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등 ][하집1996-1, 556]
부검소견에 따른 사망시간 추정, 현장 상황 등의 여러 정황들의 증명력에 의문이 들고 달리 유죄를 단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사례
피해자가 피고인과 함께 있던 시간대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체감식 및 부검소견은 그 시반을 양측성 시반으로 보았으나 그와 같이 단정할 수 없고, 시강의 상태에 온도가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였으며, 피해자가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경찰의 일방적인 추측을 근거로 위장내용 검사 결과를 분석한 점 등에서 그 증명력에 의문이 들어 이를 선뜻 믿기 어렵고, 그 밖에 여러 면에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살인죄의 유죄를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변호사 김창국 외 2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1. 피고인 및 그 변호인의 항소이유의 요지
피고인은 원심 판시 기재와 같이 처인 피해자 1과 딸 피해자 2를 살해한 사실이 없음에도 원심은 의심스러운 증거들을 들어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하였으므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가. 원심이 공소사실을 구체화하여 인정한 범죄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87. 전북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87. 3.부터 서울에 있는 이대부속 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참을성이 많은 성격의 피고인과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피해자 1(만 30세)이 잘 맞다고 생각한 위 병원 간호사인 위 피해자 1의 언니 공소외 1의 소개로 1988. 겨울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본과 2학년에 재학중인 위 피해자 1을 알게 되어 1989. 11. 1. 결혼을 하였고 1992. 2. 군에 입대하여 1992. 4. 27.부터 1995. 4. 27.까지 강릉시에 있는 명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였으며 1995. 6. 12. 서울 강서구 (상세주소 생략)에 피고인외과의원을 개원하였고, 위 피해자 1은 1991. 2. 25. 연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6. 10.부터 1992. 6. 10.까지 서울 마포구청 보건소 치과의사로 근무하다가 1992. 6. 12.경 서울 은평구 불광동 (상세주소 생략)에 (상호 생략)치과를 개원하였는데, 결혼 초기 위 피해자 1이 학생이라 피고인을 뒷바라지 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시가에서 위 피해자 1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면이 있었고 결혼 후 피고인의 동생인 당시 학생 공소외 2, 당시 회사원인 공소외 3과 함께 살던 중 위 피해자 1과 위 공소외 2 등이 원만하게 지내지 못해 1년 만에 위 공소외 2 등과 헤어져 살게 되면서 시가와 위 피해자 1의 관계가 멀어졌으며, 남달리 돈에 집착하고 금전문제에 철저한 위 피해자 1이 장남인 피고인 때문에 시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장차 요구당할 것을 미리 경계하는 등으로 돈 문제로 많이 힘들어 하면서 불만을 가지는 등 시가와 위 피해자 1과의 관계가 더 멀어져 피고인이 그 사이에서 무척 힘이 들었고, 위 공소외 3이 전주로 내려간 후 1991. 3. 19.경 죽고 그 충격으로 부(부)인 공소외 4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그 자책감으로 상당히 괴로워 하던 중 이혼까지 거론되는 등 피고인과 위 피해자 1과의 관계도 상당 기간 갈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발하지만 독선적일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이기적인 위 피해자 1이 집안의 경제적인 면을 모두 혼자서 관리하며 매사를 피고인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여도 피고인의 성격 및 수입의 정도와 관리의 관심 등에 관한 현실적인 경제적인 열등한 위치 때문에 위 피해자 1의 뜻에 거의 그대로 따르는 등 위 피해자 1과 형식적으로는 피고인이 인내하여 별 문제가 없는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나 실질적으로 굴종적 불평등의 관계에 다름아니어서 피고인이 부지불식간에 감정적으로 억압된 의식적, 무의식적 증오심과 불만을 품어왔으며, 피고인이 위 명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별거기간 동안 피해자 1의 몇 차례의 외박 등으로 위 (상호 생략)치과 인테리어공사를 하였던 공소외 5와의 깊은 관계를 짐작하였는데 그 후 약 2년간 받으면 그냥 끊는 전화가 계속 오자 위 피해자 1이 위 공소외 5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는 한편 결혼 후 4년 여만인 1994. 5. 26. 뒤늦게 출산한 피해자 2(만 1세)가 피고인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을 내심 가지고 있었고, 외과의원을 개원하는 과정에서도 외과의 전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종합병원에의 취직을 원하는 위 피해자 1과 사이에 다툼이 있었으며 위 피해자 1이 개업비용을 대부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마련하면서 피고인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어 피고인도 개업과 관련한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는 등으로 피고인의 위 피해자 1에 대한 잠재적 감정이 어떤 계기를 만나 폭발할 가능성이 있던 중,
(1) 1995. 6. 11. 21:00경 서울 은평구 불광동 미성아파트 (동·호수 생략) 피고인의 집에 도착하여 위 피해자 2에게 우유를 먹여 잠을 재운 후 누나인 공소외 6으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고 같은 날 21:30경부터 위 피해자 1과 함께 쌀밥, 쇠고기국, 오징어채무침, 김치, 깻잎조림, 조기 등으로 식사를 한 다음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여 설거지를 하였고, 같은 날 22:30경 공소외 1과 위 피해자 1 사이의 피고인 개원과 관련한 식사약속에 대한 전화통화를 들은 후인 1995. 6. 11. 23:30경부터 다음 날인 같은 달 12. 06:30경 사이에 위 피해자 1과 어떤 언쟁(피고인의 누나인 공소외 6이 피고인의 외과의원에 시간제로 일하는 문제에 관한 언쟁이 아닌가 한다)이 발생하여 다투다가 그 다툼이 확대되어 위 피해자 1로부터 시가나 경제적인 문제 혹은 공소외 5와의 관계 등에 관련된 부분에 관하여 극단적인 모욕적 언사를 당하자 위와 같이 누적된 억압잠재감정이 폭발한 나머지 위 피해자 1을 살해할 마음을 먹고 잠시 다툼이 중지되어 서로 떨어져 있는 사이에 이 피해자 1 몰래 거실 베란다의 커튼 줄을 끊어 살해도구를 준비한 다음 무방비 상태에 있던 위 피해자 1에게 다가가 등쪽으로부터 목 앞부분에 위 줄을 걸고 뒤에서 묶어 두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졸라서 위 피해자 1을 살해하고, 상당 시간 후 위 피해자 2도 그 장래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차라리 살해하는 것이 낫다고 엄청난 상황 혼란에 따른 오판을 하고 위 줄보다 가는 어떤 줄로 목을 졸라서 위 피해자 2를 살해하고,
(2) 위와 같이 피해자들을 살해하고 난 뒤 피고인의 혐의회피 방법 등을 고심하던 끝에 위 아파트에 서서히 타들어 가는 방법으로 불을 놓아 수사에 혼선을 주게 할 목적으로 같은 날 07:00경 출근할 무렵에 밀폐된 위 아파트 안방에 있는 장롱 중간 옷장에 있던 옷에 불을 붙이고 옷장 문을 약간만 열어 놓아 위 불길이 위 장롱을 거쳐 결국 위 아파트 안방 전체에 번지게 하여 피고인 및 피해자들이 주거로 사용하는 위 아파트 안방을 모두 태움으로써 사람의 주거에 사용하는 건조물을 소훼한 것이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그 거시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였는바, 원심이 그 판단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점들은 아래와 같다.
(1) 사체감정결과에 의한 사망시각 추정
(가) 시반에 의한 추정
이 건의 경우 6. 12. 11:30경 실시된 최초 감식시 나타난 피해자 1의 우측대퇴부시반이 6. 13. 10:40-11:25 사이에 실시된 부검시에도 잔존하고 있으므로 양측성시반으로 판단되고, 양측성시반은 사후 6-8시간 경과 후 체위를 변경시켰을 경우 나타나는 것이므로, 피해자 1의 사망시각은 6. 12. 01:30경부터 06:30경까지로 추정된다. 영국 법의학서(Keith Ment 저)의 견해는 사후 4-12시간 내에 시반고정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를 적용하며 6. 11. 23:00부터 6. 12. 07:00경까지로 추정될 수도 있으나, 사체가 물에 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6. 12. 07:00 이전으로 봄이 타당하다.
(나) 시강에 의한 추정
피해자 1의 시강은 검안시 손가락 관절에까지 강직현상이 나타나 있고, 검안시 강직을 인위적으로 푼 후 재강직이 일어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사망시각은 6. 12. 03:30-04:30 이전으로 추정된다.
(다) 위장관내용물에 의한 추정
피해자 1의 위장잔존물은 그 내용물의 종류에 비추어 6. 11. 21:30경 한 저녁식사시 먹은 음식으로 추정되고, 따라서 피해자 1의 사망시각은 늦어도 6. 12. 01:00-02:00 이전으로 추정된다.
(2)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1심 증거로는 인용하지 아니하였으나, 검사의 제시증거 중 하나이다.)
긴장정점검사법을 이용하여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검사를 시행한 결과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피해자 1이 살해된 시각(04:00), 장소(거실), 살해 후 집을 나간 시간(4시간) 등의 질문에 대하여 거짓말 반응이 나왔다.
(3) 발화시각 추정
현장의 상황으로 보면, 발화는 장롱 하단부의 옷 등에 불을 붙인 다음 장롱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안방 문은 닫은 상태에서 연소가 진행되어 장롱 안에 걸려 있던 옷을 따라 위로 연소가 진행되고 장롱 윗부분을 태워 구멍을 내고는 천정의 절연재합판을 검게 그슬리기만 한 상태에서 산소의 소실로 자연진화되던 중 발견된 이른바 훈화현상으로 판단된다. 훈화는 상당한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집밖으로 연기가 나오는 것을 경비원인 조복식이 최초로 발견한 시각이 08:20경이므로 발화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컴퓨터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해자드1을 사용하여 방화시각을 추정하는 실험을 하였는바, 그 결과 추정된 발화시각은 06:40-07:10으로서 피고인이 집에 있었던 때 발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4) 현장상태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변소의 진실성이 의심되는 점
(가) 우유병 및 1회용 분유통의 상태
피해자 1이 치과를 개업하여 출근하는 관계로 피해자 2는 출근시 외할머니인 공소외 7에게 데리고 가 맡기고 퇴근할 때 다시 데려 가는데, 이 때 공소외 7은 소독한 빈 우유병 3개와 분유와 이유식을 혼합하여 채운 1회용 분유통 2개를 건네 준다. 피해자 2는 늘상 밤 9:00경 반병, 12:00경 반병, 새벽 3:00경 1병, 6:00경 1병의 우유를 먹는데, 밤과 새벽 3시에는 가져간 1회용 분유통에 채운 우유를 사용하고, 아침에는 피해자 1이 스스로 우유를 타서 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위와 같이 사용한 우유병과 1회용 분유통을 다시 가져와 공소외 7에게 주면, 공소외 7이 우유병은 세척, 소독하고 분유통에는 분유 등을 다시 채워 퇴근시 준다. 그런데 현장에는 우유병 2개는 식탁 위에 세척한 상태로 놓여 있고 1개는 우유가 반쯤 채워져 침대 밑에 떨어져 있었다. 또한 1회용 분유통은 1개만 비워져 있고 다른 1개는 채워져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태를 종래 피해자 2의 수유습관 등에 비추어 보면, 6. 11. 21:00경 피해자 2에게 1회 수유하고 24:00경 수유하기 전에 피해자 1과 피해자 2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 부엌, 싱크대 및 식기세척기의 상태
피해자 1은 하루 쓴 그릇을 저녁에 모아 식기세척기에 넣고 작동시켜 세척한 다음 이를 다음날 아침 꺼내 정돈하곤 하였다. 피고인의 변소대로 피고인 및 피해자 1이 아침을 먹었다면 국그릇과 밥그릇 등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식기세척기 내에는 전날 사용한 그릇들만이 들어 있을 뿐이고, 식탁 위나 싱크대 안에는 그릇들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싱크대 안에 있는 국냄비에는 물이 담겨져 있고 물 위에 미역국 찌꺼기가 떠 있으며, 그 외에 달리 피고인이 6. 12. 아침으로 먹었다는 콩나물국을 끓인 냄비나 담아 먹은 그릇 등은 없다. 그 밖에 피고인은 전날 조기 2마리를 구워 반마리를 저녁에 먹고 아침에 다시 반마리를 먹었다고 주장하나, 조기 반마리가 그대로 쓰레기 봉지안에서 발견된 점 등에 비추어 보아도 아침을 먹었다는 피고인의 변소는 거짓으로 판단된다.
(다) 화장실의 상태
피고인은 사건 당일 아침 샤워를 하였고 그 후 피해자 1도 샤워를 하였다고 진술하나, 6. 12. 11:30경 현장검식시에 화장실 벽면에 물방울로 인한 벽면그을음 현상이 관찰되지 아니하였다.
(5) 피고인에게 살인의 동기가 있는 점
(가) 피해자 1과 공소외 5와의 불륜관계
피고인은 강릉에서 근무하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피해자 1과 전화통화를 하 였는데 피해자 1이 공소외 5와 나간 동안 치과로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간호원이 나갔다고 하면 언제 어디로 나갔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으며, 피해자 1은 공소외 5을 동반하여 동료의사들과의 회식장소 등에도 가고 언니에게도 친구라면서 소개하는 등 거리낌이 없어 주위에서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고, 피해자 1은 피고인에게도 공소외 5을 소개시켰는데, 피해자 1이 치질수술을 받았을 때 밤늦게 문병 온 공소외 5을 보고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적도 있으며, 피고인이 피해자 1의 외박사실을 전화로 알아 화나고 고민하는 내용의 일기(친구 누군지도 알리지 않고 친구집에서 잤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화가 난다는 등의 내용)을 컴퓨터로 작성한 적도 있던 점 등으로 보아, 피고인은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를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나) 피고인과 피해자 1의 성격 차이
피고인은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참을성이 강한 편이나 화가 나면 무서운(피고인이 근무하던 명병원의 원장이 구속되었을 때 피고인이 검찰에 전화를 하여 격렬히 항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성격인 반면 피해자 1은 성격이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돈관계는 가족간에도 철저히 따지는 등 욕심이 많은 편이다. 심지어 "돈문제는 아내에게 일임하고, 아내가 의사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남편인 피고인은 전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피고인에게 쓰게 한 사실도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평소 아내인 피해자 1에게 억눌려 지내면서 불만과 증오심을 키워왔을 가능성이 높다.
(다) 피해자 1과 시가와의 갈등
신혼 초 시누이와 시동생이 같이 살게 되자 피해자 1은 이에 대한 불만을 많이 토로하였고 결국 6개월여 후에 시누이들은 피고인 집을 나와 따로 살게 되었다. 시동생은 이 때 본가인 전주로 내려 갔는데 그 후 10여 개월 후 간염 등으로 사망하였고, 그와 같은 상황하에서 피해자 1과 시가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피고인과의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6) 범행도구
베란다에 설치된 커튼 끈이 1m 가량 잘려 있고, 잘린 면 및 매듭에 불에 의한 열반응 흔적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는 화재 발생 전에 잘린 것이며, 피해자 1의 목에 난 색흔으로 미루어 그것이 범행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7) 제3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
피고인이 집을 나간 시간은 06:55경부터 07:00 사이이다. 현장 상황, 위 내용물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피해자 1이 그 때부터 밥을 먹고 그릇을 설거지하여 치우려면 상식적으로 최소한 2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범인이 피해자 1을 살해하고 욕조에 물을 받아 사체를 옮긴 다음 불을 지르고 나가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 사건 화재가 훈화현상인 점을 감안할 때 연소가 진행되어 연기가 발견될 때까지에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계산상 범인이 들어와 피해자 1의 목을 졸라 죽이고 다시 피해자 2를 살해할 수 있는 시간대는 넓게 잡아도 07:20부터 08:00 사이에 불과한데, 위 시반 등에 의한 사망시각 추정과 배치된다. 또한 피해자 1이 혼자 있을 때는 꼭 문을 잠그는 성격이라는 주위의 진술과 피해자 1이 살해당시 잠옷인 긴 티셔츠를 입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범인은 면식범으로 추정되는데, 피해자 1의 주위에 살해동기를 가질만한 다른 사람이 없다. 피해자 2는 피해자 1을 살해한 끈보다 가는 끈으로 살해되었는바, 제3자가 몰래 베란다에 나가 커튼 끈을 자르고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 1을 살해한 뒤 다시 다른 끈을 구해 피해자 2를 살해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상상하기 어렵고 제3자가 돌이 갓 지난 피해자 2까지 살해할 이유도 없다. 나아가 제3자라면 불을 질러 범행을 빨리 발견되게 할 이유도 없다(사체를 욕실에 옮겨 물에 담궈 놓았으므로 사체를 훼손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는 매동 경비원이 있는 곳이어서 외부인의 침입이 어렵고, 당일 출입한 외부인도 없었다는 것이 경비원의 진술에 의하여 명백하므로,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 당원의 판단
(1) 이 사건의 쟁점
피고인은 1995. 6. 12. 06:00경 깨어 식사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깨어 밥을 차려 주었으며, 07:00경 출근할 때에 딸을 안고 문앞에서 배웅하면서 뽀뽀까지 하여 주었다고 변소하고, 피해자 1이 6. 11. 22:30경 언니인 공소외 1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 및 피고인이 사건 아파트 1층 경비실 앞을 06:55-07:00경 통과하여 밖으로 나간 사실은 공소외 1과 경비원인 김성영의 진술에 의하여 명백히 인정되므로,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들이 피고인이 집에 머물고 있던 6. 11. 22:30경부터 6. 12. 07:00경 사이에 살해된 것인지(이 경우라면 피고인에 의한 범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부에 달려 있다 할 것인바, 원심은 주로 위 사망시각 감정 결과와 우유병, 식기세척기 등 현장상황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들이 6. 11. 23:30경부터 6. 12. 06:30경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면서 그 외 피고인의 변소를 의심하게 하는 여러 정황증거, 동기를 추측할 만한 사정들, 제3자의 범행가능성을 상상키 어려운 점 등을 더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그대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2)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대한 검토
(가) 사망시각 추정과 관련된 사체감정결과에 대하여
① 시반에 의한 추정:시반이란 적혈구가 융해되면서 혈관벽이 혈색소에 의하여 염색되어 외관상 피부에 암적갈색 반상의 형태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시반이 발생하는 부위는 중력에 의하여 피가 모이는 아랫 부분이고 다만 지면 등에 직접 닿은 부위에는 압력에 의하여 시반이 발생하지 아니한다. 시반은 일반적으로 사후 30분부터 3시간 사이 자적색의 점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4-5시간 지나면 암적색의 반상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후 4-5시간까지에는 혈색소가 주위조직에까지는 침투하지 아니하고 혈액도 유동혈이 대부분이므로 체위 변경시 종래의 시반은 사라지고, 변경된 아랫 부분에 새로운 시반이 나타난다(이것을 이동성시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경과한 후 체위를 변경하면 시체 내에 자가융해가 이미 시작되면서 적혈구에도 용혈이 오게 되고 용혈된 혈색소는 혈관벽을 통과하여 주위조직으로 침입하게 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시반은 체위의 변경에 의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한다. 이를 시반의 고착 또는 침윤성시반이라고 부르고 일반적으로 사후 4-5시간부터 10시간 정도 경과시까지 발생한다. 침윤성시반의 발생 초기에는 아직 유동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체위 변경시 종래 발생한 시반이 사라지지 아니하는 외에도 다시 변경된 체위의 하방 부위에 약하나마 새로운 시반이 발생하는 데 이와 같이 체위 양쪽편에 시반이 공존하는 것을 양측성시반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 있어서 원심이 거시한 사법경찰관 김용순 작성의 실황조사서의 기재, 증인 김영길, 권일훈의 당심에서의 진술, 위 실황조사서시 찍은 사진(수사기록 7권 123쪽), 부검시 찍은 사진(수사기록 9권 44쪽)의 영상 및 당원의 현장검식비디오테이프에 대한 검증 결과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피해자인 피해자 1은 발견 당시 욕실의 욕조 물 속에 얼굴을 밑으로 향한 자세로 얼굴은 물에 잠기고 좌측 어깨와 등 일부가 물 밖에 나와 있으며 상체는 물에 뜨고 허리 부분부터 물에 잠겨 무릎 부근은 거의 욕조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잠겨 있었으며 양 다리는 무릎에서 구부러져 발바닥이 물 밖에 나와 있었고 몸이 우측으로 약간 기운 상태였다. 위 사체의 상반은 옷을 걸치지 아니한 채 발가벗겨 있었고, 하체에는 팬티가 우측 대퇴부에서 좌측 무릎 부근으로 비스듬하게 허벅다리 부위에 걸쳐 있었다. 6. 12. 11:30경 사체를 물에서 건져 내어 검안하였을 때 시반은 주로 경부, 우측어깨 및 가슴 부위, 복부 및 대퇴부에 나타나 있었다. 검안시 사체의 체위를 변경하여 얼굴을 위로 한 상태로 다음 날인 13. 10:30경 부검시까지 보관하는 바람에 시반이 등 부위에 새로 생겼는데 새로 생긴 부위 외에 감식시 있던 우측대퇴부위에도 시반이 잔존함이 관찰되었다.
위 시체소견을 중심으로 사망시간을 추정한 의사 권일훈, 황적준, 이정빈은 부검시 위 대퇴부에 잔존하는 시반이 있음을 근거로 이는 양측성시반이고, 따라서 위 검안시부터 일반적으로는 5시간 내지 10시간 전, 예외적으로는 4시간 내지 12시간 전에 사망하였음이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 권일훈의 진술 및 사진의 영상 등에 의하면, 6. 12. 11:30경 행한 사체검안시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목, 가슴, 배 등의 부위에 외관상 뚜렷한 시반이 관찰되었는데, 반면 6. 13. 10:30경 행한 부검시에는 사체의 등부위에는 짙은 적색의 시반이 완전히 형성되어 있으나 검안시 존재하였던 시반은 대퇴부 이외의 다른 부위에는 소실되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는바, 양측성시반의 생성원리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적혈구가 융해되면서 혈색소가 주위조직으로 침투하여 시반을 고정시키고 남은 유동혈이 체위 변경에 따라 새로운 시반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왜 다른 부위에 형성된 시반은 적혈구의 용혈현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소실하였는지(증인 황적준은 시반의 생성원리상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없다고까지 하고 있다), 팬티고무줄 자국 주위에 형성된 대퇴부 시반은 고무줄의 압박에 의하여 옆부분에 피가 몰림으로써 다른 부위보다 일찍 형성된 것일 가능성은 없는지, 위와 같이 대부분의 부위에 형성된 시반은 소실하고 한 부분의 시반만 남아 있는 경우에도 양측성시반이 발생한 사후시간을 연구보고한 법의학서에서 언급된 양측성시반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하는 의심이 남는다(재판부가 당심에서 감정증인들에게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설명을 구하였으나 위 증인들도 이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또한 위 시반이 양측성시반이라 하더라도 대퇴부 이외의 다른 부위에 발생한 시반이 소실된 이유를 위 사체가 우측으로 기운 상태에서 무릎이 상체 부위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 다른 부위보다 먼저 우측대퇴부에 시반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다른 부위의 시반보다 먼저 고착되었으나 다른 부위의 시반은 고착될 만한 시간이 아직 경과하지 아니하여 소실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는 위 검안시가 사망 후 사체의 융해현상이 시작되어 적혈구가 용혈되기 시작하는 무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바(증인 권일훈은 위와 같은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한다), 이를 구체적 시간대로 표시하면 시반이 고정되는 시간대를 사후 4시간부터 12시간이라고 하면 4시간, 5시간부터 10시간이라고 하면 5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경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양측성시반의 경우 사체 양면에 나타나는 시반의 색과 범위는 융해된 적혈구의 양과 이동된 적혈구의 양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시간이 경과되어 융해된 적혈구의 양이 많으면 새로 형성되는 시반은 종래의 시반에 비해 희미하고, 반대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유동혈의 양이 많아 새롭게 형성된 시반이 훨씬 선명한 것인데, 위 부검시 사진을 보면, 피해자 1의 사체시반은 새롭게 형성된 등 부위의 시반이 기존의 대퇴부 시반보다 훨씬 선명하고 범위도 넓은 점에 비추어, 사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를 검안시각인 11:30부터 역산하면 당일 7:30경에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인 이정빈은 위 사체가 물에 떠 있었으므로 부력의 영향으로 인하여 시반이 늦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사망시부터 검안시까지 일반적인 양측성시반 관찰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경과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07:00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봄이 옳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다른 2명의 감정인들이 위 견해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있고, 법의학서나 연구논문 등에도 위와 같은 실제 사례가 보고된 일이 없으며, 시반의 형성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시반의 형성은 중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므로 부력이 시반의 형성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나, 시반의 고착은 적혈구의 융해가 원인이고 융해는 부패로 가는 한 과정으로 부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판단되므로 이정빈의 견해는 선뜻 믿기 어렵다.
나아가 그 시각 추정의 정확성에 대하여 살피건대, 시반 소견을 토대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법의학자들의 감정의견은 수학적인 공식에 의하여 계산된 것이 아니고 종래 사망 후의 시반현상을 관찰하여 보고한 논문들을 기초로 한 것인데, 그 논문들을 보면 "양측성시반이 형성되는 시각은 사후 7-8시간" 또는 "시반은 사후 4-12시간 사이에 고착 또는 부분고착된다."는 식으로 개괄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와 같이 시간으로 구분하여 표현한 이유는 사후 위 시간이 정확히 경과하였을 때 시반이 고착됨이 관찰되어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략의 관찰시각을 시간별로 나누어 기재(예를 들어 3시간 50분이 경과할 때 시반의 고정이 관찰되었다면 4시간으로 구별하는 식으로)한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또한 시반이 고정되는 시간이 수학적인 공식으로 정확히 계산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체가 사후 얼마나 지나 융해되느냐 함에 따른 것이고, 사체의 융해는 사체가 놓여진 환경, 사체의 신체적 특질 등에 의하여 제각기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위 사망시각의 추정은 대략의 범위를 일응 정한 정도의 것으로 해석하여, 유죄판단의 자료로 사용함에 있어서는 다른 증거들과 종합하여 그 증거가치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여 위 추정사망시각 이후(예를 들어 이 건에 있어서 07:40이나 07:50경)의 사망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자료로는 쓸 수 없다고 봄이 유죄의 인정은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와 같은 의심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 피해자 1의 시반만을 기준으로 피해자 1이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③ 시강에 의한 추정: 피해자 1의 사체를 직접 부검하여 감정한 권일훈은 위 사체의 시강이 지관절에까지 나타난 전신시강이고, 검안시 강직을 인위적으로 해소시킨 뒤 부검시까지 23시간 동안 냉동상태로 보존하였는데도 부검시 강직현상이 나타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재강직은 일어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되는바, 온화한 기후의 평균적인 조건하에서 시강이 전신에 출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다수 문헌에 의하면 6 내지 12시간, 소수 문헌에 의하면 2 내지 13시간이 걸린다고 하므로 강직만을 기준으로 할 때는 사망시각이 6. 11. 22:30-6. 12. 09:30 사이로 추정되고, 재강직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강직을 해소시킨 시점이 사후 7-8시간 이상 경과한 때라는 의미이므로, 이 점까지 감안하여 사망시각을 추정하면 6. 12. 03:30-04:30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다음 황적준은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 1의 사체가 더운 물에 담겨져 있어 사체강직이 조기에 출현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체강직 상태만으로는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의 경우 사후 6시간 내에는 사체 강직의 발현에 온도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권일훈의 의견에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
끝으로 이정빈은 피해자 1의 사체 표피가 벗겨지거나 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위 욕조의 물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되고 이를 감안하여 경험적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면 위 검안시인 11:30부터 최소한 7-8시간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위 실황조사서, 원심이 거시한 사법경찰관 박광복 작성의 수사보고의 기재와 위 감정인들의 당심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사체강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온도로서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겨울보다 강직이 빨리 오는 사실, 피해자 1의 사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욕조 내 물에 잠겨 있었는데, 위 검안시 욕조물의 온도는 미지근하였으며, 그 후 당시 느낀 온도를 측정하여 본 결과 32°정도로 추정된 사실, 경찰관 김삼오 등이 한 욕조물 측정실험에 의하면 38°의 물이 32°가 되는 데 3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감정인들은 구체적으로 온도가 사체강직을 얼마나 빠르게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고, 피부가 벗겨질 정도의 뜨거운 온도가 아니면 강직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온화한 기온의 강직상태 관찰례를 기준으로 하여 이 사건 강직상태에 의한 사망시각 추정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당심에서 제출한 증 제6호증의 2와(일본 실용법의학서)의 기재에 의하면, 사체는 20°의 온도에서는 사후 1시간에 강직이 시작되어 6시간 15분만에 강직이 완성되나, 29°의 온도에서는 사후 50분에 강직이 시작되어 4시간 10분에 강직이 완성되며, 37.5°의 온도에서는 35분에 강직이 시작되어 2시간 35분만에 강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위 법의학서의 기재가 부정확한 것이라고 볼 다른 자료가 없고, 또 평상온도인 20°에서의 강직시간 보고는 다른 법의학서의 설명과도 큰 편차가 없으므로, 위 법의학서의 내용은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를 이 사건에 적용하여 보면, 피해자 1의 사체가 검안시인 11:30부터 약 3시간 이전에 38°의 물에 잠기면 위 검안시 관찰된 정도의 전신강직 상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다음 재강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후 7-8시간 정도 경과하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보건대, 증인 권일훈의 증언에 의하여도 이를 단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없고 검안 후 재강직이 발생하였다가 부검시까지 자연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므로 피해자 1의 사체가 재강직을 일으키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또한 재강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온도의 영향으로 강직이 빨리 완성된 경우에는 사후 7-8시간 경과 전에 강직을 인위적으로 해소하더라도 재강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사건의 경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높은 온도에 의하여 강직이 조기에 발현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재강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 사후 7-8시간 이상 경과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온도를 감안하지 아니한 위 감정인들의 시강에 의한 사망시간 추정으로 피해자 1의 사망시간이 07:00 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③ 위 내용물에 의한 추정:원심이 든 권일훈 작성의 사망시간 추정의 기재, 권일훈의 당심에서의 증언 등에 의하면, 부검결과 피해자 1의 위에서는 비교적 소화되지 아니한 죽상(semisolid)의 취식물이 350g 정도 들어 있었는바, 그 내용은 쌀밥알, 미역, 생선육편, 무, 배추, 양파, 파, 고춧가루로 판단되며, 일반적으로 위 및 십이지장 내에 음식물이 남아 있고, 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식후 2-3시간으로 추정되고, 식사양에 따라 가벼운 식사는 식후 1.5시간 내지 2시간 정도, 보통의 식사는 3-4시간, 많은 양의 식사의 경우에는 4-6시간 이상까지 위 내에 음식물이 잔존하는데, 수사자료에 의하면 위 피해자 1은 저녁식사를 하였을 뿐 아침식사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므로, 위 내용물로 본 사망시간은 11. 23:30경부터 12. 04:00사이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먼저 피해자 1의 위 내용물이 저녁식사인지 아침식사인지 보건대, 피해자 1이 저녁식사를 하였을 뿐 아침식사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직접 인정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피고인은 오히려 자신이 먹은 아침식사 반찬을 치우려고 하자 피해자 1이 자기도 아침을 먹을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 하여 반찬은 그대로 두고 밥그릇들만 치웠다고 주장한다). 다만, 피고인이 전날 저녁에 먹었다는 미역국 성분은 위 부검시 확인된 반면 아침에 먹었다는 콩나물국의 성분은 발견되지 아니한 점, 피해자 1이 사용하는 식기세척기 내에는 전날 사용한 그릇들만이 들어 있을 뿐 아침식사에 사용한 그릇들은 위 세척기 내에나 싱크대 안에서 발견되지 아니한 점 등의 간접증거들만이 위장 내용물이 저녁식사시의 음식물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뿐이다. 그러나 먼저 피고인이 6. 11. 저녁에만 미역국을 먹었을 뿐 6. 12.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지 아니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이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서, 진술조서,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 등이 있으나, 피고인의 진술내용은 6. 12. 아침식사에 대하여 피고인이 먹은 식사내용을 말한 것일 뿐 피해자 1도 같은 국을 먹었다고 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피고인에게는 냉장고의 콩나물국을 데워 주고 피해자 1은 전날 저녁 먹다 남은 미역국을 피고인 출근 후 혼자서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아침식사시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진술한 내용도 그 정확한 내용은 "국은 콩나물국이었던 것 같고"(6. 12. 작성한 자술서), "콩나물국으로 생각이 듭니다."(6. 13. 작성한 자술서), "아침에 먹은 국은 콩나물국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6. 17. 작성된 2차 진술조서) 등으로 콩나물국이라고 단정적인 진술을 한 것이 아니고, 그 후 3차, 4차, 5차 진술조서에는 아침에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단정적인 진술을 하였으나 6차 진술조서에서 3 내지 5차 진술조서에서 그와 같이 진술한 것은 전에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하였기 때문에 확신을 못하면서도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사람의 기억은 아침식사 내용 등의 일상적인 것에 관하여는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타당할 뿐 아니라 피고인 및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6. 11. 아침식사시 콩나물국을 먹었다는 것이므로 아내와 딸을 잃은 입장에서 극히 혼란된 심리상태에서 경찰조사를 받는 피고인으로서는 국의 내용을 혼동하여 진술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또한 만일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의사로서 사체의 부검에 의하여 살해 전 피해자 1이 먹은 식사 내용물이 검출된다는 지식을 갖고 있을 피고인이 피해자 1이 먹지도 않은 국을 먹었다고 진술하여 의심을 살 리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므로, 피해자 1의 위에서 미역이 검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위 내용물이 저녁식사시 먹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음, 식기세척기 내에 전날 사용한 그릇들만이 들어 있을 뿐 아침식사에 사용한 그릇들은 위 세척기 내에나 싱크대 안에서 발견되지 아니한 점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침에 먹은 국그릇과 밥그릇을 손으로 씻어 찬장에 넣고 아직 식기세척기의 식기들을 옮겨 놓기 전에 살해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사실만으로 저녁식사시 먹은 음식이 위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위 감정인 권일훈, 황적준의 당심증언에 의하면, 위 사망시각 추정은 피해자 1이 저녁식사를 한 것이 위 내에 남아 있다는 전제하에 한 것으로서 위 내용물이 아침식사시 먹은 것이라면 위 사망시각 추정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감정인들이 위와 같이 전제한 것은 경찰이 제공한 수사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인바, 범인이 누구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수사단계에서의 경찰은 마땅히 아침식사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도 아울러 제공하여 모든 경우의 감정을 의뢰하여야 했을 것이다).
오히려 당심 증인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 1이 6. 11. 친정에 놀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당근과 시금치를 넣어 만든 쌀죽을 바이오 그릇에 한 그릇 싸주었는데 그 날 저녁 21:00경 피해자 1과 전화통화시 피해자 1에게 죽을 먹었느냐고 물어보자 지금 먹었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므로, 피해자 1의 위 내용물이 저녁식사시 먹은 것이라면, 위 죽의 성분 중 비교적 단단한 성질의 당근 역시 발견되어야 할 것인데 위 부검시 당근의 흔적이 발견된 바 없다( 공소외 7은 죽을 푹 끓이어 쌀은 형체가 있으나 시금치와 당근은 모두 녹아 형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술하나, 당근은 쌀보다 단단한 성질의 것이므로 쌀이 형태가 온전할 정도로 끓인 죽에서는 당근 역시 형태가 그대로 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위 진술은 믿을 수 없다. 또한 위 죽이 모두 소화되어 위에 남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나, 죽을 먹은 것은 21:00 약간 못미치는 시간이고, 저녁식사는 21:30 무렵에 하였으므로 죽을 먹은 지 30-40분 정도 후에 저녁식사를 하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밥이 상당 부분 위에 남아 있는 경우 죽도 일부분은 발견되어야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변호인이 당심에서 제출한 증 제6호증의 3, 같은 호증의 9, 11의 기재에 의하면, 위장관에서 음식물이 배출되는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을 방사성동위원소를 음식물에 넣고 시간별로 위에 남아 있는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한 결과 복음밥 235g, 계란탕 33g, 닭간 40g을 섭취시킨 후 그 반이 위에서 배출되는 시간은 58분-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이고 김치 약간에 밥, 미역국 각 반그릇의 무게는 384g, 2/3그릇의 무게는 약 452g, 각 1그릇의 무게는 약 662g이라는 것인바, 위 사실에 피해자 1의 식사량이 적었다는 공소외 7의 진술, 부검시 피해자 1의 위 내에 남아 있던 잔존 식물의 양, 잘 때는 빼는 콘택트렌즈가 피해자 1의 사체에 착용된 채 있던 사실 등을 더하여 보면, 피해자 1은 식사 후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구체적으로는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이내에 사망한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라고 할 것인바, 만일 피해자 1이 21:30경 저녁식사를 하고 그로부터 2시간 30분 이내인 24:00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면, 다음 날 11:30 검안시에 시반이 고착된 부분이 보다 많아야 할 것이므로, 이 점에서도 위 위 내용물이 저녁식사의 음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끝으로 위 감정 증인들의 당심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감정인들이 인용한 위 시간들은 위 내에 음식물의 잔해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식사 후 몇 시간 이내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일 뿐 그 시간이 경과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위 내에 있는 음식물의 형태로 식사 후 경과한 시간을 알 수 있는 연구보고는 없으며, 일단 분비된 위액에 잠겨진 음식물은 사망 후에도 부패현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므로, 결국 위 내용물 검사만으로 식사 후 몇 시간 지나 사망한 것을 알 수는 없고, 따라서 위 위 내용물 검사 결과가 이 건에 있어 피해자 1이 6. 12. 07:00경 아침을 먹고 07:30-07:40경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피해자 1의 위 내용물만을 기준으로 피해자 1이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④ 결국 위 감정 결과만으로는 피해자 1이 6. 12. 07: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07:00 이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아니하므로, 위 감정 결과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
(나)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하여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그 기구의 성능, 조작기술 등에 있어 신뢰도가 극히 높다고 인정되고 그 검사자가 적격자이며, 검사를 받는 사람이 검사를 받음에 동의하였으며 검사서가 검사자 자신이 실시한 검사의 방법, 경과 및 그 결과를 충실하게 기재하였다는 등의 전제조건이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는 경우에만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인데, 이 건의 경우 위 전제조건이 입증되지 아니하였고 피고인이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지도 아니하였으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고, 나아가 위 검사를 시행한 김정길의 당심에서의 증언에 의하여도 위 검사방법으로 채택한 긴장정점검사는 피검사자가 사전에 언론, 소문, 수사 등에 의하여 그 질문에 대한 선입견을 전혀 가지지 아니하였을 것이 전제로 요구되고 그 질문에 대한 수사를 받은 경우에는 그 결과를 신빙할 수 없다는 것인바,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위 검사를 받은 때는 이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7. 13.로, 피고인이 피의자로서 여러 차례에 걸친 수사를 받은 후이며, 특히 부검 결과에 따른 사망시각 추정이 피고인이 집을 나온 07:00 이전으로 회보되어 위 문항들에 대하여도 수회에 걸친 조사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특히 강직현상으로 본 사망시각이 03:30-04:30으로 나타나 04:00경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거나 위와 같은 감정사항이 피고인에게 고지되어 피고인이 위 시각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고, 거실이라는 장소에 대하여도 수사과정에서 범행과정에 대하여 피고인 나름의 추리를 하여 일정한 인식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위 거짓말탐지검사결과를 들어 피고인을 유죄로 볼 수 없다.
(다) 발화시각 추정과 관련된 증거에 대하여
당심 증인 김원철의 증언에 의하면, 위 해저드1 프로그램은 미국보험협회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로서 발화 후 주변 온도의 변화상태, 연기 등이 퍼져 나가는 상태 등을 추정하여 화재시 인명구조 등에 참조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인데, 위 프로그램이 시간의 경과에 따른 주변 온도의 변화, 연기가 퍼져나가는 상태 등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이용하여 이 사건 발화장소인 안방의 크기, 문, 창문 등 개구부의 면적, 남은 재의 양으로 추정되는 연소된 의류의 양, 발화점과 문과의 거리 등을 입력하고, 경비원 조복식이 09:10경 문을 잡으면서 느낀 온도를 사후에 합판에 열을 가해 만져보게 하는 방법으로 측정하여 이를 32-34°로 특정한 다음, 방화 후 몇 시간이 지나면 문의 온도 가 그 온도가 되는지 판단한 것이다.
살피건대, 위 프로그램은 위 입력치가 정확하여야 하고, 조복식이 사건 당시 경황 중 느낀 온도가 사후 정확히 재현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바, 발화물질의 양이 얼마인지 알 자료가 전혀 없음에도 이를 1.93㎏으로 입력하였고, 개구부인 문, 창문 등의 틈새의 가중치를 입력하면서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자료 없이 주관적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한 수치를 입력하였을 뿐 아니라 위 프로그램은 방안 벽면의 온도변화를 측정하는 것으로서 문 밖에서 느낀 온도도 안벽면의 온도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한 것이나 발화지점에서 일정한 거리가 떨어진 방문의 온도는 그 문과 발화지점과의 거리, 문의 재질(재질이 전도가 잘 되는 것이라면 열이 그대로 전달될 것이고 전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이면 안의 온도가 올라 가더라도 안벽면의 온도와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낼 것인데도 이 점에 대한 고려가 없었고, 그 결과도 연기의 분포 등에 있어 실제 화재진압 당시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과 부합하지 아니하며 또한 위 조복식이 사건 당일 안방문을 잡으면서 느낀 온도를 사후 측정한 것은 그로부터 12일이 경과하였을 때인데 화재라는 긴급상황에서 경황 중 잡은 문의 온도를 12일 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일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위 검사 결과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더욱이 위 검사 결과는 조복식이 안방문을 잡은 시간이 09:10이라는 전제하에 화재발생시각을 06:40-07:10으로 결론지은 것인데, 과연 조복식이 안방문을 잡은 시간이 09:10인지 여부에 대하여 보면, 이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조복식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이 있으나, 한편 박안나, 이영심의 당심에서의 증언, 소병옥 작성의 수사보고서 중 화재신고시각에 대한 기재 등을 종합하면, 조복식은 박안나가 소방서에 화재신고를 한 후 이 사건 미성아파트 (아파트호수 생략)의 다용도실 창문을 통하여 들어 갔으며, 창문을 열고 들어가서 바로 안방문을 연 것이 아니라 아파트 내부에 연기가 자욱하고 앞이 잘 안보여 현관문 보조키를 안에서 열고 일단 밖으로 나와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들어가 안방문을 열었는데 박안나가 소방서에 화재신고를 한 시각은 6. 12. 09:24으로 소방서 자동녹화 비디오테이프에 신고시간이 녹화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결국 조복식이 위 아파트 안방문을 연 시각은 09:25부터 09:30 사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안방문이 열리기 전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전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는 위 검사 결과를 조복식이 안방문을 연 위 시각에 대입하면, 화재발생 추정시각은 06:55-07:30이라는 계산이 되므로, 위 검사 결과는 오히려 피고인이 집에서 나간 후 화재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위 화재발생시각 추정실험결과를 들어 피해자 1이 07:00 이전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라) 피고인의 변소에 반하는 듯한 여러 정황들에 대한 판단
① 우유병 및 1회용 분유통에 대하여
먼저, 피해자 1과 피해자 2가 6. 11. 24:00 이전이나 그 무렵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리의 전제가 된 피해자 2의 수유습관(우유를 먹는 시간, 횟수, 양 등)은 할머니인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된 것인바, 공소외 7이 피해자 2의 수유습관을 아는 것은 1994. 5. 26. 피해자 2가 태어나서 돌이 지난 1995. 5. 27.까지 할머니인 공소외 7이 피해자 2를 집에서 키운 까닭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엄마인 피해자 1이 5. 27.부터 6. 11.까지 직접 혼자서 피해자 2를 키우는 동안 발생한 것으로서 피해자 1이 키우는 동안에도 피해자 2의 수유습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인정할 증거는 공소외 7의 막연한 추측 이외에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 1은 별달리 하는 일이 없어 낮에 틈틈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소외 7과는 달리 치과의사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계속하여야 하 므로 밤에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처지이고, 생후 1년을 지나는 시점은 아기의 수유습관 특히 야간의 수유습관이 변할(예를 들어 그 때까지 밤 동안 3번 정도 깨어나 우유를 먹은 아기라도 돌 이후에는 점차 깨어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이유가 끝날 무렵에는 밤에 깨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것이다) 가능성이 높은 때인 점 등을 감안하면, 피해자 1이 밤 동안 피해자 2에게 수유하는 방법과 횟수는 공소외 7이 기르던 때와는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검찰은 3개의 우유병 중 1개만 사용되었으므로 피해자 1과 피해자 2는 6. 11. 24:00 이전이나 늦어도 그 무렵 사망하였다는 것인바, 과연 3개의 우유병 중 1개만 사용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보건대, 당원의 현장검증결과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는 부엌식탁 위 쟁반에 젖병 2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중 1개는 병과 젖꼭지, 젖병마개가 분리되어 있고, 그 밑바닥에 희미한 우유찌꺼기 같은 것이 말라 붙어 있었으며, 다른 1개는 젖꼭지 등이 결합되어 있었고, 위와 같은 우유찌꺼기 등이 없이 세척된 상태가 유지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부엌싱크대에는 우유병과 젖꼭지를 닦을 수 있는 스폰지 솔과 칫솔 모양의 플라스틱솔 1개가 있었던바, 위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 1에게 젖병을 줄 때 젖병을 끓는 물에 소독한 뒤 병과 젖꼭지, 젖병마개 등을 모두 결합하여 주었다는 것인데, 위와 같은 사정과 저녁식사하기 전인 21:00-21:30 사이에 피해자 2에게 우유를 조금 먹여 재웠다는 피고인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해자 1이 저녁에 우유병 1개에 우유를 타 23:30이나 24:00경까지 위 우유를 모두 먹인 다음 우유찌꺼기가 병에 눌러 붙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유병과 젖꼭지를 분리하여 물로 대강 세척하였거나 아침식사 후 국그릇 등을 세척하면서 우유병도 같이 대강 씻어 식탁 위에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 않으면 왜 우유병 1개의 젖꼭지가 분리되고 병 안에 우유찌꺼기 같은 것이 남아 있는지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물론 우유찌꺼기는 공소외 7이 줄 때부터 붙어 있던 것이고, 젖꼭지는 병이 바닥에 떨어지든가 하여 분리된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도 있으나, 공소외 7이 우유병을 솔로 1차 세척한 다음 끓는 물에 소독하여 피해자 1에게 주었다(이 경우 찌꺼기가 그대로 병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그 병을 사용하고 물론 대강 씻어 놓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현장의 우유병의 상황만으로 피해자 1과 피해자 2가 11. 24:00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는 단정을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다음 1회용 분유통이 1개만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피해자 1 등의 사망시각을 6. 12. 07:00 이전으로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보건대, 공소외 7이 싸준 1회용 분유통의 분유를 11. 저녁과 12. 03:00경 우유 탈 때 사용한다는 것은 공소외 7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나 공소외 7이 피고인 부부와 같이 살면서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므로 이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여 이를 선뜻 믿기 어렵다. 오히려 피해자 1이 밤 9시경에 1회, 다음 날 새벽 3시경에 1회,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1회의 우유를 타야 하는데 자는 도중에 일어나 분유 및 이유식의 분량을 맞추는 것이 번거로우므로 탈 분유 등을 미리 1회용 분유통에 덜어 놓는 것이라면, 피해자 2의 아침 수유시간은 피해자 1이 기상하는 07:00 이전이므로, 활동 중인 저녁 21:00 무렵에는 집에 있는 분유 및 이유식을 사용하여 우유를 타고, 1회용 분유통의 분유는 자는 동안에 사용한다고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1회용 분유통의 분유가 1개만 사용되었다고 하여 피해자 1 등이 6. 11. 24:00 이전에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② 식기세척기의 상황
위 실황조사서의 기재, 증인 공소외 7의 증언과 당원의 현장검증결과 등을 종합하면, 식기세척기 내에 공소외 7, 피해자 1 등이 6. 11. 아침식사시 사용한 유리그릇, 접시, 포크 등이 세척된 상태로 들어 있으며 피해자 1은 저녁식사 후 아침과 저녁에 사용한 그릇을 합하여 식기세척기에 넣고 작동시킨 후 다음 날 아침 위 식기세척기 내의 그릇들을 꺼내어 찬장에 넣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과연 위와 같은 사실들만으로 피해자 1이 저녁식사만을 하였을 뿐 아침식사를 한 바 없고 피고인이 아침식사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살피건대, 위 증거들에 의하면, 현장실황조사시 부엌에 있는 식기세척기 상단 칸에는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접시 3개, 다용도접시 1개, 아기국그릇 1개 등이 있고, 하단 칸에는 유리그릇 1개, 플라스틱망통 1개, 망통 안에 국자 1개, 스푼 3개, 포크 2개, 아기용 스푼 1개, 차스푼 1개, 젓가락 3인분(6개) 등이 꽂혀 있었던 사실, 6. 11. 아침 7:00경 피고인이 먼저 아침식사로 밥과 콩나물국을 먹고 출근하였으며, 그 후 공소외 7은 피해자 1이 유리그릇에 밥을 놓고 카레를 얹어 전자 레인지에 데워 준 것을 먹었으며, 피해자 1과 조카 이보미는 빵을 구워서 접시에 놓고 포크로 먹은 사실, 그 옆에서 피해자 2는 아기그릇과 숟가락으로 먹는 흉내를 내는 장난을 하고 있었던 사실, 6. 11. 21:00경 공소외 7이 피해자 1과 한 전화통화에서 피해자 1이 그 시경 죽을 먹었다고 말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 사실에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누나인 공소외 6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피해자 1이 먼저 저녁식사를 시작하고 피고인은 전화를 끊은 다음 저녁을 먹었다는 피고인의 진술과 피해자 1의 사체 위 내에 위에서 본 음식물이 잔존하는 점(이 경우 피해자 1이 6. 12. 아침을 먹기 전 죽은 것이라면 저녁식사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등을 더하여 보면, 결국 식기세척기 내에 있어야 할 밥·국그릇과 숟가락 등의 수는 최소한 아침식사시 사용한 밥그릇 1개, 국그릇 1개, 숟가락 2개, 젓가락 2벌, 포크 2개, 아기국그릇 1개, 아기숟가락 1개와 저녁식사시 사용한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수저 각 2벌을 합한 밥그릇 3개, 국그릇 3개, 숟가락 4개, 젓가락 4벌이 되어야 하고, 피해자 1이 죽을 먹을 때 그릇과 수저를 별도로 사용하였다고 가정하면 그릇 1개, 숟가락 1개, 젓가락 1벌이 추가된다. 따라서 계산상 세척기 내에 있어야 할 밥그릇 1-2개, 국그릇 1개, 수저 2-3벌이 부족하고, 검찰이 제시한 모든 자료들에 의하여도 왜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얻을 수 없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를 추론하여 보면, 첫째 피해자 1이 죽을 먹으면서 아기그릇과 숟가락을 사용하고 대신 저녁을 먹지 않았을 경우(이 경우는 피해자 1의 위 내용물이 아침식사시의 음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피해자 1이 식사시 사용한 그릇 중 일부를 손으로 씻었을 경우(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나 만일 그렇다면 피해자 1이 설거지를 함에 있어 식기세척기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므로 아침식사를 하고 그 그릇을 손으로 씻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셋째 아침식사시 식기세척기 내의 그릇을 일부 꺼내어 사용하고 그 그릇을 손으로 씻었을 경우(이 경우는 계산상 국그릇 1개가 부족하나 피해자 1이 혼자서 아침을 먹으면서 국은 냄비채 갖다 먹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 경우를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를 상정할 수 있는데 그 모든 경우가 피해자 1이 사망하기 전 6. 12. 아침식사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식기세척기 상황만으로 피해자 1이 아침식사 전 사망하였고, 피고인의 변소는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③ 욕실의 상태
원심이 사건 당일인 6. 12. 아침 샤워를 하고 출근하였다는 피고인의 변소가 거짓이라는 취지로 거시한 증거들 중 먼저 사법경찰관사무취급 작성의 박영서, 이정희, 김종덕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를 보면, 이 사건 발생장소인 미성아파트 이웃의 갈현아파트 2동 104호에서 화재그을음에 대한 실험을 하였는데 그 방법은 먼저 실험자가 욕실에 서서 5분간 샤워를 하고 안방에서 일정한 양의 의류를 불지른 다음 문을 닫고 1시간 40분 후 문을 개방하여 본 결과 욕실 벽면에 물방울이 튀어 있고 그을음이 점모양으로 형성되어 인위적으로 물기를 제거한 벽면과는 완연히 다른 모양을 나타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실험 결과는 우선 사건발생 장소와 다른 구조의 아파트에서 행하여졌고, 사건발생 장소는 안방문과 욕실문이 모두 닫힌 상태였음이 조복식의 진술 등에 의하여 명백함에도 안방문(증인 이정희는 원심 법정에서는 안방문과 화장실문을 열어 두었다고 진술하였다가, 당심에서는 안방문은 열고 화장실문은 닫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진술하였다) 등을 열어 둔 채 하여 사건 발생상황과 동일한 조건하에서 행해진 실험이라고 볼 수 없고, 실제로도 조복식, 정재철의 증언에 의하여 인정되는 범행현장 욕실 안 상황은 욕실 내에 연기가 거의 차 있지 않았고 욕조에 찬 물 위에 그을음이 떠 있었을 뿐 변기 위 등에 그을음이 뚜렷이 내려앉은 것은 관찰되지 아니하였던 반면, 위 실험 결과는 상당히 많은 양의 그을음이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점에 비추어 위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다음 현장검식시 욕실 내 벽면에서 물방울 등 샤워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은 피고인이 샤워를 할 때 샤워기를 어떤 방향에서 잡아 물을 뿌렸는지, 얼마 동안 샤워를 했는지가 밝혀지고 동일한 온도, 습도하에 같은 방법으로 샤워를 한 경우 샤워 후 수시간여(화재발생으로 연기가 스며들기 시작할 때까지는 2시간 가량, 현장감식시까지는 5시간 정도) 후에도 벽면에 물방울이 뚜렷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실험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아니한 이상 샤워 후 수시간 내에는 물방울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으로 피고인의 변소내용을 거짓으로 단정할 수 없다 할 것이다(만일 벽면에 튄 물방울의 양이 소량이고 수시간의 자연건조 외에 화재의 열기가 더하여졌을 경우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물방울이 건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질 뿐 아니라, 현장감식을 한 김영길도 당심의 증인신문시 욕실의 벽면에는 촉촉할 정도의 습기가 있어 지문의 채취가 불가능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어 욕실벽면에 상당한 정도의 습기는 있었던 점도 인정된다).
끝으로, 욕조물 온도를 측정한 내용의 박광복 작성의 수사보고의 기재내용은 6. 16. 05:30경 현장 욕실 내의 수도꼭지를 내려진 그 각도대로 올려 물을 받아 온도를 측정한 결과 그 온도가 43°정도였고, 그 온도는 6시간이 경과한 뒤 32°로 떨어졌다는 내용으로서, 검식시로부터 6시간 정도 전인 05:30경 욕조의 물이 받아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나, 우선 범인이 물을 받을 때의 수도꼭지 각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려 물을 잠궜다는 전제에 대한 입증이 없을 뿐 아니라, 당심 증인 오동진의 진술에 의하면, 위 아파트에 공급되는 온수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온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므로, 위 실험 결과를 들어 피해자 1 등이 6. 12. 07:00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결국 위 욕실상황만으로 피고인의 변소를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④ 조기의 문제
검사는, 피해자 1이 6. 11. 저녁 조기 2마리를 구워 주어 그 중 반마리를 그 날 저녁식사때 먹고 나머지 반마리를 6. 12. 아침식사때 마저 먹었다고 피고인이 변소하고 있으나 사건 현장 쓰레기 봉지 안에서 조기 반마리가 발견되었으므로 6. 12. 아침을 먹었다는 피고인의 변소는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록에 편철된 조기의 사진(수사기록 8권 134쪽)을 보면, 쓰레기봉지 안에서 발견된 조기는 머리 부분 외에는 약간의 몸통 부분만이 남아 있는 상태로서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을 조기 반마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이 들고,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6. 11. 저녁식사때 남긴 조기는 그 보다 훨씬 큰 형태의 조기이고, 6. 12. 아침식사시 그 대부분을 먹고 약간의 몸통 부분만 남아 쓰레기봉지에 버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위 조기는 쓰레기봉지 안에 종이기저귀 2개와 같이 들어 있었고, 위 봉지는 경찰관 이대우, 한상철이가 범행 1주일 후인 6. 19. 현장을 재조사하면서 부엌 바닥에서 발견하였다는 것인데, 한편 아파트 경비원인 김성영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6. 12. 아침 출근하면서 쓰레기봉지 1개를 출근시 가지고 나가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 버렸다는 것이고, 사건 후 그 쓰레기봉지를 수거하여 본 결과 그 안에는 수박껍질, 콩나물, 양파껍질 등의 음식물쓰레기, 치실, 기저귀, 카레봉지 등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므로, 위 봉지에는 6. 11. 저녁식사시까지 생긴 쓰레기가 들어 있고 조기가 들어있던 봉지는 피해자 1이 피고인이 출근한 후 6. 12. 아침에 생긴 쓰레기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만일 조기가 6. 11. 저녁식사 후 버려진 것이라면 피고인이 6. 12. 아침 쓰레기봉지를 버리면서 조기만을 빼내 다른 봉지에 담아 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피고인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할 이유를 생각키 어렵다).
따라서 위 조기의 존재를 들어 피고인의 변소를 거짓으로 볼 수도 없다.
(마) 범행동기에 관련된 여러 증거들에 대한 판단
원심은 이 사건 범행동기로서, 피해자 1과 시가와의 갈등으로 인한 부부 사이의 갈등, 피고인과 피해자 1의 성격상의 불합치,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와 그로 인한 피해자 2의 친자 유무에 대한 의심, 외과 개원 문제를 둘러 싼 의견충돌, 피고인 누나인 공소외 6이 피고인 병원에서 일하는 문제를 둘러 싼 다툼을 들고 있다. 과연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범행동기가 있었는지 살피건대, 먼저 피해자 1과 시가와의 갈등에 대하여 보면, 원심이 이와 관련하여 거시한 조계숙, 정인선, 공소외 1, 공소외 7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해자 1이 피고인과 혼인한 직후 시동생, 시누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시동생 등과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시동생 등이 피고인 집에서 나오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어 그로 인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1 사이에도 상당한 정도의 갈등이 생긴 사실은 인정되나, 한편 위 조계숙 등의 진술에 의하여도 피해자 1과 시가와의 관계는 피해자 2를 출산한 후에는 많이 좋아져, 외부에서 볼 때 별문제가 있다고는 느껴지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있고, 피해자 1이 시가와 갈등이 심한 것 같았다는 공소외 8의 진술내용도 통상 며느리와 시가와의 사이에서 며느리가 하는 불평내용이라고 해석 못할바 아니며, 달리 이 사건 범행시까지 피해자 1과 시가와의 불화가 계속되어 그로 인해 피고인이 억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볼만한 사정도 엿보이지 아니한다.
또한 위 공소외 7, 공소외 1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 1이 돈에 집착하고 금전문제에 철저한 성격인 점은 인정되나, 한편 당심 증인 공소외 6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의 부모 역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기에 족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 아들인 피고인에게 생활비나 용돈 등을 바란 적도 없고 오히려 피고인의 혼인때나 병원개업시 상당한 돈을 보조하여 주었다는 것이고, 달리 원심 인정과 같이 돈문제로 피해자 1과 시가와의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원심이 거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 1과 시가와의 불화가 피고인이 살해의 충동을 갖게 된 발단이 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다음 피고인과 피해자 1의 성격차이가 부부 사이의 갈등을 불러 일으킨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보건대, 위 공소외 1, 공소외 7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해자 1은 활발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자기주장과 고집도 세고,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에 철저한 성격인 반면, 피고인은 평소 말이 없고, 소극적이며, 참을성이 강한 성격인 점은 인정되나, 나아가 이들의 성격차이로 인해 부부 사이에 어떠한 분쟁이 구체적으로 발생하였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위 조계숙, 정인선, 당심 증인 박연철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과 피해자 1은 주위에서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 정황을 무시한 채 막연히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내성적인 성격의 남자가 억압감, 분노 등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논리의 비약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과 피해자 1 사이의 성격차이가 이 건 범행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다음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가 피고인의 범행동기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보건대, 공소외 5, 정인선, 조계숙, 장주연의 진술과 압수된 편지 27장(증 제79호)의 기재 내용, 기록에 편철된(수사기록 1권 170쪽) 디스켓출력물사본의 기재를 모아 보면, 피해자 1이 1992. 6. (상호 생략)치과를 개업하게 되면서 위 치과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던 공소외 5을 알게 된 사실, 피해자 1은 공소외 5에게 심정적으로 깊이 빠져 공소외 5을 사모하는 내용의 일기를 거의 매일 쓰고 공소외 5에게 상당한 액수( 공소외 5의 진술과 통장거래 내역에 의하면 합계 금 5,000여 만 원)의 돈도 빌려주었던 사실, 피해자 1은 공소외 5와 1993. 1. 및 4. 두 차례에 걸쳐 육체관계를 맺은 사실, 피해자 1은 공소외 5와 함께 남대문시장 등을 돌아다니느라고 밤늦게나 새벽에 귀가하는 경우가 잦았고, 몇 번은 피고인이 강릉에서 전화를 하여 피해자 1이 귀가하지 아니한 사실을 확인하고 밤늦게까지 수회에 걸쳐 전화를 하여 피해자 1의 귀가를 확인한 적도 있었던 사실, 피고인은 피해자 1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아니한 날 불안하고 화나는 심정을 일기로 쓴 일이 있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나아가 피고인이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를 알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은 전혀 이를 알지 못하였고, 이 사건 발생 후 경찰수사를 통하여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피고인이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를 알았을 것이라는 점에 부합하는 공소외 1, 오양희의 진술은 이 점에 대하여는 동인들의 추측을 말한 것 뿐이며, 달리 피고인이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를 알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피고인이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를 의심하여 부부관계를 유지할지를 고민하였다든가, 피해자 1이 남편인 피고인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고민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상의하였든지 등의 간접적인 정황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 형사소송법상의 엄격한 증명의 원칙은 범행동기와 같은 주관적 요소에 있어서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바, 이 건에 있어 범행 2년 전의 불륜관계가 피해자에게 있었음이 증명되었더라도 피고인이 이를 알았다는 점에 대한 명확한 입증이 없는 이상 그 범행동기가 증명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해자 1과 공소외 5 사이의 불륜관계가 이 건 범행의 동기가 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끝으로, 피고인의 누이인 공소외 6의 병원취업 문제가 범의를 일으킨 직접적 동기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보건대, 공소외 1,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여도, 시댁식구가 병원 운영에 관여하려는 것을 피해자 1이 알았다면 화를 내었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 실제 위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공소외 6의 당심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 1과 둘이 만나 이야기 하던 중 피해자 1이 피고인의 개업자금을 마련하였다는 말을 듣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인사로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피해자 1에게 한 일은 있으나 사실은 남편의 반대와 자식들의 부양 때문에 직장일을 할 처지도 아니며, 위 말을 들은 피해자 1이 가족이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은 안좋다는 말을 하기에 즉시 그냥 한 이야기라고 말해 주었고, 그 후 사건 전일 피고인이 전화로 그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전혀 그 말이 나온 적이 없는데, 피고인이 누나가 병원에서 일하는 문제는 어렵겠다고 하기에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여 주었다는 것이므로, 공소외 6의 문제로 피고인 부부가 다투었을 이유는 별로 없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말다툼이 생겨 그것이 살해에 이를 정도로 격심한 다툼으로 발전한 것이라면, 외향적인 피해자 1의 성격상 다투는 소리가 이웃에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으리라고 추측되고 그 경우 방음장치가 부실한 위 미성아파트 인근 주민 중 누군가는 그 다투는 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데(경찰조사에 의하여 6. 11. 밤 910호에서 부부싸움을 한 내용을 908호 거주자가 들은 사실도 밝혀졌다). 이 사건 미성아파트 (아파트호수 생략) 거주자인 최영숙의 진술에 의하면 6. 12. 02:00경까지 깨어 있었음에도 윗집인 (아파트호수 생략)에서 나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소외 6의 문제로 피고인 부부 사이에 다툼이 시작되고 그것이 이 건 범행의 동기가 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결국 원심이 거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범행동기를 인정할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도 없다. 오히려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피고인이 군의관 복무로 인한 별거생활을 끝내고 아내와 동거한 지 2개월도 지나기 전, 또 아내와 장모를 동반하여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 7일만에, 자신의 병원이 개업하는 날 아내는 물론 딸까지 살해하였다고 하려면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범행동기가 입증되어야 할 것임에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막연한 추측만이 있을 뿐 확실한 범행동기가 입증되지 아니하였다는 점은 이 사건 범행이 제3자의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 범행도구로 지목된 커튼 줄에 대하여
장성기, 박순우의 진술과 기록에 편철된(수사기록 8권 385쪽) 사진의 영상을 종합하면, 이 사건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되어 있는 커튼을 오르내리는 줄이 일정 부분(잘린 부분의 정확한 길이는 증명되지 아니하였다) 잘려 나간 사실이 인정되나, 나아가 과연 위 줄이 이 사건 범행도구로 쓰여진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보건대, 이에 부합하는 홍순태, 권일훈의 진술과 권일훈 작성의 삭상물추정감정회보서의 기재는 모두 피해자 1의 목에 난 색흔의 폭과 위 커튼 줄의 폭이 유사하여 위 커튼 줄이 범행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일 뿐이고, 달리 위 커튼 줄이 이 사건 범행도구라고 직접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 오히려 위 박순우, 권일훈의 진술과 위 삭상물추정감정회보서의 기재에 의하면, 위 잘라진 커튼 끈은 세 가닥이 묶여진 것으로 약 20㎝의 간격으로 매듭이 매어져 있는 것이고, 피해자 1의 목에 난 색흔은 한 가닥의 끈(권일훈은 두 가닥의 끈이 잡아당기는 힘에 의하여 겹쳐 한 가닥으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으로서 색흔 중간에 매듭의 흔적이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므로 위 색흔이 위 커튼 줄에 의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검사는 피고인이 매듭을 풀어 한 가닥 또는 두 가닥만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나 처의 살해를 결심할 정도로 극히 격분한 상태에서 넥타이나 전선줄 등 도구로 사용할 것이 널려 있음에도 풀기도 쉽지 아니한(위 박순우의 진술에 의하면 손으로 풀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송곳 등을 사용하여야 겨우 풀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매듭을 피해자 1 몰래 풀어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작의적 추측이라 할 것이다.
또한 공소외 7은 위 커튼 줄이 6. 11.까지 이상이 없었다고 하여 그것이 6. 12. 범행 당시 잘린 것일거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으나, 과연 공소외 7이 위 커튼 줄의 상태를 6. 11. 직접 목격하고 위와 같은 진술을 하는 것인지는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공소외 7 자신의 진술에 의하여도 공소외 7은 6. 10. 밤 21:00경 피고인 집에 찾아와 다음날 10:00경 피해자 1과 함께 집을 나왔다고 하고 있어 베란다의 커튼 줄까지 확인할 이유나 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박순우의 진술에 의하면, 위 커튼 줄을 잘못 설치함에 따라 커튼을 올리거나 내릴 때 매듭이 도르레 고리에 걸려 작동을 하지 않는 등 사용에 불편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므로 만일 공소외 7이 6. 11. 위 커튼을 사용한 적이 있다면 그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여 수사과정이나 법정에서의 진술시 그와 같은 내용을 진술하였을 것인데도 그러한 진술을 한 바 없는 점에 비추어 그와 같은 의심이 든다. 그리고 커튼 줄의 잘려진 부분 및 매듭에 열변형과 그을음이 있어 화재발생 전 잘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박남규의 진술내용도 가사 그것이 화재 전 잘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범행도구로 사용된 것이라는 추정을 바로 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당원의 현장검증시 확인된 바와 같이 화재현장에 가까운 거튼 줄의 매듭 및 끝 부분에서는 열변형과 그을음을 볼 수 없었던 점에 비추어 그 열변형 등이 이 건 화재로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여도 위 커튼 줄을 이 사건 범행도구로 단정할 수 없다.
(사) 제3자의 범행가능성에 대하여
① 먼저 이 사건 화재발생시간에 대하여 본다.
조복식은 6. 12. 08:20경 경비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7-10층 복도 쪽으로 연기가 나오는 것을 처음 발견하였으며(경찰 2회 진술시에는 08:40-08:50경 발견했다고 진술하였으나 그 후 진술을 번복하여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08:20으로 진술하였다), 위 시각을 정확히 아는 이유는 그 시경 시계를 보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안나, 허영숙, 이영심 등의 당심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조복식은 연기를 발견하고 그 즉시 710호 거주자인 박안나에게 인터폰으로 연막탄을 피운 적이 있는지 확인하였는데 위 박안나는 09:05경 도착하는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우려고 나가려던 중 인터폰을 받았으므로 그 시각이 08:50-08:55 사이로 생각된다는 것이고, 위 인터폰을 하고 난 조복식은 1208호 주민으로부터 연기가 난다는 연락을 받고 올라 가 연기나는 곳을 찾던 중 (아파트호수 생략) 주민인 허영숙을 만났는데 위 허영숙은 08:50 오는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올라오던 길이므로 그 때가 09:00경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위 아파트 505호 거주자인 이영심은 남편이 09:10경(텔레비전으로 연속극을 보다가 시각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출근하러 나갔다가 바로 돌아와 (아파트호수 생략)에서 연기난다고 하여 경비원 조복식에게 인터폰을 하였더니, 조복식이 연막탄을 피운 것 같다고 대답하였으며, 연막탄을 피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남편이 경비실로 내려가 조복식을 데리고 올라왔는데 그 시각은 09:20경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사건 당일 조복식을 만난 사람들이 진술한 시간이 연기를 발견하고 화재신고를 할 때까지의 과정에 모두 부합하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이유 역시 아이들 유치원 버스 도착시간이나 텔레비전에 표시된 시간 등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오류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여지므로, 최초 화재발견시각에 대한 조복식의 진술은 믿을 수 없고, 화재가 조복식에 의하여 최초로 인지된 시각은 08:40경으로 판단된다.
다음 현장검증에서 확인된 이 사건 화재상황 등에 비추어 이 사건 화재가 안방 장롱 안에서 산소의 부족으로 연소가 서서히 진행된 이른바 훈화인 점은 인정되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화재발생시간을 추정한 컴퓨터시뮬레이션 실험 결과는 그 입력치의 정확성이 입증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안방문 개폐시간으로부터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전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실험 결과를 믿기 어렵고 따라서 위 실험 결과를 들어 위 화재가 07:00 이전에 발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거니와 오히려 08:00경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② 다음 이 사건 아파트에 제3자가 경비원 몰래 침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지에 대하여 살피건대, 당원의 현장검증 결과에 나타난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이 사건 아파트는 아파트 1층에 경비원이 근무하는 초소가 있고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하여 제3자가 몰래 침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는 하나, 경비원초소 뒤편으로 장애인이 다닐 수 있도록 콘크리트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길을 통하여 경비원이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경비원 몰래 침입할 수도 있다고 보여지고, 그 외에 비상구를 철문으로 막은 부분과 화단에서 복도 벽까지의 거리가 사람키에 못미치는 아파트 옆부분으로도 경비원 몰래 침입할 수 있다고 판단되므로, 경비원이 상주하여 경비를 하고 있어 외부인의 침입이 불가능하므로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 아닌 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없다는 단정은 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③ 이 사건이 피고인이 아닌 제3자의 범행이라면, 피고인이 07:00경 집에서 나간 다음 피해자 1이 아침을 먹고 밥그릇 등을 씻어 찬장에 넣은 후 제3자가 들어와 피해자 1과 피해자 2를 살해하고 욕조에 물을 받아 사체를 넣고 안방 장롱에 불을 지른 다음 피해자 1의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나간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위에서 차례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피해자 1의 사체에 부분적인 양측성반흔이 발생할 수 있고, 강직이 전신에 완성될 수 있으며, 부검시 위에서 이 사건 위 잔존물과 같은 형태의 음식물이 발견될 수 있다. 또한 식기세척기와 우유병 등이 현장과 같이 남을 수 있다. 즉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들에 의하여도 위와 같은 가정상황이 객관적으로 발생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④ 물론 피고인 아닌 제3자의 범행이라면 왜 돌이 갓 지난 아이까지 살해하고 범행 후 경황이 없는 중에도 사체를 물에 담그고 불까지 저질렀을까 하는 등 누가 어떤 동기에서 이 사건 범행을 행하였을 것인가 하는 전반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으나, 유죄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므로, 목격자나 범행도구에서의 피고인의 지문 또는 혈흔 등 범행의 직접증거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는 이 사건의 경우 제3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없다는 정황만으로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는 범행동기를 가진 제3자를 생각키 곤란하다거나 원한관계가 없는 제3자라면 그와 같은 잔혹한 범행수법을 취할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의심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아니하고, 시간상 간격이나 사후 현장상황 등에 비추어 제3자의 범행가능성이 물리적,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이 건의 경우 제3자의 범행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도 없다
(아) 그 밖에 피고인의 범행임을 의심케 하는 정황
공소외 7은 피고인이 아내와 딸이 죽은 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장례식장에서 까지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경찰조사를 받고 돌아와서는 콩나물국을 끓여준 일이 있느냐는 등 자신의 형사처벌 가능성만을 염려하는 극히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후 식사를 잘 하지 아니하고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을 흘리는 등 슬픔을 참지 못하였다는 공소외 6의 진술에 반할 뿐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였다거나(슬픔을 표시하는 방법은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였다 하여 마음 속으로 슬퍼하는 감정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찰에서 수사를 받고 돌아 와서 추궁받은 바를 질문하였다 하여 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위 공소외 7의 진술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수도 없다.
(자) 반대로 피고인이 무고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정황
① 피해자 1이 콘택트렌즈를 낀 상태에서 사망한 점
위 공소외 7의 진술과 실황조사서의 기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1은 양쪽 눈에 콘 택트렌즈를 낀 상태로 사망하였는데, 통상 피해자 1은 자기 전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콘택트렌즈를 뺀 다음 돗수있는 안경을 끼고 나와 자기 전까지 착용하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콘택트렌즈를 낀 후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는바, 그렇다면 피해자 1은 자기 전이나 깨어난 다음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피해자 1이 자기 전 사망한 것이라면, 피해자 1이 집에 있을 때는 대개 24:00경 잠자리에 들었다는 공소외 7의 진술(이는 피해자 1이 늦게까지 깨어 있다는 취지로 나온 진술이나, 아침 07:00경에는 일어나 출근을 하여야 하고, 밤에 집에 돌아와서는 식사준비 등을 하여야 할 뿐 아니라 밤중에 깨어나 피해자 2에게 수유까지 하여야 하는 피해자 1의 처지를 보면,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녁식사시 먹은 음식물의 상당양이 위 내에 남아 있는 부검결과, 주위에서 피고인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전혀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피해자 1은 6. 11. 23:30-6. 12. 00:00경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만일 그와 같이 피해자 1이 6. 11. 밤에 사망한 것이라면, 사망시각 추정에 대한 부분에서 본 것처럼 그와 같은 경우 고착된 시반이 훨씬 많은 부분에 나타나야 할 것이므로, 부검 결과와 맞지 아니할 뿐 아니라, 당심 증인 이정빈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 1의 사체 외관을 보아서 위 사체가 그다지 오래(예를 들어 4-5시간) 물에 잠겨 있지는 아니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인바, 그렇다면 위 사체는 살해 후 상당 기간 다른 장소에 방치되어 있다가 새벽 무렵 욕실로 옮겨졌다는 결론이 되고, 그 경우 시반의 형성과 사체의 경직은 다른 곳에 방치되어 있는 동안에도 당연히 진행되었을 것이므로, 사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시반이 이동되고 강직이 인위적으로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사체감정은 모두 사체가 옮겨져 시반이나 강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전혀 감안하지 아니하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감정 결과를 위와 같이 사체가 옮겨진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다음 피해자 1이 아침에 일어난 다음 살해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피해자 1의 평소 아침 기상시간, 피해자 1이 세수와 식사 및 설거지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 범인이 범행을 저지른 뒤 사체를 욕조에 넣고 방에 불을 놓는 등의 행위를 하기 위하여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할 때, 피해자 1이 피고인이 출근하기 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보다는 피고인의 변명처럼 피고인이 출근한 07:00 이후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 1이 콘택트렌즈를 낀 채 사망하였다는 정황은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② 전자 레인지에서 피해자 1이 복용하는 한약봉지가 발견된 점
공소외 7의 진술과 실황조사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해자 1은 살해될 무렵 아침, 저녁으로 식사 후(얼마만의 간격을 두고 복용하는지는 확인되지 아니하였으나, 피해자 1이 아침 7시경 일어나 식사를 하고 8시에는 출근을 하는 점에 비추어, 식후 30분이나 늦어도 1시간 후에는 복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약을 레인지에 데워 복용해 왔는데, 이 사건 현장검식시 부엌에 있는 전자 레인지 안에 그 한약 1봉지가 들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만일 피해자 1이 원심이 판단한 바와 같이 6. 11. 23:30부터 6. 12. 06:30 사이에 살해된 것이라면 살해된 시각은 저녁식사 후의 한약을 복용한 후여야 할 것이고, 렌지 내에 한약봉지가 존재할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피해자 1이 아침을 먹고 한약봉지를 레인지에 넣고 데우는 도중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3) 위와 같이 피고인을 이 사건의 범인으로 보기에는 갖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으므로 그러한 의문점이 풀리기 전에는 피고인의 변소를 가볍게 배척하고 피고인을 진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 할 것이다.
3. 결 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위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우리 대법원 판결이 일관되어 견지하는 입장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을 의심하게 하는 부검소견에 따른 사망시각 추정, 식기세척기나 우유병 등의 현장 상황 등의 여러 정황들이 있기는 하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면에서 그 증거들의 증명력에 대한 의문이 들고, 그 밖에 위와 같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드는 여러 정황들도 있으므로, 범인이 문을 잠그고 나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피해자 1이 사용하던 보조키의 소재나 지문, 혈흔 등 유죄 인정의 유력한 근거가 되는 증거가 전혀 현출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와 같이 의심의 소지가 남는 원심 거시증거들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의심스러운 증거들을 들어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사실을 잘못 인정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어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2.의 가 기재와 같은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결국 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