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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서울고등법원 2002. 2. 7. 선고 98노1310 판결

[살인(피고인 2, 3에대해인정된죄명:살인방조죄)][미간행]

피고인

피고인 1외 4인

항소인

피고인 및 검사

검사

고천척

변호인

변호사 서경원외 2인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인 2, 3에 대한 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 2, 3를 각 징역 1년 6월에 각 처한다.

원심판결 선고 전 구금일수 3일을 피고인 2에 대한 위 형에, 같은 1일을 피고인 3에 대한 위 형에 각 산입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각 2년간 위 각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 1의 항소 및 검사의 피고인 1, 4에 대한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1) 사실오인

피고인 1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치료비가 없어서 피해자를 퇴원시킨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이고, 피해자를 퇴원시켜 살해한다는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 인식가능성이 없었고, 피해자가 병원에서 의식불명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차라리 퇴원시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퇴원시킨 것이므로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가 있었다.

나. 피고인 2, 3

(1) 원심은 작위에 의한 살인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공소장 변경 없이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

(2) 피고인 2, 3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없었고, 또한 퇴원절차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가족들에게 인계하여 줌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보증인적 지위에 있지 아니하였거나 보증인적 지위에 관한 착오가 있었다.

(3) 원심은, 피고인 2, 3이 상 피고인 1과 공동정범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였으나 피고인 2, 3에게는 주관적인 공동가공의 의사와 객관적인 기능적 행위지배가 없었으므로 원심은 공동정범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고, 피고인 2, 3의 행위는 적극적 행위기여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범죄실현에 조력하는 방조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을지는 몰라도 정범의 실행행위라고 볼 수 없다.

(4) 원심은, 보증인의무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사실 또는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판단의 전제로서 피해자의 회복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5) 피고인 2, 3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로서 작위의무가 없었다. 검사가 작위의무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 중 의료법 제16조 는 치료요구에 대한 거부에 관한 규정이고,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제4조 는 미래에 진료를 인수할 의료인이 행한 진료의 실효성을 유지시키는 의무로서 이 규정들을 근거로 환자의 사망을 방지할 보증인적 의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아니하고, 더구나 피해자는 응급상황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므로 피고인들에게 응급의료에관한법률에 의하여 보증인적 지위나 의무가 인정될 수 없으며, 계약관계에 의한 보증인의무는 보호자의 퇴원요구에 따라 퇴원함으로써 계약관계가 법적으로 종료하여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계약에 의한 보증인 의무가 소멸하였고, 사회상규의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의료현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는 서비스계약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고, 환자가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고 보호자가 치료중단을 진지하게 요구하는 경우 의사의 윤리적인 생명유지의무를 형법적인 작위의무로 볼 수 없다.

(6) 피고인 2, 피고인 3이 보증인의 지위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더라도 위 피고인들은 의학적 충고에 반한 상 피고인 1의 퇴원요구에 따라 퇴원을 허락한 것으로 피고인들이 의사로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무가 없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이상 보증인의 의무에 대한 착오가 있었으므로 책임이 조각되고, 피고인들은 피고인 1의 퇴원요구에 응할 의무보다 피고인들이 망인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우선하더라도 의료계의 관행에 따라 보호자의 퇴원요구에 응하여야 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였고, 이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책임이 조각된다.

(7) 피고인 3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전공의로 입퇴원 및 치료결정은 전문의만이 할 수 있고, 실제 전문의인 피고인 2이 피해자의 최초 수술결정, 수술시행 및 퇴원결정 등을 하였으며, 피고인 3는 퇴원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

다 . 검사

(1) 법리오해

(가) 피고인 1, 2, 3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뇌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회복중인 피해자에 대하여 뇌수술에 대한 후속조치를 하지 않거나 입원중인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의 작동을 하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뇌부종에 의해 완전한 자기호흡이 부족하여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피해자를 인공호흡기 장치가 없는 피해자의 집으로 퇴원시키기로 적극적으로 결정하고 이에 따라 피해자를 퇴원시키고, 엠브와 기관삽관까지 제거하여 즉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으로 작위에 의한 살인죄임에도 불구하고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유죄로 인정하였다.

(나) 피고인 4

피고인 4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작위범이며, 피고인 4은 자신의 상관인 피고인 2, 3와 함께 피해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분담하였고, 피고인 4의 행위로 피해자의 사망이 확정되었으며 살해행위가 기수에 이른 것이므로 피고인이 상급자의 지시에 의했더라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따라 행위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위법성을 면할 수 없다.

(2) 양형부당( 피고인 1, 2, 3)

원심이 피고인 1, 2, 3에게 각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한 것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가. 공소장 변경 없이 작위범을 부작위범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피고인 2, 3),

사실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공소사실과 기본적 사실이 동일한 범위 내에서 법원이 공소장 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다르게 인정하더라도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2, 3에 대해 공소제기된 공소사실과 원심이 인정한 범죄사실은 그 사실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가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에 의하면, 위 피고인들은 원심법정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하고 상 피고인 1이 의식불명인 피해자의 보호자로서 치료를 거부하여 치료행위를 중지하게 된 것으로 피해자에 대한 치료계속의무가 없었거나 그 위법성이 조각되어야 한다는 등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전제로 다투어 왔고, 원심은 공소장 변경 없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하고, 위 피고인들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전제로 한 주장에 대해 판단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위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었다고 할 수 없고, 더구나 당원은 뒤에서 보는 것처럼 피고인 2, 3의 범행을 작위에 의한 살인방조죄로 인정하는 이상 위 피고인들의 이 부분 항소논지는 이유 없다.

나. 피고인 1, 2, 3의 행위의 작위성 여부(검사)

형법상의 행위는 규범적으로 금지된 일정한 동작을 한다는 적극적 태도로서의 작위와 규범적으로 요구 또는 기대된 일정한 동작을 하지 아니한다는 소극적 태도로서의 부작위가 있고, 작위와 부작위의 구별은 단순한 자연과학적, 인과적인 분류가 아니라 구성요건의 해석과 적용을 고려한 법적 평가의 문제로 우선 피고인 1, 2, 3의 이 사건 각 범행에 있어서의 행위내용을 살피고, 그 행위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를 보기로 한다.

(1) 피고인 1의 행위의 작위성 여부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 1이 담당의사들 및 인턴과 공모하여 담당의사들에게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고 있던 피해자의 퇴원을 요구하여 담당의사들로 하여금 피해자에 대한 퇴원을 결정하게 하고, 인턴으로 하여금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도록 하여 인공호흡장치 제거로 인한 호흡정지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이 사건 공소를 제기하였고, 원심은, 이에 대해 피고인 1이 피해자의 처로서 계속적인 치료로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도록 하여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여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피고인 1의 위와 같은 행위를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 1이 담당의사들로부터 피해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회복가능성이 있고, 만일 퇴원해서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면 바로 죽는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제적 부담과 피해자에 대한 증오심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것을 의욕 내지 용인하고, 담당의사들에게 생존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의 퇴원을 요구하여 치료를 중단하게 하고, 그 일환으로 인공호흡장치 등을 제거케 하여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피해자의 퇴원과 치료행위의 중단은 1개의 행위가 결합된 양면을 이루는 것으로 피고인 1의 행위의 의미 있는 중점은 피고인 1이 피해자의 처로서 그에 대한 계속적인 치료를 통하여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퇴원시켜 치료중단할 경우 피해자가 사망할 위험을 예상하고도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망이라는 결과를 야기한 점에 있는 것이고, 인공호흡장치 등의 제거는 치료중단이라고 하는 행위수행의 한 내용을 이룰 뿐이며,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2, 3, 4과의 공모공동정범 관계도 인정되지 않아 피고인 1의 퇴원을 요구한 행위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치료중단사실의 전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1의 범행은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것으로 판단함이 상당하다.

(3) 피고인 2, 3의 행위의 작위성 여부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 2, 3이 피해자가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고 있던 중 피고인 1의 요구로 피해자의 퇴원을 지시하여 피해자를 퇴원시킨 후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인공호흡장치제거로 인한 호흡정지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하였고, 이에 대해 원심은, 사망원인은 인공호흡보조장치의 제거가 아니라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이고, 인공호흡보조장치의 제거라는 행위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행위 전체를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유로, 피고인 2, 3는 피해자에 대한 뇌수술 및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상태와 회복가능성,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시킬 경우 피해자가 호흡이 어렵게 되어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계속적인 치료를 함으로써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퇴원을 지시하여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하였다.

피고인 2, 3의 이 사건 범행은 보호자인 피고인 1이 피해자를 위한 치료위탁계약을 해지하여 피해자를 퇴원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피고인 2, 3는 피해자로부터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할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퇴원을 만류하였으나 피고인 1이 퇴원을 고집하여 어쩔 수 없이 퇴원결정을 하고, 피고인 2, 3이 자신의 지속적 관리 하에 있는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였다는 것으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퇴원결정과 치료행위의 중단은 한 개의 사실관계의 양면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인데 피고인 2, 3의 의사(의사)의 관점에서 볼 때 피해자가 퇴원하게 되어 치료를 중단하게 된 것이지 치료를 중단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퇴원결정과 퇴원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은 위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치료행위를 중단한 점에 있다기보다는 피고인 1의 퇴원요청을 받아들여 퇴원조치를 한 점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고, 피고인 2, 3의 치료중단이라고 하는 부작위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작위에 의한 살인이라고 하는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의 행위를 살인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고, 한편 피고인 2, 3의 구성요건적 고의는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로서 그 실현의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 2, 3는 피고인 1이 피해자를 퇴원시켜 사망케 한다는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살인죄의 정범으로서의 고의를 부정하고 방조범으로 인정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2, 3의 행위는 부작위에 의한 살해행위가 아니라 피고인 1이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시켜 살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에 대한 퇴원조치를 함으로써 그 실행을 용이하게 한 작위의 방조행위로 봄이 상당하다.

(3) 그렇다면, 원심이 피고인 1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 할 것이나, 피고인 2, 3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작위에 의한 살인방조가 아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한 위법이 있다.

다. 피고인 1, 2, 3의 고의 및 공모공동정범여부에 대한 판단

(1) 검사는, 피고인 1, 2, 3 등이 공모하여 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범하였다는 이유로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하였는데(원심도, 피고인 1, 2, 3의 범죄사실에서 공모에 대한 직접적인 설시는 없지만 그 범죄사실 및 적용법조에 비추어 위 피고인들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에 있어서의 공모공동정범 내지 공동정범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 피고인들에게 정범으로서의 고의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과연 위 피고인들에게 정범으로서의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본다.

(2) 원심에서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들 및 당심에서의 증인 공소외 6의 진술 등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당심에서의 공소외 1, 공소외 2, 공소외 3, 공소외 4, 공소외 5의 각 진술, 진료기록감정촉탁회신서, 환자상태에관한의학적검토(증제1호증), 진술서(증제2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위 인정사실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거나 이를 뒤집기에 부족하다.

(가) 피고인 1은 피해자의 처이고, 피고인 2는 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전담의사, 피고인 3는 같은 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자였다.

(나) 1997. 12. 4. 14:30경 피해자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경막외출혈상을 입어 보라매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어 같은 날 18:05경부터 피고인 2의 집도와 피고인 3 등의 보조로 경막외혈종 제거수술을 하였고, 1997. 12. 5. 02:30경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자발호흡이 불완전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계속 합병증 및 후유증에 대한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 수술 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피해자는 1997. 12. 5. 04:00경 대광반사가 돌아왔고, 그 후 눈뜨는 반응에서는 ‘부르면 눈을 뜨고 있는 상태’(글라스고우 혼수척도 E3)로, 운동반응에 있어서는 ‘통증을 가하면 통증을 가하는 위치로 손, 발을 이동하거나 제지하는 등의 반응’(글라스고우 혼수척도 M5)으로 호전되어 갔고, 피고인 3는 뇌부종에 따른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수술 후 매 15분마다 측정하던 의식수준, 동공크기, 대광반사여부를 매 1시간마다 측정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호흡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상태에 따라 인공호흡기의 호흡방법, 호흡횟수, 산소농도, 공기공급양 등이 조절되었는데 퇴원 당시 인공호흡기에 의한 호흡횟수는 수술 후 16회에서 12회로, 산소농도는 100%에서 40%(일반적인 공기의 산소농도는 20%)로 호전된 상태였으나 1997. 12. 6. 01:40경 호흡음이 거칠고 양측 폐의 아래쪽에서 호흡음이 감소되었고, 같은 날 09:20경 폐 우상엽 쪽에서 거친 소리가 들리고 환기능력이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 등 퇴원 당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경우 자발호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었고, 수술 후 수술부위에서 피가 자꾸 배어 나와서 1997. 12. 5. 21:00경 수술부위를 다시 봉합하였으나 그 후에도 수술부위에서 피가 계속 배어 나와 수술상처배액기구로 피를 배액하고 있는 상태였다. (증인 공소외 6의 원심법정진술에 의하면, 직접 사인은 뇌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이고, 중간사인은 경막외출혈과 뇌부종이며, 뇌부종 및 부검당시 두개골 제거 후 경막 위에 응고된 혈종에 의해 뇌압박이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라) 한편, 피고인 1은 수술 후 피고인 3로부터 피해자의 혈종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호전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때까지 260만원 상당의 치료비가 나온 것을 알고 향후 치료비도 부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금은방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후 17년 동안 무위도식하면서 술만 마시고 가족들에 대한 구타를 일삼아 온 피해자가 가족들에게 계속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사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피해자의 퇴원을 계속 요구하였다.

(마) 피고인 2, 3는 수 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상태에 비추어 지금 퇴원하면 죽게 된다는 이유로 퇴원을 만류하고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으면 1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피해자의 상태가 안정된 후 도망가라고까지 이야기하였으나 피고인 1은 피해자의 퇴원을 고집하였고, 1997. 12. 6. 14:00경 피고인 2, 3로부터 퇴원시 사망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퇴원 후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에 서명하였고, 피고인 2, 3는 환자의 보호자가 그 퇴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퇴원 요구를 거부한 후 발생될 치료결과에 대한 책임이나 향후치료비의 부담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자 보호자의 환자에 대한 퇴원 요구를 거부하면서 의사가 치료행위를 계속할 수 있는 근거 등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퇴원지시를 하여 피해자의 퇴원절차를 밟게 되었다.

(바) 피고인 3는 피고인 2의 지시에 따라 인턴인 피고인 4에게 피해자의 퇴원절차를 밟도록 지시하여 1997. 12. 6. 14:00경 피고인 4은 피해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피고인 1과 함께 보라매병원의 구급차로 피해자를 후송하면서 수동으로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사용하여 호흡을 보조하다가 피해자의 주거지에 도착한 후 피고인 1에게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게 될 경우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고지한 후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였고, 피고인 4가 떠난 후 5분도 안되어 피해자는 꺽꺽거리는 등 목부위에서 소리를 내며 불완전하게 숨을 쉬다가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하였다.

(3) 나아가 피해자의 퇴원 당시의 상태와 사망의 결과발생가능성 및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인식 등에 관하여 보건대,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1997. 12. 6. 14:00경 퇴원 당시 운동반응이 ‘아무 반응이 없는 상태’(글라스고우 혼수척도 M1)로 악화되었고, 피해자에게 급성호흡부전, 급성신부전, 파종성 혈관내 응고증 등 여러 가지 임상상태가 나타난 사실은 인정되나, 증인 공소외 6의 원심법정 및 당심법정진술에 의하더라도 급성호흡부전이나 파종성 혈관내 응고증 등은 형태학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정도까지 진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검결과 나타나지 않았으며, 사망 후부터 부검시까지 뇌부종 상태는 변하지 않는데 부검결과 뇌부종상태가 상당히 심하였고, 그 상태에 비추어 수술 후 뇌부종이 가라앉지 않아 자발호흡이 곤란한 상태에서 퇴원하여 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는 점, 피해자는 전체적으로 수술 후에 호전되는 양상을 나타냈었고, 피고인 2, 3도 피고인 1에게 같은 취지로 그 퇴원을 만류하였던 것이며, 피고인 2은, 1997. 12. 9. 경찰에서의 참고인 진술(수사기록 40쪽)에서 수술결과는 좋은 편이었고, 치료만 받으면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피해자가 산소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고 진술하였고, 1997. 12. 15. 경찰진술(수사기록 289쪽)에서는 수술 후 촬영한 사진에서 혈종이 잘 제거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회복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 환자가 마취로부터 깨어나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피해자의 경우 퇴원하지 않았다면 병세가 호전될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퇴원 당시 즉시 사망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사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고(그 뒤 검찰진술이후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는 합병증으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생존가능성이 낮았고, 인공호흡기 없이 자가호흡으로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였다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 3는 1997. 12. 8. 최초 경찰에서의 참고인진술(수사기록27쪽)에서는 치료만 계속하면 살 수 있었고, 2 -3일만 더 있었으면 의식을 찾을 수 있었으며 퇴원하면 죽는다고 피고인 1에게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진술하였고, 1997. 12. 15. 최초 경찰진술(수사기록 302쪽)에서는 수술 후 6시간 정도 지나 중환자실로 다시 가보니까 환자가 눈을 뜨고 팔을 움직이고 있어 수술이 아주 잘되었다고 생각하였고, 피해자가 자가호흡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인공호흡기를 착용시켜 둔 상태였다고 진술하였고, 1997. 12. 30. 최초 검찰진술(수사기록 407쪽)에서는 수술 직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뇌부종이 좋아지는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CT를 찍지 않았고, 회복가능성 여부는 알 수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1998. 1. 7. 2회 검찰진술(수사기록 474쪽)에서는 내과적 합병증이 없을 경우 생존가능성은 70% 내지 80% 정도였고, 피해자에게 내과적인 합병증이 있었으나 곧 바로 사망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으며(그 뒤 검찰 및 법정진술에서는 피해자의 생존가능성이 10% 이내이고, 자발호흡이 있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1 - 2일 또는 3 - 4일 정도 더 있다가 사망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한 피고인 4도 경찰에서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면 사망할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1에게도 같은 취지로 설명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는 퇴원으로 인한 치료중단과 인공호흡장치의 제거로 사망에 이른 것이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경막외혈종 제거수술 후 합병증 및 후유증에 대한 치료를 계속하였다면 생존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적어도 퇴원으로 인한 치료중단과 인공호흡기의 제거가 없었더라면 뇌간압박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바로 사망에 이르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며, 피고인 2, 3, 4의 전체적인 진술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2, 3도 피해자로부터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할 경우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단시간에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자발호흡여부 및 생존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사건 범행 후 조사를 받으면서 종전의 진술을 바꾸어 주장해 온 것으로 실제 피고인 2, 3이 피해자의 퇴원 당시 피해자의 상태 및 생존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여 판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4)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피고인들의 범행동기,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방법, 퇴원 당시 피해자의 상태와 사망의 결과발생가능성 등 범행 전후의 객관적인 사정 및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인식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1은 피해자를 퇴원시켜 치료를 중단하고,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정을 인식하였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의지도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만, 피고인 2, 3는, 피해자에 대한 장시간의 수술을 통하여 피해자를 회생시켜 놓은 뒤 보호자인 피고인 1에게 수 차례에 걸쳐 치료를 계속 받도록 설득하였고, 피고인 1에게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으면 도망가라고까지 이야기했던 점, 피고인 2, 3에게 특별히 범행 동기가 될 만한 사정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를 회생시켜 놓은 의사가 그 사망을 의욕 또는 용인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점, 피고인 2, 3로서는 피해자로부터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할 경우 호흡곤란으로 바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피고인 1이 치료비문제로 피해자의 퇴원을 요구하고 있어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사와 능력이 없었던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피해자의 호전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태에서 보호자의 퇴원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보호자가 책임진다는 각서를 받고 퇴원절차에 협조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퇴원으로 장래의 치료행위가 중단된 결과가 초래되었지만 피고인 2, 3이 스스로 피해자에 대한 장래의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피해자의 사망을 의욕 또는 용인하였다고 보기 어려워 결국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 1이 정범의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퇴원시켜 치료를 중단하게 함으로써 인공호흡기 또는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고, 피고인 2, 3에게는 정범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피고인 1과 일체가 되어 그 퇴원요구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퇴원시켜 치료를 중단하고,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함으로써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한 자기의 의사를 실행에 옮겼다고 평가할 수 없고, 다만 방조범의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범죄사실이 발생할 것을 인식하면서 그 행위를 하면 족하고 그 결과발생을 희망함을 요하지는 않는 것인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2, 3이 정범인 피고인 1이 피해자를 퇴원시켜 치료행위를 중단하고 인공호흡기 또는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인식하고 이에 협조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방조행위로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5) 그렇다면, 피고인 1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위 피고인의 항소논지는 이유 없고, 피고인 2, 3에게 피고인 1과 공모공동정범으로서 살인죄의 정범으로서의 고의가 있음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이고 방조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피고인 2, 3의 항소논지는 이유 있다.

라. 피고인 1의 정당행위, 법률의 착오 및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의 주장

피고인 1은, 담당의사들로부터 수일 내에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많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어 피해자의 회복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고, 피해자가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수술 종료 후 불과 12시간이 경과할 무렵부터 퇴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그 치료중단과 퇴원요구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위법성의 인식이나 인식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으며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마. 피고인 2, 3의 작위의무에 대한 주장이나, 피해자의 회복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피고인 2, 3의 치료의무가 없었고, 치료의 중단은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 피고인 3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발생방지의무를 가진 보증인적 지위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 작위의무에 대한 착오 및 의무의 충돌 등의 주장은 원심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그 이유가 없거나 피고인 2, 3의 이 사건 범행이 부작위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당심이 위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을 작위에 의한 방조범으로 인정하는 이상 이유 없다.

바. 피고인 3의 주장에 대한 판단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3는 피해자가 처음 응급실로 왔을 때부터 퇴원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치료를 담당하여 피해자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피고인 1이 피해자를 퇴원시켜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2의 지시를 받아 피고인 1이 피해자를 퇴원시키는데 협력하여, 인턴인 피고인 4에게 피해자를 퇴원시키도록 지시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도록 방조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므로 위 피고인의 이 부분 항소논지도 이유 없다.

사. 피고인 4의 무죄부분(검사)

피고인 4은 인턴으로서 전문의인 담당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의 의료행위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고, 담당의사인 피고인 2, 3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 1의 퇴원절차를 밟기 위한 과정을 도와 인공호흡기 또는 인공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였더라도 인공호흡기 등의 제거는 퇴원조치에 따르는 일부 과정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피고인 4은 피해자의 퇴원결정에 관여한 바 없으며, 피고인 1이 회생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살해하려 한다는 사정을 인식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살인죄의 정범으로서의 고의뿐만 아니라 방조범으로서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어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결론에 있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3. 결론

따라서 피고인 1 및 검사의 피고인 1, 4에 대한 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은 피고인 2, 3의 행위가 작위에 의한 방조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부작위에 의한 정범으로 인정한 잘못이 있으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 및 위 피고인들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 중 피고인 2, 3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되, 피고인 2, 3에 대하여는 위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과 기초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므로, 공소장변경절차를 취하지 않더라도 위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는 살인방조죄로 각 처벌하기로 하여, 당원은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범 죄 사 실

피고인 2는 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전담의사, 피고인 3는 위 병원 같은 과 레지던트로 각 근무하고 있는 자인바, 1997. 12. 4. 14:30경 피해자 공소외 7이 자신의 주거지에서 술에 취한 채 화장실을 가다가 중심을 잃어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고 시멘트바닥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충격하여 경막외출혈상을 입어 위 보라매병원으로 응급후송된 다음 같은 날 18:05경부터 다음 날 03:00경까지 피고인 2의 집도와 피고인 3 등의 보조로 경막외출혈로 인한 혈종제거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계속 치료를 받았는데 위 혈종제거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피해자의 대광반사와 충격에 대한 반응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이름을 부르면 스스로 눈까지 뜨려고 하는 등 그 상태가 호전되어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경우 회복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자가호흡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인공호홉을 위한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수술부위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배액하는 등 합병증 및 후유증에 대한 치료를 계속 받던 중, 피해자의 처인 상 피고인 1이 당시까지 치료비 260만원 상당뿐 아니라 추가치료비의 지출이 자신의 재산능력에 비추어 상당한 부담이 되고, 17년 동안 무위도식하면서 술만 마시고 가족들에게 구타를 일삼아 온 피해자가 차라리 사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피고인 2, 3로부터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와 인공호흡장치가 없는 집으로 퇴원하게 되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시키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할 것을 마음먹고, 같은 달 5. 14:20경 및 18:00경 주치의인 피고인 3에게 ‘도저히 더 이상의 추가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을 요구하고, 같은 달 10:00경 전담의인 피고인 2에게도 같은 이유로 퇴원을 요구하는 등 피고인 2, 3의 퇴원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퇴원을 요구하자 피고인 3는 상 피고인 1의 퇴원요구를 받아 상사인 피고인 2에게 직접 퇴원승낙을 받도록 하고, 피고인 2은 상 피고인 1의 퇴원요구를 받아들여 피고인 3에게 피해자의 퇴원을 지시하고, 피고인 3는 이에 따라 피해자의 퇴원을 지시하여 피고인 2, 3의 지시를 받은 상피고인 4로 하여금 상 피고인 1과 함께 피해자를 집까지 데리고 간 다음 인공호흡보조장치인 엠브와 기관에 삽입된 관을 제거하여 그 무렵 피해자로 하여금 뇌간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피고인 1의 범행을 용이하게 하여 이를 방조하였다.

증거의 요지

이 법원이 인정하는 증거의 요지는, ‘1. 증인 공소외 6의 당심진술’을 추가하는 외에는 원심판결 각 해당란의 기재와 같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9조 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1. 법률상 감경

1. 작량감경

형법 제53조 , 제55조 제1항 제3호 (각 전과가 없고, 상 피고인 1의 퇴원 요구에 대해 여러 차례 설득을 하였으며, 피해자의 사망을 의욕 또는 용인하지는 않았던 점, 그 범행경위 및 동기 등 참작)

1. 미결구금일수 산입

1. 집행유예

형법 제62조 제1항 (위 작량감경사유 및 종래 의료관행에 비추어 비난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점 등 참작)

앙형의 이유

오늘날 의료현실의 변화에 따라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사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주재자의 위치에서 환자에게 자기결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동의를 받아 적절한 치료를 해야하는 계약관계적 측면이 강조되어 가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가 개인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서 의료현장에서 의료행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때때로 보호자가 환자의 의사를 대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으며, 또한 종합병원에 있어서도 윤리위원회의 구성이나 가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계상황에서 치료방법의 선택이나 치료행위의 계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의료인 개인의 판단의 적정성을 검증하거나 양심적 결단에 따른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의료비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퇴원을 원하는 환자나 가족들을 위한 의료보험 및 공적 부조 등의 제도적 정비가 충분하지 못하고, 응급환자의 미지급치료비의 대불을 청구할 수 있는 응급의료기금이 현실화되어 있지 않는 등 의료인 개인에게 무한정한 책임만을 강조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법익 중 최고의 가치를 가진 법익이고, 개인의 생활감정이나 생활상의 이해와 관계없이 또한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생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관계없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고, 또한 인간의 생명은 개인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과 결부된 의료행위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칙 자체는 포기될 수 없는 것이며, 우리 법이 자살관여죄나 승낙에 의한 살인죄를 처벌하고, 응급의료에관한법률에서 국가가 의료인에게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라는 공법상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중단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소위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지하거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자연적인 경과를 거쳐 죽게 내버려두는 소극적 안락사에 있어서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행위의 중지는, 환자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말기상태에서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의미밖에 없는 치료행위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진지한 치료중지 요구에 응하여 의사의 양심적 결단에 따라 이루어질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고, 이러한 치료행위의 중지의 허용여부 및 그 범위,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생존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 경막외혈종 수술을 받은 후 치료비 부담을 이유로 36시간만에 퇴원시켜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함으로써 치료행위의 중단을 초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피해자의 보호자인 피고인 1의 경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형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고, 담당의사들인 피고인 2, 3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의 법적 개념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치료행위 중지의 허용요건을 충족하지도 못하며,만약 담당의사들이 피해자의 생존가능성 및 더 이상의 치료행위가 의미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점까지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다하고, 동료 및 선후배의사와 의논하거나 병원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여러 가지 검증절차를 통하여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여 한계상황에서의 환자 자신의 이익과 의사를 고려한 양심적 결단에 의해 퇴원시킨 것이었다면 법원으로서도 그러한 의료인의 결정을 존중할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은 피해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한 퇴원요구에 응하여 경솔하게 생존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퇴원시켜 그 생명을 포기케 하는 결과를 초래한 행위로서 환자의 상태와 환자 자신의 의사를 신중하게 고려한 담당의사들의 한계상황에서의 양심적 결단이 있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고, 따라서 위 피고인들이 보호자의 경제적 고려에 의한 퇴원 요구에 응하여 생존가능성이 있는 피해자의 치료행위의 중지를 초래케 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순한 윤리적 책임뿐 아니라 현행법에 의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피고인 2, 3는 피해자에 대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조치를 취하였었고, 그 후 피고인 1의 퇴원요구에 대해 수 차례 만류하였던 사정이 있으며,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의욕 또는 용인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아 살인죄가 아닌 살인방조죄로 처단하는 점에 비추어 그 형을 주문과 같이 정한다.

무죄부분

피고인 2, 3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에서 본 바와 같은 바, 그 판단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2, 3이 피고인 1과 공모하여 위 각 범행을 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당원이 공소장 변경 없이 각 살인방조죄로 판단하여 유죄를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판사 이종찬(재판장) 조용준 임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