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결의무효확인][하집1988(1),363]
징계해임처분을 받고 9년 2개월 후에 그 무효확인을 소구하는 것이 신의칙위반이라고 한 예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사유가 있음을 알면서도 장기간 이를 문제삼지 않고 고용관계를 계속하였을 경우, 대개 사용자는 위 해고사유를 들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묵시적으로 포기하였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새삼스러이 그 해고사유를 들어 근로자를 해고함은 그동안 근로자에게 부여한 신뢰를 배반하는 것으로서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인 바, 이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 있어서도 해임을 당한 후에 그 해임에 이른 경위나 그 의미를 알고도 그 처분에 승복하고 장기간 그 효력을 다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면 당해 근로자로서는 그 해임의 효력을 다툴 의사를 포기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당해 근로자의 위와 같은 행동에 의하여 사용자는 당해 근로자가 그 해임의 효력을 다툴 의사를 포기하였다는 신뢰를 부여받아 그에 기하여 인사질서 및 경영조직을 구축하여 오게 된다 할 것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돌연 이전에 받은 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위와 같은 노사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다.
대법원 1984.1.31. 선고 83누547 판결(요특III 행정소송법[행정소송판결일반] (82)1031면 공725호457)
원고
한국전력공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1978.7.7.에 한 1978.7.5.자 징계해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라는 판결.
1. 피고의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원고가 '피고공사의 전신인 한국전력주식회사'(이하, 피고공사라고 줄여쓴다)의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78.7.7. 징계 해임된 사실, 피고공사는 원고가 1977.경 수용가로부터 금품을 받음으로써 피고공사의 취업규칙 제10조에 정한 성실의무에 관한 규정과 제11조에 정한 회사 거래처로부터 증여를 받는 행위,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등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여 같은 규칙 제75조 제1,2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1978.6.16. 제19차 징계심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원고에 대하여 1978.7.5.까지 사직원 제출을 전제로 한 권고사직결의를 한 바, 이에 원고가 1978.7.3. 사직원을 제출하였으나 피고공사에서는 원고가 위 권고사직결의의 원인이 된 비위사실을 무마하기 위하여 상관에게 금품을 제공하였다는 새로운 비위사실이 적발되었다고 하여 위 권고사직결의의 집행을 보류하고 다시 1978.7.5. 위 위원회에서 재심의 한 결과 원고를 해임하기로 의결하여 앞서 본 날짜에 징계해임처분을 하게 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원고가 피고공사의 원고에 대한 위 징계해임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본안에 앞서, 원고는 위 징계심사위원회로부터 권고사직결의를 받은 후 1978.7.3. 사직원을 제출할 때 원고가 피고공사로부터 퇴직위로금을 수령한 뒤에는 회사에 대한 금전채권 기타 일체의 권리주장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바 있고, 그뒤 1978.7.21. 퇴직금 10,537,150원을 수령하였는 바, 그렇다면 이 사건 소의 제기는 이른바 청구권포기의 특약에 위반한 것으로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는 것이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과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 제9호증(합의서), 을 제17호증(퇴직금 지급조서)의 각 기재에 의하면, 원고는 1978.7.3. 사직원을 제출할 때 퇴사위로금 수령후에는 회사에 대한 금전채권 기타 일체의 권리주장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출한 바 있고, 1978.7.7. 원고가 징계해임처분을 받은 후 1978.7.21. 퇴직금 10,537,150원을 수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으나, 위 사실들과 앞에 인정한 사실을 모아 보면, 위 합의서는 원고가 당초의 권고사직결의에 의하여 의원면직으로 처리될 것을 전제로 하여 제출한 것이고 위 합의서를 제출할 당시에 원고로서는 후에 징계해임처분을 받는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임이 명백한 바, 그렇다면 위 합의서에 기재된 "기타 일체의 권리주장"에 그후 원고가 받게 된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주장까지 포함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고가 위 합의서의 제출로서 위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툴 권리까지 포기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없다.
2.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원고는 (1) 위 징계심사위원회에서 권고사직을 결의하는 것은 피고공사의 취업관리요령 제39조에 의한 것인데, 같은 조항에 의하면 권고사직결의를 받은 자가 그 지정기일까지 사직원을 제출하면 의원면직으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고, 원고는 위 권고사직결의에 따라 지정된 기일내에 피고공사에게 사직원을 제출하였으니 피고공사는 원고를 의원면직으로 처리하여야 할 것임에도 징계해임처분을 하였으니 그 징계해임처분은 위 취업관리요령 제39조에 위반한 것이고, (2) 징계처분에 관하여 일단 위 징계심사위원회가 결의한 것을 재심의하여 더 불리한 처분을 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3) 가사 재심의할 수 있다 하더라도 피고공사는 위 두번째의 징계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원고의 비위사실을 재심의함에 있어서 위 취업관리요령에 정한 본인 소환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 취업관리요령 제31조 내지 제32조를 위반하였으므로, 원고에 대한 징계해임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함에 대하여, 피고는 이를 다투고, 나아가 원고는 위 징계해임처분을 받은 뒤 피고공사의 취업관리요령에 정해진 불복절차를 밟지 않고 이의없이 승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후 유사한 사안으로 징계를 받은 다른 동료들이 소송의 제기 등으로 그 징계처분의 효력을 다툴 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피고는 원고가 더 이상 위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고 그에 기하여 새로운 인사질서를 구축하였는 바, 그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위 징계해임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경과된 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위 징계해임처분의 무효확인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나. 그렇다면, 피고공사가 1978.7.7. 원고에게 한 위 징계해임처분이 그 절차에 있어서 부적법하였는가의 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과연 원고가 이제와서 위 징계해임처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는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1) 앞에 인정한 사실과 각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3호증의2(취업관리요령), 을 제12호증(재심의 의뢰), 을 제13호증(기안용지), 을 제14호증(회의록), 을 제25, 26, 28, 29호증(각 판결), 을 제27, 30호증(각 결정)의 각 기재, 증인 전성욱의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공사의 거래처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유사한 비위사실이 적발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피고공사 징계심사위원회의 심의에 회부되어 권고사직의 결의를 받고 그에 따라 사직원을 제출하였으나 위 결의후에 원고가 위 비위사실에 관련하여 무마조로 상관에게 금품을 제공하였다는 새로운 비위사실이 적발되어 당초의 비위사실에 관하여 재심의 받은 결과 위 권고사직결의가 취소되고 징계해임처분을 받은 사실, 그후 원고는 1978.7.21. 권고사직결의에 따라 의원면직될 경우에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의 반액을 이의 없이 수령한 사실, 한편 피고공사의 취업관리요령 제37조에는 징계절차가 제 사규에 위반되거나 처분이 심히 부당할 때, 징계절차가 공정성을 결여한 때 등의 경우에 해당할 때에는 징계처분장을 받은 날로부터 7일이내에 항고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원고는 피고공사에 대하여 위 징계해임처분의 절차의 위법성 혹은 처분의 부당성을 들어 항고한 일이 없는 사실, 원고가 징계처분을 받을 당시 원고와 유사한 사안으로 권고사직, 해임 등의 처분을 받은 원고의 동료직원들 중 소외 1 외 37명은 1980. 당원에 피고공사가 한 징계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고 소를 제기하여 청구기각의 판결을 선고받고, 그중 소외 1 외 26명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여 1982.1.19. 소외 2는 청구인용의 판결을 선고받고 나머지 항소인들은 항소기각의 판결을 선고 받았으며, 소외 1 외 15명이 상고를 제기한 결과 그중 소외 3, 4, 5, 6은 상고허가결정을 받고 1982.10.26. 대법원으로부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는 판결을 선고받은 다음 환송후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1983.3.22. 청구인용판결을 선고받아 1984.3.13.경 위 판결이 확정된 사실, 소외 2는 원고와 마찬가지로 당초 피고공사로부터 권고사직결의를 받고 사직원을 제출하였으나 의원면직으로 처리되지 않고 징계해임되었으며 소외 3, 4, 5, 6은 징계심사위원회에서 권고사직결의를 받았으나 사직원을 제출하지 아니하자 피고공사에서 재차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임결의를 하면서 위 소외인들을 소환하지 아니하였는데, 위 1982.1.19.자 판결과 1983.3.22.자 판결은 각 소외 2 등에 대한 위와 같은 징계해임절차의 위법성을 들어 소외인들에 대한 징계해임처분의 무효를 확인한 판결인 사실, 그러나 원고는 위 다른 징계대상자들과는 달리 원고가 받은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징계해임된 다음해인 1979.부터 1983.9.경까지 고등학교 야구감독으로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여 오다가 위 1983.9.경 이후에는 실직하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중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달리 반증이 없으며, 이 사건 소송이 1987.9.14.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다.
(2) 살피건대,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법적안정성은 노사쌍방에게 모두 매우 긴요한 것으로서 사용자의 측면에 있어서는 그 경영질서의 확보에 따른 효율적 경영을 위하여, 노동자의 측면에 있어서는 생활안정을 위하여 노사간의 법적분쟁의 조기해결이 요청되는 것이라 할 것인 바, 이러한 점은 노동조합법 제40조 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권리침해가 있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대한 구제신청을 부당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제기할 수 있게 한 것, 근로기준법 제41조 , 제93조 에서 근로기준법상의 임금청구권과 재해보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각 3년의 단기로 규정한 것 등에 의하여 노동관계법에 구현되고 있다.
위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노사간 법적분쟁의 조기해결에 대한 요청은 노사간 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법이 이러한 분쟁에 관하여 소멸시효나 제소기간을 규정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도 부정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사유가 있음을 알면서도 장기간 이를 문제삼지 않고 고용관계를 계속하였을 경우 많은 경우에 사용자는 위 해고사유를 들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묵시적으로 포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할 것이고, 따라서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새삼스러이 그 해고사유를 들어 근로자를 해고함은 그간 근로자에게 부여한 신뢰를 배반하는 것으로서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인 바, 이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 있어서도 해임을 당한 후에 그 해임에 이른 경위나 그 의미를 알고도 그 처분에 승복하고 장기간 그 효력을 다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면 당해 근로자로서는 그 해임의 효력을 다툴 의사를 포기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당해 근로자의 위와 같은 행동에 의하여 사용자는 당해 근로자가 그 해임의 효력을 다툴 의사를 포기하였다는 신뢰를 부여받아 그에 기하여 인사질서 및 경영조직을 구축하여 오게 된다 할 것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돌연 이전에 받은 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어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위와 같은 노사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신의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는 1978.7.7. 징계해임처분을 받고나서 그 절차의 위법성 등을 다투어 항고를 제기한 일이 없고 당초 권고사직 결의에 의하여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의 반액에 불과한 퇴직금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이의를 유보하지 아니하였으며, 원고와 마찬가지로 피고공사의 권고사직결의통고를 받고 사직원을 제출하였음에도 징계해임된 소외 2가 그 징계해임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82.1.12. 서울고등법원으로 부터 승소판결을 받고 또 소외 4, 6 등이 그 징계해임결의를 한 인사위원회에서 같은 소외인들을 소환하지 아니하였다하여 1982.10.26. 대법원의 위 파기환송판결을 받은 후 1983.3.22. 환송법원에서의 청구인용판결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임에도, 원고 자신은 그에 대한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다른 직장에서 생업에 열중하여 징계해임처분이 있은 뒤로 9년 2개월이 경과되었는 바, 사정이 그와 같다면, 원고는 위와 같은 제반의 행위로써 피고에 대하여 원고에 대한 위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아니한다는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고 따라서, 원고가 부여한 위 신뢰에 기하여 원고가 해임되었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인사질서를 구축하고 경영조직을 운영하여 온 피고에 대하여 돌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여 원고에 대한 징계해임 처분의 절차상의 위법성을 들어 그 무효확인을 주장하는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다. 그러므로, 나머지 점에 나아가 판단할 필요없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부당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고, 소송비용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9조 를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