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처분취소
(춘천)2014누101 파면처분취소
A
B대학교총장
2015. 10. 19.
2015. 12. 9.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2011. 11. 7. 원고에 대하여 한 파면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총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주문과 같다.
1. 처분의 경위
제1심 판결 이유 중 '1. 처분의 경위' 부분을 행정소송법 제8조 제2항,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따라 인용한다.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1) 징계위원회가 교육공무원법 제50조 제3항에 위반하여 실질적으로 원고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징계결의를 강행하는 등 징계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
(2)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한 사실이 전혀 없으므로 피고가 주장하는 징계혐의는 사실이 아니다.
(3) 가사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파면처분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다른 징계사례와 비교할 때 과도하게 중하고 목적과 수단의 균형성을 현저히 상실하여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처분이다.
나. 소명 기회의 의의
교육공무원법 제50조 제3항은 "징계대상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지 아니한 징계의 의결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교육공무원 징계령 제9조 제2항은 "징계위원회는 징계혐의자에게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야 하며, 징계혐의자는 서면 또는 구술로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실을 진술하며 증거를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서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 중 하나인 청문권을 교육공무원에 대한 징계절차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징계절차에서 청문권은 징계처분을 받을 당사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징계권자는 징계사건의 사실관계를 예단하지 않고 당사자의 말을 들은 후 징계 여부와 그 정도를 결정하여야 한다. 또한 절차적 정의를 보장하지 않고서는 진실한 사실관계를 올바로 파악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청문권은 단순히 당사자에게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실체적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된다. 특히 직업을 박탈하는 파면처분을 비롯하여 중징계처분은 형사절차의 유죄 선고와 같은 엄격한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서도 대상자에게 그에 못지 않은 불이익을 가하게 되므로, 징계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 충분한 소명 기회 부여 여부
갑 제1호증의 1, 2, 갑 제11호증의 1, 을 제1호증의 19, 을 제14호증의 각 기재, 제1심 증인 N의 증언, 우리 법원의 검증 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B대학교는 언론사가 2011. 4. 13. 원고의 성추행 혐의를 보도하자 그 진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그 위원회는 이 사건 처분에서 피해자로 특정한 E 등 4명의 학생(이하 'E 외 3인'이라 한다)뿐만 아니라, 과거 원고가 C대학교에서 근무하였을 당시 성추행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관한 제보도 접수하였던 사실, 조사위원회는 2011. 5. 24. 성추행 혐의와 관련하여 원고를 면담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고 단지 C대학교에서도 성추행한 사실이 있지 않느냐고 원고를 추궁한 사실, 이에 원고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어떠한 행위를 문제 삼는지 전혀 모른 채 단순히 C대학교에서 성추행한 적이 없다고 답변한 사실, 조사위원회는 자체 조사 결과 E 외 3인과 C대학교에서 추행하였다는 학생 6명을 포함하여 총 13명의 학생을 성추행 피해자로 특정한 사실, 피고는 위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1. 6. 22. E 외 3인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만 B대학교 교육공무원 일반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원회'라 한다)에 원고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요구한 사실, 징계위원들은 2011. 6. 29. 개최한 징계위원회에서 원고에게 C대학교 시절 성추행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원고가 이를 인정하지 않자 더 이상 그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은 사실, 당시 징계위원들은 E 외 3인을 제외한 다른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징계시효가 도과하여 징계사유에 넣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성추행의 의도성이나 반복성에 관한 판단에 참고하기 위해 원고에게 다른 성추행 전력이 있는지에 관하여도 서로 의견을 교환한 사실, 특히 징계 위원들 중 일부는 회의 중 원고가 C대학교에서 전임강사를 할 당시 제자였던 H을 성추행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보고 분노를 느끼고 용서가 안 된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는 등 조사위원회 조사내용을 토대로 원고가 C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성추행하였음을 확신하고 있었던 사실, 이에 따라 일부 징계위원들은 원고가 C대학교 재직시 절인 2002년경부터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면 의견을 제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 징계위원회는 비록 징계의결요구서 및 징계의결서에 C대학교 재직시절의 성추행을 징계혐의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다만 원고가 C대학교 학생에 대한 성추행 사실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기재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이 부분까지 징계사유로 삼아 원고에 대한 파면처분을 결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처럼 피고가 징계의결요구서에 실질적인 징계사유를 누락함으로써 원고에게서 그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준비하고 소명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박탈하였으므로, 이 사건 처분에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가사 징계위원회가 원고의 C대학교 재직시절의 성추행혐의를 직접 징계사유로 삼았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징계위원들의 회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원고가 C대학교 재직시절부터 유사한 수법으로 학생들에게 접근하여 고의적 · 의도적 · 반복적으로 학생들을 성추행하였음을 가장 무거운 수위의 징계처분인 파면을 선택한 핵심 근거로 삼은 점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이를 중요한 징계양정 사유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하다. 교육공무원법 제50조 제3항이 징계혐의자의 소명 대상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고, 징계의결요구서에 명시한 징계혐의와 시간적 · 장소적으로 무관한 C대학교 재직시절성추행 혐의를 징계양정에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적법한 징계절차를 생략한 채 징계를 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이를 그대로 허용할 수 없다(징계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기소한 범행과 별도의 범죄사실에 해당하는 사정을 핵심적인 형벌가중적 양형조건으로 삼아 형의 양정을 하는 것은 사실상 공소를 제기하지 않은 범행을 추가로 처벌한 것과 마찬가지어서 최형균형의 원칙 또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1816 판결 참조). 그렇다면 당사자의 방어권 등 이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변명과 소명의 기회를 충분이 부여하여 실체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청문권 보장 취지에 비추어 피고로서는 C대학교 재직시절에 있었던 성추행 사실에 관하여도 원고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피고는 징계의결요구서에 C대학교 재직시절 성추행에 관한 내용은 일절 기재하지 않았고, 이후 개최한 징계위원회에서도 구체적인 혐의가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C대학교에서도 성추행한 사실이 있는지 물어본 후 원고가 부인하자 더 이상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원고가 이 부분 혐의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전에 징계위원회가 의심하는 성추행의 대략적인 시점과 피해자 등 사건의 개요를 알 수 있어야만 함에도, 피고는 원고 스스로 성추행 사실을 이실직고할 것만을 요구하였을 뿐 질문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징계절차를 끝내 버렸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피고는 징계의결요구서에 명시한 혐의사실 이외의 혐의사실을 핵심 양정 사유에 포함하면서도 이에 대한 원고의 소명 기회를 박탈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처분은 어느 모로 보나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라. 소결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이 징계혐의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아 위법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나아가 징계사유의 존부,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에 대하여 살필 필요 없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여야 하는데,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이 달라 부당하므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심준보
판사 유아람
판사 유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