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청구사건][하집1994(1),166]
전화번호부에 전화번호를 잘못 인쇄하여 발행한 자에게 위자료지급책임을 인정한 사례
박광배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 외 1인
1.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는 원고에게 금 500,000원 및 이에 대한 1993.6.11.부터 1994.6.24.까지는 연 5푼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의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대한 청구 및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에 대한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원고와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와 사이에 생긴 부분은 이를 20분하여 그 1은 피고의, 나머지는 원고의, 원고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의, 각 부담으로 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피고들은 각자 원고에게 금 30,000,100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소장송달 다음날부터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푼,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라는 판결.
1. 기초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의 1,2,3,4, 갑 제6호증의 2, 갑 제10호증의 1,2,3,4, 을 제7호증의 각 기재 및 증인 김광자의 증언(다만 증인 김광자의 증언 중 뒤에서 믿지 아니하는 부분 제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는 자신의 동생인 소외 박봉배의 명의로 1982.6.18.부터 서울 구로구 구로동 604의 1 소재 구로공구상가 B-12동 102호에서 삼원절연물상사라는 상호로 전기자재 등의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자이고,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이하 피고 공사라 한다)는 공중전기통신사업의 합리적 경영과 전기통신기술의 진흥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고 공공복지의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사이며,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이하 피고 회사라 한다)는 전화번호부의 편집 및 출판에 종사하는 법인으로서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로부터 전화번호부의 주문을 받아 이를 제작, 납품하고 있다.
나. 원고는 서울 677-1999, 633-8825, 631-8834, 632-8834 등 모두 4대의 전화를 위 삼원절연물상사의 업무에 사용하여 왔는바, 위 677-1999번 전화 및 633-8825번 전화는 주로 착신용으로, 나머지 전화들은 발신용으로, 각 사용하여 왔으며, 위 677-1999번 전화를 주로 받는 사람은 위 삼원절연물상사의 여직원인 소외 김광자였다.
다. 피고 회사에서 전화번호부의 편집, 인쇄, 조제발행 등에 관한 공정은 그 피용자인 출판계획부 소속 직원들이 담당하여 왔는바, 전화번호부는 사회생활상 극히 긴요한 정보인 전화번호를 조회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니 만큼 이를 제작하는 위 담당직원들로서는 그 편집 및 교정, 인쇄 등에 관하여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잘못된 전화번호가 게재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업무상의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라. 그런데 피고 회사는 1992.11.경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납품할 1992년도 서울판 전화번호부(상호편, 업종편) 220만 부 중 1차분 86만 부를 제작함에 있어, 전항과 같은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피고 회사 출판계획부 소속 담당직원 성명불상자의 과실로 말미암아 위 전화번호부 중 직업상담안내란의 전화번호가 사실은 677-1919인 것을, 원고가 그 업무상 사용하는 위 677-1999로 잘못 인쇄하여 발행하였다.
마. 위와 같이 잘못 인쇄된 전화번호부(이하 "이 사건 전화번호부"라 한다) 86만 부 중 적어도 733,794부가 그대로 전화가입자들에게 배부되었거나 공중전화부스에 비치되었는바, 그 이후 위 677-1999 전화의 1일 전체 착신량은 평균 약 26통 정도인데 위 677-1999번이 원고가 1984년경부터 계속하여 위 삼원절연물상사의 전화번호로 사용함으로써 단골거래선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던 사정을 고려하면 위 전화의 1일 평균 착신통화수 26통 중 상당수는 제대로 걸려온 전화일 것으로 추정되고, 그 나머지 일부는 이 사건 전화번호부를 보고 위 677-1999가 직업상담안내소의 전화번호인 줄로 잘못 알아 걸려온 직업상담문의전화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잘못 걸려온 직업상담문의전화가 매일 100 내지 150통에 달한다는 증인 김광자의 일부 증언은 믿지 아니한다).
3.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전항 라, 마의 각 인정사실들을 종합하면 잘못 걸려온 직업상담문의전화들로 말미암아 이에 응답하느라고 원고가 경영하는 위 삼원절연물상사의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그로 인하여 그 경영주인 원고가 다소간의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고 회사는 이를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
나. 나아가 그 배상할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 살펴본다.
(1) 을 제3호증, 을 제4호증, 을 제5호증, 을 제6호증의 1,2,3,4의 각 기재 및 증인 엄상용의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피고 회사는 1992.12.말경 원고로부터 이 사건 전화번호부 문제로 항의를 받자, 위 잘못 인쇄된 부분의 활자와 동일한 글꼴 및 크기의 활자를 사용하여 "677-1919"라고 인쇄한 스티커 15만 장을 제작하여 그중 11만 장은 피고 공사에, 4만 장은 소외 한국공중전화관리주식회사에, 각 보내어 이를 부착·정정토록 협조요청한 사실, 그리하여 이 사건 전화번호부 중 피고 공사가 아직 일반 전화사용자에게 배부하지 아니하고 있던 85,206부 및 공중전화에 비치된 40,000부 중 상당수가 정정된 사실, 1993.4.경 피고 회사의 출판사업실장이 원고를 방문하여 사과하고, 93년도 전화번호부 작성시 원고가 경영하는 위 삼원절연물상사의 광고를 무료로 게재하여 주겠다는 제의를 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는바, 위 각 인정사실을 종합하면 피고 회사로서도 전화번호부의 기재 착오로 인하여 전화가 잘못 걸려 오는 것을 방지하고자 상당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원고가 입거나 입을 수 있는 정신적 피해를 위자하거나 줄여보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엿볼 수 있다.
(2) 한편 전화번호부는 전화번호라는, 사회생활상 극히 긴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서 일반시민들이 그를 통하여 얻는 효용이 실로 막대하다 할 것인데, 우리 경제, 사회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말미암아 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전화번호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전화번호부에 수록되는 개개 전화번호의 완전무결한 정확성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전화번호부의 제작과정에서의 그리 크지 아니한 과오에 대하여 그 제작자인 피고 회사에게 지나치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면, 위와 같은 중요성을 갖는 전화번호부의 제작과정이 위축되거나, 적어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3) 위 (1), (2)의 사정들 및 이 사건 전화번호부에 잘못된 전화번호가 게재되게 된 경위, 원고가 경영하는 삼원절연물상사의 업태, 원고가 677-1999번 전화를 사용한 용도 및 사용 형태, 배부된 위 전화번호부의 수량, 677-1999번 전화의 착신량 등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참작하면,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금 500,000원을 위자료로서 지급함이 상당하다.
4.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위 제1항 나.에서 인정한 바에 의하면 이 사건 전화번호부의 제작에 있어서 피고들 간의 관계는 피고 공사를 도급인, 피고 회사를 수급인으로 하는 도급계약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 그런데 민법 제757조에 의하면 도급인은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는바, 본건에 있어서 도급인인 피고 공사에 전화번호부 제작에 관한 도급 또는 지시를 함에 있어서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는 원고에게 금 5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소장송달 다음날임이 기록상 분명한 1993.6.11.부터 이 판결선고일인 1994.6.24.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푼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이 정한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에 대한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원고의 피고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대한 청구 및 피고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에 대한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며,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9조 , 제92조 를, 가집행선고에 관하여는 같은 법 제199조 를, 각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