 극히 애매하고 주관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는 범행재연이 자연스러웠다는 취지의 진술은 위에서 들고 있는 점 이외에도 역시 위 현장검증조서의 기재에 의하여 인정되는바, 즉 범인이 이 사건 범행장소에 침입한 경로가 상당히 복잡하여 사전에 면밀한 탐사 없이는 알아내기 힘든 정도인데도 범인이 별다른 탐색이나 방황 없이 그대로 범행장소에까지 침입해 들어 갔다는 것으로, 이는 피고인이 2.26. 밤 우종대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우발적으로 (상호 생략)오락실에서 돈을 훔칠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범행에 필요한 준비를 하여 위 장소에 갔었다는 내용과는 사리에 걸맞지 아니한다는 점 등에 비추어 신빙성이 없거나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바. 그 밖에, 원심이 들고 있는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장소인 (상호 생략)오락장에 전에 두어번 와서 피해자와 술까지 마신 일이 있고 이 사건 발생 바로 전날도 와서 오락을 했는데 이 사건 발생 이후 며칠간 피고인이 오락실에 오지 않아 피고인이 범인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의 김종진의 경찰 및 원심법정에서의 각 진술, 평소 가끔 자신이 장사하는 포장마차에 들러 술을 마시고 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전날인 2.26. 21:00경에도 위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1병과 꼬치 5개를 외상으로 먹고 나갔다는 우종대의 검찰에서의 진술, 피고인이 범행 당시 어두운 곳을 비쳐 보기 위해서 사용하였다는 붉은 색 라이타의 존재 및 피해자의 사인의 점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 권일훈이 작성한 부검감정서의 기재 등의 증거들 역시, 달리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범인이라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그것들만으로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사. 결국,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그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 할 것임에도 원심은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여 처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위 항소논지는 이유 있다.
3. 결 론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나머지 항소이유에 관하여 판단할 필요 없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살피건대,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원심판결의 범죄사실 기재와 같은바, 앞서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에서 본 바와 같이 위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