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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62. 6. 21. 선고 62다217 판결

[건물철거등][집10(3)민,102]

판시사항

1945. 8. 14. 일본정부가 국유부 동산을 교환처분한 경우와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

판결요지

군정법령(제33호) 제2조에 위반된 처분의 효력

참조조문

군정법령 33호 2조

원고, 피상고인

오일동

피고, 상고인

이양례 외 6인

원심판결
주문

원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이유

피고들 소송대리인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945. 8. 9. 이후 일본정부 그 기관의 소유에 속한 모든 종류의 재산은 조선군정청이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 이 날자 이후에 있어서는 어떠한 기관이나 개인도 이 재산을 처분할 수 없고 이에 위반된 처분은 그 효력을 나타낼 수 없음은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 이하의 규정에 의하여 분명하다 할 것인바 원판결은 증거에 의하여 1945. 8. 14. 소외 황원석은 그 소유이든 광주세무서 부근 대지 560평 및 주택 3채와 당시 국유지이든 본건 계쟁대지를 포함한 광주시 양동 일대의 토지를 나라와 교환하여서 본건 대지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고 해방후 1946. 1. 8. 이 사람의 명의로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친 다음 1957. 4. 5. 원고에게 이를 팔고 원고는 그해 5월 21일 그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사실을 인정한 후 피고들은 소외 황원석이가 일본나라와의 이 토지교환계약은 강행법규인 군정법령 제33호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따라서 원고는 1957. 4. 5. 무권리자인 황원석으로 부터 본건 대지를 산것이므로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항쟁하나 1심 증인 박균집 곽창국 유히창 2심 증인 김재열의 각 증언에 의하면 나라 자신이 1958. 2. 10. 본건 대지의 피고등에 대한 점유 허가를 취소함과 동시에 원고의 소유인 것을 확인하였다고 인정될 뿐 아니라 군정법령 제33호의 법의 취지도 8.15해방 후의 적성재산의 산일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처에 지나지 못하고 본건과 같이 권리관계가 명확히 된 것까지 무효화 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피고들의 항변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본건 대지가 1945. 8. 9. 현재로 일본정부의 소유에 속하는 국유이었던 점과 일본정부가 1945. 8. 9. 이후인 8월 14일에 본건 토지를 소외 황원석과 교환하는 처분을 한 것은 원심이 확정한 바이므로 이러한 처분은 군정법령 제33호 제2조 이하의 규정에 의하여 그 효력을 나타낼 수 없다함이 앞서 설명한 바이니 황원석 또는 이 사람으로 부터 물려받았다는 원고는 모두 이 토지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 할 것이요 이와 같은 아무런 권리도 없는 사람에게 대하여 1958. 2. 10. 나라 자신이 원고의 소유임을 확인하였다함은 있을 수 없는 사실에 속한다 할 것이며 이리하여 이 토지에 관하여서는 그 소유관계가 원판결이 말하는 바와 같이 원고에게 속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바이요 원심은 결국 법령 제33호의 해석을 그릇하고 나아가서 이유불비에 빠진 경향이 있다 할 것이니 이점에 관한 상고논지는 이유 있고 원판결은 파기를 면할 수 없으며 사건을 다시 심판케 하기 위하여 원심인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하기로 하고 관여 대법원판사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원판사   이영섭(재판장) 사광욱 홍순엽 양회경 민복기 방순원 최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