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집7권 1집 238~244] [전원재판부]
국가기관(國家機關)이나 그 구성원(構成員)의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직무상(職務上) 권한(權限)을 침해(侵害) 당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헌법 제6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基本權)의 주체(主體)가 국가기관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그 기본권(基本權)을 침해(侵害)받았을 경우 이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정된 것이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자는 원칙으로 기본권(基本權)의 주체(主體)로서의 국민(國民)에 한정되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가기관(國家機關)이나 그 일부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
국회의원(國會議員)이 국회 내에서 행하는 질의권(質疑權)·토론권(討論權) 및 표결권(表決權) 등은 입법권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國家機關)인 국회(國會)의 구성원(構成員)의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國會議員)에게 부여된 권한이지 국회의원 개인(個人)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즉 기본권(基本權)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설사 국회의장(國會議長)의 불법적인 의안처리행위로 헌법의 기본원리(基本原理)가 훼손(毁損)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구체적 기본권(基本權)을 침해당한 바 없는 국회의원(國會議員)인 청구인들에게 헌법소원심판청구가 허용된다고 할 수 없다.
청 구 인 강 ○ 식 외 78인
대리인 변호사 강 철 선 외 32인
피청구인 국회의장
대리인 변호사 이 진 우
복대리인 변호사 안 범 수
1994.12.29. 선고, 93헌마120 결정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1. 청구인들이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 이유로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가. 1990.7.14. 제150회 국회 제11차 본회의에서 피청구인의 직무를 대리한 국회부의장 김○광은 민주자유당에서 미리 마련한 ‘날치기강행통과작전 시나리오’에 의하여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소형녹음기에 대고 의사봉도 없이 육성으로 개회선언을 한 뒤 별지 제2목록 기재의 26개 의안을 일괄상정하여 일체의 토론과 질의를 생략한 채 불과 33초만에 위 의안을 날치기로 가결 또는 폐기처리하였는바, 위 의안처리행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 즉 ① 제150회 국회 제11차 본회의는 일반인의 방청을 일체 불허함으로써 사실상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② 국회의장이 부의장에 대하여 직무대리에 관한 구체적 지정행위를 한 바 없음에도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장의 직무를 대리하
여 의안을 처리하였다. ③ 별지 2목록 24항 및 25항 기재의 법률안에 대하여는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의 고유 법안심사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안자의 취지설명도 없이 이를 처리하였다. ④ 국회의장은 별지 제2목록 26항 기재의 법률안을 소관 특별위원회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불법으로 회수하여 법사위원회에 회부한 것임에도, 이러한 국회의장의 불법행위가 시정되지 아니한 채 위 의안이 본회의에 직권회부되었다. ⑤ 별지 제2목록 17항 기재의 법률안은 국방위원회에서, 18항 내지 20항 기재의 3개 법률안은 문공위원회에서, 7항 내지 12항 기재의 6개 법률안은 보사위원회에서 각 불법으로 날치기처리된 것임에도 이러한 불법이 시정되지 아니한 채 본회의에 직권회부되었다. ⑥ 별지 제2목록 24항 내지 26항 기재의 각 법률안은 심사기간의 정함이 없이 회부된 것임에도 국회의장이 사후에 불법으로 심사기간을 정하였다. ⑦ 의안처리 당시 속기사석이나 기타 의석에서는 의장의 발언내용이 청취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정족수나 의결정족수의 확인도 없이 의사를 진행하였으며,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들이 있었음에도 국회법이 정하는 표결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위와 같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여 이루어진 이 사건 의안처리행위는 당연무효이다.
나.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말하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침해”는 헌법 제2장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침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권의 상위개념인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적법절차의 원리 등 헌법의 기본원리의 침해도 포함하는 것이다. 청구인들은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의원들인
바, 피청구인은 청구인들의 입법권(구체적으로 질의권, 토론권, 표결권 등)을 침해하여 이 사건 의안들을 위와 같이 불법으로 변칙처리 함으로써 헌법의 기본원리를 훼손하였고,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은 헌법의 기본원리가 보장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자신들의 기본권을 현재 직접 침해받은 것이다.
국회의 의결이나 의사진행을 통치행위로 보아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설사 이 사건 의안처리 행위를 통치행위로 본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는 그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며, 국회의 불법적인 의안처리에 대하여는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도 아니하므로 그 의안처리행위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다. 따라서 청구인들은 피청구인의 이 사건 의안처리행위가 위헌적인 공권력의 행사로서 무효임을 확인받기 위하여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2. 이에 대하여 피청구인은, 이 사건 의안처리행위는 고도의 정치행위에 속하는 것으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개인이 아닌 국회의원의 자격에서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으며 청구인들이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입법권은 기본권이 아니고 헌법의 기본원리의 침해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소정의 기본권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며, 설사 심판청구가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의안처리는 청구인들의 극한적인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방해가 있는 상태에서 적법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행해진 것이므로 위법하지 아니하다고 주장하
고 있다.
3. 그러므로 먼저 이 사건 심판청구가 적법한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가 국가기관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그 기본권을 침해받았을 경우 이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자는 원칙으로 기본권의 주체로서의 국민에 한정되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가기관이나 그 일부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헌법재판소 1994.12.29. 선고, 93헌마120 결정 참조).
나. 입법권은 헌법 제40조에 의하여 국가기관으로서의 국회에 속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행사하는 질의권·토론권 및 표결권 등은 입법권 등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의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으로서 국회의원 개인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즉 기본권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국회의 구성원인 지위에서 공권력작용의 주체가 되어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회의원이 국회의 의안처리과정에서 위와 같은 권한을 침해당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말하는 “기본권의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경우 국회의원은 개인의 권리구제수단인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다. 그리고 헌법소원심판 과정에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가 위헌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적법절차의 원리 등 헌법의 기본원리 위배 여부를 그 기준으로 적용할 수는 있으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헌법의 기본원리가 훼손되었다고 하여 그 점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직접 현실적으로 침해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또한 공권력행사가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반된다는 주장만으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자가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설사 피청구인의 불법적인 의안처리행위로 헌법의 기본원리가 훼손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구체적 기본권을 침해당한 바 없는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에게 헌법소원심판청구가 허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라. 따라서 청구인들이 입법권 등을 행사하는 공권력주체인 국회라는 국가기관의 구성원인 지위에서, 피청구인의 의안처리행위로 인하여 그들의 권한이 침해되고 헌법의 기본원리가 훼손되었음을 이유로 하여 제기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현행 법제도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4. 그렇다면,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다른 주장에 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95. 2. 23.
재판장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이재화
주심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
재판관 신창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