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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2. 9. 24. 선고 2002도3488 판결

[사기][공2002.11.15.(166),2639]

판시사항

부도 이후 물품을 계속 공급하여 주면 영업을 재개하여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채무를 줄여가겠다고 약속하여 피해자들이 계속하여 물품을 공급하였고, 그 후 다시 거래가 중단되었으나 중단 당시의 잔존 물품대금액이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보다 줄어든 경우, 위 부도 이후에 공급받은 물품에 대하여는 피고인에게 기망의 의사나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부도 이후 물품을 계속 공급하여 주면 영업을 재개하여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채무를 줄여가겠다고 약속하여 피해자들이 계속하여 물품을 공급하였고, 그 후 다시 거래가 중단되었으나 중단 당시의 잔존 물품대금액이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보다 줄어든 경우, 위 부도 이후에 공급받은 물품에 대하여는 피고인에게 기망의 의사나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이상률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1. 원심판결의 요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신발소매업에 종사하던 자로서, 1999. 1.경부터 같은 해 3.경까지 사이에 피고인 및 피고인이 사용하던 남편 공소외 1 명의의 당좌계정이 부도가 났을 뿐 아니라, 부채로 외상대금 2억 원 및 그 외 채무 금 1억 2,500만 원 정도가 있었고, 피고인의 재산이 전무하여 사실은 타인으로부터 신발을 납품받더라도 그 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1999. 4. 3.부터 같은 해 11. 28.까지 사이에 피해자 유재구 등 8명에게, 신발대금조로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주고 어음 지급기일에 어음금을 틀림없이 결제해 줄 테니 신발을 납품해 달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들로부터 도합 191,042,300원 상당의 신발을 납품받아 이를 편취하였다는 것인바, 원심은, 그 채용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1999. 2.경 1차 부도를 맞아 피해자들과 당시까지의 기발생 물품대금의 변제 대책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위 피해자들이 물품을 계속적으로 공급하여 주면 영업을 재개하여 이를 변제하겠다고 하여 이에 동의한 피해자들로부터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물품을 공급받기로 하였으나, 당시 피고인은 당좌부도로 인해 자금압박을 심하게 받아왔고, 미지급 물품대금과 금융기관 대출금 및 사채 등 많은 채무를 지고 있었으며, 또한 피고인의 신발가게 영업도 그 이전부터 매달 많은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위와 같이 피해자들과의 거래를 재개한다 하더라도 미지급 물품대금 채무를 모두 변제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가능하였고, 실제로 1999. 11.경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사정이 그러하다면 당시 피고인에게는 위 피해자들과의 거래관계에서의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기망의 의사 또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 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사기죄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2.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그러나 원심이 위와 같이 피고인에게 기망의 의사 또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쉽게 단정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채용한 증거들 중,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및 법정에서의 일부 진술, 피고인의 남편 공소외 1의 경찰 및 검찰에서의 각 진술, 증인 오정환, 명성근의 원심에서의 각 일부 진술, 피해자 유재현, 명성근, 정학수, 권도혁, 김병철, 오정환, 유재구, 서용직의 경찰 또는 검찰에서의 각 진술 등을 종합하면, 원심 인정과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들과의 거래를 재개한다 해도 미지급 물품대금 채무를 모두 변제한다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고, 따라서 피고인에게 기망의 의사 내지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는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제1심부터 원심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피해자들과는 위 부도 이전부터 외상 거래를 계속하여 왔고, 위 부도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기발생 물품대금 채무는 모두 4억 원 가량이었는바, 위 부도 후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면서 장사를 하여 차츰차츰 기발생 물품대금 채무를 줄여가겠다고 하자, 피해자들도 이를 받아들여 계속 물건을 공급한 것이고, 피고인은 일시 자금융통이 되지 않아 일부 대금 지체가 연체됨을 이유로 피해자들이 신발공급을 중단하여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어 그만 두게 된 1999. 11.까지 위 부도 후 공급받은 신발 대금보다 많은 물품대금을 변제하여, 위 1999. 11. 당시 잔존 물품대금이 337,042,300원으로 줄어들었으므로, 피고인은 위 부도 후 공급받은 신발을 편취한 적도 없고, 따라서 불법영득의 의사도 없으며, 약속을 어긴 적도 없으므로 기망의 의사도 없었다는 취지로 변소하여 왔고, 제1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오정환, 명성근도 피고인의 위 변소사실에 사실상 일치하는 내용으로 진술하였으며, 특히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 및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의 잔존 물품대금액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주장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진술을 하였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그런데 위 부도 이후에 피해자들로부터 공급받은 신발 대금액이 모두 얼마인지에 상관없이(이 점은 기록을 살펴보아도 불분명해 보인다),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의 잔존 물품대금은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과 위 부도 이후 공급받은 신발 대금을 합한 금액에서, 위 부도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변제한 금액을 공제한 금액이 될 것인데, 만약 피고인의 위 변소 사실과 피해자 오정환, 명성근의 위 법정 진술이 사실과 일치한다면(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하였고, 아직까지 피해를 변제받지 못한 위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허위의 주장에 일치하도록 진술하여야 할 이유를 생각할 수 없으므로, 위 피해자들의 진술의 신빙성도 있어 보인다),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의 잔존 물품대금액은 337,042,300원이어서,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 4억 원보다 약 6,300여 만 원 가량 적게 되고, 따라서 결국 피고인이 위 부도 이후에 피해자들로부터 공급받은 신발 대금액보다 6,300여 만 원을 더 많이 피해자들에게 변제한 셈이 될 터인바, 사실관계가 그러하다면 피고인은 위 부도 이후 공급받은 신발의 대금은 모두 변제하고 더 나아가 기발생 물품대금까지 약 6천 3백만 원 정도 변제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은 자신이 피해자들에게 공급 재개를 요청하면서 한 약속을 지킨 것이 될 뿐 아니라, 위 부도 이후 공급받은 신발로 인하여 어떠한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할 것이어서, 최소한 위 부도 이후에 공급받은 신발에 대하여는 피고인에게 기망의 의사나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피고인 및 피해자 오정환, 명성근이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 및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의 잔존 물품대금액에 관하여 명확하게 진술을 하고 있음에 반하여, 원심이 채용한 위 피해자 오정환, 명성근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수사기관에서의 각 진술이나 피고인 및 공소외 1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모두 살펴보아도,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 및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의 잔존 물품대금액이 얼마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고, 위 부도 이후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공급한 신발 대금액 및 위 부도 이후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두기까지 피해자들에게 변제한 물품대금액 역시 얼마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피고인의 기망의 의사 및 불법영득의 의사에 관련한 상반된 증거들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다른 사람들이 아닌 피해자들 자신의 법정에서의 진술인데 반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에는 불분명한 점이 있다면, 원심으로서는, 위 부도 당시의 기발생 물품대금액과 피고인이 영업을 그만 둔 시점에서의 잔존 물품대금액을 심리·확정하거나, 아니면 위 부도 이후 공급한 물품대금액과 위 부도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을 보다 자세히 심리·확정하는 등 하여, 과연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기망하였는지 여부 및 피고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이 있어 피고인의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하여 따져 보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위 사실들에 관하여 제대로 심리해 보지도 아니한 채, 만연히 이 사건 공소가 제기된 피해액 전액에 대하여 피고인의 기망의 의사 및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섣불리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사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증거에 대한 평가를 그르치고 심리를 미진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는 그 이유 있다.

3. 결 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할 필요도 없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송진훈(재판장) 변재승 윤재식(주심) 이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