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미간행]
[1] 채무자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권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 이때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상당한 기간’의 범위
[2] 채무자가 소멸시효를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인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상당한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의 의미
[1]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3하, 1077)
원고 1 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병영)
대한민국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되지 아니함으로써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지라도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권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망 소외인(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의 유족들인 원고들이 망인의 사망원인에 대하여 재조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자 국방부가 2009. 12. 7.경 원고들에게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 사망원인을 알려줌으로써 원고들이 그 사망원인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어서 원심은, 원고들이 ‘상당한 기간’ 내에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제1심 및 원심이 채택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원고들이 망인의 사망에 따라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온 점, 2005. 12.경 원고 1을 국가유공자로 등재하였으나 이미 성년이 되어 보상금 수급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아무런 보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점, 원고들은 그동안 수차례 망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였으나 사고일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2009년에 조사결과를 통보받고서야 비로소 사망원인을 알게 된 점, 피고의 담당조사관이 사망원인에 대한 의혹 해소와 명예회복 및 보상 요구에 대하여 2009. 12. 7. 원고 1에게 조사결과와 민원회신 내용을 설명할 당시 새로운 진상조사결과만을 통보하였는데, 이때 보상과 별도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여지가 있을 것인지에 관하여는 담당자의 소관업무 영역 범위 등에 비추어 언급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던 점,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의 예우 외에 민사상 이중배상에 관하여 법률전문가도 법리오해를 할 소지가 큰데 원고들로서는 별도의 보상이 불가능하다는 공적 판단에 순응하는 것이 보통이지 추가적 보상책에 대한 법적 대책을 별도로 강구할 엄두를 내기는 어려워 보이는 점, 원고들은 생활고 등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워 법적 조언을 받는 데 사회경제적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소를 제기하지 못하다가 조사결과 통보를 받은 때로부터 1년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인을 통하여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이 사건 소 제기에 이르게 된 점,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지연된 기간은 피고 측이 망인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소요된 52년의 세월과 비교하여 그리 과도한 장기간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피고가 애초에 망인의 시신을 함부로 화장하여 사인과 진상을 은폐·호도하면서 책임자 문책을 회피하고 정당한 보상을 거절하는 등 진상규명결과를 통보하기까지 보여준 소극적 태도가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킴으로써 불법성이 계속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불법성이 종결된 진상규명 통보 시점으로부터는 5년 이내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점, 국가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군인과 유족에게 합당한 보상책을 마련하여 예우와 배려를 다 할 책무를 부담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원고들이 조사결과를 통보받은 때로부터 6개월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지 못하고 1년 4개월 정도 경과한 때에 비로소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의 시효소멸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할 수 없다.
앞에서 든 법리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소멸시효를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인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상당한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라 함은, 채무자인 국가가 입법 등을 통하여 피해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보상을 한다거나 채권자의 보상 요구에 응하여 기존의 법령·제도에 따른 보상절차를 진행하는 등 피해보상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가 이를 기다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 또는 채권자가 다른 법령에 의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는 보상을 청구함으로써 적어도 그 절차의 종결 시까지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등 채권자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6월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망인의 사망원인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6월 내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망인의 군복무 중 사망 피해의 보상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이나 기타 개별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사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피고 측 담당자가 2009. 12.경 원고들에게 망인의 사망원인을 알려줄 당시나 그 이후에 원고들에 대하여 보상 등 조치를 취할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는 사정도 인정되지 않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6월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원심이 설시하고 있는 사정들은 원고들이 망인의 사망원인을 통보받기 전에 발생하였으나 진상조사결과 통보에 의해 해소된 사정이거나 소송구조 등에 의하여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와 달리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지연된 것에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아 원고들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판단함으로써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