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하집1994(2),449]
만 10세 남짓한 피의자들이 친구를 살해하였다고 한 경찰에서의 자백이 보호자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이루어진 심리적 무형력의 행사에 의한 강압상태 하에서의 진술로서 믿을 수 없다고 한 사례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에 대하여 가혹행위 등 유형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의사의 변별력이 없는 만 10세 남짓한 피의자들이 수사개시 당초부터 경찰관에 의하여 신병이 확보된 상태 아래에서 보호자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경찰관으로부터 계속된 추궁을 받던 끝에 허위의 내용을 진술한 것은 피의자들에 대한 심리적 무형력의 행사에 의한 강압상태 하에서의 진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여기에 현장상황에 부합되도록 경찰관들이 조력하여 피의자들로 하여금 진술하게 함으로써 피의자들이 허위내용의 자백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므로 그들의 자백이 담긴 각 증거들을 믿을 수 없다.
원고 1외 3인
피고 1외 3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피고들은 각자 원고 1에게 금 107,626,669원, 원고 2, 3, 4에게 각 금 3,000,000원 및 각 이에 대하여 1993.4.28.부터 이 사건 판결선고일까지는 연 5푼, 그 다음날부
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 및 청구원인
1993.4.29. 오전 충남 논산군 연무읍 (이하 생략) 소재 주택의 재래식 화장실 변통에서 그 집에 사는 소외 인(1983.10.22.생)의 변사체가 발견된 사실, 원고 1은 위 망인의 모, 원고 2, 3, 4는 망인의 누나들이고, 피고 1, 2는 소외 1(1982.12.9. 생)의 부모, 피고 3, 4는 소외 2(1982.9.29.생)의 부모인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원고들은 이 사건 청구원인사실로서, 1993.4.28. 19:15경 소외 1, 2가 공동하여 위 소외인을 살해하였는바, 피고들은 위 소외 1, 2의 부모로서 그들이 타인을 위해하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보호감독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과실로 인하여 위 소외인들이 위 망인을 살해함으로써 위 망인 및 위와 같은 친족관계에 있는 원고들에게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과연 위 소외 1, 2가 위 소외인을 살해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피기로 한다.
2. 소외 1, 2의 소외인 살해 여부
소외 1, 2가 위 소외인을 살해하였다는 증거로 원고가 제출하는 것으로는 갑 제8호증의 1 내지 71(경찰수사기록), 갑 제9호증의 1 내지 38(피고 3의 진정사건기록)의 각 기재가 있으나, 그중 원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직접적인 증거로서 위 소외 1, 2의 자백을 담은 갑 제8호증의 36 내지 48,55,57의 각 기재의 신빙성을 다른 증거와 대비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가. 사건의 발생, 범인의 체포
1993.4.29. 오전에 충남 논산군 연무읍 (이하 생략) 소재 원고 1의 집 재래식 화장실 변통에서 위와 같이 소외인의 변사체가 발견되자, 경찰(강경경찰서)은 곧 수사에 착수하여 같은 날 14:50경 소외 1로부터 진술을 듣는 등 탐문수사를 벌이다가 5.1. 15:00경 이후 소외 1, 2를 연행하여 수사중 그들로부터 범행일체를 시인하는 자백을 받아내고 5.2. 16:00경 이장 김승태와 담임교사 김명중의 입회 아래 진술조서를 받았다. 그 후 5.3.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5.4. 오후에 위 소외 1, 2를 귀가시켰다.
나. 소외 1, 2의 피의사실
위 경찰수사기록상 경찰이 피의자들의 자백을 토대로 구성한 이 사건 피의사실은 다음과 같다.
(1)피의자 소외 1(국교 5년)은 1993.4.28. 19:15경 피해자 소외인의 집에 도착, 안방에서 피해자와 텔레비전(가요 톱텐)을 보고 있었는데, 19:20경 피의자 소외 2(국교 5년)가 그 곳에 도착하여 함께 놀고 있었다. 그때부터 20:00경 사이에 소외 1은 피해자가 마시는 구론산을 달라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주지 않으려 하자 구론산을 낚아채어 빼앗아 먹으려다가 구론산이 엎질러지면서 피해자의 옷에 튀게 되었다,그러자 화가 난 피해자는 피의자에게 ‘씹할놈’이라고 욕을 하였고, 이에 격분한 피의자 소외 1은 안방 뒷문으로 나가 막대기를 주워가지고 와서 피해자의 머리와 다리를 수차례 때려 뒤로 넘어지게 하였다. 피의자는 이어서 면수건으로 넘어진 피해자의 입과 코를 감싸고 묶었는데 피해자의 반항으로 풀리자 피해자의 허리띠를 풀어 피해자의 목에 감고 잡아 당겨 피해자의 입이 벌어진 사이에 위 면수건을 피해자의 입 속으로 밀어넣어 질식사에 이르게 하였다.
(2)피의자 소외 2는 위 살해현장을 보면서도 이를 방조하였다.
(3)피의자 소외 1, 2는 공동으로 피해자의 사체를 끌고 가 범행현장에서 20-30미터 떨어진 피해자의 집 화장실에 빠뜨려 유기하였다.
다. 살해의 동기상 의문점
피의사실에 따르면 소외 1은 피해자가 마시는 구론산을 빼앗으려다가 구론산이 엎질러지면서 피해자의 옷에 튀게 되었고, 피해자가 소외 1에게 ‘씹할놈’이라고 욕을 하자 이에 격분하여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10세의 어린 나이에 불과한 소외 1이 그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이러한 정도의 사유만으로 인하여 친구에 대하여 막대기로 머리와 다리를 수차례 때리고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감싸고 허리띠를 목에 감고 잡아 당기고 수건을 입 속으로 밀어넣어 질식사시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 피의자들의 자백과 피해자 사체부검결과의 비교
(1) 수사기록에 나타난 피의자 소외 1의 범행방법
소외 1은 조사과정에서 지름 3.5센티미터, 길이 75센티미터의 막대기로 피해자 소외인의 온 몸을 수회(20여 회) 때려 피해자를 반실신상태로 만든 다음(피해자는 실신하여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피해자의 배 위에 앉아 피해자의 바지허리띠를 풀어 피해자의 목에 감아 힘껏 잡아당겼고, 허리띠를 너무 세게 당기는 바람에 끊어졌다고 진술하였다.
(2) 수사기록상의 사체부검결과
1993.4.30. 부검의 한경석 외 1인이 이 사건 피해자의 시체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검증조서에 의하면 피해자의 사체에는 머리:우측 측두부 2센티미터 찰과상흔, 좌측이개부 뒤쪽 지름 1센티미터 찰과상흔, 목에 압박된 흔적으로 멍이 들어 있음 얼굴:입술내측:피멍, 가슴, 배:전면가슴 복부 외상흔적 없음, 옆구리:좌측 옆구리 4센티미터 찰과상, 둔부:3개소에 끌린 듯한 찰과상, 양팔:좌측인지 2관절, 우측엄지 1관절 부위에 쌀알 크기의 피부가 박리, 좌측 다리:좌측 대퇴부 바깥쪽 길이 7센티미터×12센티미터의 찰과상 2개소, 우측 다리:지름 2센티미터의 찰과상의 육안소견이 보이고, 사망원인은 목부분의 심한 압박흔적으로 보아 기도압박에 의한 호흡중지로 질식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의문점
첫째, 소외 1이 막대기로 수회 가격하여 반실신상태로 피해자를 만들었다면 부검결과에 막대기에 의한 타격흔적(타박상)이 있어야 할텐데 전혀 그러한 소견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막대기에 의한 타격”을 진술한 소외 1의 진술을 의심케 한다.
둘째, 허리띠가 끊어질 정도의 큰 힘을 써서 목을 졸랐다면 목에 이른바 “교흔”이 남았어야 할 것임에도 부검결과 어디에서도 그것이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검증조서상의 사진만으로 볼 때 사진 속의 목 전면부 압박흔적은 허리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양손으로 조인 것으로 보인다.
마. 피의자들의 진술의 비일관성과 상호모순
(1) 피의자들이 범행현장에 간 시점, 도착했을 때의 상황, 도착 후의 상황 등에 관한 피의자들의 진술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 즉, 소외 1은 최초 자백시에는 소외 2와 함께 피해자의 집에 놀러가 범행하였다고 했다가( 소외 1의 자술서), 그 후 소외 1이 범행 도중 보니까 소외 2가 와 있더라고 진술이 바뀌었고, 결국은 따로 범행현장에 도착하여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범행에 이른 것으로 되었다.
(2) 범행시 사용한 허리띠를 소외 2는 시종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럼에도 소외 2는 현장 검증시에는 소외 1이 허리띠로 목을 너무 세게 졸라 허리띠가 끊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3) 범행에 사용된 수건을 입 안으로 밀어넣은 장소도 범행현장인 안방이라는 진술과 사체를 유기하려고 끌고 가다가 묶어 놓은 수건이 풀려서 뒷마당에서 집어 넣었다는 진술이 있는 등 상호 불일치한다. 수건이 원래 있던 장소에 관하여도 방바닥에 있었다고 했다가 안방 뒷문 못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되기도 하는 등 일관성이 없고, 언제 그 수건을 가지고 왔는지에 관하여도 진술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4) 범행에 사용된 막대기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도 소외 1과 소외 2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 소외 1은 안방 뒷마당으로 나가서 가져왔다고 진술하고, 소외 2는 안방 앞마당에서 가지고 왔다고 진술하고 있다(그러나 현장검증은 소외 1의 진술대로 시행되었다).
(5)그 밖에도 범행현장의 열쇠의 행방에 관하여 소외 1은 처음에 소외 2가 가져갔다고 진술하였고, 소외 2는 소외 1이 가져간 것 같다고 진술하다가 결국 소외 1이 가져간 것으로 되었다(현재까지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관 출입문을 잠근 사람이 누구였는가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로 서로 미루다가 소외 1이 잠근 것으로 되었다. 소외 1이 범행시 맨발에 양말을 신고 있었는지에 관하여도 신지 않았다고 했다가 현장상황에 맞추어 신었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범행 직전 시청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관하여도 처음에 탤런트들이 나와서 퀴즈를 푸는 것이라고 하다가 가요 톱텐이었다고 진술이 바뀌었다. 또 범행중 피해자가 반항하였는지에 관하여도, 소외 1은 처음에 반항하지 못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반항을 하더라고 하는 등 진술이 엇갈리고, 소외 2는 시종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서로 다르다.
위와 같은 이유로 피의자 소외 1, 2의 피의사실에 대한 자백은 상호모순되어 논리성과 신빙성을 갖추지 못한 진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바. 현장부재 주장
증인 이건정은 범행시각이라고 되어 있는 1993.4.28. 19:30경 마을 화성상회 앞 평상에 앉아 있던 소외 1을 만나 대화를 한 사실이 있다고 이 법정에서 증언하고 있다(다음날이 소풍날이라서 그 날짜를 확실히 기억한다고 진술한다. 또 그 다음날 조퇴를 하고 있던 중 살인사건구경을 갔기 때문에 기억한다고 진술하는데, 이에 대하여 출석부상 조퇴일자는 그 이전이라고 원고측은 주장하나 출석부가 분실되어 재작성된 점에 비추어 출석부상 조퇴일자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사. 그 밖의 의문점
첫째, 허리띠가 끊어졌다는 부분은 선뜻 믿기 어렵다.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허리띠는 비교적 새것인데, 소외 1이 허리띠로 조르는 중 너무 세게 잡아당겨 허리띠가 끊어졌다는 진술은 소외 1이 키 135센티미터 이하, 몸무게 30킬로그램 이하의 신체조건을 가진 어린 소년인 점에 비추어 믿기 어렵다.
둘째, 피해자는 소외 1과는 신체조건이 비슷한데도 범행과정에서 큰 반항 없이 소외 1로부터 일방적으로 맞고, 목졸림을 당했다는 것은 선뜻 믿기 어려운 부분이다( 소외 1이 피해자의 반항에 의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자료는 없다). 또한 소외 1이 소외인을 위와 같이 심하게 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친구인 소외 2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소외 1과 소외 2가 미리 공모하지 않은 이상 소외 2로서는 이를 말리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셋째, 사건 당일 20:00 이후(범행 이후 시간) 피의자들의 행적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아이들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부분이다. 소외 1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에 비해서 범행 후 안방 뒷문을 고리에 볼펜을 끼워 잠그고 마루문을 잠그는 등 현장 뒷정리까지 상당히 완벽하게 하였다는 것이 경찰조사이다. 그 후에도 소외 1은 태연히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가 소풍준비를 해달라고 졸랐고, 소외 2는 친구 용훈의 집에 가서 숙제를 하였다. 또 소외 2는 다음날 소외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경하러 가기까지 하였다. 불과 10세 정도의 어린 소년들이 이러한 잔인한 범행 직후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 자백의 임의성에 관한 피의자들의 각 진술
을 제11호증의 1,2의 각 기재와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위 소외 1은 학교를 다녀와서 경찰에 의하여 연행되어 이 사건 피의사실에 대하여 부인하자 거짓말한다고 야단을 맞고, 경찰관으로부터 상피의자인 소외 2는 다 말했다는 취지의 말을 들은 후 열쇠가 어디 있느냐고 싸대기를 맞고 난 다음 무서워서 아무렇게나 가르쳐 주었고, 그 후부터는 현장검증연습을 하고 이에 따라 현장검증을 하였다는 것이고, 위 소외 2는 경찰이 자신을 저수지 밑으로 데려간 다음 신문을 말아서 목을 때리고 감방에 넣어서 깡패들한테 맞게 한다고 하여 무서워서 거짓말로 진술하였다는 것이다.
자. 피의자들의 자백의 신빙성
이상과 같은 점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들은 위 소외 1, 2에 대하여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물리적 유형력을 전혀 사용하지 아니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고, 가사 경찰관들이 동인들에 대하여 가혹행위 등 유형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의사의 변별력이 없는 만 10세 남짓한 소년들이 수사개시 당초부터 경찰관에 의하여 신병이 확보된 상태 아래에서 보호자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경찰관으로부터 계속된 추궁을 받던 끝에 허위의 내용을 진술한 것은 피의자들에 대한 심리적 무형력의 행사에 의한 강압상태 하에서의 진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같은 해 5.2. 16:00경 이장 김승태, 위 소외 1, 2의 담임교사 김명중의 입회 아래 진술조서를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강압적인 추궁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이 지속된 상태에서 진술한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 현장상황에 부합되도록 경찰관들이 조력하여 피의자들로 하여금 진술하게 함으로써 위 소외 1, 2가 허위내용의 자백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므로 그들의 자백이 담긴 갑 제8호증의 25,36 내지 48,55,57의 각 기재와 이에 터잡은 갑 제8호증의 1,5의 각 기재 및 이 법원의 녹화테이프 검증결과 중 위 피의자들의 각 진술부분은 믿을 수 없다 할 것이고, 그 밖의 증거는 모두 현장상황 등 간접적인 증거에 불과하여 원고들의 주장사실을 직접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고, 갑 제9호증의 1 내지 38의 각 기재는 위 소외 1, 2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거나 수사과정을 목격한 자들에 대한 진술로서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과정에 있어서 물리적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지만,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피의자들에 대한 물리적 유형력의 행사가 없었다 할지라도 강압적인 수사로 인하여 그들의 각 자백이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 이상, 위 서증의 각 기재만으로 위 각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여 원고들의 주장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3. 결 론
그렇다면 위 소외 1이 위 소외인을 살해하고 위 소외 2가 이를 방조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이 사건 청구는 더 나아가 나머지 점을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