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
2013다210671 손해배상(기)
A
B
제주지방법원 2013. 7. 17. 선고 2013나4050 판결
2015. 3. 20.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제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한다.
1.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민법 제760조 제3항에 따라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하기 위하여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 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현금카드 등의 전자식 카드나 비밀번호 등과 같은 전자금융거래에서 접근매체를 양도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는 접근매체를 양도받은 사람이 예금주 명의로 전자금융거래를 함으로 인하여 투명하지 못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의 안정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전자금융거래를 이용하는 목적이나 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의 내용이 다양하므로, 접근매체의 양도 자체로 인하여 피해자가 잘못된 신뢰를 형성하여 해당 금융거래에 관한 원인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접근매체를 통하여 전자금융거래가 이루어진 경우에 그 전자금융거래에 의한 법률효과를 접근매체의 명의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을 넘어 그 전자금융거래를 매개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접근매체를 양도한 명의 자에게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접근매체 양도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에 기초하여 접근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불법행위에 접근매체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있어 접근매체의 양도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견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접근매체를 양도하게 된 목적 및 경위, 그 양도 목적의 실현 가능성, 양도의 대가나 이익의 존부, 양수인의 신원, 접근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의 내용 및 그 불법행위에 대한 접근매체의 기여도, 접근매체 이용 상황에 대한 양도인의 확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전자금융거래의 접근매체인 통장이나 현금카드 등을 양도, 양수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이른바 '보이스피싱'에 의한 금융사기 범죄가 전국적으로 횡행하고 있어 통장 등을 제3자에게 양도 또는 교부할 경우 이러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할 것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는 성명불상자가 피고의 계좌를 이용하여 원고 등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전자금융사기 범행을 저지를 위험이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할 것이고, 그럼에도 성명불상자에게 통장과 체크카드를 건네줌으로써 이 사건 전자금융사기를 용이하게 하여 방조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는 민법 제760조 제3항에 따라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피고는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성명불상 자에게 속아 피고 명의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전달한 것이고, 이 사건 전자금융사기 범행은 그 직후에 발생하였는데, 피고가 위와 같은 통장 등 교부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취득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으며, 피고는 수사기관에서 위와 같이 통장 등을 넘겨준 행위에 대하여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대법원의 판례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성명불상자에게 피고 명의의 통장 등을 교부할 당시 그 통장 등이 범죄행위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나아가 피고의 통장 등 교부로 인하여 원고가 잘못된 신뢰를 형성하여 돈을 이체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 피고 명의 계좌는 원고가 성명불상자에게 기망당한 후 재산을 처분하는 데 이용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피고의 통장 등 교부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전자금융사기의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2호에서 정하는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대법관고영한
주심대법관이인복
대법관김용덕
대법관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