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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0. 11. 24. 선고 98두11083 판결

[국가유공자등록거부재결취소][공2001.1.15.(122),160]

판시사항

[1]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 제74조 제3호의 규정 취지 및 해석 방법

[2] 6·25사변 당시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는 자가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경우,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적극)

[3] 6·25사변 당시 철도공무원으로서 군수송업무에 종사하다가 군당국의 명령에 따라 미합중국 제○○사단장 구출작전에 참가하여 상이를 입은 경우,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4조 제3호는 1959. 12. 31. 이전에 전시근로동원법에 의하여 동원된 자,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기타 애국단체원으로 전투 또는 이에 준한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자를 전상군경 등으로 보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위 규정은 같은 법 제4조 제1항 제4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될 수 있는 군인, 경찰공무원 등의 신분을 갖지는 않았으나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였던 자가 6·25사변 당시 유사한 희생을 하고도 단지 신분의 차이로 전상군경이 되지 못하여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구제하고자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같은 법 제74조 제3호는 전상군경 등으로 볼 수 있는 신분을 한정적으로 열거한 것이 아니라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한 자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2] 6·25사변 당시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는 자가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경우에는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3] 6·25사변 당시 철도공무원으로서 군수송업무에 종사하다가 군당국의 명령에 따라 미합중국 제○○사단장 구출작전에 참가하여 상이를 입은 경우,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원고,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함영업)

피고,피상고인

대전지방보훈청장(경정 전:국가보훈처장)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원고가 1944. 2. 15. 철도공무원(고용직)으로 임용되어 6·25사변 당시 대전역 신호수로 근무하던 중 1950. 7. 19.경 옥천역으로 후퇴하였다가, 다음날인 7월 20일 대전지구에 잔류해 있던 미합중국 제○○사단장인 소외인 소장을 구출하기 위하여 옥천역에서 대전역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미특공대원들과 함께 다시 대전역으로 갔는데, 미특공대원들이 소외인 소장을 구출하지 못하자 그들을 대전역에 있던 미가형 기관차에 태우고 이를 운전하여 옥천역으로 후퇴하던 도중 북한군이 쏜 총탄에 왼쪽 머리 관통상을 입고 우반신이 마비되는 등 상이를 입고 퇴직한 사실, 6·25사변이 발발하면서 철도는 즉시 전시수송체제로 전환하여 군수물자의 수송과 피난민 수송에 들어간 사실, 원고는 1996. 1. 15. 피고에게 구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법'이라고 한다) 소정의 전상군경에 해당한다며 그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1996. 2. 16. 보훈심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1996. 3. 8. 원고의 국가유공자(전상군경) 등록신청 거부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원고가 6·25사변 당시 소외인 소장 구출작전에 참가한 것은 철도공무원 본래의 업무인 철도수송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원고는 법 제4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전상군경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나아가 법 제74조 제3호 소정의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받을 수 있는 '1959. 12. 31. 이전에 전시근로동원법에 의하여 동원된 자,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기타 애국단체원'으로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 제74조 제3호는 1959. 12. 31. 이전에 전시근로동원법에 의하여 동원된 자,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기타 애국단체원으로 전투 또는 이에 준한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자를 전상군경 등으로 보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위 규정은 법 제4조 제1항 제4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될 수 있는 군인, 경찰공무원 등의 신분을 갖지는 않았으나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였던 자가 6·25사변 당시 유사한 희생을 하고도 단지 신분의 차이로 전상군경이 되지 못하여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구제하고자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법 제74조 제3호는 전상군경 등으로 볼 수 있는 신분을 한정적으로 열거한 것이 아니라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한 자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6·25사변 당시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는 자가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경우에는 법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1950. 7. 17.경 북한군이 대전 주변에 접근하자 그 당시 군작전권을 인수·행사하고 있던 미국군의 명령에 따라 대전역에 근무하는 철도공무원들은 대전지역의 군수물자 등을 전부 옥천역, 대구역 등으로 후송한 다음, 같은 달 19일경에는 대전역에 4명의 철도공무원만을 남겨두고 전부 후퇴하여 원고도 마지막 화물열차로 옥천역에 도착하였는데, 다시 미국군 지휘관으로부터 소외인 소장 구출작전을 수행하는 미특공대원들과 함께 대전역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미특공대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가 미특공대원들이 소외인 소장을 구출하지 못하자 그들을 대전역에 있던 기관차에 태우고 직접 기차를 운전하여 옥천역으로 후퇴하던 중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상이를 입었음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6·25사변 당시 철도공무원으로서 군수송업무에 종사하다가 군당국의 명령에 따라 소외인 소장 구출작전에 참가한 원고는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직무에 사실상 종사하는 자로서 전투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입었다고 할 것이므로, 법 제74조 제3호에 의하여 전상군경으로 보아 법 소정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원고의 위와 같은 행위를 철도공무원 본연의 업무인 철도수송업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고 원고가 법 제74조 제3호에 열거된 신분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상군경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법 제74조 제3호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고이유 중 이 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이유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용우(재판장) 조무제 강신욱 이강국(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