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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8. 17. 선고 2017노3965 판결

[사기][미간행]

피고인

피고인 1 외 1인

항소인

피고인들 및 검사

검사

김양수(기소), 송성광(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로플렉스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

피고인들에 대한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이 사건 공소사실

피고인 1은 가수 겸 화가로서 1973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지금까지 약 40회의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약 20년 전부터 자신을 화수(화수, 화가 겸 가수)라고 자칭한 사람이고, 피고인 2는 피고인 1의 소속사인 ㈜○○○의 대표이사로서 2015. 2.경부터 피고인 1의 매니저로 일하는 사람이며, 공소외 1은 1988년경부터 2008년경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로서 한국에 귀국한 2009년경부터 2016. 3.경까지 피고인 1의 부탁을 받고 피고인 1의 그림을 그려준 사람이다.

피고인 1은 2008. 12. 10. 뉴시스와 연합뉴스 등의 인터뷰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최첨단 미술을 하면서 미술을 최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으나 문제는 자기는 아이디어만 내고 조수들에게 제작을 맡긴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피고인 1의 30점에는 조수가 한 명도 없어’, ‘최소한 피고인 1은 조수를 두지 않고 직접 그린다’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고, 2009. 5. 8. 피고인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인터뷰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방송가기 전까지 6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으며(북&피플), 2013. 4. 3. 그림을 그리면서 ‘아침에 한 시간 반 정도 그림을 그린다’라고 인터뷰한 사실이 있다(TV조선 뉴스쇼 “판”).

또한, 피고인 1은 2012. 4. 2. ‘아크릴 물감을 고수하는 이유는 다작할 수 있고, 빨리 그려서 싸구려로 박리다매로 많이 파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 ‘피고인 1이 그림 잘 그린다 이랬으면 좋겠는데’라고 인터뷰하고(JTBC 뉴스), 2014. 12. 17. ‘내가 짬 내서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터뷰는 집으로 오라고 한다’라고 인터뷰하였으며(F.OUND 인터뷰), 2014. 5. 4. ‘화투 그림은 쉬워 보여도 굉장히 고뇌하며 밤새워 그린 작품입니다’라고 인터뷰하고(경향신문 인터뷰), 2016. 3. 8. ‘배운 경험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화투가 많이 들어간 큰 그림은 몇 달 동안 그렸다’라고 인터뷰하였으며(JTBC 뉴스현장 직격인터뷰), 위와 같이 언론인터뷰와 방송출연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줌으로써 그림 구매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판매하는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믿게 하였다.

또한 예술작품은 작가의 머리에서 구상이 되고, 작가의 손에 의해서 표현이 되어서, 작가의 서명으로 아우라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고, 측히 회화의 경우 개인의 숙련도, 붓 터치, 색채감 등 작가의 개성이 화풍으로 드러나 뚜렷이 표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림구매자의 입장에서 누가 직접 그렸는가 하는 사실은 구매를 결정하는 판단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사실이고, 그림 거래에 있어서 작가나 작품의 내용 및 평가에 따른 매수인의 주관적인 의도가 우선 중시되어야 하므로, 신의칙에 비추어 누가 직접 그림을 그렸는지 여부를 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 1은 2009년 공소외 1을 만나기 전에는 주로 화투 등을 직접 잘라서 붙이는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화투를 세밀하게 회화로 표현하는 등의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였으나, 화랑 관계자들이나 작품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콜라주 작품보다는 회화를 선호하고, 작품의 예술성이 높아져 그림 가격이 올라가자, 2009년경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공소외 1에게 1점당 10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공소외 1이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하고, 그때부터 2016. 3.경까지 공소외 1로부터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하였음에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전시하여 호당 30∼50만 원에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피고인 1은 2015. 4.경 공소외 1과의 다툼으로 2016. 2. 초순경까지 작품제작을 의뢰할 수 없게 되자, 피고인 2를 통하여 소개받은 △△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의 공소외 2에게 “내가 지정하는 그림을 그대로 그려오면 시간당 1만 원을 주겠다”라고 말하고 공소외 1과 같은 방법으로 작업을 지시한 다음, 그때부터 2016. 2.경까지 총 29점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서명을 한 다음, 위와 같은 작업방식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인 것처럼 전시하여 호당 30∼50만 원에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 1의 단독범행]

피고인은 2012. 4. 4.경부터 같은 달 21.경까지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 화랑’에서『피고인 1 초대전』을 개최하면서 “극동에서 온 꽃” 등의 그림을 전시하였다.

사실 그곳에 전시된 위 “극동에서 온 꽃” 그림은, 피고인이 2012년경 공소외 1에게 ‘용무늬 꽃병 위에 오광(오광)과 이파리를 배열하여 그림을 그려보라’라고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공소외 1이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여 임의대로 오광을 배치하고 이를 회화로 표현하여 완성한 다음 피고인에게 건네주고, 피고인은 위 완성된 그림 외곽에 이파리와 빈 사각형 몇 개를 그려 넣고 배경에 경미한 덧칠 작업만 추가한 다음 그림 하단에 자신의 서명을 한 작품으로서 사실상 공소외 1이 그린 그림이었으나, 피고인은 위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마치 위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행세하면서 전시하고, 위와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2012. 4.경 피고인이 직접 그렸다고 믿은 피해자 공소외 3에게 위 “극동에서 온 꽃”(30호) 1점을 1,200만 원에 판매하기로 하고, 그 무렵 판매대금 1,200만 원을 ‘□□□ 화랑’ 명의의 계좌로 이체받아 이를 편취하였다.

피고인은 2011. 9.경부터 2015. 12.경까지 별지 범죄일람표 (1) 기재와 같이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그림 21점을 판매하고, 총 17명의 피해자로부터 판매대금으로 합계 1억 5,355만 원 상당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였다.

[피고인들의 공동범행]

피고인 1은 2015. 4.경부터 2016. 3.경까지 피고인 2에게 자신의 기존 전시회 도록(도록) 또는 주거지에 보관 중인 작품을 찍은 사진과 그려야 할 그림의 크기와 수량을 공소외 1, 공소외 2에게 문자메시지로 전달하도록 하고, 피고인 2는 피고인 1의 지시대로 공소외 1, 공소외 2에게 사진 등을 전달하는 등 작업을 지시하고, 피고인 1은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서명을 하였음에도,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그림을 제작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마치 피고인 1이 직접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전시하여 호당 30∼50만 원에 판매하기로 공모하였다.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공모하여 2016. 3. 1.경 피해자 공소외 4로부터 피고인 1의 그림을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2016. 3. 2.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피고인 1의 주거지에 방문한 피해자에게 “극동에서 온 꽃”(용무늬 화병, 15호), “극동에서 온 꽃”(트럼프 화병), “항상영광”을 판매하였다.

그러나 사실 위 “극동에서 온 꽃”(용무늬 화병) 작품은, 피고인 1이 피고인 2를 통하여 2016. 2.경 공소외 1에게 ‘기존에 공소외 1이 피고인 1의 요청으로 용무늬 화병 위에 오광과 이파리를 임의로 배열하여 그려주었던 그림을 15호 크기로 다시 그려달라’라고 요청하고, 공소외 1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여 회화로 표현하여 완성한 뒤에 이를 피고인 1에게 건네주고, 피고인 1은 건네받은 그림의 배경에 경미한 덧칠 작업만 추가한 다음 그림 하단에 자신의 서명을 한 작품으로서 사실상 공소외 1이 그린 그림이었고, 위 “극동에서 온 꽃”(트럼프 화병) 작품 및 “항상영광” 작품은 피고인 1이 피고인 2를 통하여 2015년경 위 공소외 2에게 기존의 “극동에서 온 꽃”(트럼프 화병)과 “항상영광” 사진을 보고 그대로 그려달라고 요청하고, 공소외 2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여 회화로 표현하여 그림을 완성한 뒤에 이를 피고인 1에게 건네주고, 피고인 1은 완성된 그림의 배경 부분 등에 경미한 덧칠 작업만 추가한 다음 그림 하단에 자신의 서명을 한 작품들로서 사실상 공소외 2가 그린 그림이었으나, 피고인들은 피해자에게 마치 위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린 것처럼 행세하면서 위와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공모하여 2016. 3. 2. 피해자에게 위 작품 3점을 판매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판매대금으로 780만 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계좌로 이체받아 편취한 것을 비롯하여 2015. 9.경부터 2016. 4. 초순경까지 별지 범죄일람표 (2) 기재와 같이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작품 5점을 판매하고 총 3명의 피해자로부터 판매대금으로 합계 2,680만 원 상당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였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거시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피고인들의 기망행위와 기망의 고의 및 피고인 2의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고, 원심의 구체적 설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피고인들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

원심은, 아래의 각 사정을 종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1), (2) 기재 미술작품(이하 ‘이 사건 미술작품’이라 한다)의 창작적 표현작업이 주로 공소외 1과 공소외 2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사건 미술작품 거래에 있어서 설명가치 있는 정보에 해당되고, 피고인들은 신의칙상 사전에 구매자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고지하지 않고 판매한 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구매자들을 부작위에 의하여 기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1) 회화 작품의 예술적·경제적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그 작품의 아이디어나 소재의 독창성 또는 창의성 못지 않게 그 아이디어나 소재를 외부로 표출하는 창작적 표현작업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이와 같은 인식이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과 사회통념에도 부합한다.

2) 피고인 1과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관계는 ‘노무의 제공’을 목적으로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고용’이라기보다는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하는 ‘도급’에 가깝다. 여기에다가 ‘어떤 책임자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뜻하는 ‘조수(조수)’의 사전적 의미,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예술적 수준,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기여한 정도 등을 추가로 고려하면,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피고인 1에게 고용되어 그의 지휘·감독하에 피고인 1의 창작활동을 수족처럼 돕는 데 그치는 ‘조수’에 불과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독립적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창작적 표현형식에 기여한 ‘작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피고인 1은 공소외 1, 공소외 2와 사제(사제)의 관계에 있지 않았고, 이 사건 미술작품이 도제교육의 과정에서 제작된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이 사건 미술작품의 회화적 성격, 작품의 크기나 규모, 작업의 난이도, 피고인 1의 지시·관여의 정도, 전체적인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비록 피고인 1이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고 마무리작업에 일부 관여하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창작적 표현작업을 다른 작가에게 의뢰하여 완성하는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방식이라든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적 표현물로 판매하는 거래형태가 우리 미술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관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 비추어보더라도 용인 가능한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팝아트(Popular Art, 대중미술), 개념미술(Conceptual Art), 미니멀 아트(Minimal Art)와 같은 경향성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작가들로 평가받고 있는 앤디 워홀(Andy Warhol), 제프 쿤스(Jeff Koons),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무라카미 다카시(촌상륭) 등의 조수나 보조인력 고용 및 보수지급 방식, 작품제작에 대한 관여 방식 및 보조인력의 존재에 대한 공개 형태와는 달리, 피고인 1은 주거지 이외에 보조인력들과 함께 작업이 가능한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하거나 정식으로 고용된 조수나 보조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고, 평소 언론인터뷰 등을 통하여 자신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였고,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강조하면서 조수 사용의 제작방식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까지 하였으며, 그러한 연유로 피고인 1이 실제 물리적인 표현작업을 공소외 1과 공소외 2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은 대다수의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이 사건 미술작품의 구매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결국, 창작적 표현작업의 대부분을 다른 작가에게 맡기는 제작방식이 미술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일반적인 관행이라거나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이 사건 미술작품의 평가나 거래를 현대미술의 주류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하여야 한다는 피고인 측의 논리에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4) 해당 작품을 특정 가격에 판매하고자 하는 작가는 상대방이 구매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그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고, 특히 이 사건 미술작품의 양식인 회화에 있어서는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한 작가가 창작적 표현작업에까지 전적으로 관여한 ‘친작(친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 사이에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그 선호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구매 여부의 판단이나 가격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와 관련된 내용은 작품 거래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관념에 부합한다.

언론매체 등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과 함께 피고인 1의 인터뷰 내용을 접한 일반 대중은, ‘화투’를 주제로 한 피고인 1의 작품은 그 창작적 표현작업까지 전적으로 피고인 1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한 피해자들 대부분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나아가 ‘피고인 1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하지 않았거나 그와 같이 높은 가격으로는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취지로도 진술하였다.

여기에 미술작품 특히 그림의 거래는 일반 종류물의 매매나 특정물이라고 하더라도 흔히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반 물건의 매매와는 달리 작가나 작품의 내용 및 평가에 따른 구매자의 주관적인 의도가 우선 중시되어야 한다는 법리( 대법원 2000. 6. 23. 선고 2000도1633 판결 참조)까지 더하여 보면, 이 사건 미술작품의 거래에 있어서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존재와 제작에 관여한 정도’는 구매 여부를 판단하는 기초가 되거나 설명가치가 있는 정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따라서 피고인들은 사전에 충분한 정보의 제공과 설명을 통하여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 1의 친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었다.

나. 기망의 고의

피고인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한 피해자들이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존재나 그 관여 정도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한 채 피고인 1에 의해서 전적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는 착오에 빠져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그와 같은 높은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들의 미필적인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다. 위법성 인식의 착오 여부

여러 정황적 상황, 즉 ① 피고인 1이 인식하고 있었던 이 사건 미술작품의 양식, 표현행위의 중요성, 팝아트나 개념미술과는 모순되는 예술관 또는 작가상, ② 전문화가로 평가받고자 했던 피고인 1의 내심의 의사, ③ 피고인 1이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을 공소외 1과 공소외 2에게 맡긴 의도와 경위, ④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방식과 관련하여 피고인 2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 ⑤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존재나 그들의 구체적인 역할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이 보인 소극적인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있어서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존재나 관여 정도를 외부에 알리지 않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사기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그릇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이 그릇된 인식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라. 피고인 2의 공모관계

피고인 2가 2014. 4. 내지 5월경부터 피고인 1의 전시회 기획과 개최 등에 관여하다가 2015. 2.부터 피고인 1의 매니저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피고인 1의 작품제작, 전시회 개최, 작품판매 등 전반에 관여한 사실, 피고인 2가 피고인 1의 지시에 따라 문자메시지 등의 방법으로 공소외 1과 공소외 2에게 작품제작을 의뢰하였고,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과 관련하여 피고인 1보다는 피고인 2와 더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 피고인 2가 자신의 계좌로 이 사건 미술작품 판매대금을 송금받아 그중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가져간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 2의 공모관계와 기능적 행위지배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3.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

1) 사실오인

가) 피고인 1은 화투 등 작품의 소재를 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충분하고, 미술평론가와 대중들로부터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그리고,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피고인 1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피고인 1의 기존 작품의 소재 혹은 그 일부를 새로운 작품을 위한 밑그림으로 그려준 조수에 불과할 뿐이므로, 원심 판시와 같이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독립적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창작적 표현형식에 기여한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

나) 피고인 1은 작품제작에 조수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방송 등을 통해 알렸고 그 사실을 숨긴 적이 없으므로, 일반 대중 및 피해자들을 기망하였다고 할 수 없다.

2) 법리오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인식하면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작품제작에 있어서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 일부만 수행하고 나머지를 보조자 혹은 조수에게 맡기는 작가도 있고, 작가에 따라서는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조수가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데, 조수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와 같은 사실을 공개하거나 알릴 법적 의무는 없다. 한편 회화는 조각, 설치미술 등에 대응하는 개념이지만 현대미술에서는 그 경계가 이미 무너졌으므로, 회화에 대하여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작가가 작품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여야 한다고 볼 합리적 근거도 없다. 또한 미술은 보편적인 가치를 가져서 국경이 없으며 세계적인 관점에서 이를 판단해야 하고, 특히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해외에서 시작된 팝아트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원심은 현대미술을 잘못 이해하여,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였음을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라고 판단함으로써 사기죄에 있어 기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

3) 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 1에게 선고한 형(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피고인 2(사실오인, 법리오해)

1) 사실오인

피고인 1은 미술 실력을 가지고 40년간 미술가로서 활동을 해 왔다. 피고인 1은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조수로 하여 작업을 한 것이지,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작품에 단순히 경미한 덧칠만을 한 것이 아니다.

2) 법리오해

현대미술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조수를 사용하였음을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다. 검사(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들에게 선고한 위 각 형(피고인 1 :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피고인 2 :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4. 당심의 판단

가. 기초사실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의 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 피고인 1의 작품활동

가) 피고인 1은 1973년 서울 소재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국내는 물론 미국, 중국 등지에서 현재까지 약 40여회의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피고인 1은 위와 같은 전시회에 조각이나 회화, 콜라주 등 여러 장르나 기법의 작품을 전시 및 판매해 왔는데, 피고인 1이 화투를 소재로 하여 제작한 회화작품 중 오래된 것은 “Play Of Universal Flags”(1986년작), “Flowers On The Table”(1987년작), “The Stairway to Heaven”(1989년작) 등이 있다.

나) 피고인 1은 2003년 출간한「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에서, 화투로부터 미술작품의 아이디어를 얻게 된 동기나 이유에 관하여, “어느 날 오후 우연히 들여다본 화투장 몇 개에서 놀랍게도 한국 고유의 투박한 색상과 무궁무진한 인생 궤도와 흡사한 무속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깊이 매료되었다. 화투장이야말로 피카소의 악기나 앤디 워홀의 초상화나 이중섭의 은박지나 혹은 김창열의 물방울에 비견되는 오브제 차용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 나는 머나먼 미국땅에서 연방 희희낙락이었다.”라고 밝힌바 있고, 검찰 조사에서도 “그림도 노래처럼 시선을 끌어야 하는데 화투를 그리면 익숙한 그림이니 사람들 시선을 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도 더 이상 잘 치지 않는 화투를 좋아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인상 깊어서 화투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라고 화투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다) 이후 피고인 1은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만나기 전인 2008년경에도 이미 아시아뮤지엄에서 열린 ‘삼팔광땡’ 전시회에 “겸손은 힘들어”(2002년작), “항상영광”(2004년작), “내가 좋아하는 것들”(2005년작), “봄 여름 가을 겨울”(2007년작), “동양화”(2007년작), “다섯장 동양화”(2008년작) 등 화투를 소재로 한 여러 회화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라) 또한 피고인 1은 2008. 12. 16.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열린 자선경매(‘화이트 세일’) 전시회에서도, “화투 있는 동네”(1992년작, ‘부자와 가난뱅이가 똑같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누구나 5광을 쥘 기회는 있기 때문이다’라는 작품 설명이 있음), “나의 살던 고향은”(2003년작, ‘화투속의 4흑사리는 그것의 단순한 칼라와 조형 때문에 늘 을씨년스럽고 가난해 보인다. 마치 시골 고향처럼 말이다’라는 작품 설명이 있음), “극동에서 온 꽃” 2점(각 2008년작, ‘화투 속에는 꽃을 위주로 한 자연풍경이 극히 동양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라는 작품 설명이 있음), “나는 왕이로소이다”(2008년작, ‘우리는 일상에서도 늘 왕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38광땡을 잡을 때!’라는 작품 설명이 있음) 등 화투를 소재로 한 여러 회화 작품을 전시하였다.

마) 이 사건 미술작품은 모두 2009년경 이후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관여하여 제작된 것으로서 화투를 소재로 한 회화작품들인데, 이 사건 미술작품 중 “극동에서 온 꽃”, “서양에서 온 코카콜라”, “꽃과 콜라”는 각 카드무늬, 용무늬, 코카콜라 무늬의 화병과 그 위에 화투로 이루어진 꽃을 표현하였고, “여자의 마음”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화투로 만들어진 꽃다발을 누군가에게 선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가족여행”과 “항상영광”, 용무늬 화병의 “극동에서 온 꽃”은 화투 중 오광을 특히 부각시켜 표현하였고, “병마용갱” 작품에는 화투 외에 카드, 바둑판 및 바둑알 등이 소재로 사용되었다.

2)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과정

가) 피고인 1의 작품 구상과 밑그림 의뢰

피고인 1은 이 사건 미술작품의 구상에서부터 작품 제목의 결정, 작품제작 방식과 작품소재의 선택, 최종 작품으로의 완성 여부 및 전시여부 등을 모두 결정하였다. 한편 피고인 1은, 2009.경부터 화가인 공소외 1에게 새로운 작품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의뢰하였고 이는 2015. 4.경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이후부터 2016. 3.경까지는 미술전공자인 공소외 2에게 새로운 작품의 밑그림 작업을 의뢰하였다.

나)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작업형태

⑴ 공소외 1은 피고인 1의 의뢰에 따라, ① 피고인 1의 기존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리는 방식, ② 피고인 1의 기존 회화 작품을 똑같이 그리는 방식, ③ 피고인 1의 기존 작품은 존재하지 않으나 피고인 1로부터 사진과 설명, 간략한 스케치 등을 통해 추상적인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받은 후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의 밑그림을 그렸고, 보수는 작품당 1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공소외 1은 2009년 여름경 한 달 남짓 피고인 1의 거주지에서 머물다가, 그 뒤로는 청담동, 성수동, 전북 익산시, 강원 양양군, 속초시 등으로 숙소와 작업실을 옮겨가며 작업하였고, 붓이나 아크릴 물감 등 작품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는 피고인 1의 비용으로 구매하였다.

공소외 2는 피고인 1로부터 자신의 전시회 도록(도록)에 수록된 작품 사진과 똑같이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고, 피고인 1의 허락 하에 주로 학교 실기실이나 주거지에서 의뢰받은 작업을 하였으며 그에 대한 보수로 시간당 만 원을 받았다. 공소외 2 역시 붓이나 아크릴 물감 등 작품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는 피고인 1의 비용으로 구매하였다.

⑵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공소외 1과 공소외 2에게 이 사건 미술작품의 밑그림을 그릴 것을 의뢰함에 있어, 사전에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작업해야 할 밑그림을 특정하고, 그 밑그림으로 완성할 작품의 크기, 작품의 소재로 선택된 화투의 종류, 위치나 크기 등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였다. 또한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그려온 밑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고,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이의 없이 피고인 1의 설명과 지시에 따라 밑그림을 주1) 수정하였다.

다) 피고인 1의 작품 완성

피고인 1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이 있어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그려온 밑그림에 덧칠을 하거나 일부를 지우고, 추가로 그려 넣거나 색상을 바꾸는 등 작품별로 아래와 같이 표현하는 추가 작업을 통하여 마무리함으로써 자신이 구상했던 컨셉트에 맞게 작품을 완성한 후 서명하여 판매하였다.

〈범죄일람표 (1)〉
○ 순번 1 : 배경에 투명 코팅제를 칠하거나 화병테두리 부분을 없애고 화병 하단의 배경 부분을 키우거나 화병 하단의 색상을 변경하는 등의 작업
○ 순번 2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3 : 외곽의 이파리와 빈 사각형을 추가하고, 일광, 삼광, 팔광 화투 내부에 사각의 흰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4 : 배경에 투명 코팅제를 칠하고, 화병 하단의 검정 부분을 더 높게 그리는 등의 작업(극동에서 온 꽃),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CocaCola' 바로 위 흰색의 네모들을 추가하고, 배경에 노랑과 갈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꽃과콜라)
○ 순번 5 : 우측 하단의 바둑판을 채워 넣고, 화트의 ‘광’, ‘청단’, ’홍단‘ 글자를 수정하였고, 가운데 비광의 우산을 그려 넣는 등의 작업
○ 순번 6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였고, 화병하단의 검정부분을 더 높게 그리는 등의 작업(극동에서 온 꽃), 꽃을 들고 있는 손과 줄기,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꽃송이의 노란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여자의 마음)
○ 순번 7 : 화분을 표현하는 검은색 사각형과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흰색이던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8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붉은 직선을 추가하고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였으며, 화병 하단의 배경 부분을 일부 지우는 등의 작업
○ 순번 9 : 영문자의 끝부분을 길게 늘리고, 일광 옆 부분을 초록색을 섞어 어둡게 배색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0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붉은 직선을 추가하고, 갈색이던 배경에 흰색을 덧칠하였으며, ‘꽃과콜라’ 글씨 부분의 검정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1 : 배경에 흰색 터치와 말머리 앞 검정색 부분을 붉은 색으로 덮었고, 비광 위 삼광 옆에 파란색 터치와 배경에 금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2 : 좌측 일광 부분의 배경을 어둡게 바꾸는 등의 작업
○ 순번 13 : 외곽의 여러 색의 이파리, 화투 모양의 빈 사각형, 일광 밑에 팔광을 추가하고, 가운데에 금박지를 붙였으며, 화병 안에 있던 용의 머리를 지우고 다시 그리는 등의 작업
○ 순번 14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직선과 ‘CocaCola' 바로 위 흰색의 네모들을 추가하고, 흰색이던 배경을 노랑과 갈색으로 변형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5 : 화투 가장자리에 튀어나온 직선을 추가하고 흰색이던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고 화병 하단의 검정 부분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6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붉은 선을 추가하고 푸른색을 덧칠하였으며 좌측 상단 배경을 붉은 색으로 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17 :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직선 추가하고 배경에 투명코팅제를 칠하였으며 화병 하단의 검정 부분을 지우고 다른 색으로 덧칠하는 등의 작업(첫번째 극동에서 온 꽃), 화분을 표현하는 검은색 사각형과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튀어나온 붉은 선을 추가하고 사진을 붙이는 등의 작업(두번째 극동에서 온 꽃)
〈범죄일람표 (2)〉
○ 순번 1 : 화분으로 보이는 선과 배경에 노란색과 붉은색을 덧칠하고 화병 하단의 좌측을 금색으로 칠하고 상단 좌우를 보색으로 칠하는 등의 작업
○ 순번 2 : 똥광 눈에 흰색을 덧칠하고 눈동자를 다시 그림. 세필로 가늘게 썼던 각 광의 ‘새, 꽃, 달, 뽕, 비’를 지우고 납작붓으로 굵게 고쳤으며 일광을 가로지르는 흰색의 사선과 그 왼편에 흰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첫번째 극동에서 온 꽃), 화분을 표시하는 양쪽의 붉은 선과 화투 꽃송이 가장자리 부분에 튀어나온 붉은 직선을 추가하는 등의 작업(두번째 극동에서 온 꽃), 문자 'A'를 길게 늘리고 서명을 하는 등의 작업(항상영광)
○ 순번 3: 화투 주변의 흰색 추가하고 배경에 흰색을 덧칠하는 등의 작업

라) 미술작품제작에 있어 조수 또는 보조인력의 활용여부 및 형태

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등 서양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유명화가들이 도제교육(도제교육)의 일환으로 자신의 공방(공방)에 조수나 화가지망생 등을 제자로 두고, 엄격한 지휘·감독하에 대규모 벽화나 초상화 등은 물론 소규모 회화 작품의 제작에까지 도움을 받은 것은 미술사(미술사)에서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이고, 위와 같은 도제교육의 전통은 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작업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⑵ 그 외에도 작가 혼자서 단시일 내에 완성할 수 없는 대규모 벽화나 회화 작품의 제작이나 조각·공예·응용미술·설치미술 등 다양한 미술분야에서 세분화된 전문가들의 협업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조수 또는 보조인력을 고용하여 일정 작업을 분담시키거나 석공, 세공사 또는 전문제작업체 등 특정한 전문기술자에게 필요한 작업을 의뢰하는 등의 방법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⑶ 한편, 팝아트(Popular Art), 개념미술(Conceptual Art), 미니멀 아트(Minimal Art) 등 현대미술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특정 장르에 있어서는, 개념과 실행을 분리하여 ‘작가’의 영역은 오로지 아이디어의 창출에 있는 것이고, 실행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노동과 시간 등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의 창작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작가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Andy Warhol), 제프 쿤스(Jeff Koons),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무라카미 다카시(촌상륭) 등은 그와 같은 경향성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작가들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러한 부류의 작가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거래되는 작품을 제작·판매함에 있어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개념만 제공할 뿐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실크스크린 등 기계적인 힘을 빌리거나 고용된 다수의 조수 또는 보조인력을 이용하여 대량생산하여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그러한 제작방식과 거래형태가 널리 퍼지게 주2) 되었다.

나. 판단

1) 위 인정사실 및 그로부터 알 수 있는 다음의 각 사정을 종합하면,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보수를 받고 피고인 1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품제작에 도움을 준 기술적인 보조자일 뿐, 그들 각자의 고유한 예술적 관념이나 화풍 또는 기법을 이 사건 미술작품에 구현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주요 컨셉트와 소재는 피고인 1이 결정하였고,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피고인 1의 의뢰에 따라 피고인 1의 기존 회화작품을 그대로 그리거나 또는 피고인 1의 지시 혹은 설명에 따라 기존 콜라주 작품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공하였고,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제작된 그림에 배경과 선 뿐 아니라 작품의 소재인 화투, 말(마), 꽃, 글씨 등을 덧칠하거나 변경하고, 또는 새로이 그려 넣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컨셉트에 맞게 작품을 완성하였는바, 그 과정에서 한 보조자들의 위와 같은 작업을 ‘밑그림 제작’이 아닌 ‘작품의 완성’을 전제로 한 도급계약의 이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 피고인 1은 1986년경부터 ‘화투’를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컨셉트로 삼아왔고, 이 사건 미술작품 역시 ‘화투라는 소재’ 혹은 ‘화투를 꽃으로 표현하는 등의 아이디어 또는 컨셉트’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바, 이는 피고인 1 작품에 고유한 것이다.

다) 피고인 1이 공소외 1, 공소외 2와 사제관계 혹은 도제교육과정에 있는지의 여부,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회화실력 및 독자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인지의 여부, 공소외 1 및 공소외 2가 이 사건 미술작품제작에 관여한 정도 및 수령한 보수의 유무나 그 액수 등에 관한 사정은, 그것이 윤리적 또는 예술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별론,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인지 아니면 ‘보조자’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미술작품 제작에 있어 보조자의 회화실력은 작가가 필요한 보조자를 고용하기 위해 내세우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일 뿐, 보조자의 회화실력과 작가의 실력이 비교되어야 할 필요나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예술적 수준과 숙련도가 피고인 1의 그것보다 뛰어난 것인지 여부는 그들이 보조자인지 작가인지 여부를 구별하는 문제와 주3) 무관하다.

라) 또한 이 사건 미술작품에서와 같이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미술작품이 미술분야의 특정한 장르(회화)에 해당함을 전제로 위와 같은 제작방식이 적합한지의 여부나 그러한 제작방식이 미술계의 관행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혹은 일반인이 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은 법률적 판단의 범주에 속하지 주4) 아니한다.

2) 그런데,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 1이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였는지의 여부는 달리 문제 삼지 않은 채, 다만 피고인 1이 보조자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음에도 이를 피고인 1이 ‘직접’ 그린 주5) 친작(친작) 으로 오인한 구매자들에게 위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미술작품을 판매함으로써 피고인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대한 구매자들의 착오를 유지·강화하는 방식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를 하였다는 취지로 해석되므로, 아래에서는 이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주6) 살펴본다.

3) 피고인 1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 해당여부

가) 관련법리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등 참조), 사기죄의 요건으로서의 기망은 널리 재산적 거래관계에 있어서 서로 지녀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적극적, 소극적 행위를 말하고, 소극적 행위로서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법률상 고지의무 있는 자가 일정한 사실에 관하여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 대법원 1998. 12. 8. 선고 98도3263 판결 ,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한편,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에 있어 고지의무의 근거는 법령이나 계약, 신의성실의 원칙 등이 있고,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에게 고지의무를 인정할 법령이나 계약상 근거가 없음은 명백하다. 한편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한 고지의무의 인정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아니하므로,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형사재판에 있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고지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나) 고지의무의 존부(보증인적 지위에 있는지 여부)

이 사건에서 피고인 1이 피해자들에게 공소외 1 및 공소외 2 등 보조자의 사용 주7) 사실 을 고지함으로써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 1의 친작(친작)이라고 알고 있을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그런데,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의 각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1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한 피해자들에게 보조자인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사용한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⑴ 구매조건으로서의 ‘친작’ 여부

일반적으로 미술작품 거래에 있어 그 작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하여 제작되었는지 여부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지도, 아이디어의 독창성이나 창의성,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등을 포함하는 작품의 수준, 희소성, 가격 등과 함께 구매자들이 작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제반 요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구매의 동기나 목적, 용도 또한 감상용·소장용·전시용·투자용 등으로 다양하거나 중복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위와 같은 제반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위 제반 요소 중 어느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그 작품이 ‘해당 작가의 작품’인지 여부, 즉 ‘다른 사람의 작품임에도 자신의 작품으로 속인 것이 아닌 진품’인지 여부는 일반적으로 확인하고자 할 것이나, 그 작품이 해당 작가의 ‘친작’인지의 여부는 구매자에 따라 고려 요소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언제나 ‘진품’ 여부와 같은 정도의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가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편 미술작품에 관한 거래에 있어서, 구매자가 개별 작품의 친작 여부를 알고자 하는 경우에도 그 고지 여부나 고지 범위는 전적으로 작가(혹은 화랑)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작가(혹은 화랑)에게 일률적으로 작품의 친작 여부에 관한 고지의무를 부담시키는 것도 적절하지 아니하다.

⑵ 구매자의 주관적 의도

이 사건 미술작품 중 “항상영광”을 구입한 공소외 5의 경우, “어렸을 적부터 가수 피고인 1씨의 팬이라서 피고인 1씨의 좋은 그림을 하나 갖고 싶었다. 구매한 작품의 ‘오광’과 ‘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보조 조수가 있다는 것을 몇 십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구입한 그림이 대작(대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진술하였고, “병마용갱”을 구입한 포스코미술관의 큐레이터 공소외 6은, “작품경향이 독특하고 피고인 1씨의 작품의 경우 수집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입을 하게 된 것이다. 대강의 구도나 작품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공소외 1에게 말한 것이라면 이는 명백히 작품의 아이디어는 피고인 1의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피고인 1의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는 못한다고 본다. 아직 미술계에서는 그러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진술한 반면, 또다른 피해자들은 ‘피고인 1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하지 않았거나 그와 같이 높은 가격으로는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 이 사건 피해자들의 작품 구매동기나 친작 여부에 관한 평가가 제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이 모두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보조자인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사용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해당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임이 명백하다고 볼 수도 없다.

한편, 원심은 대법원 2000. 6. 23. 선고 2000도1633 판결 에서 설시한 “그림의 거래는 일반 종류물의 매매나 특정물이라고 하더라도 흔히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반 물건의 매매와는 달리 작가나 작품의 내용 및 평가에 따른 매수인의 주관적인 의도가 우선 중시되어야 할 것”이라는 법리를 근거로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었다고 판시하였으나, 위 판결은 “매수인이 평소 위 설경산수화를 소장하고 싶어 하였고, 위 그림의 일부를 수정하여 복원하였다 하더라도 위 그림의 나머지 부분이 진품인 이상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 그림의 매수 당시 위와 같은 복원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위 그림을 매수하였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고서화의 취급관행, 수선 및 보존방법 및 진품여부에 대한 인식관계 등 제반사정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위 그림을 매도할 당시 매수인에게 위 그림이 일부 복원된 점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판매자의 고지의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작가나 작품의 내용 및 평가에 따른 매수인의 주관적인 의도 역시 주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본 사례이다.

결국,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보조자인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사용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해당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임이 명백하지 아니한 이 사건에서, 일부 구매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근거해 바로 작가의 고지의무를 인정할 수는 없다.

⑶ 이 사건 고지의무의 내용과 관련된 문제점(불명확성)

이 사건 고지의무의 내용인 ‘보조자의 사용사실’에 관하여, ① 고지의무자는 작가에 한하는지, 아니면 작가가 아닌 판매자나 중개인(화랑 등)도 포함되는지, ② 고지의 시기는 작품 제작을 시작하기 전 혹은 작품 완성 전후 등 언제 이루어져야 하는지, 혹은 작품 판매계약 체결시에 고지하면 족한지, 판매 이후라도 문의가 있을 때에 고지하면 족한지, ② 고지의 방법은 방송이나 언론 등을 통해서 알려졌다면 족한지, 판매계약 체결시 구매자에게 개별적으로 해야 하는지, 또는 구두로 하면 족한지 아니면 (전전유통에 대비하여) 고지한 내용에 관한 증명서를 남겨야 하는지, ③ 고지의 범위는 보조자의 사용여부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작가가 사용한 보조자의 숫자, 보조자의 경력 및 제작 관여정도에 관하여도 상세히 고지해야 하는지 등 그 내용을 명확히 정할 수 없는 난점이 있는바, 이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고지의무가 불명확하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있었는지 여부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의 각 사정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피고인 1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⑴ 피해자들 중 대부분이 수사기관에서 “피고인 1이 이 사건 각 그림의 전부를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해당그림을 그 가격에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전화상으로 또는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하였다.

그러나, ① 위 피해자들 또한 이 사건 미술작품 구매의 동기로 ‘아이디어나 화투를 소재로 삼은 것의 참신함, 창의성, 특이함, 발상자체의 신선함’, ‘피고인 1의 팬, 피고인 1의 인지도 또는 이름값’, ‘소장할 가치, 투자할 목적’ 등을 진술하고 있어, ‘피고인 1의 친작인지 여부’라는 사정 외에도 위에서 본 다양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② 위 구매자들의 진술은 ‘피고인 1이 직접 이 사건 미술작품 전부를 그린 것은 아니므로 이 사건 미술작품은 피고인 1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라는 수사관의 설명이나 평가가 개입된 질문을 받고서 위와 같이 진술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③ ‘피고인 1의 친작’으로 알고 구매하였다는 위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구매계약 단계에서 위와 같은 구매동기가 표시되었거나 작가 혹은 화랑 측에 그에 관한 문의를 한 바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진술 내용만으로 위 피해자들이 ‘피고인 1의 친작임을 전제로’ 이 사건 미술작품을 구매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⑵ 구매 당시 피해자들이 내심으로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 1의 친작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 1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피고인 1이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하여 판매하였다는 등 이 사건 미술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과정이 피해자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관하여 착오에 빠져 있었다거나 피고인 1에 의하여 기망당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⑶ 또한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피고인 1의 언론 인터뷰 내용은, ① 피고인 1이 자신의 그림 작품 완성을 위해 들이는 시간이나 열정 등에 관하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② 피고인 1이 대중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화가 또는 미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기대감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③ 오히려 피고인 1은 2009. 9. 24. 방영된 KBS '여유만만'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혼자 그리실 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도 작품에 손을 대네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칠하는 것은 내가 칠하나, 이 아이가 칠하나 똑같잖아”라고 대답하면서 작품제작을 도와주는 젊은 여성 미술가 2인을 공개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언론에 공개된 피고인의 인터뷰 내용이 가수인 피고인 1의 미술 작업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나아가, 피고인 1이 자신의 모든 작품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따라서 이 사건 미술작품의 구매자들이 모두 위와 같은 언론이나 방송 등에 통해 이 사건 미술작품이 피고인 1의 친작인 것으로 오인하였다고 보기 주8) 어렵다.

4) 피고인 2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 해당 여부

피고인 2가 피고인 1의 지시를 공소외 1 혹은 공소외 2에게 전달하거나 판매계약을 주선하는 등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제작 및 판매를 위하여 협력하였다 하더라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보조자 사용 사실에 관한 피고인 1의 고지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이상, 피고인 1의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에 불과한 피고인 2에게 별도로 독자적인 고지의무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 2의 피고인 1과의 공동범행에 관하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인정할 수 없다.

5) 소결

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에 관한 피해자들의 착오를 제거해 주어야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다거나 보조자 사용 사실에 관하여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재물을 편취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는바, 이와 달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5.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들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 1 및 검사의 피고인들에 대한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쓰는판결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은 제1항 기재와 같고, 이는 제4항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며, 형법 제58조 제2항 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지 생략]

판사 이수영(재판장) 최복규 김은교

주1) 이에 관한 공소외 1과 공소외 2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공소외 1은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 1이 이미지라든가 이걸 이렇게 표현을 해서 이렇게 그려오라 그러면 제가 받아서 똑같이 그려준 것도 있고’, ‘샘플이 있으니까 이미 제작되어 있는 그걸 보고 똑같이 그리거나 키우거나 그런 상황이었다’ ‘마음에 안드시면 빠꾸한 적도 있었고 다시 그려온 적도 있고 그건 아주 조금 이지요’ ‘저는 조금 그래도 나름대로 형 스타일에 따라가 줄려고 애를 썼던 것이지요 저는 제스타일이 전혀 아닌...’ ‘항아리 그림이 있었고요. 사진이 있었고, (피고인 1이) 사진과 함께 화투 끝발 좋은 걸로 해서 5개를 여기다 이렇게 이렇게 드로잉을 하시면서 보여주었지요 저한테’ ‘피고인 1이 스케치를 먼저 하셨었지요. 용무늬를 특정을 했고 화투 5장을 특정을 했고요’ ‘그래서 그걸 제가 집에 가지고 가서 그걸 가지고 확대하고 키운 다음에 그린 다음에 컨셉을 먼저 보여드리고 사진으로 보낸 적도 있어요. 보내서 이렇게 그리면 어떻겠느냐 오케이를 받으면 거기서 그려서 완성된 거에요. 그린 다음에 오케이를 받아야지 그걸 끝까지 피니쉬를 끝내지요’ ‘피고인 1의 그림을 다시 그대로 그릴때 기존의 그림에서 색깔이나 크기 등을 달리 해 보는 그런 변화 있는 작업은 거진 못했고요’라고 진술하였다. 공소외 2는 원심 법정에서, ‘첫날 갔을 때 작품 보여주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씀 하셨고, 저는 도록이나 사진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그게 지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지시를 받은 작품에서 붓터치를 실수한 부분까지 따라서 그렸기 때문에 실제 작품을 본다고 하여도 제 작품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로지 그 그림에 있는 색깔은 아무런 비판 없이 그냥 그대로 그려야 된다. 다만 그 색깔이 갖고 있는 물감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라고 진술하였다.

주2) 피고인 1은 1998년 현대미술의 하나인 팝아트를 표방하며 ‘피고인 1과 팝아트’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한 사실이 있는데, 위 전시회 인사말에는, “수천 만 개의 유명 미술작품 중에서 내가 소유하고 싶고 그래서 내 집에 가져오고 싶은 욕심나는 작품들이 정말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중략) 나는 제법 진취적인 불만을 가슴 깊숙이 품고 ‘그럼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지’ 이렇게 된 거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메고 싶은 모양의 넥타이를 내 스스로가 직접 재단해 낸 셈이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벤처기업도 아닌 소박한 가내공업식으로 말이다. 나는 우선 빠리 상가의 넥타이 수 만큼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손님이 그중에서 단 한 개라도 맘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말이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주3)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공소외 1은 미국 뉴욕 등지에서 20여 년간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술대전 수상과 100여차례 이상의 전시회 경력 등이 있는 직업화가’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설령 그러한 경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로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있어 보조자로 볼 수 없다거나 당연히 작가의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주4) 이 사건 미술작품에서와 같은 보조자를 고용한 작품제작 방식이 회화의 영역에서도 허용될 수 있는지의 여부 및 그 범위 등에 관한 논의는 창작활동의 자유 혹은 작가의 자율성 보장 등의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예술계에서 논의함이 마땅하다.

주5) 이하 이 판결문에서는 미술작품의 장르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독창적·예술적 관념을 표현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조력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완성한 작품’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한다(한편 원심에서는 이 사건 미술작품의 양식을 회화로 규정하고,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한 작가가 창작적 표현작업에까지 전적으로 관여한 작품’을 ‘친작(친작)’으로 표현하였다. 원심 판결문 18쪽 참조).

주6) 검사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피고인 1은 언론 인터뷰와 방송출연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줌으로써 그림 구매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판매하는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믿게 하였다.”라고 기재하거나, 2016. 12. 13.자 의견서에 “피고인 1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 및 방송출연을 통해 피고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시켰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인 그림 구매자들 및 잠재적인 대중들로 하여금 피고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믿게 하였는바, 묵시적으로 피해자를 기망한 것이다”는 취지로 기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들이 착오를 일으킨 계기 혹은 경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이 사건 공소가 피고인 1의 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그 중 소위 묵시적 기망행위)에 터잡아 제기되었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공소사실의 주된 내용인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와 양립한다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주7) 공소사실의 기재만으로는 ‘보조자들의 제작 관여 형태나 관여 정도’까지 고지할 의무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다소 불분명하다.

주8) 특히, 피고인 1의 위 뉴시스 및 연합뉴스 인터뷰는 2008. 12. 10.경에 이루어진 것임에 반해, 피고인 1이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이 사건 미술작품 제작에 활용한 시기는 2009년경 이후이므로, 그 시기적인 면에서 위 뉴시스 및 연합뉴스 인터뷰 내용은 이 사건 미술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달리 이 사건 미술작품과 관련이 있는 인터뷰 내용이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사건 공소사실에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