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 인
피고인
검사
최윤경
주문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한다.
이유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차량등록번호 1 생략) 소나타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였다.
2010. 6. 8. 22:00경 위 차량을 대전 중구 선화동에 있는 선화4가를 대종로4가 쪽에서 중앙로4가 쪽으로 편도3차로를 3차로로 시속 약 50㎞의 속력으로 진행하다 사고지점에 이르러 (구)법원4가 쪽으로 우회전을 하게 되었다.
당시 그 곳은 신호등이 설치 운영되고 있는 교차로이므로 피고인은 신호에 따라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직진방향 적색신호였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우회전한 과실로 마침 중앙로4가 쪽에서 (구)법원4가 쪽으로 좌회전신호에 따라 진행을 하던 피해자 공소외인(여, 51세)이 운전하던 (차량등록번호 2 생략) 옵티마 승용차량 우측 앞 문짝 부분을 피고인차량 좌측 앞 범퍼부분으로 충격하였다.
결국 피고인은 위와 같은 업무상의 과실로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추부 염좌 등의 상해를 입게 하였다.
2.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피고인 차량이 우회전할 당시 전방 직진 신호가 적색이었던 것은 맞으나 우회전차량은 직진 신호가 녹색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우회전이 허용되고 있으므로 피고인 차량이 우회전한 것은 신호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3. 판단
기록에 의하면, 공소사실에 적시된 사실관계는 모두 사실인 것으로 인정되며, 피고인 역시 사실관계를 다투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킨 우회전차량에게 신호위반책임을 지우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 이 사건의 쟁점이다.
구 도로교통법 시행규칙(2010 9. 10. 행정안전부령 제16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별표 2]는 적색의 등화가 표시하는 신호의 의미에 대하여 “차마는 정지선, 횡단보도 및 교차로의 직전에서 정지하여야 한다. 다만, 신호에 따라 진행하는 다른 차마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고 우회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면서, 녹색의 등화가 표시하는 신호와 관련해서는 “차마는 직진할 수 있고, 다른 교통에 방해되지 않도록 천천히 우회전할 수 있으며, 비보호좌회전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서는 신호에 따르는 다른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좌회전할 수 있되, 이 경우 좌회전하는 차량이 다른 교통에 방해가 된 때에는 신호위반의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별표의 규정내용 및 방식에 비추어 적색의 신호에서 우회전을 허용한 취지를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보면, 교차로에 진입한 차마는 원칙적으로 적색 신호에서 일단 정지하여야 하지만, 원활한 교통 소통을 위하여 우회전을 허용하되, 이미 신호에 따라 운행하던 다른 차량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통 상황을 잘 살피도록 안전의무를 부과한 것이지 우회전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제1호 가 정한 ‘신호위반’의 책임을 묻도록 하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이상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10. 16. 선고 2008노2820 판결 참조).
사고가 발생한 우회전차량에게 신호위반의 책임을 부과하게 된다면, 우회전운전자에 대하여 다른 차마의 교통을 방해하는지 여부라는 지나치게 추상적 기준만을 가지고 신호의 준수 여부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것이 되는데, 이는 형사법의 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여서 받아들일 수 없다. 우회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사후적 사정만을 가지고 소급하여 신호위반을 의제하게 된다면, 허용과 금지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꼴이므로 역시 명확성의 원칙에 비추어 바람직한 입법기술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고발생이라는 사후적 사정을 가지고 ‘다른 차마의 교통을 방해하였다는 사실’을 의제하고, 이에 따라 신호위반을 의제하여 우회전차량 운전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우고자 하는 해석은, 피고인에게 반대사실(다른 차마의 교통을 방해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검사에게 공소사실에 대한 거증책임을 부담시키는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예외적으로 피고인에게로 거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것으로 해석되는 규정은 2가지를 든다. 동시범의 특례를 규정한 형법 제263조 와 명예훼손죄에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한 형법 제310조 가 그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법률로써 거증책임을 전환하고 있는 위 규정들 역시 일각에서는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하물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2]에 관하여 뚜렷한 법률적 근거 없이 해석으로써 거증책임을 전환하고자 하는 것은 상당한 헌법적 문제를 내포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 reo)’라는 형사법의 금언에도 반하는 해석이다.
검사는 비보호좌회전의 경우 사고차량에 신호위반 책임을 지우는 규정과 관련하여, 이러한 규정이 없는 우회전에 관하여 당연히 신호위반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으로 반대해석을 하여야 할 논리필연성이 없다고 주장한다(검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다른 하급심 판결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7. 2. 선고 2009노1420 판결 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보호좌회전의 경우에 사고차량이 신호위반의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 역시 위와 같은 명확성의 원칙 및 무죄추정원칙 등에 비추어 상당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입법정책상 그리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 규정을 다른 규정의 해석에 유추하는 등 지나치게 확장해석하는 것은 옳은 해석론이라고 볼 수 없다. 새로 개정된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2]가 위와 같은 문제제기에 조응하여 비보호좌회전에 의한 사고차량에 대한 신호위반책임을 삭제한 점 역시 위와 같은 해석론을 점검하는 데에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검사가 인용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7. 2. 선고 2009노1420 판결 의 논리에는 따르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법리해석론을 종합하여 보면, 우회전차량이 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이에 대하여는 일반적 과실에 의한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할 것이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 에 해당하는 중대과실로 보아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에 의하여 신호위반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 형법 제268조 에 해당하는 죄로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 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 제1항 , 제3조 제2항 본문에 의하면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할 것인데,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운행한 택시는 이 사건 사고 당시 택시공제조합에 가입되어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공소는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 에 의하여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하기로 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