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제130호)]
가.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국회를 위하여 국회의 권한침해를 주장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지, 즉 권한쟁의심판에 있어서 이른바 ‘제3자 소송담당’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나. 국회의원의 심의·표결 권한이 국회의장이나 다른 국회의원이 아닌 국회 외부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침해될 수 있는지 여부(소극)
가. 국회의 의사가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되었음에도 다수결의 결과에 반대하는 소수의 국회의원에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와 의회주의의 본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이 기관 내부에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토론과 대화에 의하여 기관의 의사를 결정하려는 노력 대신 모든 문제를 사법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남용될 우려도 있으므로, 국가기관의 부분 기관이 자신의 이름으로 소속기관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제3자 소송담당’을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법률의 규정이 없는 현행법 체계하에서는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국회의 조약에 대한 체결·비준 동의권의 침해를 주장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나.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국회의 대내적인 관계에서 행사되고 침해될 수 있을 뿐 다른 국가기관과의 대외적인 관계에서는 침해될 수 없는 것이므로, 국회의원들 상호간 또는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사이와 같이 국회 내부적으로만 직접적인 법적 연관성을 발생시킬 수 있을 뿐이고 대통령 등 국회 이외의 국가기관과 사이에서는 권한침해의 직접적인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아니한다. 따라서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조약을 체결·비준하였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
재판관 이동흡의 별개의견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과의 쌀협상 과정에서 작성된 이 사건 합의문은 법적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조약체결을 위한 국내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점, 조약의 일반적인 명칭과 다른 명칭과 형태로 체결된 점, 이 사건 양허안 개정안의 원만한 체결을 위하여 이해관계국과 사이의 신의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헌법상의 조약이라고 보기보다는 당사국 간의 신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신사협정이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사건 합의문이 조약임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심판의 대상도 부존재하여 각하를 면할 수 없다.
재판관 송두환의 반대의견
가. 정부와 의회가 다수당에 의해 지배되어 의회의 헌법상 권한이 행정부에 의해 침해되었거나 침해될 위험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다수파 또는 특정 안건에 관한 다수세력이 의회의
권한을 수호하기 위한 권한쟁의심판 등 견제수단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의회의 헌법적 권한이 제대로 수호되지 못하고 헌법의 권력분립 질서가 왜곡되는 상황하에서는, 의회 내 소수파 의원들의 권능을 보호하는 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의회의 헌법적 권한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일정한 요건하에 국회를 대신하여 국회의 권한침해를 다툴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고, 그 구체적 방안으로서 이른바 ‘제3자 소송담당’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 이 사건과 같은 권한쟁의심판에 있어서 ‘제3자 소송담당’은 적어도 국회의 교섭단체 또는 그에 준하는 정도의 실체를 갖춘 의원 집단에게는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수 있는 지위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청 구 인 별지 기재와 같다.
대리인 변호사 김정진 외 1인
피청구인 대통령
대리인 변호사 황도수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예받았던 특별대우를 2014년까지 10년간 추가로 연장하기 위하여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과 사이에 소위 쌀협상을 하였고, 그 결과 다시 10년간 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예하기로 하는 내용의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위한 마라케쉬 협정 부속서 1가 중 1994년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대한 마라케쉬 의정서에 부속된 대한민국 양허표 일부개정안”을 채택하게 되었다.
(2) 정부는 위 쌀협상 과정에서 이해관계국인 미국, 인도, 이집트와 사이에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대가로 위 나라들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하는 내용의 각 합의문(이하 ‘이 사건 합의문’이라고 한다)
을 작성하였다.
(3) 정부가 2005. 6. 7.경 국회에 위 양허표 개정안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이 사건 합의문을 포함시키지 아니하자,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은 이 사건 합의문을 포함하여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고,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4) 이에 청구인들은 2005. 10. 31. 위 양허표 개정안에 대한 비준동의안 제출행위와 이 사건 합의문에 대한 비준동의안 제출거부행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이 사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였고, 그 후 2007. 4. 26. 헌법상 조약의 체결·비준 주체인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을 국회의 동의 없이 체결·비준한 행위로 인하여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 및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청구취지를 변경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청구인들은 위 양허표 개정안에 대한 비준동의안 제출행위와 이 사건 합의문에 대한 비준동의안 제출거부행위가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 사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였다가, 그 후 청구취지를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을 국회의 동의 없이 체결·비준한 행위가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 및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다고 변경하였으므로(변경 전 청구와 변경 후 청구는 모두 이 사건 합의문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행위를 다투기 위한 것으로 그 청구의 기초에 변경이 없으므로 청구의 변경은 적법하다), 이 사건 심판대상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을 국회의 동의 없이 체결·비준한 행위가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 및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이다.
2.청구인들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 관계기관들의 의견요지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이 사건 합의문 중 ‘미국과의 이행을 위한 별도 합의서’는 일체의 수입쌀에 대하여 공개입찰을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수입양곡은 정부관리양곡의 일종으로서 현행 양곡관리법 제9조 제3항에 따라 “곡가조절용”으로 판매하는 경우에 한하여 공개입찰이 가능하다 할 것이므로, 위 합의서는 결국 양곡관리법의 개정이 필요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하고, ‘인도와 이집트와의 국별 합의서’는 대한민국이 관세화 유예 지속 시 인도로부터 10년간 91,210톤의 쌀을, 이집트로부터 20,000톤
의 쌀을 구매하기로 정하고 있는데, 그 구매가는 약 533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므로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 합의문은 그 체결·비준을 위하여 헌법 제60조 제1항에 따른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조약이다.
(2) 피청구인은 이 사건 합의문을 체결·비준함에 있어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아니함으로써 위 합의문에 대한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한을 침해하였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의 권력이 다수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현대의 정당국가적 권력분립구조하에서 다수의 권력행사를 실효성 있게 견제할 수 있기 위하여는 소수정당이 국회를 위하여 국회의 권한침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므로, 소수정당의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은 국회를 위하여 위 합의문에 대한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권이 침해되었다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3)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행사는 국회의 의사를 형성하기 위한 국회 내부의 행위이므로 원칙적으로 국회의 대내적 관계에서 행사되고 침해될 수 있을 뿐이나, 이 사건과 같이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지 아니함으로써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의 행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대외적 관계에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될 수 있다.
(4) 따라서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을 국회의 동의 없이 체결·비준한 행위는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동의권 및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1) 피청구인은 이 사건 합의문에 서명 또는 날인한 바 없으므로 피청구인적격이 없다.
(2) 이 사건 합의문은 국가 간에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도덕적 구속력만을 가지는 ‘신사협정’에 불과하여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의 대상이 아니하므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권한침해의 가능성이 없다.
(3) 이 사건 청구취지변경신청서는 이 사건 합의문이 체결·비준된 때로부터 헌법재판소법 제63조 제1항 소정의 청구기간이 이미 도과된 후에 접수되었으므로, 청구기간이 도과되었다.
(4) 조약에 대한 체결·비준 동의권한은 국회에게 있으므로 국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별 국회의원은 국회의 권한침해를 이유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국회의원이 국회의 권한침해를 주장하여 권한쟁의심판
다. 농림부장관의 의견
(1) 헌법재판소법 제62조 제1항 제1호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국가기관을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의원은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당사자능력이 없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대통령의 조약 체결·비준권과는 헌법적 관련성이 없으므로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적격이 없으며, 제3자 소송담당 허용 여부 및 청구기간에 관하여는 피청구인의 의견과 대체로 같다.
(2) 이 사건 합의문 중 ‘미국과의 이행을 위한 별도 합의서’는 양곡관리법의 개정을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공개입찰이 허용되는 양곡관리법 제9조 제3항 제3호상의 ‘곡가조절용’ 양곡은 ‘가공용’이나 ‘민수용’ 양곡 등에 대한 상위개념으로서 여타의 용도로 쓰이는 양곡이라도 그 양곡이 ‘곡가조절용’으로 시판될 때에는 공개입찰이 허용된다는 의미이므로, 수입쌀이라도 농림부장관이 ‘곡가조절용’으로 시판하는 이상 당연히 공개입찰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 합의문 중 ‘인도와 이집트와의 국별 합의서’ 역시 이미 정부 예산에 반영되어 운용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에서 그 재정적 부담을 충당하게 되어 있으므로 별도로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
라. 외교통상부장관의 의견
농림부장관의 의견과 대체로 같다.
마. 법무부장관의 의견
농림부장관의 의견과 대체로 같다.
3. 판 단
가. 이 사건의 쟁점
청구인들은 피청구인이 이 사건 합의문을 국회의 동의 없이 체결·비준함으로써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 및 청구인들의 조약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① 국회의 구성원인 청구인들이 국회를 위하여 국회의 권한침해를 주장하여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지, 즉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이른바 ‘제3자 소송담당’이 허용되는지 여부와 ②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국회의장이나 다른 국회의원이 아닌 국회 외부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침해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다만 위 쟁점은 이 사건 합의문이 조약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나, 위 합의문은 이 사건 심판에 현출되지 아
니하여 그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으므로 조약 여부에 대하여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 체결주체 및 변론과정에서 나타난 대략적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조약으로 볼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일응 조약으로 보고 위 쟁점에 대한 판단을 하기로 한다(만약 조약이 아니고 신사협정이라면 이 사건은 심판의 대상이 부존재하여 각하를 면할 수 없다).
나.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제3자 소송담당’의 허용 여부
(1) 헌법 제60조 제1항은 “국회는 ……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은 국회에 속한다. 따라서 조약의 체결·비준의 주체인 피청구인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조약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체결·비준하는 경우 국회의 조약에 대한 체결·비준 동의권이 침해되는 것이므로, 이를 다투는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이와 달리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국회의 권한침해를 주장하여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기 위하여는 이른바 ‘제3자 소송담당’이 허용되어야 한다.
소위 ‘제3자 소송담당’이라고 하는 것은 권리주체가 아닌 제3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권리주체를 위하여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권능이다. 권리는 원칙적으로 권리주체가 주장하여 소송수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책임의 원칙에 부합하므로, ‘제3자 소송담당’은 예외적으로 법률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그런데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헌법재판소법 제61조 제1항은 “국가기관 상호간에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을 때에는 당해 국가기관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제2항은 “제1항의 심판청구는 피청구인의 처분 또는 부작위가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여 부여받은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현저한 위험이 있는 때에 한하여 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권한쟁의심판의 청구인은 청구인의 권한침해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국가기관의 부분기관이 자신의 이름으로 소속기관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제3자 소송담당’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이에 반해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제3자 소송담당’을 허용하고 있는 독일은 기본법과 연방헌법재판소법에 부분기관이 소속된 기관을 위하여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
권한쟁의심판에 있어서의 ‘제3자 소송담당’은, 정부와 국회가 원내 다수정당에 의해 주도되는 오늘날의 정당국가적 권력분립구조하에서 정부에 의한 국회의 권한침해가 이루어지더라도 다수정당이 이를 묵인할 위험성이 있어 소수정당으로 하여금 권한쟁의심판을 통하여 침해된 국회의 권한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이를 인정할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국회의 의사가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되었음에도 다수결의 결과에 반대하는 소수의 국회의원에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와 의회주의의 본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이 기관 내부에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토론과 대화에 의하여 기관의 의사를 결정하려는 노력 대신 모든 문제를 사법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남용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제3자 소송담당’을 허용하는 법률의 규정이 없는 현행법 체계하에서 국회의 구성원인 청구인들은 국회의 조약에 대한 체결·비준 동의권의 침해를 주장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심판청구는 청구인적격이 없어 부적법하다.
다. 국회 외의 국가기관에 의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의 침해가능성 여부
국회가 헌법 제60조 제1항에 따라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한을 행사하는 경우에, 국회의원은 헌법 제40조 및 제41조 제1항과 국회법 제93조 및 제109조 내지 제112조에 따라서 조약의 체결·비준 동의안에 대하여 심의·표결할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국회의 동의권과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비록 국회의 동의권이 개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절차를 거쳐 행사되기는 하지만 그 권한의 귀속주체가 다르고, 또 심의·표결권의 행사는 국회의 의사를 형성하기 위한 국회 내부의 행위로서 구체적인 의안 처리와 관련하여 각 국회의원에게 부여되는데 비하여, 동의권의 행사는 국회가 그 의결을 통하여 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행해지며 대외적인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따라서 국회의 동의권이 침해되었다고 하여 동시에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다고 할 수 없고, 또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국회의 대내적인 관계에서 행사되고 침해될 수 있을 뿐 다른 국가기관과의 대외적인 관계에서는 침해될 수 없는 것이므로, 국회의원들 상호간 또는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사이와 같이 국회 내부적으로만 직접적인 법적 연관성을 발생시킬 수 있
을 뿐이고 대통령 등 국회 이외의 국가기관과 사이에서는 권한침해의 직접적인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아니한다.
따라서 피청구인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조약을 체결·비준하였다 하더라도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권이 침해될 수는 있어도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고 할 것이므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심판청구 역시 부적법하다.
4. 결 론
그렇다면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점에서 벌써 부적법하므로 더 나아가 살펴볼 것 없이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이 사건 합의문의 조약 여부에 관한 재판관 이동흡의 아래 5.와 같은 별개의견과 ‘제3자 소송담당’의 허용 여부에 관한 재판관 송두환의 아래 6.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5. 재판관 이동흡의 별개의견
나는 이 사건 심판청구가 각하되어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이 사건 심판청구는 권한쟁의심판에 있어 ‘제3자 소송담당’이 허용되지 아니하고 대통령 등 국회 이외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될 수 없으므로 부적법하다는 사유 외에 이 사건 합의문이 신사협정에 해당하여 심판의 대상도 부존재하여 부적법하다는 사유가 있으므로 각하를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약법에 관한 비인(Wien) 협약’ 제2조 제1항 a호가 ‘조약은 단일의 문서 또는 둘 이상의 관련문서에 구현되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또한 그 특정의 명칭에 관계없이, 서면형식으로 국가 간에 체결되고 또한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라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조약은 ‘국제법 주체 간에 권리·의무관계를 창출하기 위하여 서면형식으로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합의’라고 정의할 수 있고, 한편 신사협정은 당사국 간에 법적인 권리·의무관계를 창출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합의로서, 합의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조약과 구별된다.
그런데 먼저 이 사건 합의문은 법적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조약체결을 위한 국내절차인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공포 등을 전혀 거치지 아니하였는바, 이는 이 사건 합의문에 발효를 위한 국내절차규정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함을 의미하므로 체결 당사자 사이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할 의도가 없었다고 보이고, 다음으로 피청구인의 주장에 의하면 이 사건 합의문은 재외
공관장들 간의 외교서한의 형태로서 특별한 명칭이 없거나 양해록(record of understanding)으로 되어 있는바, 조약의 일반적인 명칭에 비추어 이는 위 합의문을 조약의 형태로 체결할 의사가 없었음을 의미하며, 또한 다자간 조약인 이 사건 양허안 개정안의 원만한 체결을 위하여 이해관계국과 사이의 신의에 기초하여 이 사건 합의문을 작성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합의문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헌법상의 조약이라고 보기보다는 당사국 간의 신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신사협정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합의문이 조약임을 전제로 조약에 대한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권과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음을 주장하는 이 사건 심판청구는 심판의 대상이 부존재하여 부적법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
6. 재판관 송두환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의 논지 중 “권한쟁의심판에 있어서 제3자 소송담당이 허용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으므로, 다음과 같이 나의 의견을 밝혀 둔다.
가. 다수의견은 제3자 소송담당을 허용하는 법률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국회의 구성원인 청구인들이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의 침해를 다투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3자 소송담당은 헌법의 권력분립원칙과 소수자보호의 이념으로부터 직접 도출될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전면 부정할 것은 아니다.
나.우리 헌법은 제40조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66조 제4항에서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권력분립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국가권력의 분리와 합리적 제약을 통하여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이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헌법은 단순히 권력을 분립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권력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국가권력 작용이 서로 통제되면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분립의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회와 정부 사이에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 그런데 오늘날 정부와 국회의 권력이 다수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현대의 정당국가적 권력분립구조 하에서는 의회와 행정부가 정당을 통하여 융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그에 따라 의회의 대정부 견제기능
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고전적 권력분립의 원칙을 의회 내에서의 여당과 야당 간의 기능적 권력분립이론을 통해 보완하여야 한다는 실질적, 기능적 권력분립이론이 주장되고 있다. 그와 같은 실질적 권력분립이론은 헌법이 지향하는 소수자보호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 정부와 의회가 다수당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 의회의 헌법상 권한이 행정부에 의해 침해되었거나 침해될 위험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다수파 또는 특정 안건에 관한 다수세력이 그에 대한 방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다수파나 다수세력이 의회의 권한을 수호하기 위한 권한쟁의심판 등 견제수단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이 명령하는 권력의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회의 헌법적 권한이 제대로 수호되지 못하고 헌법의 권력분립 질서가 왜곡되는 상황하에서는, 의회 내 소수파 의원들의 권능을 보호하는 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의회의 헌법적 권한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일정한 요건하에 국회를 대신하여 국회의 권한침해를 다툴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고, 그 구체적 방안으로서 이른바 ‘제3자 소송담당’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 다수의견은 법률상 명문규정의 부존재를 이유로 ‘제3자 소송담당’을 부정하고 있으나, 역으로 ‘제3자 소송담당’을 금지하는 법률의 규정도 없으므로 성급히 단정해버릴 문제는 아니다.
헌법소송의 주된 법원(法源)인 헌법재판소법이 그 제정 당시 헌법재판 역사와 경험의 일천으로 인하여 헌법소송에 필요한 모든 규율을 완결적으로 담아내지 못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법이 제40조에서 ‘헌법재판소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 형사 또는 행정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도록 규정하면서, 다시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라고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은, 헌법재판소법이 완결적이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아가 헌법재판 또는 헌법소송이 여타의 소송과는 다른 특성과 특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 또는 헌법소송에 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원리와 지도정신에 의거한 창조적 법형성으로 법적 흠결을 보완해 나갈 여지가 주어져 있고, 또한 그것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의회의 대정부 견제기능의 정상적 작동을 전제로 한 헌법상의 권력분립이 명목적 원리로 전락하는 예외적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실질적 권력분립원칙과 소수자보호라는 헌법의 정신에 따라 ‘제3자 소송담당’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 및 어떤 범위와 요건하에서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해 나감으로써 헌법재판소법에 내재된 입법적 흠결을 스스로 보완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청되는 바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의견이 ‘제3자 소송담당’의 필요성을 일응 인정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단순히 법률상 명문규정의 부존재를 이유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바. 다수의견은 제3자 소송담당을 인정하는 것은 국회의 의사가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되었음에도 소수의 의사에 따라 번복될 수 있음으로써 의회주의의 본질에 어긋나며, 국가기관이 내부에서 민주적 방법으로 토론과 대화로 의사를 결정하려는 노력 대신 사법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3자 소송담당’은, 헌법이 요구하는 의회의 대정부 견제기능이 의회 내 다수파의 정략적 결정에 의하여 저해되고 그럼으로써 헌법이 명령하는 의회주의가 왜곡 내지 훼손되는 경우에, 그로부터 의회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강구되는 것이므로 의회주의의 본질에 반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의회주의의 본질을 더욱 충실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수의견이 제3자 소송담당을 인정하는 경우 남용의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히 경청하여야 할 바이다. 그러나, 남소의 위험성 문제는 개별적, 구체적 사안에서 권한쟁의 심판의 이익 유무를 검토하거나 또는 권리남용의 법리를 적용하는 것을 통하여 대체로 해소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3자 소송담당의 인정 범위와 요건 등을 정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요소가 될 수 있을 뿐, 제3자 소송담당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사. 이 사건과 같은 권한쟁의심판에 있어서 위와 같이 ‘제3자 소송담당’을 인정하는 경우 어떤 범위와 어떤 요건하에서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인바, 적어도 국회의 교섭단체 또는 그에 준하는 정도의 실체를 갖춘 의원 집단에게는 제3자 소송담당의 방식으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수 있는 지위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교섭단체는 국회에서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기 위해 구성된 기구로서, 20인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 하나의 교섭단체가 되며,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20명 이상의 의원도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국회법 제33조 제1항). 교섭단체의 국회법상 지위와 기능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교섭단체에게는 국회를 대신하는 제3자로서 소송을 담당할 적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한편,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의 의원들로서 구성되므로 소속의원 수가 20인에 미달하는 정당은 스스로 교섭단체를 결성할 수 없고,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20인 미만의 의원들 또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는바, 그러한 경우라도 상당한 수의 의원들이 국회의 권한과 권능 수호 및 소수자보호를 위해 연대하여 국회를 대신한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하는 경우라면 교섭단체에 준하는 단체성을 인정하여 심판청구의 적격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보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의 규범적 질서에 부합하고, 그럼으로써 왜곡, 훼손된 헌법적 질서와 의회주의를 정상으로 회복하여 헌법의 수호 및 의회 내 소수자의 보호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사건의 경우를 살피건대, 청구인들은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9인 전원으로서, 같은 당 소속의원이 20인에 미달하여 교섭단체를 결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일정한 정치적 주장과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적 집단의 실체를 갖추고 있고, 그러한 기초 위에서 이 사건의 경우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조약을 체결한 행위를 다투고 있으며,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인들의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대한 의회의 견제를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경우 청구인들은 비록 국회법상의 교섭단체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그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서, 제3자 소송담당의 방식으로 국회의 권한 침해를 다툴 수 있는 심판청구인 적격을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볼 것이다.
자. 결국, 이 사건은 다른 적법요건상 문제가 있지 아니한 한 각하할 것이 아니고, 본안에 들어가 그 권한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재판관 이강국(재판장) 조대현 김희옥 김종대(주심)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별 지] 청구인의 표시
1. 국회의원 강기갑
2. 국회의원 권영길
3. 국회의원 노회찬
4. 국회의원 단병호
5. 국회의원 심상정
6. 국회의원 이영순
7. 국회의원 천영세
8. 국회의원 최순영
9. 국회의원 현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