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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19.5.13. 선고 2018고합847 판결

강간

사건

2018고합847 강간

피고인

A

검사

박채원(기소), 이근정(공판)

변호인

변호사 김동현, 김봉직

판결선고

2019. 5. 13.

주문

피고인은 무죄.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과 피해자 B(여, 27세, 미국 국적)는 'C'라는 사이트에서 서로 알게 되어 채팅메신저인 'D'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던 사이이다.

피고인은 2016. 9. 1.경 위 피해자와 'D'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위 피해자에게 서울 용산구 남영역 일대에서 만나자고 종용한 뒤, 피해자가 약속 시간보다 늦자 같은 날 23:46경 서울 용산구 E 호텔 F호로 위 피해자를 유인하였다.

피고인은 위 무렵 위 호텔 방 안에서 피해자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피해자에게 '약속에 늦은 것에 대해 보상을 하라'고 위협하며 위 피해자의 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에 억지로 가져다 대고, 이어 위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피해자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피해자의 입에 피고인의 성기를 집어넣고, 피해자의 하의를 벗겨 피고인의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고, 피고인의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1회 삽입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위 피해자를 강간하였다.

2.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요지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피해자로부터 마사지를 받은 사실은 있으나,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사실은 없고,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한 사실도 없다.

3. 판단

가. 관련 법리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등 참조). 특히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고 기록상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에 근거하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고, 이러한 증명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가 한 진술 자체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1도16413 판결 등 참조).

나. 구체적 판단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반면 기록상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로는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자의 진술에 충분한 신빙성과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

1)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 결여

가) 피해자는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호텔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에 대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을 잡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도록 한 것,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강제로 구강성교를 하게 한 것,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손가락을 질 안에 넣고 성기 일부를 질 안에 넣은 것,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과 입을 이용하여 피고인의 성기를 애무하도록 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 사정을 한 것이 기억난다'는 취지로 비교적 일관된 진술을 하기는 하였다.

나) 그러나 피해자의 전반적인 진술의 취지는 '호텔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난다'는 것이고, 피해자는 실제로도 당시의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진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난다.

고 하는 장면만을 단절적, 부분적으로 진술하였다. 이러한 피해자의 진술 태도 및 그 내용을 보면, 과연 피해자가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사실을 진술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든다.

다) 특히 피해자는 '셔츠와 바지, 속옷이 벗겨져 있었는데, 피해자가 벗었는지, 아니면 피고인이 벗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고(녹취서 1) 4쪽, 증거기록 18쪽), 피해자가 침대에 눕게 된 상황에 관해서도 '그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흐리다'고 진술하였다(녹취서 20쪽), 피고인이 피해자의 옷을 벗겼는지 여부, 피고인이 피해자를 침대에 강제로 눕혔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유형력을 행사하여 그 반항을 억압하고 강간 행위에 착수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유형력을 행사하여 강간 행위로 나아갔다면, 위와 같은 장면은 피해자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으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위 장면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피해자가 오래전 2)의 기억을 떠올려서 진술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라) 피해자의 진술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인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적어도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과 간음행위에 관해서는 의문이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에서 살펴본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떠한 유형력을 행사하여 간음행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인 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2) 피고인의 폭행·협박에 관한 피해자 진술의 의문점

가) 피해자는 '싫다고 하는데도 피고인이 강하게 힘을 이용하여 성적인 행위를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고, 이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에 대해 성적인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 대한 피해자의 구체적인 진술 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하였는지에 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나) 우선 피해자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피고인이 협박을 하지는 않았다'(녹취서 10쪽), '폭력적이진 않았지만, 공격적이었다'(녹취서 11쪽), '피고인이 폭력적이거나 때리지는 않았다'(녹취서 13쪽)고 진술하였다.

또한 '공격적(aggressive)이라는 것은 피고인의 성기를 만지거나 애무하고 싶은 의사가 없었지만, 피고인이 강하게 원하자 마지못해 피고인과 성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인지 어대한 질문에 '맞다'고 답변하였다(녹취서 11쪽).

다) 피해자는 '강요에 의해서 마지막엔 그냥 빨리 끝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대충마사지를 해주었다'(증거기록 87쪽), '피고인의 강요로 피고인의 몸을 만진 적은 있지만, 자발적으로 피고인의 몸을 마사지해 준 적은 없다' (증거기록 280쪽),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만지게 만들었다'(녹취서 4쪽), '제가 그런 행동을 했지만, 그것은 피고인이 그런 행위를 하도록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중략) 가장 좋은 설명은 저는 수동적이었고, 피고인이 저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녹취서 13쪽)라는 진술을 하였다. 위와 같은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으나 피고인이 강하게 요구하여 피고인과의 성적인 접촉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하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라) 피해자는 '피고인의 강요로 피해자의 손과 입을 이용하여 피고인이 사정을 하게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는데, 피해자의 위 진술은 피해자가 수동적이나마 피고인의 사정을 도왔다는 것인바, 피고인의 폭행·협박으로 강간을 당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다.

마) 피해자는 경찰 조사 당시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검찰 조사에 이르러서야 '피고인이 문 앞에서 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고 진술하였고(증거기록 277쪽), 이 법정에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바로 앞에 서 있어서 피고인을 피해서 문 쪽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녹취서 12쪽),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술이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정에 속하고, 그 진술 내용에 다소 과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까지 고려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3) 피고인과 피해자가 만나게 된 경위 및 목적에 관한 피해자 진술의 의문점

가) 비록 이 사건 공소사실과 직접 연관된 부분은 아니나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객관적인 정황과는 배치되는 진술을 한 것이 확인되는바, 피해자가 과연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진술하였는지 의심이 간다.

나) 먼저 피해자는 '피고인이 호텔로 오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녹취서 3쪽), '처음에는 호텔에 갈 것이라고는 몰랐다'(녹취록 7쪽), '피고인이 호텔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녹취록 9쪽)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피해자가 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이전부터 피해자에게 '알았어. 그러면 내가 방을 잡을게. 그리고 같이 밤 새자. 그러면 남영역에서 내려(OK Il get a room and we can stay the night with each other. Get off at namyoung station then ok)'라는 메시지(증거기록 별책 17, 38쪽, 오후 9:54 발신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자가 '지금 출발하려고 해(I'm about to leave)'라는 메시지(증거기록 별책 18, 39쪽, 오후 10:21 발신 메시지)를 보내자 '그리고 도착하면 내가 너랑 대화를 하기 위해 너를 기다리면서 반쯤 벗은 채로 어디 호텔 몇 호실 침대에 누워 있는지 알려줄게(And once you get there I'll tell you where the hotel and room where I'll be laying in bed half naked waiting to converse with you)'라는 메시지(증거기록 별책 18, 39쪽, 오후 10:21 발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을 만나러 오면서 이미 피고인이 호텔을 잡을 것이라는 점, 피고인과 함께 호텔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객관적 정황에 배치되는 진술을 한 피해자의 진술을 온 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다) 또한 피해자는 '피고인이 성적인 것을 하기를 원할 거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고 진술하였으나(녹취서 9쪽), 피고인은 피해자를 만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알았어. 그럼 마사지 하자. 그냥 조금 흥분 좀 하자. 제발(OK then work withme on the massage then. Just a lil simple arousal please)'이라는 메시지(증거기록 별책 18, 39쪽, 오후 10:16 발신 메시지), '네가 호텔방에 도착하면, 나한테 성적으로 자극되는 마사지를 해줘(When you come in the room you gotta do my arousal Imassage)'라는 메시지(증거기록 별책 18, 39쪽, 오후 11:25 발신 메시지)를 보내면서 성적인 접촉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마사지 얘기를 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으나(녹취서 9쪽), 위와 같은 피고인의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선뜻 수긍하기는 어렵다.

4) 이 사건 고소 경위에 관한 의문점

가) 피해자는 공소사실 기재 범행일인 2016. 9. 1.로부터 약 1년 5개월이 지난 2018. 2. 5.에서야 피고인을 이 사건 강간 혐의로 고소하였는데, 피해자가 피고인을 고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는 사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위와 같이 범행 시점과 고소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나) 피해자는 '신고를 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고소가 늦어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지만(증거기록 20쪽), 피해자가 신고를 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 사건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의 정액이 묻었다는 브래지어 등 피해자가 이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을 모두 버린 점(녹취서 7, 15쪽),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상황을 녹음하였다는 녹음파일을 삭제한 점(증거기록 21, 134쪽)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위 설명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5) 이 사건 이후의 정황

가) 피해자는 '피고인이 호텔 방을 나간 이후 샤워를 했고, 새벽 3시까지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잠을 자고 7~8시경 호텔에서 나왔다'고 진술하였는데(증거기록 18쪽), 밤늦은 시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와 같이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피해 장소에 장시간 머무르면서 샤워를 하고 잠을 잤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나)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 2016. 9. 5. 피고인과 처음으로 D 대화를 하였는데,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피고인이 현재 미군인지, 과거 계급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만 물었을 뿐, 이 사건 피해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증거기록 별책 19, 40쪽).

다) 피고인은 2016. 9. 6. 피해자에게 D을 통해 '예의범절에 관한 500자 작문을 해주면 40달러를 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하였는데, 피해자를 강간한 피고인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다소 이례적이다.

라) 피해자는 위와 같은 피고인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피고인의 성폭행 사실을 언급하였는데, 피고인은 'ㅋㅋㅋㅋ 씨발 너 무슨 말을 하는거야?(Lmao what the fuck are you talking about)', '난 그런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 안해. 너 완전 웃긴다 (I didn't do shit to you that's why I don't care. You're very hilarious)'라고 대답하였고(증거기록 별책 20, 41쪽),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을 고소한 이래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피고인의 진술 중 '피해자를 도넛가게(커피숍)에서 만나 같이 호텔로 갔다'는 진술(증거기록 44, 260쪽), '사건 이후 피해자와 연락을 한 기억이 없다'는 진술(증거기록 50쪽)은 사건 당시의 객관적 정황과 배치되는 부분이지만,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한 사실이 없다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피고인이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권희

판사송현직

판사박태수

주석

1) 제3회 공판조서의 일부인 증인신문조서에 첨부된 녹취서를 지칭한다. 이하 같다.

2)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로부터 약 1년 5개월이 경과한 시점에 첫 경찰 진술을 하였고, 약 2년 6개월이 경과한 시점에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해사실을 진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