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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9. 13. 선고 2013다23464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함에 따라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와 이때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상당한 기간’의 범위

[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 등의 진실규명신청에 따라 진실규명신청 대상자를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고 피해자 등이 그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원고, 피상고인

원고 1 외 9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갑주 외 2인)

피고, 상고인

대한민국

주문

1.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1의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2의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3의 아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4의 아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5의 소외 3, 4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2. 원고 1, 2, 3, 4, 5에 대한 나머지 상고와 원고 6, 7, 8, 9, 10에 대한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3. 원고 6, 7, 8, 9, 10에 대한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제1심판결을 일부 인용하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가 작성한 진실규명결정서(갑 제12호증)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희생자들이 피고 소속 국군 ○○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이하 ‘국군 ○○사단’이라고 한다)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인정한 다음,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나. 그러나 원고 3의 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정리위원회는 원고 3의 동생으로서 호적에 미등재된 당시 1세인 남자 아기가 1950. 12. 6. 전남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장교마을에서 국군 ○○사단 군인들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에서는 1950. 12. 6. 장교마을 사건에 관하여 ‘신청인과 참고인에 따르면 군인들이 장교마을 주민들을 선별과정도 없이 총살하였다고 한다’거나 ‘신청인 및 참고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외 5의 가족 5명을 포함한 9명의 희생사실이 확인되었다’는 등 대상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나서는 곧바로 희생자의 신원을 기재하고 있고, 원고 3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원고 3이 조사과정에서 ‘△△댁과 딸 2명, 우리 집은 이모 소외 22와 아들, 어머니와 동생 등 4명, ▽▽댁에서 5명, □□댁에서 2명, 소외 6의 아들 소외 7과 그리고 소외 8이 사망하였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는 내용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원고 3은 2002. 4. 4. 피고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02가단4144호 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는 1950. 12. 6. 장교마을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인 아기가 사망하였다고 주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심이 채택한 제적등본(갑 제4호증의 2)은 비록 1950. 10. 10. 화재로 인하여 멸실되었다가 1952. 5. 31. 재제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원고 3이 1942. 6. 3. 아버지 소외 9의 사망을 원인으로 1943. 12. 27. 호주상속신고를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바, 위 제적등본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원고 3에게 1942. 6. 3. 사망한 아버지 소외 9와 어머니 소외 10 사이에서 태어난 1950. 12. 6. 당시 1세 정도인 동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설령 원고 3의 어머니 소외 10이 낳은 당시 1세 정도인 아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아기가 소외 9와 소외 10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원고 3이 호주인 호적에 입적된 것도 아니라면 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위자료를 원고 3이 호주로서 상속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 밖에 원심 증인 소외 11이 원심법정에서 ‘1950. 12. 6. 장교마을에서 학살사건이 발생한 날 소외 12가 소외 10과 아기의 시신을 관도 없이 가마니에 쌓아서 원고 3과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증언하기는 하였으나, 위 증언만으로는 원고 3과 아기의 가족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이와 같이 원심이 조사한 증거들만으로는 1950. 12. 6. 장교마을에서 원고 3의 남동생인 당시 1세 정도의 아기가 희생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피고가 이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원고 3의 청구원인을 다투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원고 3이 주장하는 아기의 존재와 가족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추가적인 증거조사도 없이 원고 3의 주장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였는바,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증거재판주의와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다. 한편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3의 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관하여는, 원심판결의 이유설시에 일부 부적절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기록에 나타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및 제적등본의 각 기재와 원심 증인 소외 13, 원고 1의 각 증언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 1, 2, 3, 4, 5, 6, 7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가 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02가단4144호 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패소한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기판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3.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이때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나,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3년을 넘을 수 없다 .

한편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적용 대상인 피해자의 진실규명신청을 받아 정리위원회에서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면, 그 결정에 기초하여 피해자나 그 유족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기록을 살펴보면,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1의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과 원고 2의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4의 여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5의 소외 3, 4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제외한 위 원고들의 나머지 손해배상청구 부분과 나머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 부분의 소(이하 이 항에서는 ‘이 부분 손해배상청구의 소’라 한다)는 진실규명결정 이후 피고가 피해회복을 위한 입법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원고들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피고를 상대로 이 부분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이어서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부분 손해배상청구의 소에 관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결론적으로 정당하고, 거기에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다. 그러나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1의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과 원고 2의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4의 여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5의 소외 3, 4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관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

(1) 기록에 의하면, 2010. 6. 28. 제출된 소장에서 원고 1은 할머니 소외 2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만을 청구하고, 원고 2는 어머니 소외 14와 형 소외 1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만을 청구하였다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인 2007. 7. 3.부터 3년을 훨씬 경과한 2012. 6. 29. 원심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야 비로소 원고 1은 할머니 소외 2 외에도 사촌형 소외 1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원고 2는 어머니 소외 14, 형 소외 1 외에도 할머니 소외 2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음이 명백하고, 원고 1의 사촌형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와 원고 2의 할머니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각각 위 원고들이 소장에서 구한 손해배상청구와는 청구원인을 달리하는 별개의 청구임이 분명하므로, 원고 1의 사촌형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와 원고 2의 할머니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는 위 원고들이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위 각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2) 또한 기록에 의하면, 2010. 6. 28. 제출된 소장에서 원고 4는 소외 15, 16, 17, ◎◎댁, 소외 18, 19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만을 청구하고, 원고 5는 소외 20, 21 및 호적 미기재의 누이 1명에 대한 손해배상만을 청구하였다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인 2007. 7. 3.부터 3년을 훨씬 경과한 2011. 10. 14.에 이르러 제1심에 제출한 준비서면 및 2011. 12. 1.자 청구취지 확장신청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원고 4는 여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추가하고, 원고 5는 소외 20, 21 외에 호적 미기재의 누이 1명 대신 누나 소외 3, 4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으로 청구취지 및 원인을 변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고 4의 여동생인 아기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 원고 4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볼 수 없고, 원고 5의 누나인 소외 3, 4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중 적어도 1명에 관하여는 원고 5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다만 이 사건 기록만으로는 원고 5가 소장에서 누나 소외 3, 4 중 누구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인지 특정할 수 없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원고 5가 소장에서 누나 소외 3, 4 중 누구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던 것인지를 가려보았어야 할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원고 1의 사촌형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와 원고 2의 할머니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원고 4의 여동생인 아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원고 5의 누나 소외 3, 4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까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4. 상고이유 제4점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가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심의 조치에 위자료 산정에 관한 사실심법원의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5.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피고 패소 부분 중 원고 1의 소외 1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2의 소외 2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3의 아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4의 아기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 원고 5의 소외 3, 4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 1, 2, 3, 4, 5에 대한 나머지 상고와 원고 6, 7, 8, 9, 10에 대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고 6, 7, 8, 9, 10에 대한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신(재판장) 민일영 이인복(주심)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