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공1994.3.15.(964),865]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있던 시간대에 사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측의 소견과 사체 발견 후 피고인의 행동에 석연치 아니한 점도 적지 아니하나 여러 면에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해소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심리미진 및 채증법칙 위배를 이유로 파기한 사례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있던 시간대에 사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측의 소견과 사체 발견 후 피고인의 행동에 석연치 아니한 점도 적지 아니하나 여러 면에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해소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심리미진 및 채증법칙 위배를 이유로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변호사 오성환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인 및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본다.
1. 공소사실의 요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1989. 9. 9. 순경으로 임용되어 서울 관악경찰서 봉천본동 파출소에서 근무하다가 1992. 10. 28.부터 같은 경찰서 신림9동 파출소에서 순찰차 운전요원으로 근무해 오던 자로서, 1991. 5.경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본동에 있는 장미카페라는 주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피해자 (여, 18세) 와 알게 되어 피해자의 집 등지에서 자주 만나 정을 통하며 사귀어 오던 중 피해자와 혼인할 생각으로 형인 공소외 1과 상의하였으나 피해자가 주점종업원이라는 사실 때문에 공소외 1이 피해자와의 혼인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피고인과 사귀면서도 다른 남자들과 성교하는 사실을 알게 되어 피해자와 혼인할 것을 단념하게 되었고, 1992. 9.경에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수술을 받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가끔 피해자와 만나 성교관계를 맺어 왔는데, 1992. 11. 28. 22:00경 위 신림9동 파출소에서 근무 중 피해자로부터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휴무시간인 다음 날 03:15경 서울대학교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같은 달 29. 03:20경 위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고인의 프레스토 승용차에 태우고 가면서 피해자에게 할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어 그 다음날(이는 '그 날'의 오기로 보인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이사를 가는데 이사비용 100만원 중 50만원을 마련하였으니 나머지 50만원을 만들어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고는 알아 보겠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자신이 구해 보겠다고 하여 서로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피해자를 만난 김에 성교할 생각으로 같은 날 03:30경 관악구 신림6동 1526.에 있는 청수장여관으로 피해자를 태우고 가서 위 여관 203호실에 함께 투숙하여 그 시경 그 곳에서 피해자와 1회 성교하고 침대 위에 함께 누워 있다가 같은 날 04:00경 다시 피해자에게 성교할 것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피해자가 거절하자 화가 나 손으로 피해자의 턱부분을 1회 때렸을 때 피해자가 화를 내고 일어나 앉으며 피고인이 뭔데 자신을 때리느냐,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인데 왜 자꾸 성교를 요구하느냐고 하며, 피고인도 결혼하여 딸을 낳으면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하고 개새끼라는 등 욕을 하면서 앙칼지게 대들자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격분하여, 손으로 피해자의 어깨를 밀어 침대 위에 쓰러뜨리고 피해자의 배 위에 올라 타 양무릎으로 양팔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후 주먹으로 안면부를 1회 힘껏 때리고 한 손으로 이마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성교 후 성기를 닦았던 휴지를 들고 입과 코를 틀어 막다가 피해자가 계속 욕을 하며 대들자 순간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것을 결의하고 양손으로 목을 수 분간 힘껏 눌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거시증거에 의하여 위와 같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고인의 다음과 같은 항소이유(이는 피고인의 검찰 이래 일관된 변소내용이기도 하다), 즉 피고인은 피해자와 사건 당일 03:30경 위 여관 203호실에 투숙하여 1회 성교한 후 다시 한번 성교를 요구하였으나 피해자가 피곤하다며 거절하자 단념하고 함께 잠을 자다가 같은 날 06:55경 여관주인의 인터폰 소리에 잠을 깨어 피해자에게 같이 나가자고 권했으나 피해자가 더 자겠다고 하므로 피해자를 그대로 두고 여관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나와서 근무처인 신림9동 파출소에 가서 나머지 근무를 마치고 같은 날 10:00경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하여 다시 위 여관으로 가서 여관방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소식이 없어 잠긴 방문을 카운터의 열쇠로 열고 본 즉 피해자가 사망하여 있어 관할 파출소에 위 사망사실을 신고하였을 뿐이고, 피고인으로서는 그 동안 관계가 원만했던 피해자를 살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피고인 및 피해자의 혈액형은 모두 A형인데도 이 사건 현장 침대 위 사체의 머리 양쪽에서 정액반응이 양성이고 그 혈액형이 AB형인 휴지가 발견되었고, 침대카바 혹은 침대이불 위에서 혈액형이 B형인 음모 및 두모가 여러 개 발견되었으며, 이 사건 현장의 사체가 누워 있던 침대 위에는 피고인의 것이 아닌 족적이 있었고, 피해자의 사망시간대 추정도 그 기초가 되는 자료가 정확한 것이 아니거나 개인차 등 구체적인 사정을 무시한 것이어서 신빙성이 없는 데다가, 이 사건 발생 전에 위 여관 203호실의 열쇠가 분실되어 있었던 점 등으로 보면, 이 사건의 범인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고인이 여관방을 떠난 후 제3의 인물이 위 여관방에 침입하여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음이 분명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① 피해자의 질 속에서는 혈액형이 A형인 정액만이 검출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제3의 인물이 피해자를 강간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고, ② 위 여관 203호실에는 또다른 아베크족이 전날 저녁부터 사건 당일 03:00경까지 있다가 나갔으며, 그들이 나간 후 여관 주인인 김복규는 재털이만 비우고 시트와 이부자리, 방바닥 등은 대충 살펴 보아 깨끗하여 그대로 나온 점 및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여관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침대카바 및 침대이불에서 혈액형 B형의 두모 및 음모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제3의 인물이 침입하였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③ 사건 현장의 침대 위에서 발견된 족적은 대단히 희미할 뿐 아니라 만일 범인이 신발을 신고 침대 위에 올라가 생긴 족적이라면 2개만 생겼을 리가 없고 또 사체가 발견된 후 현장을 다녀 간 경찰서 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부주의로 만들어 놓은 족적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것만으로 제3의 범인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④ 사건 현장 침대 위 사체의 머리 양쪽에서 발견된 휴지에는 정액반응이 양성인 휴지뭉치와 음성인 휴지뭉치가 혼합되어 있는데 그 중 양성반응의 휴지는 혈액형이 A형과 AB형으로 각각 반응하였고, 또 위 휴지에서는 3인 이상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어 위 휴지에 피고인과 피해자의 세포가 묻어 있다 하더라도 그 이외에 적어도 1인 이상의 제3자에게서 유래된 세포가 휴지에 묻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각 감정서의 기재에 비추어 보면 일응 제3자의 침입을 예견할 수도 있으나, 피고인이 경찰공무원이라는 점 및 피해자를 깨워서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새삼스레 자고 나온 여관에 다시 갔다는 점 등으로 보아 피고인이 이 사건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때로부터 피고인의 신고로 수사경찰이 출동하여 현장을 보존하기까지의 상당한 시간 동안에 현장을 변경하였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데다가, 더구나 제3의 인물이 침입하여 어떤 경위로든 사정을 하였다면 그 분비물을 닦는데 있어 새로운 휴지를 쓰던가 아니면 씻는 등의 방법을 택하지 하필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진 후 분비물을 닦아서 침대 밑에 버린 휴지를 주워서 자기의 분비물을 닦는데 다시 사용하였다고는 선뜻 믿기지 아니하는 점 등으로 보면 위 각 감정서의 기재가 피고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될 수 없으며, ⑤ 증인 이원태, 김영길의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 등에 의하면 시반현상이나 시체경직 정도, 위 내용물의 소화상태, 직장체온 측정결과 등에 의하여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사건 당일 05:00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보이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인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
3. 당원의 판단
가. 이 사건의 쟁점
피고인이 사건 당일 03:30경 피해자와 함께 위 여관방에 투숙하였다가 07:00경 위 여관방을 혼자 나와 근무처인 신림9동 파출소로 가서 근무하고 10:00경 다시 위 여관방에 돌아 온 사실 및 그 때 비로소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사실은 기록상 뚜렷하므로,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피고인이 위 여관방에 머물러 있던 사건 당일 03:30경부터 07:00경 사이에 살해된 것인지(이 경우라면 피고인에 의한 범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피고인이 위 여관방을 떠난 사건 당일 07:00경부터 사체로 발견된 10:00경 사이에 살해된 것인지(이 경우에는 피고인 아닌 제3자에 의한 범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부에 달려 있다 할 것인바, 원심은 주로 위 사망시간대의 추정에 의지하여 피해자가 사건 당일 03:30경부터 07:00경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면서 그 외 사체발견을 전후하여 피고인이 보인 행동과 태도 등에 관한 정황증거를 더하여 피고인의 변소를 배척하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인정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그대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아래에서 살펴 보기로 한다.
나.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이 채택한 증거들에 대한 검토
(1) 사망시각의 추정과 관련된 증거에 대하여
① 이 점에 관한 증거들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먼저 현장감식 경찰관인 김영길의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과 그가 작성한 수사보고(수사기록 26,27면)의 기재에 의하면, 그는 사건 당일 14:30경부터 17:20경까지 사이에 이 사건 현장에서 감식활동을 했는데 15:10경을 기준으로 시체현상을 관찰하니 지관절(지관절), 족관절까지 시체경직이 와 있는 등 시반 및 시체경직이 현저하며 각막이 혼탁하였고, 범인의 머리카락 등이 있는지 유무를 확인하고 경직의 진행정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손가락마디를 펴보니 완전경직되어 있어 억지로 폈고, 그 때 직장온도측정 온도계를 직장 속에 30분 넣은 후 재어 보니 사건 당일 15:30 현재 섭씨 23도였으며, 당시는 11월 하순이었지만 방안이고 문이 닫혀 있었으므로 추운 편도 더운 편도 아니고 가을 날씨와 비슷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로서 부검의사이기도 한 이원태의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과 그가 작성한 질의회보(수사기록 37-1면)의 기재에 의하면, 위 김영길의 시체소견 및 직장체온측정이 사실임을 전제로 하여, 시반현상이 현저하고 시체경직이 지관절 부위까지 나타나는 데는 사망후 10-12시간이 경과하였다고 볼 수 있어 사망시각은 03:10부터 05:10 사이로 추정할 수 있고, 15:30경 직장체온이 섭씨 23도였다면 뮬러의 공식에 의해 사망후 12시간 내외가 경과한 것으로 판단되어 사망시각은 03:30경 전후로 추정할 수 있으며, 통상 위 속의 내용물은 식후 1시간 정도 경과하면 위에 충만하여 있고 조금 소화된 상태이며, 2-3시간 경과하면 위 내용물은 그대로 있으나 약간 흐물흐물 해지고, 3-4시간 경과하면 위 내용물이 상당히 빠져 나가고, 5-6시간 경과하면 위 내용물이 없게 되는데, 피해자의 경우 사체부검시 육안으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위 내용물이 황색의 반죽상으로 그 소화정도로 보아 식후 2-3시간 지나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으로, 이러한 시반현상이나 시체경직 정도, 또는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는 개인차가 있어 사망추정시각에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4-5시간의 편차가 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이 사건의 경우는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아무리 사망시각을 늦추어 잡더라도 05:00 이전에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한편 피해자의 동생인 공소외 2의 검찰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의 최후 취식시각이 사건 당일 02:00경이었다는 것이고, 의사인 문국진의 검찰 진술에 의하면 기록에 나타난 부검 및 감정결과를 통하여 보건대 피해자의 사망시각은 늦어도 사건 당일 07:00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시반현상 및 시체경직 정도에 의한 추정
가. 먼저 위 김영길의 시체소견이 정확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위 김영길이 사건 당일 작성한 현장임장일지(수사기록 844면, 위 김영길은 사건 발생 이틀 후에 작성한 위 수사보고만 기록에 편철하여 두었다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비로소 위 일지를 제출하였다)에는 '경직상태는 완전경직, 시반정도는 배면전신'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지관절까지의 경직이나 각막혼탁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위 김영길은 현장감식 당시 경직의 진행정도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손가락마디(오른손가락이다)를 펴보았는데 완전경직되어 있어 억지로 폈다고 하나, 위 이원태의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 207, 1017면)에 의하면 쥐어져 있던 손가락이 펴졌다고 하면 완전강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고, 피해자의 사체를 검안한 의사인 이상탁의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 506면)에 의하면 10-14시간 정도의 경직상태에서는 손가락을 펼 수 없고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인데, 위 김영길이 손가락을 펴고 난 후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체사진(수사기록 850면)을, 이 사건 범행현장에 최초로 출동한 순경인 은동호가 사건 당일 10:04경에 촬영한 사체사진(수사기록 35면)과 비교하여 볼 때 피해자의 오른손가락은 부러지거나 한 흔적이 없이 자연스럽게 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피고인은 사건 당일 10:00경 위 여관방에 다시 들어가 시계를 차고 있는 피해자의 왼팔을 들어 보았더니 잠든 사람의 팔처럼 힘없이 가볍게 들렸다고 진술하고 있는데(수사기록 662,672면), 그 진술이 시체의 강직정도가 사망시각추정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한다.
위와 같은 점으로 보면 당시의 시체현상이 과연 위 김영길의 진술과 같은 것이었는지 의문이 없을 수 없다.
나. 한편 위 이원태의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 223,224,1016, 1017면)이나 기록에 편철된 법의학 관련서적(공판기록 576면 이하)에 의하면, 시체경직은 사후 6,7시간이 지나면 사지의 큰 관절을 비롯하여 전신에 출현되며 7,8시간이 지나면 손가락, 발가락에도 출현되고, 시반 및 시체경직의 속도는 사안과 개인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어 4,5시간 정도의 편차는 흔히 있을 수 있으며, 당시의 시체현상이 위 현장임장일지에 기재된 바와 같이 '경직상태는 완전경직, 시반정도는 배면전신'이라고만 표현된다면 사후 7,8시간이 경과한 것, 즉 사망시각을 07:10부터 08:10 사이로 추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결국 시반현상 및 시체경직 정도에 의하여 한 사망시각의 추정은, 그 추정의 기초가 되는 시체현상의 파악이 잘못된 것이거나 어디까지나 상당한 편차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추정에 불과한 것이어서 피고인이 위 여관방을 나간 시각인 07:00경 이전에 피해자가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할 것이다.
③ 직장체온에 의한 추정
가.위 이원태의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224,225,1017-1019면)과 위 법의학 관련서적에 의하면, 사체의 직장온도는 주위의 환경, 온도, 습도, 영양상태, 착의상태, 성별 등 많은 인자들에 의하여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측정할 때에는 30분이나 60분 간격으로 3회 이상 측정하여 그 하강율을 구한 다음 이를 근거로 역산하는 방법으로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해야 비교적 정확하다는 것이고, 또 그 측정방법도 온도계를 항문으로부터 최소한 20cm 이상 넣어 측정해야 된다는 것인데, 위 김영길은 단 한번 온도계를 7cm 정도 삽입하여 측정하였다는 것이므로(공판 236면) 과연 위 김영길이 사건 당일 15:30경 측정한 직장온도가 그 추정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정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나.위 질의회보에 의하면, 위 이원태는 겨울에 기름보일러를 이용 난방하고 있는 여관 방실 내에서 변사자가 전라의 상태인 점을 감안하여 이른바 뮬러의 공식에 의하여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하였다는 것이나, 위 여관주인 부부인 김복규나 홍사숙의 진술(공판기록 245,259면)에 의하면 위 여관방은 기름보일러에 의한 난방이 계속되었던 것이 아니라 사건 당일 07:00부터 09:00까지 2시간만 작동하고 난방을 꺼놓은 상태였다는 것이고, 또 당일 10:00경부터는 위 여관방의 출입문이 계속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수사기록 214면 등), 14:30부터 17:20까지는 창문까지 모두 열어 놓아 실내 공기가 바깥 날씨와 별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져(수사기록 837면 등), 위 추정이 주위환경, 기온 등의 인자가 적절히 감안된 추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할 것이다.
다.더구나 직장체온측정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한 것 중에는 12시간의 차이를 보인 예도 있다는 것이 위 이원태의 진술이고 보면(공판기록 1019면) 위 김영길이 위와 같이 부정확하게 측정한 직장체온을 기준으로 제반 인자가 적절히 감안되지 아니한 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위 사망시각추정도 피해자가 07:00 이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④ 위 내용물에 의한 추정
가. 공소외 2의 검찰 진술(수사기록 828-831면)에 의하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신림동 소재 솔밭주점에서 과일류 안주로 술을 마시다가 02:30경 위 주점을 나갔고, 위 솔밭주점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기로 한 서울대학교 정문 앞까지는 택시로 10분 남짓 걸린다는 것이고,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03:20경 위 정문 앞 약속장소에 영업용 택시를 타고 도착하였다는 것이며(그 동안의 피해자의 행적은 밝혀져 있지 않다), 부검감정서의 기재(수사기록 737면)에 의하면 피해자의 위 내용물에서 과일류 외에 쌀밥알, 파, 고추가루 등도 검출된다는 것인바, 위와 같은 점으로 보면 피해자는 위 솔밭주점을 나와서 피고인을 만나기 전인 03:00경 전후에 식사를 하였던 것이 아닌가 보이기도 한다.
나.한편 위 이원태의 원심법정에서의 진술(공판기록 1015,1016면)에 의하면 위 내용물의 소화정도는 사람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개인의 연령, 체질, 성별 등 많은 인자로 인하여 이례적이긴 하나 4-5시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사람의 위에서 음식물이 소화되는 시간은 활동하는 낮에 비하여 잠자는 밤에는 통상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므로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최후취식시각이 02:30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사망시간대를 조금 넓게 잡는다면 피해자가 사건 당일 07:00에서 08:30 사이에 사망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다.결국 위 내용물에 의한 사망시각추정 역시 피해자가 07:00경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⑤ 위 문국진의 검찰 진술은 위 이원태의 진술 이상의 증거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 반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02:30경까지 양주 2,3잔, 맥주 3홉짜리 1병 정도를 마셨으나(공판 935,1220면) 부검결과 혈중 알콜이 검출되지 아니하였고(수사기록 737면), 또 사망시 생긴 배뇨흔적이 상당히 큰 점(공판기록 508면, 수사기록 35면)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위 여관에 투숙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사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할 것이다.
⑥ 결국 위와 같은 사망시각의 추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정에 불과한 것이고 피해자가 사건 당일 07:00 이전에 살해되었다고 단정지을 증거로 삼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2) 피고인의 행동 및 태도와 관련된 증거에 대하여
① 여관주인인 김복규가 인터폰을 눌렀을 때 피고인이 바로 받았다는 점. 이 점에 관한 위 김복규의 제1심법정에서의 진술은, 피고인으로부터 08:00에 깨워 달라는 인터폰을 받고 자다가 07:00경에 괘종시계가 울려 잠에서 깨어나 201호실에서 07:00에 깨워 달라고 한 것을 피고인이 투숙한 203호실로 착각하여 203호실 인터폰을 똑똑하고 짧게 두번 눌렀더니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놓았는데(그 후 201호실은 오래 눌렀다) 203호실의 인터폰이 놓여 있는 탁자와 침대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 탁자가 있는 쪽의 침대 위에서 자더라도 두번 신호가 울리는 동안 인터폰을 바로 들었다 놓을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이미 신호가 갈 무렵 깨어 있었다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김복규는 사건 당일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인터폰을 짧게 두번 눌렀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으며 나아가 의심가는 사람이나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도 전혀 모른다고 대답하였는데(수사기록 111,117면), 1992. 12. 1.의 경찰 2회 조사시에는 인터폰을 두번 누르니까 바로 받아 수화기를 놓더라고 하다가(수사기록 127면), 보름 이상이 지난 같은 달 16.의 검찰조사에서는 인터폰을 짧게 두번 눌렀더니 곧바로 받더라면서 직감에 피고인이 당시 깨어나 있으면서 인터폰 옆에 앉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범인이라고 짐작한다는 진술을 하고 있고(수사기록 700면), 제1심법정에서는 검찰에서와 같은 취지에서 위와 같이 진술하고 있는바, 그 진술이 전후 일관되지 아니함은 물론 시간의 경과와 함께 오히려 구체적인 내용으로 변해 가고 있고, 그 내용도 결국은 짐작 내지 추측에 불과한 것이어서 쉽사리 채용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위 김복규의 진술은 인터폰을 누른 회수나 피고인이 받을 때까지의 시간적 간격에 대하여서만이 아니라, 피고인이 위 203호실에 투숙하기 전에 한 청소상태에 대하여도, 검찰에서는 재털이만 비우고 대강 훑어 보고 나왔다고 한 반면 경찰이나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는 시트가 깨끗하여 교체하지 않고 걷어서 탁탁 턴 다음 뒤집어 깔아 놓았고 쓰레기통 휴지를 치우고 침대 머리맡과 방바닥을 걸레로 깨끗하게 청소하였다고 하고, 피고인이 위 여관을 나간 시각에 대하여도, 경찰 조사시 처음에는 07:30경으로, 나중에는 잘 모른다고 하다가, 제1심법정에서는 다시 07:20 내지 07:30경이라고 진술하는 등(신림9동 파출소에 근무하는 김성환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07:10 이전에 신림9동 파출소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일관성이 없어 그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위 여관방의 폭은 2.7m 정도에 불과하여(수사기록 507면) 인터폰이 놓여 있던 곳과 피고인이 누워 있었다고 하는 그 반대편 벽쪽까지는 두세 걸음에 지나지 아니하는 점으로 보면 피고인이 인터폰이 울린 지 얼마 안되어 받았다고 하여 당시 피고인이 깨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②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살했다고 말한 점
이 점에 관하여 위 홍사숙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살했다고 말했다고 진술하나(공판기록 261면) 피고인은 물론 위 은동호도 피고인이 피해자가 자살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진술하고 있어(공판기록 32,324면) 과연 피고인이 단정적으로 피해자가 자살했다고 말했다고 할 수 있을런지 우선 의문이다.
그리고 설사 피고인이 그와 같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하더라도, 현장보존조치를 취하던 위 은동호 조차도 피해자의 입가에 휴지가 소량 묻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약가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고(공판기록 326면), 경찰의 변사사건발생보고에도 약물중독사로 추정된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수사기록 9,10면)이나, 피고인은 시력이 좌 0.3, 우 0.4 정도 밖에 되지 아니하는데 당시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점 등으로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입가에 묻어 있는 물질이 음독한 약가루의 잔량인 것으로 오인하여 자살했다고 말했을 수도 충분히 있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 자신이 피해자를 살해한 진범이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했다고 보아야만 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③ 피고인이 피해자의 소지품을 찾으려 하였고, 피해자의 핸드백 속의 내용물을 알고 있었다는 점
위 은동호는, 혼자말로 피해자의 소지품이 없다고 말했을 때 피고인이 그것을 찾으려고 방안 캐비넷과 복도 휴지통을 뒤지려고 하는 등 의아스러운 행동을 보였고, 또 피고인은 피해자의 소지품이 욕실에서 발견되기 이전인 사건 당일 10:30경 신림6동 파출소로 연행되었는데, 거기서 박배원 순경에게 피해자의 수표와 목걸이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였다고 진술하나,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는 하나의 정황증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할만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3) 그 외의 증거에 대하여
① 피고인이 위 여관을 나간 후 외부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는 점 위 여관주인 부부인 김복규와 홍사숙은 피고인이 위 여관을 나간 후 외부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하나, 이는 그들로서는 외부의 침입자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일 뿐 외부의 침입자가 없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② 사건 당일 04:00경 비명소리가 났다는 점
김숙이는 경찰에서 사건 당일 03:30경 위 여관 307호실에 투숙하였는데 04:00경 위 여관 어느 방에서인가 여자의 싸우는 소리가 났고 짤막하게 '악'하는 비명소리가 나더니 그 뒤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아니하여 누가 싸우나고 생각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위 김숙이는 검찰에서는 비디오를 보고 있다가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였는데(수사기록 914면), 위 김복규의 진술에 의하면 그 날 03:30부터 07:00까지 사이에 비디오를 틀어 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며, 자신도 04:00가 약간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싸우는 소리 같은 것은 듣지 못하였다는 것인바(공판기록 255면, 수사기록 705,706면), 이로써 보면 위 김숙이의 진술도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할 것이다.
(4) 결국 원심이 유지한 제1심판결이 채택한 증거들은 위와 같이 믿기 어려운 것이거나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의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여러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다. 피고인의 변소를 뒷받침하는 사정들에 대한 음미
(1) 살인의 동기에 대하여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여 증거능력이 없는 경찰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 이외에는 공소사실과 같은 살인의 동기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
피해자가 근무하던 장미카페의 주인인 최영녀, 같은 종업원이던 이순화, 피해자의 동생인 공소외 2 등 피해자 주변인물이나 피고인의 누나인 공소외 3의 각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과 피해자가 결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다투고 고민하거나 상대방을 원망하고 괴롭힌 적은 없으며, 오히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간혹 만나 성관계도 나누며 어려울 때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등 어느 정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키 어렵지 아니하여 여기서 무슨 살해의 동기가 될만한 단서를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여관에 들어가 한 차례 성관계를 나누기까지 한 남녀 사이에서 다시 성교할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였다고 하여 화를 내어 때린다는 것이나 한 차례 맞았다고 하여 돌변하여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악담을 한다는 것은 흔히 상정키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설사 피해자가 그러한 욕설과 악담을 하였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그에 격분하여 살해할 결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피고인과 피해자의 평소 관계나 위 여관에 들어간 경위,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아니한다.
(2) 제3자의 침입 가능성
① 제3자의 정액이 묻어 있는 휴지의 발견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혈액형이 모두 A형임은 기록상 명백하다.(수사기록 737,872면) 그런데 위 은동호 순경이 사고신고를 받고 처음 출동하였을 때부터 위 여관방 침대시트 위 피해자의 머리 양쪽에는 찢어진 휴지조각들이 널려 있었고(이는 범인이 휴지로 피해자의 입과 코를 틀어막고 이에 대하여 피해자가 반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 방바닥 한가운데에는 휴지 뭉쳐진 것이 하나 떨어져 있었는데(수사기록 35,626,628-630면의 각 사진), 위 휴지조각 약 20점과 휴지뭉치 1개는 증제8호 및 증제9호(이는 압수물 번호가 아니라 수사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하면서 편의상 붙인 번호이다. 이하 증제8호, 증제9호라고 한다)로 수거되었는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과학부 생물학과 감정인 백형순의 정액검출 및 혈액형 감정결과(수사기록 751,912면)와 위 백형순의 검찰에서의 진술(수사기록 873면 이하)에 의하면, 증제8호 중의 여러 조각과 증제9호에서는 모두 정액이 검출되는데(단 질액과 인체분비물이 혼합된 상태라고 한다) 정액이 검출된 증제8호의 휴지조각들 중에는 혈액형이 A형인 조각과 AB형인 조각이 섞여 있으며, 증제9호는 혈액형이 AB형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이정빈의 유전자 감정결과에 의하면(공판기록 1272,1281면), 증제8호 중 혈흔으로 보이는 부분 2개소와 정액반으로 보이는 부분 8개소에서 채취한 가검물 및 피고인으로부터 채취한 혈액에서 각 핵산을 추출하고, 그 추출된 핵산에서 PCR 증폭법을 사용하여 YNZ22, TC-11, vWF 유전자 부위를 증폭한 후 그 유전자형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감정한 결과[부모와 자 사이의 유전양상은 부자 사이에 1개의 유전자가 유전되고 모자 사이에 1개의 유전자가 유전되어 자에게는 부성인자와 모성인자가 있게 되며 이는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 없이 유전자 자신의 형질을 발휘하게 되는바, 어떤 개인의 한 유전자 부위에 있는 유전자(대립유전자라고 한다)의 종류 수는 1개이거나(부성인자와 모성인자가 같을 경우) 2개로서(부성인자와 모성인자가 다를 경우) 2개를 넘지 않으며, 우리나라 사람에서의 발현양상은 YNZ22 부위가 Y1형에서 Y14형까지 14종, TC-11 부위가 T2형에서 T8형까지 7종, vWF 부위가 F3형에서 F10형까지 8종의 서로 다른 유전자형이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YNZ22형으로는 Y2형, Y3형, Y4형의 3종이 검출되어 적어도 2인 이상에서 유래된 핵산이 있는 것으로, TC-11형으로는 T2형, T3형, T4형, T6형, T7형, T8형의 6종이 검출되어 적어도 3인 이상에서 유래된 핵산이 있는 것으로, vWF형으로는 F3형, F5형, F6형, F7형의 4종이 검출되어 적어도 2인 이상에서 유래된 핵산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피고인의 유전자형은 위 검출된 형에 포함되므로, 결론적으로 증제8호에는 피고인과 피해자 이외에 적어도 1인 이상의 제3자에게서 유래된 세포가 묻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범행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증제8호에는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것 이외에 혈액형이 AB형인 자의 정액 또는 세포도 묻어 있고, 증제9호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것이 아닌 혈액형이 AB형인 자의 정액이 묻어 있다면, 위 증제8호, 증제9호에 제3자의 정액 또는 세포가 묻어 있게 된 납득할 수 있는 경위가 밝혀지지 아니하는 한 피고인 아닌 제3자에 의한 범행의 가능성을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원심은 먼저, 피고인이 경찰공무원이라는 점과 피해자를 깨워서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새삼스레 자고 나온 여관에 다시 갔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위 여관방에 다시 들어간 때로부터 피고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여 현장을 보존할 때까지 사이에 현장을 변경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나, 피고인은 전투경찰로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경찰에 임용된 이래 계속 순찰차의 운전업무에만 종사하여 왔을 뿐 한번도 범죄수사업무에 종사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고, 사건 당일은 일요일로서 피고인의 비번날이었고, 그 날 10:50경 공소외 심창섭을 봉천본동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마침 피해자의 집도 그 부근이어서 피해자를 깨워서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하여 위 여관에 다시 갔다는 것이 별반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점으로 보면, 그러한 현장변경의 가능성을 쉽게 긍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나아가 보건대, 위 홍사숙, 은동호의 진술이나 112 신고사건 처리표(수사기록 199면)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은 10:00가 다되어 갈 무렵 위 여관에 다시 돌아와 위 여관방문을 두드리거나 인터폰을 하여 피해자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자 위 홍사숙으로부터 위 여관방의 비상열쇠를 받아(평소 사용하는 위 여관방의 열쇠는 당시 분실되고 없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피해자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 위 홍사숙에게 신고를 부탁하고 2층의 위 여관방에 올라 와 피해자의 상태를 살피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위 홍사숙에게 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그녀가 아직 신고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자 스스로 112 신고를 하였고(위 처리표에 의하면 피고인이 신고한 시각은 10:02:32이다), 그 신고사실이 관할 파출소인 신림6동 파출소에 연락되어 그 곳에 근무하는 위 은동호가 50m가량 떨어진 위 여관으로 달려 와 그 때부터 현장보존에 들어갔다는 것인바(위 처리표에 의하면 위 은동호가 도착한 시각은 10:04:02이다), 이에 의하면 피고인이 위 여관방에 다시 들어간 때로부터 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여 현장보존에 들어간 때까지 사이는 채 5분도 안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짧은 시간에 더구나 위 여관방문이 열려 있어 누구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황에서(실제 위 여관 207호실에 투숙하였던 공소외 이석철이 위 은동호가 도착하기 전에 피고인이 있던 위 203호실을 들여다 보기도 하였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피고인이 다른 사람의 정액이 묻어 있는 휴지조각 등을 자연스럽게 흩어 놓아 현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아니한다.
원심은 피해자의 질 속에서 혈액형이 A형인 정액만이 검출된 점에 비추어 제3의 인물이 피해자를 강간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고 또 제3의 인물이 침입하여 어떤 경위로든 사정을 하였다면 그 분비물을 닦는데 있어 새로운 휴지를 쓰던가 아니면 씻는 등의 방법을 택하지 하필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진 후 분비물을 닦아서 침대 밑에 버린 휴지를 주워서 자기의 분비물을 닦는데 다시 사용하였는지 선뜻 믿기지 아니한다고 하는바, 그와 같은 의문이 없지는 아니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의문이 피고인의 현장변경 가능성을 뒷받침하여 주거나 제3자의 침입 가능성을 배제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② 혈액형이 B형인 음모와 두모의 존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과학부 생물학과 감정인 이양한, 강필원의 모발 혈액형 감정결과(수사기록 745,746면)에 의하면, 위 여관방 침대카바 위에서 수거된 모발 중에는 B형으로 반응하는 두모 다수와 음모 2점이, 침대이불 위에서 수거된 모발 중에는 B형으로 반응하는 음모 2점이, 방바닥에서 수거된 모발 중에도 B형으로 반응하는 음모 2점이 각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원심은, 위 여관방에는 또다른 아베크족이 전날 저녁부터 사건 당일 03:00경까지 있다가 나갔으며, 그들이 나간 후 여관 주인인 위 김복규는 청소를 대충 한 점 및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여관의 특성에 비추어 위와 같이 B형의 두모 및 음모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제3자가 침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나, 위 김복규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투숙하기 전에 시트를 털고 뒤집어 깔아 놓는 등 나름대로 깨끗이 보이도록 청소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고, 또 대개의 경우 여관 객실은 깨끗이 청소하여 두는 것이 보통인 점 등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이 침대카바나 이불 위에서 B형의 두모 및 음모가 다수 발견되었다는 사실 또한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뒷받침하여 주는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③ 침대시트 위에서 발견된 족적
위 여관방 침대시트의 사진(수사기록 640,641,850면)을 살펴 보면, 그 침대시트에는 비록 희미하지만 족적 2개가 생겨 있음을 알 수 있고, 기록에 의하면 그 족적은 피고인의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원심은 현장감식 경찰관인 위 김영길의 진술을 채용하여 사체 발견후 위 각 사진을 촬영할 때까지 사이에 현장을 다녀 간 경찰관 등이 부주의하게 만든 족적인 것으로 본 듯 하나, 피해자의 모인 공소외 4 이외에는 피고인과 수사관계자 이외에 그 누구도 위 여관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인데, 범죄수사에 있어서 현장보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수사관계자가 피해자의 사체가 놓여 있는 침대시트 위에 신발을 신은 채 올라 갔다고 하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아니하고, 더구나 위 족적이 누구의 것인지도 밝혀지지 아니하였다면, 이 역시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시사하여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10만원권 수표 3매의 행방 장미카페 주인인 최영녀의 진술과 수표추적에 관한 각 수사보고서(수사기록 421,430,490,493,894,918면)의 기재에 의하면, 위 최영녀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1992. 11. 28.(토요일) 서울신탁은행 봉천동지점에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9매(수표번호 21993792-21993800)를 교부받아 그 중 3매를 피해자에게 빌려 주었는데, 위 9매의 수표 중 수표번호 끝자리가 2,4,5,7인 4매는 이 사건과 전혀 관계 없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5매 중 끝자리가 9,0인 2매는 위 최영녀로부터 최초로 취득한 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같은 해 12. 3.과 같은 달 17.에 공소외 김미희 또는 형제주유소의 구좌로 입금된 것이 확인되고 그 수표가 구겨져 있지 아니하였는 반면, 끝자리가 8인 수표는 아직까지 은행에 돌아오지 아니하고 있으며, 끝자리가 3,6인 2매는 같은 해 12. 3. 성명불상자가 그 뒷면에 일견 가명으로 보이는 '888-6966, 수한남'이라고 기재하여 서울신탁은행 신림동지점에서 현금으로 교환하여 갔는데, 위 2매의 수표는 당시 비슷한 형태로 구겨져 있었다는 것인바, 위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피해자가 위 최영녀로부터 빌려 이 사건 당시 소지하고 있다가 없어진 수표는 아마도 끝자리가 3,6,8인 수표 3매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피고인은 사건 당일인 같은 해 11. 29. 10:30경 신림6동 파출소로 연행되어 그 때부터 조사를 받다가 구속되었다는 것이므로, 같은 해 12. 3. 위 끝자리가 3,6인 수표 2매를 현금으로 교환하여 간 사람이 피고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피고인의 가족들이 제출한 진정서에 첨부된 주민등록등본에 의하면 우연히도 위 '수한남'을 거꾸로 한 '남한수'라는 사람이 당시 위 여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한 신림동 1520의 14.에 실제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면 위 끝자리가 3,6인 수표 2매가 어떠한 경위로 자신을 위 '수한남'이라고 나타낸 자(그는 위 '남한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 것인지 그 경위가 밝혀지지 아니한 단계에서는 섣불리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고, 오히려 자신을 위 '수한남'이라고 나타낸 자가 진범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4) 피고인이 위 여관을 나온 후 다시 돌아갈 때까지의 행동
신림9동 파출소 직원들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사건 당일 07:10경 파출소에 나와 09:00경까지 평상시와 다름 없이 정상적으로 근무하였고, 근무를 마친 후에는 동료들과 3,40분 가량 화투를 치며 놀다가 10:00가 조금 못되어 퇴근하였다는 것인바, 이러한 행동은 피해자를 살해하고 뜬 눈으로 밤새 사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터폰이 울리자 마자 받고 위 여관을 나온 사람의 행동으로서는 어울리지 아니한다.
(5) 위와 같이 피고인을 이 사건 범행의 범인으로 보기에는 갖가지 의문점이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그러한 의문점이 풀리기 전에는 피고인의 변소를 가볍게 배척하고 피고인을 진범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라. 결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당원의 판례이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있던 시간대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측의 소견은 피고인을 이 사건 범인으로 의심받게 하기에 족한 것이고, 또한 사체 발견후의 피고인의 언동에 석연치 아니한 점도 적지 아니하지만 위와 같이 여러 면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러한 의문점들을 심리하여 해소하지 아니한 채, 더욱이 피해자가 목이 눌려 살해되었다는 결과만으로 살인의 고의에 대한 증거도 없이 피고인이 이 사건 살인 범행을 한 것으로 단정해 버린 원심판결은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거나 증거의 가치판단을 그르친 위법이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할 것이고,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더 심리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