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및퇴직수당거부처분무효확인등·재직기간합산확인등][미간행]
[1]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
[2] 군무원인사법상 군무원으로 임용되어 주한미군 측 기관에서 번역군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갑이 퇴직한 때로부터 약 23년이 지난 후 공무원연금공단에 번역군무원으로 근무한 기간에 대한 공무원연금법상 퇴직급여의 지급을 신청하였으나 공무원연금공단이 구 공무원연금법 제81조 제1항 에서 정한 5년의 시효기간이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퇴직급여지급 거부처분을 한 사안에서, 공무원연금공단이 시효 완성 전에 갑의 권리행사나 시효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시효 완성 후에 시효를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갑에게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고 볼 사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공무원연금공단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중간확인원고)
공무원연금공단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 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 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반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두242 판결 등 참조).
2. 원심의 판단
가. 원심은, 원고가 군무원인사법상 군무원으로 임용되어 주한미군 측 고용기간을 그 근무임기로 하는 휴직된 군무원의 신분을 가지고 1983. 1. 1.부터 1992. 9. 30.까지 재직하였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한 다음, 원고가 번역군무원에서 퇴직한 다음 날인 1992. 10. 1.부터 퇴직급여 지급청구권의 소멸시효가 기산되어 원고가 피고에게 퇴직급여 지급을 청구한 2015. 6.경에는 구 공무원연금법(1995. 12. 29. 법률 제51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공무원연금법’이라고만 한다) 제81조 제1항 에서 정한 5년의 시효기간이 경과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나. 나아가 원심은,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고, 이를 이유로 한 피고의 이 사건 퇴직급여지급 거부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원고가 속한 정보부대장은 미군 측으로부터 받은 퇴직금 명목의 돈을 공무원연금법에서 정한 기여금으로 피고에게 납부하는 절차를 취하지 아니한 채 이를 그대로 원고에게 퇴직금으로 교부하였고, 원고로부터 국가의 퇴직금 지급의무가 다 이행되었고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확약서 등을 작성받았으며, 원고는 정보부대장의 위와 같은 업무처리 방식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기에 그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2) 피고 역시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급여를 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제시하지 않았다.
(3) 원고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소외인은 1993. 10. 17. 군무원에서 퇴직한 후 1998. 10. 12. 피고에게 퇴직급여를 신청하였다가 피고가 이를 거부하자, 1999. 9. 30.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여, 피고의 퇴직급여지급 거부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이 선고·확정되었다(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6두2572 판결 ). 이에 소외인은 2009년 무렵 피고로부터 퇴직급여를 수령하였다. 원고는 2015. 4.경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4) 피고는 공무원의 퇴직 등에 대하여 적절한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공무원 등의 생활안정과 복리 향상이라는 공무원연금법의 목적달성에 기여하여야 할 공적인 지위에 있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그러나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피고가 시효 완성 전에 원고의 권리행사나 시효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시효 완성 후에 피고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고 볼 사정이 없다.
(2) 원고가 퇴직급여를 소멸시효 기간 내에 청구하지 못한 것은 원고가 공무원에 해당함을 알지 못하여 구제받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원고가 소속된 기관장인 정보부대장이 미군 측으로부터 받은 퇴직금 명목의 돈을 공무원연금법에서 정한 기여금으로 피고에게 납부하는 절차를 취하지 아니한 채 원고에게 퇴직금으로 교부하고, 원고의 퇴직급여 신청에 필요한 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여 주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은 객관적으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할 사실상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3) 원고의 동료인 소외인이 퇴직한 지 5년 이내에 퇴직급여를 청구하였던 것과 달리 원고는 퇴직한 때로부터 약 23년간 퇴직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고는 소외인의 퇴직급여지급 거부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1994. 5. 13.경 소외인과 같이 번역군무원 동료로 근무하였다는 취지의 인증서(갑 제6호증)를 제출하는 등 소외인의 소송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소외인의 승소판결 확정 후 약 6년이 도과할 때까지도 퇴직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다.
(4) 원고는 매년 퇴직금을 정산하여 수령하였으므로,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불이익은 공무원연금법상 인정되는 퇴직급여와 이미 수령한 금액의 차액에 한정될 뿐이다.
(5) 공무원연금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비록 피고가 공무원연금법의 목적달성에 기여하여야 할 공적인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 조항은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나. 그런데도 원심은,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와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