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미간행]
[1] 역사드라마가 그 소재로 된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2] 단순히 주관적으로 명예감정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민법 제764조 에 정한 명예훼손이 되는지 여부(소극) 및 역사드라마에서 그 소재로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묘사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1]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도8411 판결 (공2010상, 1059) [2]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다756 판결 (공1992, 3252)
원고 1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주원 담당변호사 이건개외 2인)
한국방송공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구창훈)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상고이유를 본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가. 방송드라마는 대본 작가 및 연출자 등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상상력에 기초하여 가상적인 인물들이 전개해 나가는 이야기를 영상화한 창작물로서 기본적으로는 등장인물과 내용이 허구임을 전제로 하지만, 작품의 현실감을 더하고 시청자의 흥미와 감동을 유발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는 경우(이하 ‘역사드라마’라고 한다)가 있다.
이러한 역사드라마도 의사표현의 매개체이자 예술 장르의 일종이므로 그 제작 및 방영에 대해서는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예술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을 받는다. 다만 예술·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따라서 역사드라마가 근거 없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소재로 된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때에는 그 유족이 자신의 명예 또는 망인에 대한 경애, 추모 감정 등의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한편 역사드라마의 경우 역사적 사실은 당대에 있어서도 그 객관적 평가가 쉽지 아니한데다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실체적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관계로 이를 소재로 드라마를 창작, 연출함에 있어 명백하여 다툼이 없거나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되는 단편적 사실만을 묶어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전개해 가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을 것이어서, 그 필연적 현상으로 연출자 등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작가적 해석 및 평가와 예술적 창의력을 발휘하여 허구적 묘사를 통해 객관적 사실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마련이고, 합리적인 시청자라면 역사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의 서술을 주로 하는 기록물이 아닌 허구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드라마인 경우에는 이를 당연한 전제로 시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상, 위 허구적 묘사가 역사적 개연성을 잃지 않고 있는 한 그 부분만 따로 떼어 역사적 진실성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허위라거나 역사적 인물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역사드라마가 그 소재로 된 역사적 인물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해 달성되는 가치의 이익형량은 물론 위에서 본 역사드라마의 창작물로서의 특성에 따르는 여러 사정과 드라마의 주된 제작목적, 드라마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인지 아니면 배경인지 여부, 실존인물에 의한 역사적 사실과 가상인물에 의한 허구적 이야기가 드라마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드라마상에서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이 결합된 구조와 방식, 묘사된 사실이 이야기 전개상 상당한 정도 허구로 승화되어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 오해되지 않을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도8411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및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용 증거를 종합하여, ① 피고가 제작, 방송한 ‘서울 1945’라는 드라마(이하 ‘이 사건 드라마’라고 한다)에서 이승만, 장택상이 친일경찰출신인 극중 가상인물 박창주를 통하여 여운형을 암살하도록 배후에서 지시한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원고들의 주장 부분, 즉 ㉠ 이승만이 여운형을 비롯한 좌익세력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박창주가 극우단체의 인물을 사주하여 여운형을 암살한 다음, 암살의 배후를 추궁하는 여운형의 측근 최운혁에게 “빨갱이 놈들에게서, 소련 놈들에게서 남조선을 지켜내는 분들이다. 나를 경찰청 보안과장 자리까지 끌어올리신 분들이고, 내게 조직을 만들 자금과 거사 자금을 내주신 분들이다. 네놈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분들이다.”라고 대답하고(제42회분), ㉡ 최운혁이 인민일보에 “미군정과 이승만의 분단 정책이 결국 남북통합을 주장하며 좌우합작을 성사하고자 하셨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하며(제41회분), ㉢ 경찰의 방조 아래 여운형이 암살되었다는 취지의 내레이션 장면(제41회분) 등이 나오는 사실, ② 이승만이 친일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하고 미군정의 후원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원고 이인수의 주장 부분, 즉 ㉠ 이동우가 조선공산당을 비난하자 최운혁이 조선공산당의 처지를 옹호하면서 “한민당이나 이승만 박사 쪽은 친일파들이 갖다 바치는 돈이 넘쳐나겠지. 친일파 돈으로 조직을 키우고, 신문을 찍고, 우익단체를 후원하고! 조선공산당은 어떠냐? 당을 운영할 자금도 없고, 신문 찍을 종이조차 허덕인다.”라고 말하고(제35회분), ㉡ 일제시대 때 친일자본가인 것처럼 묘사된 가상인물 이인평의 비서가 이인평에게 “군정청 관재처에 전주 고무신 공장 불하 이자와 이차 불하 대금을 냈습니다. 돈암장에도 일금 오만 원을 최강욱 비서관님에게 전했구요.”라고 말하며(제39회분), ㉢ 해방 후 이승만의 귀국에 대해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원들이 대화를 나누던 중 이현상이 “이승만이 누군가! 과거의 유물 이씨 조선의 친족이네. 시대의 유물을 데려와 대체 어쩌자는 건가, 미군정은?”이라고 말하는 장면(제29회분) 등이 나오는 사실, ③ 이승만이 가상인물인 친일파 문정관의 딸 문석경을 수양딸로 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① 이 사건 드라마는 일제시대 및 해방전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같은 마을에서 성장하였지만 출신계층과 이념적 성향을 달리하는 허구의 가상인물들, 즉 김해경, 최운혁, 이동우, 문석경, 박창주 등을 중심인물로 설정하여 그들 간의 사랑과 우정, 이념적 대립과 가족애 등을 그린 드라마이고, 이 사건 드라마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로는 이승만, 장택상, 여운형,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이 있는데, 총 71회분(1회당 50분)에 이르는 전체 방영분 중 이승만, 장택상은 제29회분에 이르러서야 처음 등장하고, 그 등장하는 장면의 횟수도 위 중심인물들에 비하여 현저히 적으며, 이들은 위 중심인물들 간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배경인물로 등장하는 점, ② 이승만, 장택상이 박창주를 통하여 여운형을 암살하도록 배후에서 지시한 것처럼 묘사하였다는 원고들의 주장 부분에 대하여는, ㉠ 장택상이 여운형 암살사건 이전에 수차례에 걸쳐 박창주에게 여운형의 처리에 관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하고, 여운형 암살사건 이후 그 수습과정에서도 이승만과 장택상은 그의 암살과 전혀 무관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한 장면 등이 나오고, ㉡ 위 내레이션은 암살범을 뒤쫓던 경호원 박성복이 오히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최태화에 의해 공범으로 오인, 체포되어 암살범을 체포하지 못하게 되었던 당시의 정황 등에 비추어 경찰이 여운형의 암살을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온 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 위 기고문 부분 또한 당시 여운형을 지지하던 좌익진영이 여운형 암살에 관한 입장과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인 사정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드라마에서 이승만, 장택상이 박창주를 통하여 여운형을 암살하도록 지시한 것처럼 허위사실이 명확하게 적시되었다고 볼 수 없고, 허구를 기본으로 하는 이 사건 드라마의 성격상 예술적 표현으로서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다고 할 것인 점, ③ 이승만이 친일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하고 미군정의 후원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원고 이인수의 주장 부분에 대하여는, 이승만이 민규식, 박기효 등 친일경력이 있는 인사들이 포함된 대한경제보국회로부터 일부 정치자금을 제공받았고 그 과정 등에서 미군정으로부터 다소의 후원을 받았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근거자료와 정황들이 존재하는 이상 앞서 본 장면들에서 극중 이승만과 대립되는 입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위와 같이 다소 과장되고 추측적인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 근거자료와 정황에 기초하여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의 표현일 뿐 왜곡이나 억측 또는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④ 이승만이 가상인물인 친일파 문정관의 딸 문석경을 수양딸로 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이승만과 문석경 사이의 이야기는 허구적인 이야기로서 위와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가 실제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위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는 없고, 가사 그것이 허위사실의 적시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드라마에서 이승만의 친일파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동시에 밝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문석경의 처지를 가엽게 여겨 그를 수양딸로 삼게 되는 극적인 설정으로 인하여 이승만의 인격권이나 그 유족의 추모의 정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이유로, 그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배척하였다.
앞서 본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채증법칙 위반 또는 이유불비,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대하여
민법 제764조 에서 말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를 말하고 단순히 주관적으로 명예감정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 것인바 (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다756 판결 참조), 역사드라마에서 그 소재로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묘사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려면 이미 망인이 된 인물의 사회적·역사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은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었는지 여부는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통상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합리적인 시청자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은 정당하고,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명예훼손의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들이 부담하게 하기로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