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a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88870 판결

[손해배상(기)][공2013하,1897]

판시사항

[1] 소비자가 제조업자 측에게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증명책임의 분배

[2] 갑이 을 주식회사가 수입·판매하는 로타바이러스 예방백신을 사용한 이후에 태어난 송아지가 집단 폐사하자 을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일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성능 미달 등의 하자가 있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제조업자 측에게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일반 소비자로서는 제품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하자가 존재하였는지, 발생한 손해가 하자로 인한 것인지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 측으로서는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등 일응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과 제품이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되었음에도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손해가 제품의 하자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제품에 하자가 존재하고 하자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다.

[2] 갑이 을 주식회사가 수입·판매하는 로타바이러스 예방백신을 사용한 이후에 태어난 송아지가 집단 폐사하자 을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위 백신이 백신으로서 통상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다거나 이를 추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만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이와 달리 보아 일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판례
원고, 피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성철)

피고, 상고인

한국화이자동물약품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손지열 외 5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성능 미달 등의 하자가 있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제조업자 측에게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일반 소비자로서는 그 제품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하자가 존재하였는지, 발생한 손해가 그 하자로 인한 것인지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 측으로서는 그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등 일응 그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과 제품이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되었음에도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그 손해가 제품의 하자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그 제품에 하자가 존재하고 그 하자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다 ( 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16771 판결 참조).

2. 원심은 그 채택 증거에 의하여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① 원고 농장에서 처음에 주식회사 코미팜이 제조한 로타바이러스 예방백신(이하 ‘코미팜 제품’이라 한다)을 사용하였던 기간 동안에는 송아지들이 출산 후 설사병으로 집단 폐사하지 아니하다가, 피고가 수입·판매하는 ‘칼프가드’라는 이름의 로타바이러스 예방백신(이하 ‘이 사건 백신’이라 한다)을 사용한 이후에는 출산 이후 단기간 내에 설사병으로 집단 폐사하였던 점, ② 원고가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이던 이 사건 백신의 세포 사멸 효과를 검사한 결과 백신의 생물학적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이른바 역가(역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충남대학교 수의대학 소외 1 교수의 실험 결과가 제시된 점, ③ 송아지 폐사체 등에서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되었던 점, ④ 특히 세계적인 규모의 제약회사인 피고가 폐사한 송아지의 설사변과 그 어미 소의 혈청을 가지고 서울대학교 수의대학 소외 2 교수에게 역가(역가) 검사를 의뢰한 후에도, 자신에게 불리하지 아니한 검사 결과는 원고에게 통보하면서, 같은 무렵에 원고로부터 수거한 사용하고 남은 이 사건 백신 17개는, 거리 문제로 본사에 보내지 못하고 내부 규정에 따라 기존에 보관 중인 샘플과 육안으로 비교한 결과 이상이 없어서 이를 모두 폐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 농장에서 출산된 송아지들이 로타바이러스 감염 또는 로타바이러스와 병원성 대장균 등의 복합감염으로 집단 폐사한 것은 이 사건 백신이 효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3. 그런데 위와 같은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있는 원고의 주장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피고가 수입하여 국내에 유통시킨 이 사건 백신이 백신으로서의 효능이 없다는 이유로 제조물책임법이나 일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심은 그중 일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여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즉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백신에 항체를 형성시키는 바이러스가 함유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알았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알지 못한 채 이를 수입·판매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원고가 그 제품으로 예방접종을 하였음에도 송아지들의 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폐사를 예방하지 못하여 손해를 입었다는 민법 제750조 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본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에 의하면, 위 원심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려면, 제품의 사용자인 원고가 이 사건 백신을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음에도 송아지가 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집단 폐사하는 손해가 발생하였고, 폐사한 송아지의 어미소에게 접종한 이 사건 백신이 정상적인 효능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는 것이었음을 일응 추단하게 하는 사실이 먼저 증명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물론 거기에서 나아가 폐사한 송아지들이 로타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 대장균 등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되어 폐사하였다는 등 다른 손해발생 원인이 존재한다는 등의 반대사실은 제품을 수입·유통시킨 피고가 증명하여야 할 것이지만, 이는 제품의 하자 등 기본적인 전제사실이 증명된 다음의 문제이다. 이로써 볼 때 원심의 판단은 다음의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① 원심은 이 사건 백신이 통상적인 효능이 없는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근거로 충남대학교 수의대학 소외 1 교수가 작성한 감정서를 들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위 감정서는 원고의 개인적인 의뢰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서, 원고가 미사용 상태로 가지고 있던 이 사건 백신 2개가 감정용으로 전달되어 이를 세포배양에 의한 세포사멸 효과에 바탕을 둔 방법으로 검사한 결과 백신의 생물학적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이른바 역가(역가)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함유하고 있어서 영상 2도 내지 7도에서 보관해야만 그 약효가 유지되기 때문에 그 운반이나 보관에 있어서도 같은 조건을 유지하여야 함에도, 원고가 유효기간을 4개월이나 지난 이 사건 백신을 기온이 높은 한여름에 통상적인 택배 방식으로 발송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정확한 실험 결과가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위 검사방법 자체에 관해서도 결과의 정확성을 보장할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증명할 자료도 제출된 것이 없다.

② 원심은 송아지 폐사체 등에서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점을 피고의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사실의 하나로 들고 있다. 그런데 제1심의 인천광역시보건환경연구원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송아지 폐사체에 대한 세균검사 결과 장에서 병원성 대장균이 검출되었고, 반면 폐사하지 아니한 송아지의 설사변에서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특이 유전자가 검출되었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와 같은 검사 결과에 의하여 송아지가 폐사한 원인이 로타바이러스 감염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더구나 기록에 의하면, 송아지의 폐사에 로타바이러스 감염이 관련되었더라도, 송아지의 경우 로타바이러스 감염만으로는 폐사율이 0~50% 정도이지만 대장균과 같은 다른 병원성 미생물과 함께 감염될 때에는 폐사율이 90%까지도 상승하게 되고, 원고는 2009. 2.부터는 이 사건 백신 대신 그 효능에 다툼이 없는 코미팜 제품을 사용하였고, 2009. 3.부터는 감마세린을 사용하여 로타바이러스 항체를 직접 송아지들에게 투여하였음에도, 그 후 1년간 송아지 폐사율이 이 사건 백신을 사용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높았던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까지 함께 감안해 보면,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송아지 폐사체 등에서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하여 곧 이 사건 백신의 효능에 하자가 있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③ 또한 원심은 피고의 담당 직원이 원고로부터 사용하고 남은 이 사건 백신 17개를 수거한 후 기존에 보관 중이던 백신 샘플과 육안으로 비교하기 위하여 1개를 사용하고 나머지 16개는 육안 비교 결과 이상이 없어서 이를 모두 폐기해 버렸다는 취지로 피고가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근거 사실의 하나로 거시하고 있다. 만약 피고가 위 원심의 인정처럼 이 사건 백신 잔여분을 건네받아 임의로 폐기하였다면 이는 피고에 대한 책임인정의 간접적 근거로서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기록을 살펴보아도 피고가 이 사건 소제기 이전이든 소송절차에서든 위 원심인정과 같이 주장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자료 자체가 발견되지 않는다(피고는 오히려 상고이유에서 위 잔여 백신 16개를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 한편 이 사건 백신이 백신으로서의 효능이 있는지 여부는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의 유무 판단에 있어 관건이 되는 가장 중요한 증명사항이라 할 것인데,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심리과정에서 이 사건 백신이 과연 원고의 주장대로 정상적인 효능을 발휘할 수 없는 하자가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법원에 감정을 신청하는 등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받아보기 위한 증거신청이나 증거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위와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이 판시한 사정에 의하여 이 사건 백신이 백신으로서 통상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다거나 이를 추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만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요건에 관한 증명책임 등과 관련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이 사건 백신이 정상적인 효능을 갖춘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창석(재판장) 양창수 박병대(주심) 고영한

본문참조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