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취소][공1993.10.15.(954),2629]
가.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의 의미
나. 중혼 성립 후 10여 년 동안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으나 그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가.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라 함은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된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중혼 성립 후 10여 년 동안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으나 그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가.나. 민법 제2조 나. 같은 법 제810조 , 제818조
A
B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1) 망 C는 D생으로 경북 문경군에 본적을 둔 자로서 1955.5.18. 망 E와 혼인신고를 하고 그 사이에 1959년생의 딸 1명을 두었다.
(2) C는 E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여 위 딸을 출산한 직후부터 별거하였으며 그 사이에 이혼을 추진하는 등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
(3) 그런 상태에서 C는 친지의 소개로 피고를 만나 위 혼인사실을 숨긴 채 1965. 11. 8.경 피고와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에 들어갔으며 그 사이에 2남 2녀를 출산하였다.
(4) C는 중혼에 대한 피고의 항의를 받고 1975. 1. 30. 자신이 재외국민인 것처럼 가장하여 재외국민취적·호적정정및호적정리에관한임시특레법에 의한 취적신고를 함으로써 서울 성북구를 본적지로 하는 새로운 호적을 편제하게 한 후 1978.9.28. 피고와의 혼인신고를 하여 위 새로운 호적에 등재하게 하였다.
(5) C와 피고 사이에 출생한 2남 2녀는 원래의 호적과 새로운 호적에 2중으로 출생신고되었다가 1985. 11. 29. C가 사망한 후 법원의 허가를 얻어 호적정리되었으며 C와 피고 사이의 혼인관계 기재사항도 원래의 호적에 이기되었다.
(6) E는 C와 사실상 이혼상태에 들어간 후 1987. 3. 29. 사망할 때까지 C와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며, 피고는 C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등 처로서의 할일을 다하여 왔다.
(7) 한편 원고는 C의 이복동생으로서 C와 피고가 결혼식을 올린 직후부터 약 4년간 피고의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를 다닌 일이 있는 등으로 양인의 혼인경위 및 혼인신고경위 그리고 C와 E와의 혼인파탄 경위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까지는 C와 피고의 혼인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다.
(8) C의 친척 중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친척들은 모두 C와 피고의 혼인을 인정하고 아무도 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C와 피고 사이의 혼인관계는 중혼으로서 취소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원고로서는 C가 이중호적을 편제하여 피고와의 혼인신고를 한 이래 10여년 동안 충분히 이 사건 소와 같은 내용의 소를 제기할 수 있었고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소제기를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아니하여 특히 C와 E가 모두 사망한 이제는 피고로서도 원고가 더 이상 그 취소권을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되었거나 또는 원고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까지는 피고를 C의 처로서 인정함으로써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하였으니, 원고가 새삼스럽게 그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고 그 권리는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에 따라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원고의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다.
2.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라 함은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된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당원 1991.7.26.선고 90다1548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중혼 성립 후 10년간 그 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피고의 입장에서 법정의 취소청구권자인 원고가 더 이상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다거나 원고의 그 동안의 언동에 의하여 피고가 원고는 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민법의 관계규정에 의하면 민법 소정의 혼인취소사유 중 동의 없는 혼인, 동성혼, 재혼금지기간위반혼인, 악질등 사유에 의한 혼인, 사기, 강박으로 인한 혼인등에 대하여는 제척기간 또는 권리소멸사유를 규정하면서도( 민법 제819조 내지 제823조 ) 증혼과 연령미달 혼인에 대하여만은 권리소멸에 관한 사유를 규정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는 중혼등의 반사회성, 반윤리성이 다른 혼인취소사유에 비하여 일층 무겁다고 본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중혼의 취소청구권에 관하여 장기간의 권리불행사등 사정만으로 가볍게 그 권리소멸을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일응 이유 있다,
3. 그러나 한편 권리의 행사가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부당한 결과를 야기하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줄 목적만으로 하여지는 것과 같이 공서양속에 위반하고 도의상 허용될 수 없는 때에는 권리의 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원심인정의 위 사실에다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피고와 그 소생의 2남2녀는 C의 사망 후 정리된 호적을 바탕으로 일가를 이루어 원만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일 이 사건 혼인이 취소된다면 피고는 C와의 혼인관계가 해소됨과 동시에 C의 호적에서 이탈하여야 하고 위 2남2녀는 혼인외 출생자로 되고 마는 등 신분상 및 사회생활상 큰 불편과 불이익을 입어야 하는 점, 이에 비하여 원고는 이 사건 혼인이 존속하든지 취소되든지 간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생활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지 아니하며 신분상으로도 별다른 불이익을 입을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는 점, E는 생존하는 동안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한 일이 없으며 현재 생존하고 있는 E 소생의 딸도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을 인정하고 있는 점, 그리고 C와 E가 이미 사망한 지금에 와서 구태여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을 취소하여야 할 공익상의 필요도 없는 점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한다면, 원고의 이 사건 혼인취소청구는 권리 본래의 사회적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서 권리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4.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되어야 할 것인바, 소를 각하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도록 하는 것은 원고에게 불이익한 결과가 되므로 결국 원고의 상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된다.
5.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