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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0. 3. 30. 선고 98헌마206 결정문 [중재요청불이행 위헌확인]

[결정문]

청구인

【당 사 자】

청 구 인 석○기 외 4인

대리인 변호사 최영도

법무법인 안산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임종인 외 1인

법무법인 삼일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김준곤 외 4인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청구인 석○기, 강○중, 조○수는 8·15 해방전 일본군에 징용되어 군속으로 종사중 부상을 입은 한국인들로서 일본 거주자이고, 청구외 망 진○일, 망 정○근 또한 같은 경위로 부상을 입은 한국인들로서 각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하였으며, 청구인 진○일은 위 망 진○일의 유족, 청구인 정○진은 위 망 정○근의 유족이다.

(2)청구인들은 일본국에서 일본국 법률인 전상병자전몰자유족등원호법(1952. 4. 30. 법률 제127호, 이하 ‘원호법’이라고만 한다)에 의하여 군인·군속 또는 그 유족에게 군인·군속의 공무상 부상 등에 관하여 지급되는 연금을 청구하였으나, 원호법 부칙의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당분간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근거하여 각하되었다.

(3)그러자 청구인들은 불복절차를 거친 다음 소송을 제기하여(단 조○수는 제외) 위 처분에 대하여 다투는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국의 양국에서 청구인들에 대한 보상을 외면하는 이유는,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보상청구권이 1965. 6. 22. 체결되고 1965. 12. 18. 발효된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재산및청구권에관한문제의해결과경제협력에관한협정(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고 한다)에 의해 타결된 것인지에 관해서 양국정부가 의견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우리나라 정부에 양국간의 위와 같은 해석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중재회부를 해줄 것을 청원하였으나 이를 받아주지 않자, 청구인들은 그와 같은 공권력행사의 부작위는 재외국민보호의무에 관한 헌법 제2조 제2항, 헌법 제10조, 제37조 등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위헌확인을 구한다며 1998. 6. 22.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우리나라 정부가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보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해서 타결된 것인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정부간의 의견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중재회부를 하지 아니한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2.청구인들의 주장과 관계기관의 의견 요지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청구인들은 재일 피징용부상자 본인들 혹은 그 유족으로서일본국의 원호법에 의한 연금을 지급

받을 요건에 해당되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적용을 거절당하여 왔고,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하였는바, 그 이유는 이 사건 협정의 타결대상에서 제외되는 권리 등에 관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2항 (a)호의 해석과 관련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보상청구권이 위 조항에서 말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포함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한·일 양국정부간에 의견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한편, 이 사건 협정에 의하면 이와 같이 양국 정부간에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다툼이 있을 경우에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되어 있고, 중재에 회부될 경우 신속히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며, 부상에 의해 장애가 남은 당사자인 청구인들은 노령으로서 보상이 긴급히 요구되는 형편이다. 이와 달리 단순한 외교적 교섭에 의한 해결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3)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 사건 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우리나라 정부로서는 헌법 제2조 제2항이 규정한 재외국민보호의무에 비추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을 둘러싼 위와 같은 양국간의 견해차이를 해결하여 청구인들의 권리를 보호하여줄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고, 그 밖에도 헌법 제10조의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 제11조의 평등권, 나아가 불완전한 선행행위를 한 당사자로서 조리상으로도 위와 같은 보호의무가 있다.

(4)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청구인들이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의 보상문제에 관해 일본국 정부에 중재요청을 하여 줄 것을 청원하였음에도 부작위에 그치고 있는바, 이러한 공권력의 불행사는 위의 헌법규정들과 재산권의 보장에 관한 헌법 제23조 등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 외교통상부장관의 의견

(1) 적법요건에 관하여

청구인들은 일본국에서 소송을 진행중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소송제기 등 권리구제절차를 취한 일이 없으므로, 이 헌법소원은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를 먼저 거치지 아니하여 보충성요건을 결한다. 또,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정부의 외교적 경로에 의한 해결 또는 중재요청은 정책적 판단사항이며 의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

(2) 본안에 관하여

정부는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의 보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의 타결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즉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2항 (a)호의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점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와 상반된 견해를 취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의 보상청구권도 타결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분쟁해결 수단에 관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에서는 우선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정하고 있고, 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중재요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분쟁의평화적해결에관한국제연합헌장 제33조 제1항에 비추어 보거나 일반 국제법상으로도 분쟁해결방법의 선택은 국익을 고려하여 외교적으로 판단할 문제이지 제3자에 의한 해결에 능동적으로 회부할 법적 의무를 국민에 대해 부담한다고는 할 수 없다.

정부는 1991.이래 매년 개최되는 한·일 아주국장회의에서 이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을 일본측이 받아들이도록 촉구하여 왔고, 앞으로도 외교적 경로를 통한 해결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3. 판 단

가. 이 사건 협정 관계조항의 내용

1965. 6. 22. 우리나라와 일본국사이에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체결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2(제2항)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하는 한편, 같은 조 제2항은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 …… 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a)호와 (b)호를 두어 타결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a)호는 일괄타결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을 들고 있다. 또한 1965. 6. 22. 체결되고 1965. 12. 18. 발효된 이 사건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제2조는 이 사건 협정 제2조에 관하여,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a항), “거주한”이라 함은 동조 2(a)에 기재한 기간내의 어떠한 시점까지던 그 국가에 계속하여 1년 이상 거주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고 각 규정하고 있다(c항).

나. 한·일 양국의 입장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의 일본국에 대한 보상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2항 (a)호가 규정한 제외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의 보상청구권은 1947. 8. 15.부터 1965. 6. 22.까지 사이에 일본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거주한 한국인의 재산, 권리, 또는 이익으로서 위 제외대상에 해당된다는 입장을 취하여 왔다. 우리나라 입법부도 이 사건 협정 체결후 대일민간청구권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제정된 구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에서 신고대상자의 범위를 정하면서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하였고, 구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에서는 구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이 정한 신고대상 청구권중 대일민간청구권신고관리위원회에서 신고를 수리하도록 결정한 것만을 보상해 주도록 함으로써, 재일 피징용부상자들의 청구권은 보상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에 반하여, 일본국 정부는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일본국에 대한 보상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2항 (a)호가 말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 이 사건 협정에 의한 일괄타결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해석하여 왔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 동안 일본국 정부와의 위와 같은 의견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외교적 교섭을 통한 노력을 하기는 하였으나, 청구인 등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위 분쟁을 중재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 바는 없다.

다.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 요건의 구비여부

이 사건은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의 보상문제가 이 사건 협정에 의해 타결된 것인지에 관한 한·일 양국정부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우리나라 정부가 중재에 회부하지 아니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인 바,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허용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 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헌재 1991. 9. 16. 89헌마163 , 판례집 3, 505; 1994. 4. 28. 92헌마153 , 판례집 6-1, 415; 1994. 6. 30. 93헌마161 , 판례집 6-1, 700등 참조).

우리나라 정부가 우리나라와 일본국 모두로부터 사실상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들로 하여금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하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에게 청구인들이 원하는 바와 같이 중재회부라는 특정한 방법에 따라 우리나라와 일본국간의 분쟁을 해결하여야 할 헌법에서 유래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있고, 나아가 청구인들이 이러한 공권력행사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 보면, 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긍정하기 어렵다.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상대국 정부에 중재를 요청하여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의 형식과 내용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의 특성으로 보나,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외교상의 경로를 통할 것인가 아니면 중재에 회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나라 정부의 재량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 사건 협정당사자인 양국간의 외교적 교섭이 장기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재일 한국인 피징용부상자 및 그 유족들인 청구인들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반드시 중재에 회부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 이유로, 청구인들에게 중재회부를 해달라고 우리나라 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국가의 재외국민보호의무(헌법 제2조 제2항)나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보호의무(헌법 제10조)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간의 분쟁을 중재라는 특정 수단에 회부하여 해결하여야 할 정부의 구체적 작위의무와 청구인들의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도 아니한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국 정부에 대하여 중재를 요청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재판관 전원의 의견일치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김용준(재판장) 김문희 정경식 고중석

신창언 이영모 한대현(주심) 하경철 김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