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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법 1997. 4. 16. 선고 96르1222 판결 : 확정
[이혼 ][하집1997-1, 426]
판시사항

이혼 합의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유책배우자에 대한 보복 감정에서 표면상으로만 이혼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한 사례

판결요지

유책배우자의 상대방 역시 혼인의 파탄은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 이혼 합의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다만 오기나 그 동안의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복의 감정에서 표면상으로만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한 사례.

참조조문
원고, 피항소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임두인)

피고, 항소인

피고

원심판결

서울가법 1996. 10. 8. 선고 95드19311 판결

주문

1.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항소위지

원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인정사실

갑 제1호증, 갑 제2호증의 1 내지 28, 갑 제3호증, 갑 제4호증의 1, 2, 3, 갑 제5호증의 1, 2, 갑 제6호증, 갑 제7호증, 을 제1호증의 1, 2, 을 제2호증의 1 내지 10, 을 제3호증, 을 제4호증의 1, 2, 을 제5호증의 1, 2, 을 제6호증, 을 제7, 8, 9호증의 각 1, 2의 각 기재, 원심증인 소외 5, 소외 4, 원심증인 1의 각 증언, 원고본인신문 결과, 이 법원 조사관 작성의 조사보고서 내용(다만 위 증인 소외 5, 원심증인 1의 각 증언 및 원고본인신문 결과 중 아래에서 믿지 않는 부분은 각 제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어긋나는 원심증인 소외 5, 원심증인 1의 각 일부 증언 및 원고본인 일부 신문 결과는 믿기 어려우며, 달리 반증이 없는 한편, 아래 인정 사실을 넘어서는 원고의 주장 사실은 앞서 믿지 아니한 증거들 외에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1) 원고와 피고는 1983. 11. 16.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의 부부로서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2) 동국대학교 철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원고는 1983. 9.경 부산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뒤 포항에서 여고교사로 재직중이던 3년 연상의 피고를 중매로 만나 사귀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혼인하였다.

(3) 혼인 후 원고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큰누이인 소외 1의 집에서 기거하며 학업을 계속하였는데, 피고가 혼인 후에도 계속하여 포항에서 교직생활을 하게 되어 주말마다 수시로 포항에 내려가 피고를 만나고 피고가 주는 돈으로 학비나 생활비에 충당하는 등으로 생활하였다.

(4) 그러던 중 피고는 원고가 공부에 전념하지 아니하고 학교에서 여학생과 어울려 다닌다는 등의 소문을 듣기도 하고 또 혼인 초부터 별거하다시피 하여 온 원고와의 혼인생활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1985. 2.경 학교를 사직하고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금 5,500,000원을 전세보증금조로 원고에게 송금한 뒤 상경하여 위 소외 1의 집에 방을 얻고 원고와 합류하여 실질적인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다.

(5) 그런데 그 무렵 원고는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면서 피고에게 공부를 이유로 당분간 서로 각방을 쓸 것을 요구하였고 피고도 이에 응함으로써 원·피고는 위와 같이 동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각 방을 쓰며 지내게 되었다.

(6) 그 후 피고는 그 동안의 저축금을 가지고 원고를 뒷바라지 하며 아울러 가계도 도맡아 꾸려 나갔는데,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당시 위 소외 1의 집에 기거하고 있던 원고의 작은 누이인 소외 2의 가족 등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와도 자주 다툼을 벌였다.

(7) 그런데 피고는 원고가 학업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친구들과 자주 주점 출입을 하면서 다른 여학생 또는 주점 여종업원과 어울리기도 하고, 평소 버스보다는 택시를 타고 다닌다거나 미용실 출입을 자주하는 등으로 형편에 비해 그 씀씀이가 헤프게 생활하자 이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아울러 그 동안에 이어져 온 두 사람간의 결혼생활 방식에 대하여 일말의 회의를 가지게 되어 원고에게 위와 같은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독선적인 성격이어서 평소 원고나 같이 사는 원고의 친족 등과의 마찰도 잦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피고의 불만이 원고의 생활에 대한 몰이해와 근거 없는 의심, 또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무능력 상태에 대한 피고의 무시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면서 이를 자신의 생활에 대한 부당한 제약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피고 간에 갈등이 시작되어 다툼이 점차 잦아지고 그 정도가 심하여 졌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를 폭행하기도 하였고, 이에 반발한 피고가 부부싸움 후에는 오랫동안 원고의 식사준비나 빨래 등을 전혀 해주지 않는 등으로 대응하기도 하였다.

(8) 피고는 위와 같은 부부간 불화가 계속되자 생활환경을 바꾸어 두 사람 사이의 관계호전을 기대하는 한편 지속적인 생계대책을 고려하여 1986. 9.경 서울 대림동 소재 3층 건물의 방 2칸을 보증금 3,000,000원, 월세 180,000원에 임차하고 그 곳으로 이사하여 원고와 함께 생활하면서 주산학원을 운영하여 가계를 꾸려 나갔다.

(9) 그러나 피고는 그 후에도 원고가 각방 생활을 요구하는가 하면 1987. 8.경 위 행정대학원을 수료한 뒤에도 직장조차 얻지 못하게 되자 이에 대하여 불평, 불만을 늘어놓아 원고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원고에게 '좋지 않은 학교를 나오니까 취직도 못한다.'고 하거나 원고와 싸운 뒤에는 오랫 동안 원고의 식사준비나 빨래 등을 외면하여 버리기도 하였다.

(10) 이에 원고는 같은 해 11.말경 피고에게 이렇게 살 바에 차라리 집을 나가겠다고 하였고, 피고가 오던지 가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응대하자 그 길로 집을 나간 뒤 일체 피고에게 연락을 하지 아니하였다.

(11) 피고는 원고가 집을 나간 후 원고의 행방을 수소문하였으나 원고의 가족 등이 이를 알려 주지 않아 혼자 딸인 소외 3을 키우면서 원고의 모와 때때로 연락을 하며 지내다가 원고가 가출한 지 5년여가 지난 1992. 6. 초순경에야 원고가 정당에 취직한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의 직장으로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그 동안의 원고의 잘못을 추궁하면서 원고를 비난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자녀양육비와 생활비 등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다가 1993. 1.경 원고가 집을 나가 피고와 별거하는 동안 다른 여자와 사귀면서 그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하였다며 원·피고 사이의 자로 호적에 올려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하면서 이혼할 것을 고집하자 원고에게 위자료로 금 100,000,000원을 주어야 협의이혼에 응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3. 2. 초순경에는 소외 4를 통하여 원고에게 위자료조로 원고의 모 소외 5 소유의 경북 경주군 안강읍 근계리 소재 전 172㎡ 및 같은 곳 소재 전 49㎡ 토지 2필지와 그 지상의 무허가 한옥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피고 명의로 경료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12) 원고는 피고의 요구에 따라 위 소외 3의 양육비를 지급하는 한편, 위 한옥 등의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이를 피고에게 알렸으나, 피고는 위 한옥 등의 시가가 자신의 요구 액수에 미치지 못한다며 이를 거절하였다.

(13) 피고는 다시 1993. 4. 중순경 위 부동산 외에 자녀의 양육비 및 생활비 명목으로 금 10,000,000원을 추가로 지급하여 주면 협의이혼하여 주겠다고 원고에게 제의하였다가 원고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금 10,000,000원과 위 가옥 등의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 등을 갖추어 이를 수령할 것을 통보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혼에 불응하기도 하였고, 같은 해 9. 말경에는 원고에게 그 동안 자신이 대준 학비 등을 갚으라고 요구하여 원고로부터 같은 해 10. 4.경과 12. 28.경 두 차례에 걸쳐 합계 금 7,700,000원을 송금받기도 하였다.

(14) 한편, 원고는 자주 피고의 집에 찾아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소란을 피웠는데, 1993. 4. 5.경에는 피고를 찾아갔다가 피고가 문을 열어 주지 아니하자 발로 문을 차고 술병을 깨뜨리는 등 하였고, 1994. 7.경에는 피고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피고를 밀어서 넘어뜨리기도 하였다.

(15) 피고는 1994. 9.경 원고가 찾아와 살림살이를 부수고 행패를 부리는 등 하면서 계속하여 이혼을 요구하는 데다가 위와 같은 원·피고의 관계를 알게된 위 소외 4 등이 서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면서 원고와의 이혼조건에 관한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원고와의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16) 이에 따라 몇 차례의 의견조정을 거쳐 1994. 9. 30.경 인천소재 새인천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원·피고 및 위 소외 4가 참석한 가운데 원·피고는 이혼하기로 합의하면서, 딸인 위 소외 3은 피고가 양육하되 원고가 양육비로 월 금 300,000원씩을 지급하고 위 양육비는 매년 5%씩 인상하기로 하며, 그 외에도 학비는 원고가 일체 부담하기로 하고, 원고가 당에서 받는 가족수당 중 소외 3에 대하여 지급되는 부분은 매월 피고에게 지급하여 주기로 하며, 이혼의 위자료조로 위 전 2필지 등의 소유권을 피고에게 이전하고 그 이전 비용 및 제세공과금을 원고가 부담하기로 하고 이를 공증하였다(피고는, 위와 같은 약정은 원고의 강요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피고는 곧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위 이혼의사를 철회하였다고 주장하나 앞서 배척한 증거들 외에는 이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17) 그 후 원고는 같은 해 10. 4.경 피고에게, 피고가 위 약정사항 외에 별도로 요구한 금 13,000,000원을 위자료조로 송금하는 한편, 위 약정에 따라 위 소외 3에 대한 양육비를 지급하고, 같은 해 11. 4.경 위 토지 2필지에 관하여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고 그 등기필증을 원고에게 우송한 뒤 같은 해 12. 7.경 원고와 함께 법원에서 협의이혼의사확인을 받기로 약속하였다.

(18) 그런데 피고는 위 약속과는 달리 협의이혼절차에는 협력하지 않으면서 원고에게 위 소외 5 소유의 무허가 한옥을 즉시 명도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한 겨울이라도 나고 다음 해 2, 3월경 전세금을 마련하여 이사하겠다고 양해를 구하였으나, 피고가 당장 위 가옥을 비워 주어야만 이혼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위 소외 5는 같은 해 12. 28.경 위 가옥을 비워 주고 그의 딸집에 임시 거주하다가 원고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 등으로 마련한 합계 금 10,000,000원으로 전세방을 얻어 이사하였다.

(19) 그런데도 피고는 다시 위 한옥 등의 시세가 금 35,000,000원 내지 금 40,000,000원 정도 된다는 원고의 말과 달리 금 20,000,000원 정도밖에 안된다며 금 20,000,000원을 추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그 동안 피고가 혼자서 소외 3을 키우면서 고생하였으니 원고의 인생도 망가져야 한다는 등 하면서 원고의 이혼청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20) 그러자 원고는 1995. 3. 24.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1) 피고는 이 사건 조정기일에서 원고로부터 그 동안 지급받은 돈은 생활비조로 받은 것임을 전제로 위자료로 금 30,000,000원과 양육비로 매월 금 300,000원에 매년 5%씩을 증액한 금액을 준다면 이혼에 응하겠다고 하고, 당심 제3차 변론기일에서는 원고와의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는 없다고 진술하였다.

2. 판 단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원·피고 사이의 혼인관계는 원·피고가 혼인 직후부터 상당기간을 별거하며 지내다가 함께 살면서부터는 서로 성격 차이로 말미암아 자주 다투는 등으로 부부간 불화가 끊이지 않던 중 동거한 지 불과 1년 6개월 남짓 만에 원고가 집을 나가 그 이래로 5년여 동안 피고와 별거하면서 피고에게는 연락도 하지 아니한 채 지내면서 다른 여자와 사귀어 그 사이에서 아이까지 출산한 뒤 피고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피고 또한 원고의 소재를 알아 낸 다음에는 원만한 혼인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기 보다는 원고의 잘못을 추궁하고 질책하다가 위자료의 지급을 조건으로 원고와의 이혼에 합의하고 그 후 원고로부터 위자료조로 금원을 수령하는 등 함으로써 이미 사실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되었다 할 것인바, 그 근본적이고도 주된 책임은 부부간 갈등을 해소하여 원만한 혼인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아니한 채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 이혼을 요구하는 등 한 원고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혼인의 파탄 과정 및 그 뒤의 이혼 합의나 그 결렬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피고의 태도, 즉 원고에게 혼인생활 중 피고가 부담하였던 학비 등의 청산을 요구하고, 원고가 이혼을 요구하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금액을 위자료조로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원고의 모 소유이던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 달라고 하였다가 원고가 이에 응하여 위 부동산의 소유권을 넘겨주려고 하자 다시 태도를 바꾸어 위 부동산의 시가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이혼을 거절하고, 그 후 다시 원고와 이혼에 합의하고 위자료 명목으로 금원 등을 지급받은 후에는 위 금원이 생활비조로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원고의 이혼 청구에 불응하고, 이 사건 조정기일에서는 추가로 금원을 지급하면 이혼에 응하겠다고 하면서 당심에 이르러서는 원고와의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 역시 원고와의 혼인의 파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이혼 합의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다만 오기나 그 동안의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복의 감정에서 표면상으로만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 사건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할 것인바, 원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는 이유가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준수(재판장) 변동열 장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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