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해설 (결정해설집3집)]
- 국군의 해외 파견과 사법심사의 대상 -
(헌재 2004. 4. 29. 2003헌마814, 판례집 16-1, 601)
노 희 범*40)
1. 외국에의 국군의 파견결정과 같이 성격상 외교 및 국방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한 국민의 대의기관의 결정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2. ‘대통령이 2003. 10. 18. 국군(일반사병)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한 결정’(이하 ‘이 사건 파견결정’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하여야 하는지 여부
3.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이 사건 파견결정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대통령이 2003. 10. 18. 국군(일반사병)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한 결정’의 위헌여부이다.
청구인은 일반 국민의 한 사람인바, 대한민국 정부가 2003. 10. 18. 국군
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특히 의무복무를 하는 일반 사병은 급여를 받는 직업군인인 장교 및 부사관과 달리 실질적으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데, 일반 사병을 이라크에 파견하는 것은 국가안전보장 및 국방의 의무에 관한 헌법규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2003. 11. 17.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여 위 파병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1) 이라크전쟁은 침략전쟁이라는 것이 세계 다수국가에서 인정하는 바인데, 침략전쟁에 국군을 파견하기로 한 이번 결정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 제1항에 위반된다.
(2) 국군파견이 결정되었다면 직업군인인 장교나 하사관보다도 의무복무를 하고 있는 국군 사병의 파견이 필수적인데, 헌법상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부담하고 있으므로 사병으로 군복무중인 자, 군입대 예정자 및 군대에 사병으로 복무중인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평온을 저해하여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2003. 10. 18.자 이라크에 대한 국군의 추가파견 결정이라고 할 것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 결정은 국가기관 내부의 의사결정행위에 대한 필요적 자문에 불과할 뿐 그 자체로는 국민의 권리ㆍ의무에 직접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소정의 공권력의 행사가 아닌 것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부적법하다. 가사 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파병결정이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위 결정으로 인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이 현재, 직접 침해된다고 할 수 없어 자기관련성 및 현재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가) 이 사건 심판대상인 대통령의 2003. 10. 18.자 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견결정은 국회의 동의가 있기까지는 국가기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불과하고 국민에 대한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어서 이에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나) 위 파병결정은 (ⅰ)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된 국가원수 또는 집행부 수반으로서의 지위에서 행사하는 권력적 행위이고, (ⅱ) 파병여부의 결정은 그것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 동맹국과의 관계 및 북한 핵 사태의 원만한 해결과 한ㆍ미 동맹관계 공고화 등 여러 가지 국내ㆍ외적인 정치상황을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며, (ⅲ) 위 결정이 국회의 동의 얻은 경우 민주적 정당성에 있어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헌법재판소가 그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ⅳ) 위 결정에 대한 위헌판단이 있는 경우 이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통치행위에 해당하는바,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는 자제되어야 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다) 청구인은 위 파병결정과 단지 간접적, 사실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청구인이 주장하고 있는 기본권 침해와 직접 법률적 관련이 없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자기관련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1. 외국에 국군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은 파견군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지위와 역할, 동맹국과의 관계, 국가안보문제 등 궁극적으로 국민 내지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로서 국내 및 국제정치관계 등 제반상황을 고려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등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결정은 그 문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관계분야의 전문가들과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 헌법도 그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고 국민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그 권한행사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기 위해 국회로 하여금 파병에 대한 동의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바, 현행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제 통치구조
하에서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그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
2. 이 사건 파견결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 즉 국가안보에 보탬이 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국익에 이로운 것이 될 것인지 여부 및 이른바 이라크전쟁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침략전쟁인지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고, 성질상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 우리 재판소의 판단이 대통령과 국회의 그것보다 더 옳다거나 정확하다고 단정짓기 어려움은 물론 재판결과에 대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이 사건 파병결정은 대통령이 파병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북한 핵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동맹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의 안보문제, 국·내외 정치관계 등 국익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파병부대의 성격과 규모, 파병기간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자문을 거쳐 결정한 것으로, 그 후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파견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하므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헌법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설혹 사법적 심사의 회피로 자의적 결정이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한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재판관 윤영철,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김경일, 재판관 송인준의 별개의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여기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라 함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자기의 기본권이 현재 그리고 직접적으로 침해
받은 자를 의미하며 단순히 간접적이거나 사실적인 이해관계가 있을 뿐인 제3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청구인은 이 사건 파견결정으로 인해 파견될 당사자가 아님은 청구인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고 현재 군복무중이거나 군입대 예정자도 아니다.그렇다면, 청구인은 이 사건 파견결정에 관하여 일반 국민의 지위에서 사실상 또는 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는 있으나, 이 사건 파견결정으로 인하여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 자신의 기본권을 현재 그리고 직접적으로 침해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사건 결정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사법부가 소위 통치행위 이론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사법심사를 하지 않은 첫 번째 사례로써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1)국가행위 중에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관한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통치행위이론의 요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문제에 관한 최종적 결정자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된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의 성격, 이에 대한 사법심사의 배제에 관한 이유를 살펴본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의 이유를 분석하기에 앞서 사법심사 적합성에 관한 특유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도 살펴본다. 바로 이 사건 심판대상의 확정과 피청구인의 특정에 관한 것이다. 그런 다음 결정이유에 대하여 본다.
심판청구서에는 ‘2003. 10. 18.일반사병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한 결정’의 위헌확인을 구하고 있을 뿐 파병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구인이 지적하고 있는 2003. 10. 18.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이라크에 대한 파병을 결정한 날이고 파병과 관련하여 달리 대한민국정부가 어떤 행위를 한 사실이 없었다. 위 사실만을 기초로 본다면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2003. 10. 18. 국군(일반사병)을 이라크에 추가로 파견하기로 한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청구인이 이 사건에서 진정으로 다투고자 한 것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파병 결정’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파병 결정’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먼저 정부가 2004. 4. 1.부터 2004. 12. 31.까지 이라크에 약 3,000명 가량의 (의료, 건설부대의 파견인 1차 파병과 달리 이 사건 파병은 치안유지군(전투부대) 성격이다) 국군의 추가 파견에 이르게 된 경과를 우선 살펴보고 이 사건 심판대상을 대통령의 파병결정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본다.
- 이라크 파병 경과 -
- 2003. 10. 16. 유엔안전보장이사회 - 미국이 제출한 대 이라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
- 2003. 10. 18. 국가안전보장회의 이라크에 대한 국군의 추가 파병 결정
- 2003. 11. 11. 안보관계장관회의 추가 파병에 의견접근
- 2003. 12. 23. 국무회의 심의ㆍ의결
- 2003. 12. 24. 파병동의안 국회 제출
- 2004. 2. 13. 파병동의안 국회 통과
- 2004. 1. 27. 국방부장관 파병할 현역군인 및 군무원 모집
- 2004. 5. 경 국군파견예정
이 사건 국군의 해외 파견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의 자문(의결) → 대통령의 파병결정 → 국무회의 심의ㆍ의결 → 국회에 동의안 제출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구체적 파병 명령〕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거쳤고 이는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2).
그런데 국가안전보장회의는 헌법상 대통령의 자문기관3)에 불과하고 어떤 공권력의 행사, 특히 문제된 국군의 해외 파견이라는 국가행위(공권력행사)의 주체가 아니다. 가사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그와 같은 결정(의결)을 하더라도 이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정4)으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국가기관 내부의 의사결정, 특히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대한 권고 내지 의견제시에 불과할 뿐 법적 구속력이 있거나 대외적 효력이 있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헌법상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은 대통령의 권한이며 공권력의 행사로써 의미가 있다. 청구인도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자문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을 다투고 있다기보다 법적 효력있는 대통령의 파병 결정의 위헌여부를 다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청구취지에 부합한다5).
요컨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자문기관이고 그 의결에 구속력이 없어 그 자체로는 법적 효력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외ㆍ군사정책의 수뇌부가 모인 가운데 그들의 자문을 거쳐 파병을 결정하고 공표하였다면 실제 파병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후 국무회의 심의ㆍ의결이라는 절차를 거쳐야하지만 국무회의 의결은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6)에서 그 결정은 실질적으로 대통령의 파병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을 ‘대통령이 2003. 10. 18. 국군(일반사병)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한 결정’으로 보았음은 위와 같은 청구인의 청구취지와 대통령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심판의 대상을 어떻게 보든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각하의 결정을 면할 수 없다. 즉 ‘국가안전보장회의 결정’으로 보면 국가기관 내부의 의사결정에 불과하여 국민에 대하여는 직접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어서 부적법하고, ‘대통령의 결정’으로 보더라도 청구인은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그러나 헌법소원심판은 특정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를 그 심판대상으로 하는 재판이므로 그 출발점은 심판대상의 특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청구된 심판사건의 결론의 상이 여부를 떠나 청구취지에 부합하는 심판대상을 특정하는 것은 헌법소원심판에서의 첫 번째 과제다)
이 사건의 심판청구서에는 피청구인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법령에 대한 헌법소
원을 제외하고는 피청구인이 특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본권을 침해하는 특정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를 취소하거나 위헌임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의 성질상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고 이를 취소하거나 위헌 확인하는 경우 공권력 주체가 모호한 경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실무상 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 피청구인의 표시가 없는 경우에도 결정문에서는 당해 헌법소원을 인용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청구취지를 살펴 피청구인을 특정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7). 같은 취지에서 청구인이 피청구인을 잘못 표시한 경우 바로 잡아 왔다.
이 사건의 경우도 피청구인을 특정하여야 한다.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은 우리 헌법이 국군통수권자이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다. 따라서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이라는 국가행위(공권력행사)의 주체는 바로 대통령이며 이 사건의 피청구인은 대통령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다만, 헌법은 대통령의 국군 파견은 국회의 동의를 요하고 있어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파병이 불가하다(헌법 제60조 제2항8)).
그러나 대통령의 파병에 국회 동의를 요한다고 해서 파병이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국가기관(공권력주체)의 합성적 행위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9). 헌법 제60조 제2항의 국회의 동의권은 대통령의 중대한 대외군사정
책에 대한 견제 장치이며 신중을 기하기 위한 권력분립 내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헌법적 요청으로써 헌법적 조건10)내지 부관적 성질을 갖는 것이지 국회가 대통령과 병렬적 지위에서 파병이라는 국가행위(공권력 행사)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국회의 동의만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이 적법하다고 볼 수 없고 국회의 파병동의가 있은 후에 대통령이 파병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11)에 비추어 보더라도 자명해 진다.
이 사건의 피청구인은 대통령이다. 피청구인 표시가 없지만 의당 이를 표시하여야 한다.(피청구인을 ‘대한민국’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대한민국은 일반ㆍ추상적 내지 대외적인 의미에서 파병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뿐 파병이라는 구체적인 공권력행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라고 보아야한다). 헌법재판소도 이 사건 피청구인을 대통령으로 특정하여 판단하고 있는데, 이는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이라는 국가행위의 주체를 위와 같이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3. 12. 18. 정부의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파병결정(서희ㆍ제마부대파견)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서 일반 국민은 국군의 해외 파견에 대하여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한 바 있다(헌재 2003. 12. 28. 2003헌마255ㆍ256(병합), 판례집 15-2하, 655, 660). 이 결정에서 4인 재판관12)은 각하의 결론에는 뜻을 같이 하면서도 그 이유를 달리 하였는데, 대통령의 국군 파견 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인 통치행위로서 사법적 심사가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종전 사건의 후속이며 그 결론은 같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결정에서 종전의 결정 이유를 뒤집었다. 종전 결정은 자기관련성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견해(다수의견)와 정치 문제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소수의견)가 재판관 5-4로 나뉘었으나, 이 사건 결정에서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바뀌어 파병은 정치 문제(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다수의견이 되었다.13)
먼저 종전 결정의 요지를 간단히 살펴보고 이 사건결정의 쟁점과 의미에 대하여 본다.
≪법정의견≫
청구인들은 이 사건 파견결정에 관하여 일반 국민의 지위에서 사실상의 또는 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는 있으나, 이 사건 파견결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 자신의 기본권을 현재 그리고 직접적으로 침해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청구인은 이 사건 파견결정에 대해 적법하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자기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없어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소수의견≫
이 사건 파견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高度의 政治的 決斷을 요하는 문제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한 이 사건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 재판소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이를 심판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설혹 사법적 심사의 회피로 자의적 결정이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한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통치행위란 고도로 정치적인 국가행위 내지 국가적 이해에 직접 관계되는 사항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행위로서 사법부의 합법성 심사에서 제외되는 행위를 뜻한다.14)현대 법치주의국가(法治主義國家)는 사법부가 국가행위의 합법성을 심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반드시 모든 국가행위가 사법적 통제의 대상이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되고 있다. 오히려 국가행위 중에는 그 성질상 법원에서 소송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이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통치행위로서 사법적 통제에서 제외될 것인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15). 통치행위는 법과 정치와의 교차점, 즉 법률문제와 정치문제가 혼재하는 영역으로 평가되고 있다.16)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도 바로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이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인가 였다. 통치행위 이론에 대하여는 이미 많은 교과서 및 논문이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통치행위로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파병(군사적 행위) 내지 외교 정책과 관련한 사항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의미를 살펴본다.
고도의 정치적 성격이 짙은 국가행위를 정치문제(political questions)로 보고 이를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시초라
고 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정치문제 법리(doctrine of political questions)라고 명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는 주로 外交政策 내지 國防政策(전쟁 또는 파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연방대법원이 정치문제(Political Questions)라 하여 각하한 사례도 위와 같은 사안이다.
(ⅰ) 전쟁 내지 군사적 행위
연방대법원은 Commercial Trust co. v. Miller 사건에서 전쟁의 시작과 끝은 정치 과정에 해결되어야 하고 국가의 정치 기관이 결정한다고 판시하였다18). 이 사건은 1921년 대통령 승인하에 의회가 1차 세계대전 종식을 선언했는데 이 선언이 對敵國交易禁止法(the Trading with the Enemy Act)을 적용받는지가 문제된 사건이다. 연방대법원은 終戰의 時期를 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의회가 갖는다고 밝혔다. Martin v. Mott 사건19)에서도 宣戰布告와 시민군 소집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 기관이 결정할 문제라고 하고 전쟁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정치 문제이며 그에 대한 위헌주장 및 의회의 宣戰布告가 없다는 절차적 위헌성의 주장에 대하여는 판단을 거부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의회가 공식적으로 宣戰布告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이 위헌이라는 소송이 연방법원에 많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연방법원은 전쟁의 宣布, 終戰에 관한 것은 모두 정치 문제라고 하여 판단을 거부하였고 연방대법원도 그런 사건들에 대하여 이송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20). 아울러 대통령의 엘살바도르에 대한 군사적 행위21)및 걸프 전쟁에 개입한 행위에 대한 위헌 소송도 모두 각하하였다22).
(ⅱ) 외교 정책(Foreign Policy)
미국 연방대법원은 外交 政策 또는 外交的 行爲가 정치 문제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왔다. 그러나 모든 外交的 事案이 법원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기도 하였다23). 어떤 외교정책이 政治問題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원칙이나 요건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이 밝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어떤 外交政策이 政治問題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24). 다만 연방대법원이 외교정책에 대하여 정치문제로 본 사례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연방대법원은 United States v. Belmont 사건에서 대통령은 소련과의 외교 관계를 승인할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이 결정은 과연 누가 외국을 대표하고 어떤 권한이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한 Oetjen v. Central Leather Co.25)사건에서도 헌법에 의하여 외국과의 관계를 승인하는 문제는 정치기관인 행정부나 의회가 결정하는
것이며 이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政治問題임을 분명히 했다26). 또한 Terlinden v. Ames 사건에서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일부가 되었을 때 條約의 有效性 여부는 政治問題라고 판시했다27).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外交政策 내지 國防政策은 정책결정기관의 판단에 의하고 이에 대하여 사법부가 이들의 판단에 대하여 다시 판단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즉,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제2재판부는 1983. 12. 16.의 소위 NATO의 독일 영토에 대한 미사일 배치에 대한 가처분신청사건28)에서 ‘기본법의 목적에 의한 한계 영역 내에서 그리고 국제법적인 허용 영역 내에서 外交政策 및 國防政策에 관한 헌법적 권한은 독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권한을 포함한다. 이를 위하여 어떠한 조치들이 유효한 것인지는 그들의 의무에 합당한 정책 결정과 책임에 맡겨진다. 이 경우에 더 이상 평가할 수 없는 위험 영역은 헌법상 관할 있는 정책결정기관에 의해 그 형량이 행해져야 하고 정치적으로 책임지워져야 한다. 이 영역에서는 법적으로 규정된 한계 이외에 관할 있는 연방정책기관의 평가와 형량을 대체하는 평가를 수행하는 것은 연방헌법재판소의 과제가 아니다. 이는 외국 국가를 상대로 하는 外交政策 및 國防政策의 영역에서 기본권과 관련하여 국가의 법적인 보호의무가 어떤 식으로 이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외교 내지 국방 정책에 관한 문제는 정책결정기관에 있고 연방헌법재판소가 법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
명히 했다. 그러나 이 가처분사건은 종국적으로 자기관련성 즉, 청구인들의 기본권 관련성이 없음을 이유로 신청을 각하하였다. 한편, 1994. 7. 12. 연방헌법재판소 제2재판부29)는 소위 군대파병결정 사건에서 사전에 연방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 연방정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판시하여30)사안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국방정책, 즉 평화유지군 참여결정에 대하여 정면으로 사법 심사를 함으로써 앞의 사례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통치행위 내지 정치문제 이론은 국가권력 중 사법권력의 본질적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집행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은 정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 이에 대하여 사법부의 결정은 주어진 규범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외교 정책이나 국방 정책과 같이 고도의 정치 과정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한 통상적이고 전제된 규범을 통한 통제는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다른 국가 기관이 이를 다시 평가ㆍ판단하는 것은 정치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31). 이런 점에서 정치 문제 법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분립하에서 사법부의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기능은 확보되어야 한다. 문제는 과연 어떤 사안이 정치 문제 내지 통치행위로써 사법적 통제를 벗어나는가 하는 점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어떤 사안이 사법 심사를 할 수 없는 분야인가 하는 점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정치 문제로 보아 사법심사에서 배제한 사안들에서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다. 국방 정책
또는 외교 정책이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미국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헌법질서에 대한 고려의 산물이라고 보여진다.
근래 미국 내지 독일의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들도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에서조차 과연 무엇이 政治問題로써 司法的 統制에서 排除되는 것인가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그 나라의 헌법질서와 역사적ㆍ사회적ㆍ정치적 배경이 중요한 결정 인자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법부의 관여 정도에 대한 그 나라 국민의 의식 등을 고려한 헌법재판소 내지 최고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구체화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 결정 이유는 위 결정요지에서 밝힌 것과 거의 같다. 이유에 나타난 대로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은 정치적 기관이 결정할 사안이고 따라서 사법심사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소수의견이 공존한다.
이라크에 대한 제1차 파병(서희ㆍ제마부대)은 건설ㆍ의료부대이고 제2차 파병(자이툰부대)은 치안유지군성격의 전투부대라는 점에서 다르다32). 그러나 양자 모두 국익을 고려하여 국제적 연대에 동참하고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의 파병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또한 제1차 파병과 제2차 파병에 대한 헌법소원은 모두 청구인이 파병군인이거나 가족 등 파병대상과 관련있는 자가 아닌 일반 국민이라는 점에서 그 법적 지위가 같고, 파병결정으로 인하여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본권도 동일하다. 결국 이 사건 심판의 대상(제2차 파병)은 2003헌마255 사건의 심판대상(제1차 파병)과 실질적으로 같다. 그럼에도 종전 사건에서와 달리 청구인의 자기관련성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사법심사에서 배제된다는 이 사건 결정은 소위 政治問題 法理를 우리 헌법재판소가 사상 처음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문제에 대한 사법심사가 청구된 경우 선례로써 자못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치 문제 법리는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정당한 권한행사를 위축시키거나 사법판단의 고의적 회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따른다. 정치 문제 법리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요건이 확립되어야만 할 것이다. 국가의 어떤 행위가 정치 문제 또는 통치행위로써 사법심사에서 배제될 것인가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에 맡겨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