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가. 신용장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신용장대금의 지급지체가 신용장 개설의뢰인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을 구성하는지 여부
나. 합의에 의한 취소불능신용장의 취소가 가능한 시기
판결요지
가. 신용장개설은행의 신용장개설의뢰인에 대한 신용장개설약정에 따른 의무는 그 약정에 따른 신용장개설과 이에 따른 수익자의 선적서류 제시 및 교부로 종결되는바, 신용장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신용장대금의 지급지체가 신용장개설의뢰인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을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 취소불능신용장의 개설약정이 있더라도 관계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있으면 이를 취소할 수 있으나, 취소의 합의는 적어도 신용장에 따른 선적서류가 제시 또는 매입되기 이전에 있어야 한다.
원고, 항소인
주식회사 종근당
피고, 피항소인
주식회사 비씨씨아이국제은행
원심판결
제1심 서울민사지법(1993.8.24. 선고 93가합12324 판결)
주문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원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불화 495,000프랑과 미화 136,500달러 및 그중위 불화 495,000프랑에 대하여는 1991.12.7.부터, 위 미화 136,500달러에 대하여는 1991.12.11.부터 각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푼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선택적으로, 피고는 원고에게 불화 495,000프랑과 미화 136,500달러 및 위 각 금원에 대한 1991.8.7.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푼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다음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의 1,2, 갑 제2호증의 1 내지 5, 갑 제3호증의 1 내지 5, 갑 제4호증, 갑 제5호증의 1 내지 4, 갑 제6호증의 1,2, 갑 제7호증의 1 내지 4, 갑 제8호증, 을 제1호증, 을 제2호증, 을 제3호증, 을 제4호증, 을 제5호증, 을 제6호증의 1,2, 을 제7호증, 을 제8호증의 1,2,3, 을 제9호증, 을 제10호증, 을 제11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는 의약품, 화공약품 등의 제조, 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피고 은행은 세계 69개국에 지점망을 가지고 예금의 수수, 유가증권의 발행 등을 업으로 한 중동계 다국적은행이었는데 현재 본점 및 서울지점을 비롯한 해외 각 지점에서 청산절차가 진행중에 있다.
나. 기한부 신용장 개설
(1)원고는 의약품원료를 공급하는 스위스 소재 파레크케미칼스사(PAREKH CHEMICALS SA, 이하 파레크라 한다.)로부터, ① 1991.2.경 의약품원료인 엠부톨 에이치시엘 비피(Embutol HCL BP) 1,000kg을 미화 38,000불에, ②1991.3.경 역시 위 엠브톨 에이치시엘 비피 1,000kg을 미화 40,000불에, ③ 1991.5.경 7-아미노 세팔스포라닉 애시드(7-Amino Cephalsporanic Acid) 225kg을 미화 58,500불에 각 매수하여 수입하면서, 피고 은행 서울지점과의 사이에 그 대금지급과 관련하여, ① 1991.2.27. 위 1991.2.경 계약에 대한 취소불능신용장개설을, ② 1991.3.19. 위 1991.3.경 계약에 대한 취소불능신용장개설을, ③ 1991.5.10. 위 1991.5.경 계약에 대한 취소불능신용장개설을 각 약정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각 그 시경 위 파레크(PAREKH)를 수익자로, 비시피 쮜리히(BCP ZURICH)를 통지은행으로 하여 일람후 60일 지급(60 days after sight)의 기한부신용장(Usance Credit)을 개설하였다.
(2)위 파레크(PAREKH)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신용장 개설에 따라 위 물품에 대한 선적을 마친 후 위 각 신용장에 부합되는 선적서류를 작성하여 위 통지은행을 통하여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게 선적서류를 위 ① 1991.2.27.자 신용장에 대하여는 1991.6.7. 위 ② 1991.3.19.자 신용장에 대하여는 1991.5.17. 위 ③ 1991.5.10.자 신용장에 대하여는 1991.6.7. 위 각 신용장에 기초한 위 파레크(PAREKH) 발행의 지급인 원고, 수취인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일람후 60일 지급 환어음과 함께 각 제시하였다.
(3)원고는 위 선적서류 및 환어음이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 제시된 각 당일에 위 각 환어음을 각 그 만기(1991.2.경 계약에 대한 어음은 1991.8.6. , 1991.3.경 계약에 대한 어음은 1991.7. 16. , 1991.5.경 계약에 대한 어음은 1991.8.6.임)에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인수를 함과 아울러 피고 은행 서울지점으로부터 선적서류를 인도받아 그 시경 위 각 의약품들을 인도받았다.
다. 일시불 신용장 개설
(1)원고는 또 역시 의약품원료를 공급하는 프랑스 소재 소외 라보라토리스 파마사이언스(LABORATORIES PHARMASCIENCE, 이하 파마사이언스라 한다.)로부터 의약품 원료인 아보카도-소야 언사포니피어불(Avocade-Soya Unsaponifiable) 110kg을 불화 495,000프랑에 매수하여 수입하면서, 그 대금지급과 관련하여 1991.5.7. 피고 은행 서울지점과의 사이에 취소불능신용장개설을 약정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그 시경 위 파마사이언스(PHARMASCIENCE)를 수익자로, 피고 은행 파리지점을 통지은행으로 하여 일람불신용장(Sight Credit)를 개설하였다.
(2)위 파마사이언스(PHARMASCIENCE)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신용장 개설에 따라 위 물품에 대한 선적을 마친 후 위 신용장에 부합되는 선적서류를 작성하여 위 통지은행을 통하여 1991.7.8.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게 선적서류를 제시하였다.
(3)그런데 위 의약품이 선적서류보다 앞서 1991.6.28. 먼저 도착하게 되자 원고는 1991.7. 4. 피고에게 위 신용장의 의약품대금 전액 상당액을 예치하고 피고로부터 화물선취보증서(L/G)를 발급받아 이를 운송인에게 제시하여 위 의약품을 인도받았다.
라. 한편, 피고 은행은 1991.7.경 마약자금거래 등 불법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영국,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 영업정지 및 자산동결조치를 받게 되자 1991.7.6.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 대하여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영업을 정지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1991.7.6. 영업을 중단하고 이를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에 보고하였다.
마. 이에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은 1991.7.8.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 대하여 대출금의 회수, 이자의 수입 등 통상적인 채권관리업무는 계속하되 그 외 신규채무 부담행위, 해외송금업무 등을 비롯한 모든 업무를 정지하라는 조치를 취하였다.
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그 후 ① 위 각 기한부 신용장과 관련된 위 각 환어음의 만기인 1991. 7.16. 및 1991.8.6.에 그 어음금을 원고로부터 지급받았고, ②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일람불 신용장의 선적서류가 통지은행을 거쳐 1991.7.8. 피고 은행 서울지점에 제시되자 1991.7.12. 이와 관련된 위 예치금을 신용장결제대금으로 처리하였다.
사. 그런데 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의 지시에 의하여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위와 같이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의 결제대금을 지급받았음에도 현재까지 위 각 신용장의 수익자인 위 파레크(PAREKH) 및 파마사이언스(PHARMASCIENCE, 이하 파레크와 파마사이언스를 합하여 가리킬 때 위 소외 회사들이라 한다.)에게 신용장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아. 한편 피고 은행은 1991.7.22. 은행인가가 취소되어 청산절차에 들어갔고,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1991.8.1. 국내영업소인가 및 외국환업무인가가 각 취소되자 1991.8.6. 스스로 영업소를 폐쇄한 후 대한민국에 있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 재산의 전부에 대한 청산개시신청을 하여 1991. 8.28. 법원으로부터 청산개시명령을 받아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자. 청산절차에 따라 피고 은행 서울지점 청산인은 채권자에 대하여 1991.12.16.까지 채권을 신고할 것을 최고하였고, 이에 위 파레크는 1991.12.11. 및 1991.12.14.에, 위 파마사이언스는 1991.12.16.에 각각 위 신용장대금에 대하여 채권신고를 하였다.
2. 원고의 주장 및 이에 대한 판단
가. 신용장대금의 지급지체가 채무불이행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개설약정에 따른 신용장결제대금을 이미 지급 받았으면서도 피고 은행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국외자금송출업무 등의 금지를 받게 됨에 따라 신용장상의 조건에 따른 선적서류를 구비하여 제시한 위 소외 회사들에게 신용장 대금을 지급하지 못함으로써 위 각 신용장개설약정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이 사건 소장 부본의 송달로써 위 각 신용장개설약정을 해제하고, 원상회복으로 원고가 지급한 위 각 신용장결제대금인 미화 136,500불(38,000불+40,000불+58,500불), 불화 495,000프랑 및 그에 대한 법정이자의 지급을 구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원고에 대한 위 각 신용장 개설약정에 따른 의무는 그 약정에 따른 신용장 개설과 이에 따른 수익자의 선적서류 제시 및 원고에의 선적서류 교부로 종결되었고,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수익자인 위 소외 회사들에 대하여 위 각 신용장에 따른 대금지급의무만을 부담하고 있는 상태인바, 신용장개설은행의 수익자에 대한 신용장대금의 지급지체가 신용장개설의뢰인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을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은 주장 자체에서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나. 취소불능신용장의 취소합의 주장에 대하여
(1)원고는 또, 피고 은행 서울지점을 제외한 관계당사자 전원이 위 각 취소불능신용장을 취소하기로 합의하였는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취소에 있어 정당한 이해관계 있는 당사자가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취소에 부동의함은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을 구성하거나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거나,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1991.7.6. 자발적으로 영업을 정지함으로써 묵시적으로 취소에 대한 동의권을 포함한 신용장개설약정상의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였으므로 위 취소불능신용장은 적법하게 취소되었다고 주장한다.
(2)그러므로 먼저 이 사건 신용장이 취소가능한 것인가에 관하여 살피건대, 취소불능신용장의 개설약정이 있더라도 관계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있으면 이를 취소할 수 있으나, 일단 신용장이 개설된 후 이에 따른 선적서류가 작성되어 제시 또는 매입되면 신용장의 사용은 종결되고 신용장대금의 결제만 남은 상태가 되므로, 취소의 합의는 적어도 개설된 신용장에 따른 선적서류가 제시 또는 매입되기 이전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각 신용장들에 따른 선적서류가 이미 제시되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주장 또한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3)가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용장 개설은행은 신용장의 기본 당사자로서 그의 동의가 없으면 취소불능신용장이 적법하게 취소될 수 없고,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이 사건 신용장의 취소에 부동의하는 것이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을 구성하거나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볼 수 없으며,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1991.7.6. 자발적으로 영업을 정지한 것이 묵시적으로 취소에 대한 동의권을 포함한 신용장개설약정상의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
다. 원고와 피고 은행 서울지점 간의 위임관계의 소멸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신용장 개설 이후 신용장개설은행이 지불불능 상태로 될 경우 신용장개설의뢰인과 신용장개설은행과의 위임계약은 소멸하므로, 피고 은행은 원고에게 원고가 지급한 신용장결제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나, 신용장개설은행이 지불불능 상태로 된다고 하여 신용장개설은행이 신용장개설의뢰인에게 신용장결제대금을 반환하여야 할 이유는 없을 뿐만 아니라, 지불불능 상태의 신용장개설은행이 신용장결제대금을 반환할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 또한 주장 자체에서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
라. 신용장결제대금의 수령이 채무불이행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결제대금을 지급받기 이전인 1991.7.8. 이미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으로부터 채권회수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의 처리를 금지 받았으므로 피고 은행 서울지점으로서는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개설대금을 수령한다 하더라도 이를 위 소외 회사들에게 송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였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송금이 가능한 것으로 믿고 위와 같이 위 각 금원을 수령한 후 결국 위 소외 회사들에게 송금을 하지 못하고 있어 원고를 이중지급의 위험에 빠지게 하였는바, 이는 신용장개설의뢰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에 위반하여 채무불이행을 구성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1991.7.8.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으로부터 1991.7.6.자 영업정지조치와 관련하여 대출금의 회수, 이자의 수입 등 통상적인 채권관리업무는 계속하되 그외 신규채무 부담행위, 해외송금업무 등을 비롯한 모든 업무를 정지하라는 조치를 받은 후임에도 원고로부터 신용장결제대금을 교부받거나 예치금을 신용장결제대금으로 대체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위 소외 회사들에 대한 이 사건 신용장대금지급의무는 위 1991.7.8. 이전에 이미 확정적으로 발생한 상태이고,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원고로부터 신용장결제대금을 받은 것은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국내에서의 통상적인 채권관리업무인 채권의 행사라고 할 것이므로 비록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대외송금업무 정지 조치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권리행사가 원고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이 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 또한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
마. 신용장결제대금의 수령이 기망에 의한 불법행위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 은행 서울지점은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대금을 지급받기 이전인 1991.7.8. 이미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으로부터 채권회수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의 처리를 금지 받았으므로 피고 은행 서울지점으로서는 원고로부터 위 각 신용장개설대금을 수령한다 하더라도 이를 위 소외 회사들에게 송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였음에도, 송금이 가능한 것처럼 원고를 기망하여 위와 같이 위 각 금원을 수령하였으므로 피고 은행은 위 불법행위를 이유로 위 각 신용장결제대금 상당액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므로 먼저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위 원고 주장과 같이 원고를 기망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에 부합되는 듯한 당심증인 이정열의 증언은 선뜻 믿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은행 서울지점이 위 신용장결제대금을 수령한 것은 피고 은행 서울지점의 국내에서의 통상적인 채권관리업무인 채권의 행사라고 할 것이어서 이러한 권리행사가 원고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 또한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
3. 결론
따라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음이 명백하여 이를 기각할 것인바, 원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 하여 정당하고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