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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1996. 6. 24.자 96가합1057 결정

[부당이득금반환 ][하집1996-1, 209]

판시사항

구 관세법 제215조의 위헌 여부

결정요지

구 관세법(1993. 12. 31. 법률 제467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15조헌법상의 평등의 원칙, 재산권 보장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원고

황윤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국제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이원철)

피고

대한민국

주문

위 사건에 관하여 구 관세법(1993. 12. 31. 법률 제467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15조 의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한다.

관세법 제215조 는 "제179조 내지 제181조·제183조 내지 제186조의 규정에 의하여 몰수할 것으로 인정되는 물품을 압수한 경우에 있어서 범인이 당해 관서에 출두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범인이 도주하여 그 물품을 압수한 날로부터 4월을 경과한 때에는 당해 물품을 국고에 귀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 이 사건의 개요

가. (1) 원고는 한중무역공사라는 상호로 무역업에 종사하던 1992. 2. 21. 중국산 볶은 율무 30t을 미화 48,000$에 수입하기로 하고 같은 달 28. 동화은행으로부터 수입승인을 받아 신용장을 개설한 다음, 중국으로부터 볶은 율무 30t이 부산항에 도착하자 같은 해 4. 13. 이를 보세장치장에 입고시켰다.

(2) 원고는 또한 1992. 2. 20. 중국산 볶은 흑참깨 30t을 미화 42,000$에 수입하기로 하고 같은 달 28. 동화은행으로부터 수입승인을 받아 신용장을 개설한 다음, 중국으로부터 볶은 흑참깨 30t이 부산항에 도착하자 같은 해 3. 28. 보세장치장에 입고시켰다.

나. 피고 산하 부산세관장은 원고가 가공되지 아니한 생율무와 생참깨를 수입하면서 마치 가공된 물품인 양 위장하여 무면허 수입행위를 하려는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를 관세법위반으로 입건하는 한편 1992. 5. 18. 위 율무 30t을, 같은 해 6. 18. 위 흑참깨 30t을 각 압수한 다음, 위 압수한 율무와 흑참깨를 환가하여 그 환가대금 134,003,200원을 보관하여 오다가, 1993. 4. 27. 구 관세법 제215조에 의하여 위 환가대금을 국고에 귀속하는 처분을 하였다.

다. 한편 원고는 1994. 8. 4. 관세법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1995. 6. 1.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에서 범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이어 같은 해 8. 11. 대법원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받음으로써 위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라. 무죄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원고가 부산세관장에게 위 환가대금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부산세관장은 구 관세법 제215조의 규정을 내세워 그 반환을 거부하였고, 이에 원고가 이 사건 부당이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3. 위헌심판 제청 이유

가. 재판의 전제성

원고가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가 인용되기 위하여는 위 환가대금의 국고귀속처분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이득이 법률상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것이어야 하는데, 위 환가대금의 국고귀속처분은 구 관세법 제215조에 근거한 것이므로 만약 구 관세법 제215조 가 합헌이라면 위 처분은 위 법률조항에 근거한 것으로 법률상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기각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구 관세법 제215조 가 위헌이라면 위 국고귀속처분은 이러한 위헌무효인 법률조항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이 되어 원고의 부당이득반환 청구는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이 사건에서 피고 대한민국이 이득을 하게 된 원인이 된 압수물 환가대금의 국고귀속처분은 구 관세법 제215조 에 근거한 것으로 위 법조의 위헌 여부에 따라 위 대한민국이 보유하게 된 이득이 '부당'한지가 판가름되게 되어 이 사건 판결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위 법조의 위헌 여부는 이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된다 할 것이다.

나. 위헌의 의문이 가는 이유

(1) 재산권 보장과 관련하여

헌법 제23조 제1항 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라고 하여 사유재산권의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반드시 법률로 정하여져야 하며 법률로써 재산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법률은 헌법상의 제원칙( 헌법 제10조 , 제11조 등)과 제약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구 관세법 제215조 같은 법 제179조 내지 제181조, 제183조 내지 제186조에 의하여 몰수할 것으로 인정되어 압수된 물품에 관하여, 당해 피의자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선고, 확정되고 압수물품에 대하여 몰수의 선고가 있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피의자가 당해 관서에 출두하지 아니하거나 도주한 상태로 4개월이 경과되었다는 객관적 요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무조건 당해 물품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하여 당해 물품에 대한 피의자의 소유권을 박탈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있다.

더욱이 구 관세법 제215조 관세법 위반 피의자가 4개월간 수사관서에 출두하지 않으면 곧바로 압수물품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당해 피의자가 무죄로 확정된 경우 국고귀속을 해제하는 조치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아니함으로써 피의자의 압수물품에 대한 소유권을 영구적으로 박탈하여 그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2) 무죄추정의 원칙과 관련하여

헌법 제27조 제4항 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아직 공소의 제기가 없는 피의자는 물론이고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까지도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다루어져야 하고 그 불이익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따라서 형사 피의자에게도 당연히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구 관세법 제215조 는 형사피고인보다 더욱 두텁게 보호받아야 할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유죄 판결의 확정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기간 수사관서에의 불출석이라는 객관적 요건만으로 그 소유 물품을 국고에 귀속하도록 규정하여 몰수형을 집행하는 것과 동일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형사 피의자를 유죄판결이 확정된 형사 피고인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3) 평등의 원칙과 관련하여

헌법 제11조 제1항 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하여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법 앞의' 평등이라 함은 법 적용에 있어서의 평등뿐만 아니라 법 내용의 평등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범칙물품의 소유자는 범칙물품에 대한 몰수형이 확정된 경우에 한하여 그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는 데 비하여, 구 관세법 제215조 는 몰수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범칙물품이 국고에 귀속된다고 규정하여 몰수형이 확정되지 아니하더라도 그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함으로써, 관세법 위반 범칙물품의 소유자를 일반 범칙물품 소유자에 비하여 불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4) 과잉금지의 원칙과 관련하여

국민의 기본권도 무제한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 제37조 제2항 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는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본권 제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도 기본권 제한의 입법에 있어서는 입법권의 한계를 의미하는 과잉금지의 원칙,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 후단)이 존중되어야 한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구 관세법 제215조 는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재산권, 무죄추정권, 평등권을 제한함에 있어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이라는 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 문제된다.

관세법 제215조 는 ① 범인의 도주방지 및 수사관서에의 자진출두 확보, ② 범칙물품의 장기간 보관으로 인한 멸실·훼손 등의 방지 및 장기간 보관에 따르는 불편 제거 등의 목적에 기여할 것으로 짐작되나, 이러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정한 객관적 요건하에 압수물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하여 유죄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관세법위반 피의자의 압수물품에 대한 소유권을 영구히 박탈하도록 한 것은 최소한의 방법이 아니라 지나친 방법을 허용하여 관세법위반 피의자에게 과다한 피해를 입게 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4. 결 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구 관세법 제215조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 재산권 보장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김태우(재판장) 고영태 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