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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1970. 5. 22. 선고 69나2132 제7민사부판결 : 상고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사건][고집1970민(1),293]

판시사항

자주점유의 측정이 번복되는 사례

판결요지

문제된 토지에 관하여 무효인 농지분배절차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함으로써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는 자가 설사 종전부터 위 토지를 점유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위 농지분배절차에 있어 문제의 토지가 소작농지라는 이유로 농지분배신청을 하여 분배받아 상환곡을 납부한 것인 이상 이를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

참조조문
원고, 피항소인

원고

피고, 항소인

피고 1 외 2명

주문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원고에게 피고 2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부암동 109의 1 임야 97평에 관하여 서울민사지방법원 서대문등기소 1965.3.6. 접수 제6344호로써, 같은해 1.25. 경락허가결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및 같은곳 109의 2 임야 7101평에 대한 1/2 공유지분에 관하여 같은등기소 1967.7.15. 접수 제25949호로써 같은해 6.2. 매매를 원인으로 경료한 지분이전등기의 각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고, 피고 1, 3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부암동 109의 2 임야 7101평에 관하여 같은등기소 1965.11.15. 접수 제36983호로써 1960.2.23. 매매를 원인으로 경료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판결

항소취지

원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

이유

(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부암동 109의 1 임야 97평과 같은곳 109의 2 임야 7101평은, 원래 같은곳 109 전 7198평으로 된 한필지의 토지였었는데 1960.9.2.에 지목이 임야로 변경되면서 같은날자로 이와 같이 두필지로 분필된 토지로서, 모두 소외 1 소유로 등기되어 있었던 토지이고, 이에 대하여 원심피고 소외 2 앞으로 1958.9.3.에 같은해 8.9. 상환완료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가, 그중 109의 1 임야 97평에 대하여는 서울 민사지방법원 서대문등기소 1965.3.6. 접수 제6344호로써 같은해 1.25.자 같은법원의 경락허가결정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피고 2 앞으로 경료되었고, 나머지 109의 2 임야 7101평에 대하여는 같은등기소 1965.11.15. 접수 제36983호로써 1960.2.23.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피고 1, 3앞으로 경료된 뒤 위 토지에 대한 1/2 공유지분( 피고 3 지분)에 관하여는 다시 같은등기소 1967.7.15. 접수 제25949호로써 같은해 6.20. 매매를 원인으로 한 공유지분이전등기가 피고 2 앞으로 경료되어 있는 사실은 모두 당사자간에 다툼이 없다.

(2) 그런데 본건 토지에 대하여 위와 같이 농지개혁법에 의한 분배 및 상환완료를 원인으로, 원심피고이던 소외 2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지만,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 제6,12호증의 각 기재내용 일부에 원심증인 소외 3의 증언, 소외 4의 증언 일부와 원심 및 당심에서의 각 현장검증결과를 종합하여 보면, 본건 토지는 현재 평균 35도 가량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 임야로서, 대부분이 자연생 소나무와 잡목, 바위, 잡초등으로 덮혀있는 야산이고 다만 일부분 지상에 20년생 이상이 되는 감나무를 위주로 하여 복숭아, 살구나무등의 과수목이 식재되어 있으며, 과수목 사이사이로 개간시기를 알 수 없는 7,8개소의 채전등이 산재되어 있기는 하나, 전체면적에 비해서 극히 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농지개혁법실시 당시의 토지현황도 현재의 상태와 비슷하였던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는 바, 위 인정사실에 어긋나는 을 제6호증의 기재내용 일부와 원심증인 소외 4의 증언일부, 당심증인 소외 5, 6의 증언내용은 믿을 수 없고 달리 반증없다.

그렇다면, 위에 인정한 토지 전체의 객관적인 형태로 보아서, 본건 토지가 농지개혁법실시 당시에, 일반농지의 분배절차에 의해서 경작 농가에게 분배 소유케 할 성질의 농지였다고는 볼 수 없었던 토지라 할 것이므로, 이를 일반농지의 분배절차에 의해서, 원심피고이던 소외 2 앞으로 농지로 분배한 처분 및 그것을 원인으로 하여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는 당연무효라 할 것이고, 이에 터전잡아 피고 1, 3, 2 앞으로 순차 경료된 앞서 적은 각 소유권이전등기 역시 원인무효의 등기라 할 것이며,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4호증의 기재내용에 당사자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1957.7.30.에 사망한 어머니 소외 1의 둘째 아들로서, 소외 1의 유산상속인중의 한사람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들은 원고에게 본건 토지에 관한 위 각 원인무효 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여 줄 의무있다 할 것이다.

(3) 피고들 소송대리인은, (가) 본건 토지는 원래 원심피고이던 소외 2의 조부 소외 7의 소유토지 였었는데, 원고의 부 소외 8과 사이에 금전대차관계가 있던 중, 원인없이 소외 8의 큰 아들인 소외 9 앞으로 원인없이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었으므로, 망 소외 7은 소외 9를 피고로 1932년에 소유권확인 및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기청구소송(경성지방법원 1932년 민제2487호)을 제기하여 승소확정받은 일이 있는 바, 소외 7이 그 무렵인 1932년 3월경부터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히 본건 토지를 점유 경작하였고, 그 뒤에는 원고의 부 소외 10이 계승하여 점유하던 것을 다시 원심피고 소외 2가 계승하여 점유 경작해 오던중, 1942.3.경에 20년의 기간경과로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던 것이므로, 그 앞으로 1958.9.3.에 상환완료를 원인으로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원이 믿지않기로 한 을 제6호증의 기재내용 일부 이외에는 피고들이 주장하는 때부터 망 소외 7이 본건 토지를 점유경작하였었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1호증, 같은 을 제1,2호증의 각 기재내용에 당사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본건 토지가 원고의 어머니인 망 소외 1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되었던 것은 1933.9.29.인데, 소외 2는 피고들이 취득시효완성을 주장하는 시기 이전, 즉 농지개혁법이 공포 실시된 때에 본건 토지가 소작농지라는 이유로 농지분배 신청수속을 하여 농지로 분배를 받고, 1955.6.16.부터, 1958.8.9.까지 사이에 상환곡을 납부하였던 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므로, 적어도 소외 2가 본건 토지를 점유하고 있던 것은 소유의 의사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고(피고들은 본건 토지가 타인명의로 등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등기를 하기 위하여 소외 2가 형식상 농지분배 수속을 밟은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증거없다) 또 망 소외 7이 소외 9를 상대로 그 주장과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 판결을 받은 일이 있었음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소외 2가 본건 토지를 농지로 분배받아, 1958.9.3.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점유를 계속하여 왔고, 피고들은 각기 매매 또는 경락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뒤, 그 점유를 계승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니, 1969.9.2.에 10년의 취득시효가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원고의 이사건 솟장은 1969.9.2.에 접수되었음이 기록상 분명하므로 위 주장도 그 이상의 판단을 할 필요없이 이유없는 것이다.

(다) 그 밖에 피고 1과 피고 3은 원심피고 소외 2에 대한 확정판결로써 본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것이므로, 소외 2의 권리(말소등기청구권)를 대위 행사하고 있는 원고의 이사건 청구는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원고의 이사건 말소등기청구는 자기의 소유권에 기한 청구(상속등기한 바 없으므로 소유권주장을 못한다는 주장은 민법 제186조 187조 를 오해하고 있는 주장이다)이고, 소외 2의 권리를 대위하는 말소등기청구가 아니므로 위 주장도 이유없다.

(4) 그렇다면 원고의 이사건 청구는 정당하다 하여 인용할 것인 바, 원판결은 같은 결론이므로 민사소송법 제384조 에 의하여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항소비용은 패소자 부담으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노병준(재판장) 오성환 송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