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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2. 7. 12. 선고 2012도4031 판결

[강간][미간행]

판시사항

[1]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2] 피고인이 피해자 갑(여)을 비롯한 동호회 회원들과 연말 회식을 한 후 귀가하려는 갑에게 대리기사를 불러 데려다 주겠다면서 자신의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다음 갑의 의사에 반하여 그를 강간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제반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은 갑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여 강간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충분한데도, 이와 달리 보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심리미진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판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이승욱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1. 원심의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과 피해자는 ‘ (동호회 명칭 생략)밴드’ 동호회 회원인바, 2010. 12. 23.(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발생일은 2010. 12. 24.로, 2010. 12. 23.은 오기로 보인다) 02:30경 양주시 덕계동 (이하 생략) 노상에 주차된 피고인 운전의 소울(Soul) 승용차 안에서, 동호회 회식 후 귀가하기 위해 위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를 간음하기로 마음먹고, 손으로 피해자의 온몸을 만지며 입맞춤을 하고, 피해자가 이에 저항하자 양손으로 피해자의 어깨를 눌러 옆으로 눕혀 항거 불능케 한 다음 피해자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1회 간음하여 피해자를 강간하였다는 것이다.

나.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 증거를 종합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① 피해자는 이 사건 성관계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깨를 눌러 옆으로 눕히고 팬티를 억지로 내리는 유형력을 행사한 외에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② 이 사건 성관계가 피고인의 소형 승용차 뒷좌석의 좁은 공간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핫팬츠와 팬티를 완전히 벗기지 않고 종아리까지만 내린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의 차량 문을 열거나 몸을 움직이는 등의 행동만 하였어도 피고인에 의한 일방적인 성관계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피고인 차량이 주차되어 있던 장소는 횡단보도와 육교가 접한 대로변으로 주변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상가가 있고 차량의 통행도 있었으며 피고인과 피해자가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피해자가 성적인 자기방어를 포기할 정도의 심리적 억압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 점, ④ 이 사건 성관계 당시에 피해자로서는 피고인과의 성관계가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피해자가 강간에 대한 반항을 완전히 포기할 정도의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까지 이르렀는지 또는 성관계 당시 이를 용인하는 이외의 다른 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는 점, ⑤ 한편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부터 제1심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사실은 있으나, 피고인이 인정한 내용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하였다는 사실에 관한 것일 뿐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협박하였다는 사실까지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등 이 사건 유형력 행사의 정도나 그 경위, 범행 당시 정황이나 주변 상황,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위력을 행사하여 간음한 것은 사실이나 더 나아가 그러한 유형력의 행사로 인하여 반항을 못하거나 반항하는 것이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1심의 유죄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가.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 (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도3071 판결 참조).

나. 기록에 의하면, ① 피고인과 피해자는 밴드동호회 회원들로서 2010. 12. 23. 동호회 활성화 등을 위한 연말 회식을 하면서 2차로 양주시 덕계동 (지번 생략) 상가건물에 있는 밴드연습실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신 사실, ② 2010. 12. 24. 새벽 2시경 술자리를 마치며 피해자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피고인은 대리기사를 불러 자신의 차량으로 피해자를 데려다 주겠다면서 피해자를 밴드연습실 앞 노상에 주차되어 있던 피고인의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사실, ③ 그런데 피고인은 실제로는 대리기사를 부르지 않았고 대리기사를 기다린다며 차량 뒷좌석에 있는 피해자 옆에 타고는 피해자를 껴안으려 한 사실, ④ 피해자는 피고인을 밀치면서 억지로 껴안는 것이 싫다고 얘기한 사실, 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를 무시하고 ‘억지로 하는 것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잡고 억지로 키스를 하고, 온몸을 만지고 피해자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눕힌 사실, ⑥ 피고인이 피해자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그 안에 입은 핫팬츠를 벗기려고 하자 피해자는 옷을 벗기지 못하도록 버티면서 하지 말라고 울면서 애원한 사실, ⑦ 그럼에도 피고인은 강제로 피해자의 핫팬츠와 팬티를 내린 후 피해자를 간음한 사실, ⑧ 피고인은 키 175㎝, 몸무게 70㎏의 건장한 체격의 성인 남성인 데 비하여 피해자는 키 158㎝, 몸무게 51㎏ 정도에 불과하여 체격의 차이가 크고, 당시 술에 취한 상태인 피해자가 좁은 차량 안에서 피해자를 잡고 있던 피고인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던 사실, ⑨ 이 사건 차량이 대로변에 있다고 하여도 당시 주변에는 차량이나 다니는 사람이 없었고(수사기록 101쪽) 새벽 2시 30분경의 추운 날씨에 입고 있던 핫팬츠와 팬티가 종아리까지 벗겨져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물리치고 피고인의 차량 문을 열고 뛰쳐나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사실, ⑩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후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여 피해자의 집에 데려다 주면서 친근감을 표현하는 말을 하였지만 피해자는 단순히 ‘알았다’는 말만 하고 뒷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사실, ⑪ 피해자는 이 사건 당일 아침 곧바로 밴드동호회 리더인 공소외인에게 밴드를 그만두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한 공소외인에게 ‘피고인이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했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사실, ⑫ 피고인이 같은 날 피해자에게 ‘밴드를 그만두지 마라, 자신이 잘못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피해자는 ‘나도 그만두지(기) 싫어서 지금까지 참고 그리고 오빠 믿고서 나간거야~ 성폭행당한 여자가 그 사람 얼굴을 어떻게봐~ 내가 밴드 다 포기할테니까 이제 더 이상 생각나지 않게 해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울면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힘으로 막했잖아~ 그게 성폭행이지~ 억지로 막했잖아~ 당하는 내 심정은 생각해봤어? 내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내 의지는 완전히 무시됐잖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라는 메시지를 피고인에게 보내 전날의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한 사실, ⑬ 피고인도 계속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 ⑭ 피해자는 2010. 12. 26. ‘생각 같아서는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 어떻게 할지 지금 고민중이야’라는 문자를, 2010. 12. 28.에는 ‘그만한 각오도 없이 그런일을 벌이다니~ 그날 나는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하고 얼마나 무서웠고~ 지금까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잠도 못자고~’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사실, ⑮ 그러나 피해자는 주변 사람들이 피고인과의 성교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던 중 위 성교로 인해 자궁외임신이 되고 급기야 2011. 2. 1. 복강경하 좌측 나팔관절제술을 받게 되자, 2011. 2. 13. 피해자의 주거지나 직장과는 동떨어진 성북경찰서에 가 피고인을 강간죄로 고소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며 피해자를 피고인의 차량 뒷좌석에 태운 후 간음을 하게 된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의 체격, 피해자가 처해 있던 상황, 피해시간, 피고인과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의 상황, 성교 이후의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행동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강간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 강간의 공소사실을 자백한 피고인이 원심에 이르러 피해자와의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범행을 부인하자 별다른 심리도 없이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거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는바, 이는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강간죄에 있어서의 폭행·협박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박보영(재판장) 신영철 민일영(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