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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1. 12. 27. 선고 90도2800 판결

[직권남용,직무유기][공1992.3.1.(915),806]

판시사항

가. 직권남용죄에 있어서 “직권남용”과 “의무”의 의의

나. A본부장이 B연구소 C과장에게 고문치사자의 사인에 관하여 기자간담회에 참고할 메모를 작성하도록 요구해서 그의 의사에 반하는 메모를 작성토록 하여 교부받은 행위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다. A본부장이 가혹행위치사사건에 대한 수사지휘직무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도 원심이 신빙성 있는 증거를 배척하여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 하여 이를 파기한 사례

판결요지

가.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따라서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되며, 또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나. A본부장이 B연구소 C과장에게 고문치사자의 사인에 관하여 기자간담회에 참고할 메모를 작성하도록 요구한 경우에 있어서 위 과장의 메모작성행위가 B연구소의 행정업무에 관한 행정상 보고의무라고 할 수 없고 A본부장이 위 과장에게 메모를 작성토록 한 행위가 그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도 볼 수 없으며 또 위 과장이 그 요청에 따라 작성해 준 메모는 정식 부검소견서가 아니어서 동인이 위 메모를 작성하여 줄 법률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메모를 작성하여 준 것도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스스로의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이어서 법률상 의무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으므로, A본부장이 동인에게 메모의 작성을 요구하고 이를 동인이 내심의 의사에 반하여 두번이나 고쳐 작성하도록 하였다 하여도 이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직권남용죄는 성립되지 아니한다.

다. A본부장이 가혹행위치사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를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함으로써 그의 수사지휘직무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도 원심이 신빙성 있는 증거들을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하여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하여 이를 파기한 사례.

피 고 인

D

상 고 인

검사

변 호 인, 변호사

E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에 대하여

1. 직권남용죄 부분을 본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이 공소외 F를 부검한 B연구소 의사 G에게 직접 기자간담회용 메모의 작성을 지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부검소견에 어긋나는 내용을 메모에 기재토록 요구하여 이를 교부 받았다는 점에 부합하는 검사 작성의 G, H에 대한 각 진술조서, 그들이 작성한 각 진술서 및 G의 일기장은 동인들이 원심법정에서 한 번복진술에 비추어 믿을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으며, 나아가 피고인이 제4차장 I를 통하여 위 G로 하여금 이 사건 메모를 작성토록 하여 이를 교부 받았다 하더라도 이 사건메모의 성격이 그 작성자 명의로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1987.1.16. 08:30경으로 예정된 기자간담회에서 피고인이 참고하기 위한 자료에 불과하여 위 메모작성행위가 위 G의 직무상 의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위 G가 위 메모를 작성한 것도 동인이 4차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호의적으로 작성한 것에 불과하며, 위 G는 사후에 정식감정서를 작성하면서 처음의 부검소견대로 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위 G가 작성한 대로 정서된 이 사건 메모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별도로 만든 자료를 이용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제4차장을 통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피고인이 직권을 남용하여 위 G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피고인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살피건대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따라서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되며, 또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바, 기록에 의하면 위 G의 메모작성행위가 B연구소의 행정업무에 관한 행정상 보고의무라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이 위 G에게 메모를 작성토록 한 행위가 피고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도 볼 수 없다. 또 위 G가 피고인의 요청에 따라 작성해 준 메모는 정식 부검소견서가 아니고 피고인이 기자간담회를 할 때 참고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동인이 피고인에게 위 메모를 작성하여 줄 법률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메모를 작성하여 준 것도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스스로의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이어서 법률상 의무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으므로, 피고인이 위 G에게 메모의 작성을 요구하고 이를 위 G의 내심 의사에 반하여 두 번이나 고쳐 작성하도록 하였다 하여도 이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은 옳고, 여기에 소론과 같이 직권남용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은 없다. 논지는 이유 없다.

2. 직무유기죄 부분을 본다.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인이 A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소외 F에 대한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하여 1987.1.14. 사고발생일로부터 같은 달 21. 퇴임할 때까지 취한 일련의 조치, 지시와 기타 행위 및 당시의 치안상황 등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으로서는 사고발생보고를 받고 즉시 그 발생경 위에 관한 조사 및 사후수습대책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검팀을 조직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아 일반병원에서 일반병원의사 및 유족들을 참여시켜 부검토록 지시하였고 그 후 고문치사관련자들에 대한 감찰조사 및 형사입건을 지시하는 등 A본부장의 직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인정될 뿐 직무를 유기하였다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달리 피고인이 그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을 가지고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또 피고인이 기자간담회에서 F에 대한 부검소견을 설명하면서 가혹행위를 당하여 사망하였다고 인정될 수 있는 소견부분을 발표하지 아니한 이유도, 원래 내무부의 경찰업무를 통괄하는 A본부장은 사법경찰관이 아니라 다만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와 경비, 위해 방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관한 지휘책임이 있고, 변사자의 검시, 검증은 검사의 직무권한이며, 피고인이 그 직무상 지득한 부검소견을 대외적으로 발표할 직무권한 또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하여 검사의 수사지휘 또는 공식감정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부검의의 잠정적인 부검소견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보안유지한 것을 가리켜 직무유기행위 또는 그 의사를 추단 할 자료가 된다고 볼 수는 없고, 달리 피고인이 그 직무를 유기 할 의사로 기자들에게 위 부검소견을 발표하지 아니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 하였다.

나. 우선 원심 및 제1심이 적법하게 증거조사절차를 거친 증거들 중 G, H, J의 각 진술내용을 검토하기로 한다.

(1) 먼저 위 F의 사체부검을 한 당시 B연구소 C과장 G의 진술을 보건대, 동인은, “1987.1.15. 부검하러 가기 전에 A본부장실에 들르라는 지시를 받고 A본부장실에 갔다가 제5차장실로 안내되어 갔는데, 그곳에서 같은 날 18:20경 제5차장인 J로부터 ‘전혀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쇼크로 사망한 것 같다. 욕조에 3-4회 담구었으니 익사일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의 설명을 들었고”(수사기록 6,16면, 공판기록 391, 394, 401면),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부검을 마친 후 그때까지 기다리던 J와 함께 같은 날 23:30경 A본부장실에 도착하여 A본부장인 피고인과 A본부 차장들 및 B연구소장 H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부검을 하며 작성한 챠트를 가지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면서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인 것 같다고 보고하였으며”(수사기록 17-18면, 공판기록 391면), “위와 같은 부검결과를 보고 받은 피고인과 차장들은 ‘당장 내일 08:30에 하기로 되어 있는 A본부장 기자회견 때 사인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 외상이 있다고 발표하여서도 안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을 들었고”(수사기록 7-8, 18면), “같은 달 16.15:20경 A본부장 소집무실에서 피고인이 위 J, 제4차장 I, 위 H 소장이 있는 자리에서 본인에게 ‘19일까지 감정서를 심장쇼크사로 하여 보고하라’고 요청하였으나 H소장이 감정서 작성에는 병리조직학적 검사 및 독물검사 때문에 10일 이상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으로 그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16:30경 피고인이 H에게 ‘수고하였으니 목욕이나 하고 오라’고 하면서 돈봉투를 건네주어 이를 받아 가지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그 때 피고인이 본인에게 ‘당신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말하였다”[수사기록10-11, 25-26, 120면 (업무일지)]고 진술하였고,

(2) 다음으로 B연구소장 H는 검찰에서, “1987.1.15.16:00경 A본부장으로부터 부검팀 준비를 하여 A본부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하여 부검팀을 조직해서 A본부로 오라고 지시한 후 A본부장실로 갔더니 5차장실로 가라고 하여 5차장실로 가서 J 차장을 만났는데, 그때 박차장이 ‘조사받던 운동권 학생이 사망하였는데, 확실한 것은 모르나 물고문으로 사망했는지 구타를 당하여 쇼크사로 사망했는지 그 여부를 밝히기 위하여 부검을 하여야 되겠다’고 말하였으며” (수사기록 47-48면), “같은 날 밤늦게 A본부장실에서 F군의 부검을 마친 G가 외표소견과 내경소견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사인에 대하여는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인 것 같다’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외상이 있다고 발표해서는 곤란하고 현 단계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할 필요가 없다’고 말들이 오간 것으로 기억되고”(수사기록 37면), “같은 달 16.15:20경 A본부장 소집무실에 A본부장인 피고인이 제5차장 J, 제4차장 I, G 박사와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황박사와 본인에게 ‘19일까지 감정서를 심장쇼크사로 보고하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수사기록 132-133면) 고 진술하였으며,

(3) 또한 당시 A본부 제5차장이던 J도 “F군 가혹행위치사범도피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1987.1.14.12:30경 K 경무관으로부터 F군이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대공수사단으로 달려가서 사후 수습대책을 논의할 때 이미 F군이 물고문을 당하여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보고 받아 알았을 뿐 아니라, 그날 18:00경 이 사실 즉, F군이 물고문을 당하여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당시 A본부장이던 D에게 보고하였다’고 진술한 것은 사실이다"”(수사기록 170면), “G가 F군사체를 부검하러 가기 전인 같은 달 15.16:20경 G에게 ‘F군 사체에 전혀 외상이 없고 욕조에 3-4회 담구었으니 익사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한 사실이 있으며”(공판기록 378면), “같은달.16.15:20경 A본부장 소집무실에서 피고인이 5차장, 4차장, 2차장 등이 있는 가운데 H소장과 G에게 ‘F군 부검감정이 쇼크사로 되었으면’ 하는 언질을 한 것은 사실인데, 당시 A본부장이 F군 부검결과 소견을 보고 받은 후 지체없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하여는 할말이 없습니다만 그 이유에 대하여는 본인은 알 수 없습니다”(수사기록 177, 180면)고 진술한 바 있다(J의 상세한 진술은 수사기록 215-216, 218-219, 222, 236-238면에 있으나, 이는 원심 변론종결시까지 증거로 제출되지 아니하였다).

(4) 나아가 위 각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살피건대, (가) 우선 위 G의 진술은 그가 F의 사체부검을 마친 후 감정서 작성일인 1987.1.19.부터 2일간에 걸쳐 업무일지에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것을 근거로 한 것이고(수사기록 53면, 공판기록 400면), (나) 위 H 역시 그와 피고인의 관계에 비추어 그가 사실과 달리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으며, (다) 위 J는 그가 F군 가혹행위치사범 도피혐의로 조사를 받을 당시에는 심신이 피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로 변명하고 있으나(수사기록 170면), 동인은 당시 경찰관으로 40여년 간 근무하여 왔고 A본부 제5차장까지 지낸 자로서 심신이 피로한 상태라 하여 직속상관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G, H, J의 위 각 진술은 그 신빙성을 쉽사리 배척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다. 또한 위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1987.1.14. A본부장실에서 K 경무관으로부터 대공수사단에서 조사받던 F가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았고, 다음날 15:00경 기자들에게 그의 사망경 위에 대하여 “조사경찰관이 F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책상을 ‘꽝’치니 F군이 ‘억’하며 쓰러져 심장쇼크사로 사망하였다”고 발표했으며, 같은 날 23:30경 부검을 마치고 온 G로부터 F의 사인이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즉시 이를 수사하도록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다음날 08:30 기자간담회에서 F의 부검소견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전날 밤 G로부터 부검소견을 들으면서 적어 놓은 메모에 의하여 “외경소견으로 왼쪽 다리에 0.6cm의 상처, 검지, 인지, 사타구니에 상처가 있고, 내경으로는 가슴에 탁구공 만한 크기의 상처가 있다”는 취지로만 말하여 위 F가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인정될 수 있는 소견부분을 모조리 빼고 발표한 사실, 한편 F의 사체부검 및 부검장소에 망인의 친척이 참여한 것만큼은 피고인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지긴 했으나, 그 부검이 경찰병원 아닌 일반병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당시 사체가 안치된 경찰병원에는 부검실이 없어서 J 제5차장과 H B연구소장이 부검장소를 논의하다가 J의 순간적인 제안에 따라 경찰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한양대학교 부속병원을 부검장소로 결정하게 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피고인은 같은 달 16.15:00경 검찰총장으로부터 위 F 사망사건을 경찰에서 자체 처리하기로 양해 받은 후 다음날 13:00경 감사담당관에게 감찰조사를 지시하였다가 동일 16:00경 수사업무담당 L 제3차장에게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여 수사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수사기록 59-63, 65-78면, 공판기록 358, 362면), 같은 달 17. 석간신문에 F군의 사체를 대공수사 2단 조사실에서 처음 검안한 중앙대부속 용산병원 의사 M의 당시 현장상황에 대한 인터뷰기사가 게재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다 (공판기록 529-532면).

라. 그러므로 위 각 진술 및 사실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맨 처음 1987.1.14.18:00경 남영동 대공수사단에 다녀온 제5차장 J로부터 위 F가 물고문으로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는데도, 다음날 15:00경 기자들에게 위 F가 조사 받던 도중 심장쇼크사로 사망하였다고 허위사실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이 사건 공소사실대로 같은 달 15. 23:30경 부검을 마치고 온 위 G로부터 F의 사인으로서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아 위 F가 수사관련자들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것이라는 심증을 굳혔다고 여겨지는바, 그런데도 피고인은 즉시 수사지시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다음날 08:30.기자간담회에서 F의 부검소견을 설명하면서 가혹행위를 당하여 사망하였다고 인정될 수 있는 소견부분을 모조리 빼고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날 15:00경 검찰총장으로부터 F 사망사건을 경찰에서 자체 처리하기로 양해 받고서도 15:20경 위 G에게 3일 안으로 그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한 감정서를 작성하여 보고하도록 요구하였고, 그런 까닭에 16:30경 위 H 소장 및 G에게 돈봉투를 건네 주면서 특히 G에게는 “당신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까지 말하였으며, 한편 피고인은 위와 같이 1.16.15:00경 F 사망사건을 경찰에서 자체 처리하기로 검찰의 양해를 받고도 이를 즉시 수사하도록 조치하지 아니하고 다음날 13:00경에 이르러서야 조사를 지시하였고, 그것도 겨우 그 관련자들을 단지 징계대상자로서 조사하기 위한 감찰조사를 지시하였다가, 동일자 석간신문에 중앙대부속 용산병원 의사 M의 당시 현장상황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자 16:00경에야 수사업무담당 L 제3차장에게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여 수사하도록 지시한 사정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바, 그렇다면, 피고인은 원심이 인정한 대로 A본부장의 직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였고, 또한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보안을 유지하고자 기자간담회에서 F가 가혹행위를 당하여 사망하였다고 인정될 수 있는 소견부분을 발표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어도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이 1987.1.15. 23:30경에는 F가 부하경찰들로부터 물고문을 받던 중에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음에도, 경찰공무원을 지휘 통솔하는 A본부장으로서 당연히 했어야 할 관련 경찰관들에 대한 수사지휘 등 적절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F의 사인을 끝까지 심장쇼크사로 조작하여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하였고, 신문보도 등으로 더 이상 은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뒤늦게 같은 달 17.16:00경에 이르러서야 그 수사를 지시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바. 그렇다면 피고인은 1987.1.15. 23:30경부터 같은 달 17.16:00경 까지 위 가혹행위치사사건에 대한 수사의 지휘를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함으로써 그의 수사지휘직무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도, 원심은 위와 같이 신빙성 있는 증거들을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범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3. 따라서 이 사건 상고 중 직권남용죄에 관한 부분은 이유 없고 직무유기죄에 관한 부분은 이유 있다 할 것이나, 이 두 죄는 형법 제40조 소정의 한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상상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으므로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상원(재판장) 박우동 윤영철 박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